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화
녀석은 자신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엄청난 인물들이 있는 곳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최창하 준장이 상관인 특전사령관의 눈치를 보자 눈썹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무척 화가 나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 영감님의 성질을 건드리다가 혼쭐이 날 텐데…….’
조호명 특전사령관은 복창 소리가 적다고 사열대에서 내려와서 원 스타인 1공수여단장의 조인트를 깐 전례가 있을 정도로 다혈질이었다.
물론 최창하 준장이 버릇없음에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강권이 막돼먹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런 것을 모를 정도로 무지렁이도 아니었다. 강권이 이처럼 멋대로 행동을 하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물론 [천군 재림]의 최고 책임자로 내정된 조호명 특전사령관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다.
강권은 이런 속셈으로 나중에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조호명 장군이 노여움을 갖도록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강권의 이런 내심을 알 리 없는 두 명의 장성들은 그의 행동이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현 정권의 최고 실세 중의 한 명이 배석하고 있는 터라 함부로 발작은 하지 못하고 헛기침만 했다.
“큼, 큼.”
“으음…….”
‘어떻게 이런 녀석에게 국가의 대사를 맡긴단 말인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참여하게 될 작전명 [천군 재림]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에 엄청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것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들을 색출해서 처단하고 역으로 스파이가 되어서 다른 나라의 국정을 뒤흔드는 일은 정규군 1개 군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중요한 국가의 중대사에 이 철딱서니 없는 젊은 녀석이 주동인물이라는 것에 두 장성들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이를 본 윤기영 국정상황실장이 특전사령관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어색해진 상황을 타개하려는 생각으로 강권의 옆으로 가며 물었다.
“최 군, 여기서 저 사람들이 보이나? 나는 눈이 나빠서 그런지 전혀 모르겠네.”
“아! 윤 실장님. 예, 다들 마음에 드는군요.”
“아! 그런가? 그럼 다행이고.”
윤기영 실장이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곳의 주인들이나 다름없는 두 장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여기서 연병장은 300m가 넘는데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보인다고?’
최강권의 대답에 조호명 특전사령관과 최창하 3공수여단장이 설마 하는 마음에 강권의 곁으로 다가왔다.
조호명 장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300m가 넘는 거리에서 사람의 얼굴이 보일 리 없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지? 우리 특전사가 이런 녀석의 농간에 놀아나야 한다는 거야 뭐야?’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특수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야 영광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갓 23살인 어린 녀석이 최소 십 년 이상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아 온 베테랑 특전 용사들을 훈련시키겠다니, 어디 가당키나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명령이 아니라면 당장 거절했을 일이었다. 더구나 23살이라면 자기 막내아들보다 어린 녀석이 아니던가?
한 번 밉보이기 시작하면 별게 다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람의 공통된 심리다. 조호명 장군은 최강권이라는 녀석이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주는 것 없이 미웠다.
그렇게 밉상인 녀석이 어른들을 상대로 뻥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호명 특전사령관은 내심 속이 뒤집어졌다.
‘부하들에게 이 자식 손 좀 봐 주라고 해야겠어.’
내심 이렇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녀석이 쫑알거리는 소리에 조호명 장군은 자기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손석철 중사와 김정호 상사가 한 판 붙으려는 것을 민간인이 나서서 말리고 있군요. 그런데 손석철 중사의 성깔도 그렇지만 김정호 상사도 대단한 인물인 것 같군요. 하지만 그들을 뜯어말리는 민간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로군요. 저 민간인은 살기를 갈무리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은 아니겠어요.”
이렇듯 강권이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소리는 마치 현장에서 직접 보면서 상황을 중개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름이야 작전 기안에 나와 있으니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들이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강권은 아무렇게나 말하고는 이번에는 경악하고 있는 조호명 장군을 얼굴을 빤히 보면서 물었다.
그런 강권의 얼굴은 의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령관님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말해 보게나.”
