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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자신도 강권과 강권의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사찰을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강권과 주위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희복은 슬쩍 강권의 눈치를 살폈지만 강권이 자신을 탓하는 것 같지는 않아 안도했다. 하지만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강권이 그걸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생각한다고 강희복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강권은 시치미를 뚝 떼고 강희복 경찰청장에게 문건에서 보았던 윤기영 대통령 비서실의 국정상황실장과 조호명 특전사령관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최 이사, 윤기영과 조호명의 자료를?”
“예, 청장님. 대통령 비서실에 기안한 [천군 재림] 작전의 주동 인물이니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알겠네. 고 경위를 통해서 보내 주도록 하겠네. 그런데 청와대에서 요청을 하면 최 이사는 어떻게 하려는가?”
“가 봐야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농간에 휘말려 들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청장님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권은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는 자들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 거기에는 강희복 경찰청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원한을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기 손에 피를 묻혀 가며 그들을 해칠 게 아니라 적당히 싸움을 붙여놓고 슬쩍 발을 빼면 죽을 놈은 죽고 살아남을 놈은 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다 보면 임기가 끝나니 안 보고 살면 그걸로 끝 아니겠는가?
‘실감나게 싸우게 하려면 쌍방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겠지?’
강권은 이런 내심을 감추고 강희복 경찰청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참 부탁드릴 일이 또 하나 있는데, 경찰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조폭들에 대한 자료도 고 경위 편에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조폭들을 우선 살펴보고 거둬들여야 할 사람과 내쳐야 할 사람을 가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알겠네. 고 경위 편에 함께 보내 주도록 하겠네.”
“고맙습니다. 청장님.”
경찰청장과 헤어지고 돌아오다 문득 딴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욕심을 부려 봐?’
정부가 깔아 놓은 베이스를 토대로 만들어질 엄청난 조직을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서로 손에 넣으려고 하는데 자기가 가지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 내가 조직을 손아귀에 넣고 난 다음에야 설령 그들이 나에게 원한을 가진들 그땐 이미 임기를 마치고 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니, 그들이 두려울 게 무에 있겠어? 좋다. 하자.’
강권은 이렇게 대통령 비서실에서 기안하고 특전사가 주축이 되어서 시행할 [천군 재림] 작전에 입맛을 다시게 되었다.

* * *

강권이 조만간 청와대 쪽에서 사람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과연 이무영 대통령으로부터 보자는 연락이 왔다.
강희복 경찰청장을 만난 지 딱 열흘 후였다.
청와대에서 보낸 사람들을 따라간 곳은 강희복 경찰청장과 함께 만났던 곳이 아닌 또 다른 안가였다. 이것으로 청와대에서 강희복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곳에는 이무영 대통령 외에 윤기영과 조호명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배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누구지?’
강권은 문건에는 언급이 전혀 없는 인물이 한 사람 더 있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게다가 관상(觀相)을 보니 지(智)와 용(勇)을 겸비한 전형적인 무장(武將)이었다.
“하하하, 어서 오게. 내 자네 덕에 요즘 몸이 아주 거뜬하다네.”
“하하, 대통령님.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제 덕이라니요. 그런데 이분들은…….”
“아! 인사하지. 이쪽은 청와대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 윤기영 이사관이고, 저쪽은 특전사령관인 조호명 중장일세. 그리고 조 장군 뒤에 있는 사람은 조 장군 휘하의 제3공수여단의 여단장을 맡고 있는 최창하 장군일세.”
“아! 그러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최강권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에게 소개받은 윤기영은 자못 흥미롭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인사를 했고, 조호명은 강권을 시답지 않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인물 최창하 장군은 전혀 자신의 속내를 표시하지 않고 두 사람의 딱 중간 정도의 강권이 판단하기 어중간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서로 인사를 끝내자 이무영 대통령은 [천군 재림] 작전에 대해 언급했다. 이무영 대통령이 하는 말들은 강희복 경찰청장으로부터 입수한 문건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강권은 이무영 대통령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를 하며 윤기영과 조호명의 됨됨이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우선 대통령 비서실의 국정상황실장이라는 윤기영은 전형적인 모사(謀士)로 보였다. 그가 [천군 재림] 작전을 기안했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강권의 흥미를 끄는 인물은 모사인 윤기영 보다는 오히려 용장에 가깝게 보이는 조호명이었다. 과연 대통령이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
강권은 일단 문제의 인물 최창하 장군의 됨됨이 파악은 보류했다. 그렇다고 최창하 장군이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가 윗사람을 딛고 서려는 이른바 반골이 아니어서 조호명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조호명 특전사령관이라고 했지? 과연 당신들이 그렇게 신뢰하는 그 조호명이 당장 죽게 생겼어도 그에게 조직을 맡길 수 있을까?’