“사령관님, 대통령님께서 사령관님을 무척이나 신뢰하고 계시는 것 같던데 사령관님께선 과연 대통령님의 믿음에 부응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권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칭찬으로도 조롱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묘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신임을 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너 그런 대통령의 신임에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조호명 장군은 후자로 받아들이고 대번에 분노로 얼굴색이 달라졌다.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자네 눈에 그렇게 미덥지 않게 보일 정도로, 그 정도로 무능하게 보이더란 말인가?”
이렇게 되묻는 조호명 장군의 어조는 금방 찬바람이 쌩쌩 불기라도 할 것처럼 싸늘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여차하면 한 대 후려치기라도 하겠다는 듯 극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권은 조호명 장군의 분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고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하하,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지요. 사람은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처한 현실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제가 사령관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뭐시라? 내가 무책임한 인물이라고? 만약 자네가 내가 무책임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네.”
“하하, 알겠습니다. 사실 저도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드리는 것은 나에게 좋은 게 아니라서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휴우, 사령관님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강권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약간 뜸을 들인 후에 말을 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뜸을 들이는 것은 듣는 사람들의 집중력도 높이고 자신의 공도 극대화시키려는 노련한 화법이었다.
23살짜리 청년이 그런 노련한 화법을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제가 알기로 사령관님의 연세는 이제 겨우 쉰둘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부주의로 여생이 불과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것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뭐시라? 내가 불과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자네는 지금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나?”
조호명 장군이 불 같이 화를 내는데도 강권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느물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객관적인 안목에서 본 것을 말씀드린 것이니 책임을 못 질 이유가 전혀 없지요.”
“객관적이라고? 그래, 객관적으로 따져 보자. 도대체 누가 이토록 건강한 내가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보겠는가?”
“하하하, 사령관님. 말이야 나왔으니 말인데, 건장(健壯)하다는 것과 건강(健康)하다는 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남이 그렇게 본다고 해서 반드시 객관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증거를 보여 드리지요. 사령관님, 일단 손 좀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조호명 장군은 강권의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태도에 약이 올라 후려치기라도 하듯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강권은 책상 위에 놓인 볼펜을 들어 조호명 장군의 손등 한 부분을 가볍게 눌렀다.
팔다리가 잘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인내력을 갖고 있는 조호명 장군이었지만 부지불식간의 통증에는 속수무책으로 비명을 토해 냈다.
옆에서 보면 가볍게 누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강권이 암암리에 내력으로 통점을 자극한 결과이기도 했다.
“아악!”
조호명 장군이 마치 돼지 멱을 따는 듯 비명을 지르자 비서실에 있던 비서실장 명정혜 소령이 깜짝 놀라서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 명 소령은 비상사태라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강권은 느닷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온 명정혜 소령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자기 말만 이어 나갔다.
“사령관님, 제가 가볍게 누르는 것에도 그토록, 엄청 아프셨다면…… 아마 오른쪽 복부 상단도 부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그러하네.”
“하하, 그게 막말로 간땡이가 부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눌렀던 곳은 간에 해당하는 부위이고요.”
“그렇다면?”
“맞습니다. 간암 말기입니다. 원래 간암이란 것은 아무 증상이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지요. 아무리 자기 몸이라 하더라도 국록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간이 그 지경이 될 정도로 혹사를 시킨 것은 명백하게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건강을 너무 맹신하는 부주의의 극치이던가요. 그 어느 것에 해당이 되더라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리고 이것이 사령관님께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신 무책임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고요.”
강권은 자신이 증거를 보여 준다고 말해 놓고 교묘하게 조호명이 보고 싶어서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이 말은 여과 없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될 것이다. 이후에 강권이 나서 조호명을 치료해 준다는 것을 핑계로 자기 영향력 아래 둔다면 조호명은 강권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는 손오공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더 나아가 약간의 공작이 더해진다면 새롭게 만들어질 조직은 조호명을 통해서 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
조호명 장군은 강권의 청천벽력 같은 단언(斷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또한 의심암귀라고 강권의 말을 듣고 보니 요즘 몸이 너무 피곤하고 술이 받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몇 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강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한부 인생이라고?’