조호명 특전사령관을 보자 한눈에 그가 의리의 돌쇠 타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얼핏 보긴 했지만 그의 손바닥이 사각형이고 막쥔 손금(지능선과 감정선이 하나로 합해져서 손바닥을 좌우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손금으로 일자 손금이라고도 한다. 일을 철저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목표가 크면 클수록 크게 될 확률이 크다고 한다. 반면에 실패할 확률도 그만큼 크다. 막쥔 손금의 장점은 실패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그룹을 만든 정주영 회장이 전형적인 막쥔 손금이라고 한다.)을 갖고 있기까지 했다.
이런 인물들은 한 번 꽂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는 전형적인 무데뽀였다. 다행스런 점은 이무영 대통령에게 아직 필이 꽂힌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대통령님. 이 사람은 내가 차지해서 잘 쓸 게요.’
강권은 내심 조호명 장군을 내 사람으로 만들 궁리를 했다.
‘흐음, 그러면 되겠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 되어 줄 테니까 당신은 당분간 간암 말기 환자가 되어 주어야겠어.’
물론 조호명 특전사령관이 정말로 간암 말기는 아니었다. 간암은커녕 오히려 특전사령관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정도로 엄청 건강했다. 그렇게 보여지도록 강권이 수작을 부리겠다는 의미였다.
강권은 침투경을 사용해서 조호명의 간에 무진신공의 기를 투입시켰다. 무진신공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자파를 투과시키기도 하고, 반사시키기도 한다.
‘하하하, CT든 MRI든 찍어 보라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나? 실상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각종 수치로는 몸에 커다란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쿡쿡쿡, 졸지에 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사람을 치료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명의가 되겠군.’
강권은 대통령을 치료하면서 이미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다. 그래서 설령 조호명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리고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더라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강권은 조호명 장군의 몸에 수작을 부려 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며 모른 척했다.

* * *

12·12 사태 때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신군부는 오로지 특전사령관의 명령만을 듣는 직속 부대를 창설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81년도에 88서울올림픽의 개최가 확정됨에 따라 대테러부대를 육성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필요성이 맞물려서 탄생하게 된 특전사령관 직속의 대테러부대가 바로 707특임대대였다.
이처럼 최고위층의 의지가 반영되어서 만들어진 707특임대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예요원이 차출되었고, 최신의 장비가 지급되었다. 여기에 잘 짜진 훈련 커리큘럼에 다른 부대보다 훨씬 강도 높은 훈련이 더해졌다.
따라서 707특임대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예부대라고 봐도 좋았다.
이 707특임대대의 중사 손석철은 조호명 특전사령관 명의의 작전 명령서를 한 통 받았다. 특전사령관이 부사관인 일개 중사에게 직접 작전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엄청 특이한 경우였다.
그런데 작전 명령서를 읽어 보니 기가 차지도 않았다.
완전군장으로, 일몰 후에 출발해서 일출 전에 25사단 72연대 앞에 집결하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72연대로 집결할 게 뻔하다.
‘72연대도 아니고 부대 앞이라니, 이따위 명령서가 어디 있어?’
손석철이 알기로는 25사단 72연대는 GOP((General OutPost):주력 부대를 방호하기 위하여 운용되는 부대로 우리나라의 경우에 남방한계선을 지키는 부대라고 보면 된다. 이는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 사이, 이른바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초소인 GP(Guard Post)와 구분해야 한다.) 지원부대였다.
‘도대체 왜 거기로 가라는 거지? 거기에 완전군장까지 하고?’
거여동에서 72연대가 있는 연천군 법원읍까지는 대략 60∼70km 남짓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10여 년 이상 특수 훈련을 받아 온 손석철에게는 쉬엄쉬엄 걸어가더라도 12시간 내에 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작전 명령서에 그 사유가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자든 부대 단위든, 일단 군 병력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작전 명령서에는 일정한 목표가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도착지만 있고 목표가 없다는 것, 도착지가 GOP 지원부대라는 것은 비정상적인 작전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707특임대대 전체가 가는 것도 아니고 달랑 자기 혼자라는 것도 손석철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인이었다.
“제기랄. 혼자 72연대, 아니지 72연대 앞으로 가라니. 젠장맞을, 도대체 영감에게 뭣에 찍혔기에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명령을 받아야 하지?”
손석철이 말하는 영감((令監):영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의미로 쓰였다.令監)이란 물론 특전사 사령관이다.
“휴우, 군대란 것이 까라면 까야 하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손석철은 되도 않은 명령에 배알이 꼴렸지만 쓰리스타인 특전사령관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석철은 연신 구시렁거리며 완전군장을 꾸려서 연병장에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아는 얼굴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었다.
특히 김정호라는 녀석은 자기처럼 특수부대에만 10여 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특수부대원이었다. 손석철은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그가 반가워 아는 체를 했다.
“야! 김정호, 너도야? 너는 뭐에 찍혔기에 야간 행군이냐?”
“씨팔, 이거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중사가 상사에게 반말 짓거리를 할 수 있어?”
“뭐야? 조까고. 그러니까 나한테 지금 계급 대접을 받겠다는 거야? 이 개자식아, 내가 중사였을 때 너는 훈련병이었어. 인마.”
“그래서 어떡하라고? 그때는 그때고 지금 계급이 높은 건 엄연히 나라고. 어디서 중사가 상사에게 반말 짓거리야?”
손석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김정호를 노려보더니 다짜고짜 펀치를 날렸다. 김정호는 한때 손석철과 707특임대대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손석철의 행동 양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거리를 하면서도 나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손석철의 기습 펀치를 허용치 않았다.
그리고 김정호 역시 707특임대대에서 근무하다가 UDT로 간만큼 정예라면 정예여서 기습 펀치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김정호는 기습 펀치를 피하고 손석철에게 조롱 섞인 핀잔을 주었다.
“조까고, 예나 지금이나 비겁하게 기습 공격하는 것은 여전하구먼. 네 녀석이 하는 게 다 그렇지.”
“씨파, 이 개자식아.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웃기고 자빠졌네. 이 씁새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나는 너처럼 당나라 군대가 아니고 철저하게 상명하복을 준수하는 FM이라 명령이 우선이거든.”
“뭐야? 이 자식이, 정말 해 보자는 거야?”
“됐거든. 이 씁새야, 일단 붙더라도 명령지에 가서 붙자고.”
“뭐시라?”
손석철의 다음 행동은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며 중지되었다.
“어이! 오랜만이군. 그런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자네들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여전하구먼.”
손석철은 막 발작을 하려다 자신에게 말을 붙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인사를 했다.
“강 원사님, 아, 안녕하십니까?”
“강 원사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덕분에. 짐작이야 하고 왔네만, 실제로 자네들의 얼굴들을 대하니 더 반갑구먼.”
“그럼 원사님도.”
“그래, 그렇게 됐네.”
이렇게 대답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사람은 최고의 꼴통이랄 수 있는 손석철로서도 양보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손석철이 707특임대대에 차출되어 재훈련을 받을 때 훈련 교관이었기도 하려니와 강석천의 무술의 경지가 자기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이 양반, 군에서 제대하고 술집을 차렸다고 들었는데…….’
훈련 동기들에게 직접 가 봤다고 들었던 얘기여서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영감의 명령은 북파 공작과…….’