스스로 죽음에 초연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막상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엄청 동요되었다. 항상 조국에 몸을 바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전장에서 장렬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병으로 죽는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픈 것이다.
조호명 장군은 한참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서 차분한 어조로 강권에게 묻는다.
“으음, 자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하하, 제가 아무리 막돼먹었기로서니 설마 사람의 목숨을 관한 말을 허투루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사령관님께 그 말씀을 드렸던 이유는 사령관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정말인가? 간암 말기인데도 치료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문제는 사령관님께서 병을 치료하시려면 아무래도…… 전역을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역을 하시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좀…….”
물론 강권은 조호명 장군이 전역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전역 운운한 것은 조호명에게 짐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말하자면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포석인 셈이다.
일단 군문에 들어 장교가 되면 대장이 되는 게 모든 장교들의 공통된 희망 사항이다. 전역을 할 상황에서 전역을 하지 않게 해 주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구명지은보다 더 감복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강권의 판단에는 조호명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말꼬리를 흐리는 것도 만사에 딱 부러져야 하는 전형적인 군인 조호명으로 하여금 더욱 헷갈리게 하는 수법이었다.
조호명 사령관은 강권을 만난 10여 분이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 막내보다 어린 녀석이 자기 집무실로 들어왔을 때 이 어린 녀석이 뭐하러 오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너무 버릇이 없음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 싸대기라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기분도 잠시 이번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 같은 경악을 맞보고 있는 것이다.
‘간암 말기라면서 고칠 수 있다고? 가만, 병을 치료하려면 전역을 해야 한다고? 그럼 정말로 치료할 수 있다는 건가?’
조호명 장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새파랗게 어린 귀신은 자신의 내심을 읽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그렇습니다. 세상에 고치지 못할 병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고칠 수 없는 상황만이 존재할 따름이지요.”
“고칠 수 없는 상황만 존재한다고?”
“예. 고대 우리나라의 선인(仙人)들은 인체를 우주와 동일시했습니다. 선인들께서 인체를 소우주에 비기신 것은 그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우주는 끊임없이 진화를 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에 따르면 애초에 죽음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요.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련을 쌓아야 하니 범인들로서야 그런 관점에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분들의 생각 중에서 범인들로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조호명 장군이나 다른 사람들도 강권의 하는 말이 어떻다는 걸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왠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권은 그들의 생각을 읽고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조호명 사령관님께선 증거를 좋아하시니까 내일 당장에 종합검진을 받으시도록 하십시오. 아니지요. 분당에 있는 국군통합병원이라면 오늘이라도 당장에 MRI나 CT를 찍어 볼 수 있겠지요. 빨리 서두르십시오.”
조호명 장군의 병세(?)는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을 통해서 서울아산병원에서 MRI와 CT를 찍었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강권이 침투경을 사용해서 조호명 장군의 간 기능을 떨어뜨려 AST(SGOT), ALT(SGPT), 빌리루빈의 수치가 상한선을 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간암에 관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자인 최종수 박사도 조호명 장군의 여러 가지 검사 자료를 꼼꼼하게 훑어보고 자신 없어 하자 결국 강권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강권은 전제 조건을 달아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제가 장군님을 치료하려는 것은 장군님의 운명이 아직은 돌아가실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장군님을 치료한다는 것을 절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이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또 다른 사람들이 치료를 부탁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선 ‘까짓 거 고쳐 주면 되지 뭐가 그리 어려워.’ 이렇게 쉽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운명을 거스른다는 것은 실로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죽을 사람이 죽지 않게 되면 작게는 다른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크게는 세상의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여파가 엄청 크다는 것을 인지하시고 비밀로 해 주신다면 장군님의 병을 치료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