손석철은 최근에 벌어졌던 북한의 도발이나 GOP 지원부대로 가라는 것도 그렇고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은 북파 공작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손석철이 이렇게 확신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강석천이라는 사람이 북파 공작에 있어서 전설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인물들의 면면은 민관군에서 대한민국에서 최고 정예들이자 최고의 꼴통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손석철은 무술 교관으로서 UDT나, 해병 특수수색대원은 물론이고 HID 북파부대의 후신이랄 수 있는 국군 정보사 특작 부대에도 가곤 했었다. 그래서 연병장에 모인 10여 명들의 면면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저 양반은 지금 50살이 다 되었을 텐데, 설마 북파를 감행하려나?’
그렇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을 마치고 707특임대대에 자대배치를 받은 손석철은 강석천이 자기 중대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중대장과 강석천 상사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강석천이 북파 요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들은 얘기로는 강석천이 처음 북파되었던 것은 버마 아웅산 사건이 있은 후 몇 개월 뒤인 84년 초라고 했다.
그리고 중대장 최창하 대위가 육사 41기였으니 대략 80학번 내지 81학번일 것이다. 그걸로 보면 강석천이 북파되었던 때의 나이가 23살이었다는 것도 타당했다.
손석철은 강석천을 남다르게 눈여겨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후로도 최소한 10여 차례 이상 북파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응징 차원에서 북파되었고, 그 때마다 몇 개월씩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 했다.
손석철이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대장이었던 최창하 준장과의 인연이 그 후로도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최창하의 꿈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는데도 육사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줄곧 육사 41기의 선두 주자에 속해 왔다.
그렇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는 최창하가 준장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성이 된다는 것은 정치적 배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육사 41기에서 스타가 된 동기생은 그를 비롯해서 단 7명에 불과하였다. 대령에서 장성이 되면 30여 가지가 달라진다는 신문 기사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스타가 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더 컸다.
그런데 그의 꿈에 위기가 찾아 왔다. 그것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행하는 극비 작전의 일원이 되라는 참모총장의 권유 아닌 권유였다.
대통령 비서실과 관련된다는 것은 얼핏 생각하면 장래가 탄탄대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게 되면 그 즉시 끈 떨어진 매가 되기 십상이다.
또한 자신이 새로 속하게 될 조직이 말이 대통령 직속 기관이지, 비공식적인 기관인 까닭에 전혀 흔적이 없었다.
그 말은 과(過)는 있을지언정 공(功)은 없다는 소리였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의 진급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걸 아는 까닭에 최창하는 선뜻 결정하기가 망설여졌다. 최창하 준장이 망설이자 정성렬 참모총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네가 장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님의 의지였네. 자네도 알다시피 육사를 나오면 대령까지는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하다지만 장성부터는 정치적 계급이라네. 장성 진급 심사에서 누락되었던 자네를 구제한 분이 바로 대통령님이란 말일세. 어떻게 하겠는가?”
최창하 준장은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최창하 준장이 수락하자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눈앞의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최강권, 나이가 스물세 살이라 했던가?’
스물세 살이면 자신의 큰아이보다 불과 한 살이 위였다.
그런 어린 녀석이어서 그런지 나름 호기가 방장한 것 같았다.
최창하가 경주 최씨 사성공파 33대손이라고 하자 자기는 경주 최씨 사성공파 29대 손이라고 했다.
고조 할아버지뻘이라는 것이다. 왠지 꿀리는 기분이 들었다.
‘대통령님이 전적으로 신뢰를 한다니 뭔가 있기는 하겠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최창하 장군은 내심 이런 생각을 하자 꿀꿀한 기분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특전사령관과 함께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전사령관 집무실에서였다.
최창하 장군이 특전사령관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대통령 비서실의 윤기영 국정상황실장, 조호명 특전사령관 외에 녀석이 끼어 있었다.
윤기영 국장을 수행하는 비서진들은 특전사령관 집무실 옆에 딸린 비서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특전사령관 집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최하가 원 스타이고 나이도 40대 후반 50대 초중반의 인물들이라는 말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어지간한 담력을 가진 자라면 자리를 보전하기에 급급하련만 녀석은 도무지 거리낌이 없었다.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인 명정혜 소령이 커피를 타 오자 녀석은 냉큼 커피 잔을 들고 창가로 가는 것이었다.
‘언감생심, 감히 저 따위 수작을 부리다니…….’
최창하 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