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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3장 내 사람 만들기 작전 (1)


원래 부대들은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새벽녘에는 인적이 전혀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먼동이 터 오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할 꼭두새벽에 25사단 72연대에 세 대의 택시가 꼬리를 물고 들어섰다.
그 택시들은 72연대 정문에다 열 명의 사내들을 토해 내고는 온 길로 쏜살같이 되돌아갔다.
‘허억! 저들이 왜? 우리 부대 앞에 내리지?’
택시에서 내린 자들은 부대 앞에서 비틀거리며 고래고래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대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지 올라올 기미가 없이, 저 아래쪽에서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0여 분간 고래고래 군가를 부르던 자들이 부대로 들어오려는 듯 비틀비틀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배힘찬 이병은 간이 쪼그라들었다.
열 명.
멀리 있을 때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의 차림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특수부대원임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갖가지 색깔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내들은 다들 완전군장을 꾸리고 있었다.
‘저, 저 인간들이 왜 오는 거지?’
배힘찬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 얼른 위병조장을 깨웠다.
“뭐야?”
“성 병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간첩단인 것 같습니다.”
“간첩단? 이 색휘, 너 잠잤냐? 지금이 어느 땐데 개 풀 뜯어먹다 하품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성기수 병장은 단잠을 깨운 쫄따구에게 화가 나 호통을 쳤다. 성기수의 호통에 배힘찬은 잔뜩 주눅이 들어 연신 고참의 눈치만 살폈다.
“야! 몇 시나 됐어?”
“예, 3시 50분입니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예, 감사합니다.”
성기수가 위병소 밖으로 나오자 배힘찬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제기랄, 쟤들은 잠도 없냐? 뭐 이리 꼭두새벽부터 설치고 그런다니?”
“예에?”
배힘찬은 고참이 투덜거리자 자기가 또 뭘 잘못했나 싶어 화들짝 놀랬다. 그걸 보는 성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녀석하고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 왔다는 놈이 저리 띨빵하냐? 하긴 군복 입혀 놓으면 아무리 잘난 놈이라도 다 그렇고 그렇지.’
따져 보면 사실 배힘찬은 성기수보다 무려 여섯 살이 많았다. 군대 늦게 온 죄로 자기 막내 동생뻘 되는 성기수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성기수는 그런 배힘찬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 다독거렸다.
“배힘찬.”
“예, 이병 배힘찬.”
“너 중대장님과 고등학교 동기라며? 뭔 말씀 안 하셔?”
“예.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내가 저들을 안내할 테니까 너는 수송관님에게 전화해라. 그들이 왔다고만 하면 아실 거야.”
“예에? 아! 예 알겠습니다.”
성기수는 배힘찬이 전화기를 드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성기수가 위병소 밖으로 막 나오는데 별판을 단 지프와 6공 트럭 한 대가 오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들을 태우고 있었다. 원래 저들은 72연대 수송부에서 사단 관할 모처로 이송할 예정이었다.
이제 전역이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성기수가 위병소 근무를 서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저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별판을 단 지프와 6공 트럭이 나타나 저들을 태우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지? 우리 수송부에서 이송한다고 했는데?’
성기수 병장은 별판을 단 지프를 보자 본능적으로 잔뜩 긴장을 했다. 그런데 그 지프는 부대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되돌려 사라졌다. 6공 트럭 역시 그 뒤를 따라서 사라졌다.
“저거 저, 그냥 가는 거야? 왜?”
성기수 병장은 저들 때문에 전역을 불과 일주일 남기고 위병소 근무를 섰는데 그대로 사라지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 했으니 아무 일도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공연히 서지 않아도 될 위병소 근무를 섰다는 것에 괜히 기분이 꿀꿀했다.
“젠장, 군대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성 기수가 이렇게 푸념을 한 것처럼 군대에서 하는 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래 대통령 비서실에서 입안을 하고 특전사에서 세부 계획을 짠 작전명 [천군 재림]안 대로라면 이들이 갈 곳은 민통선 안의 모(某)처였다.
육군 참모총장이 25사단장에게 관할 내에 특수훈련장을 세울 것을 지시했고 특수훈련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호명 장군이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느닷없이 입원을 하게 되면서 청와대에서는 조호명 장군의 후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염두에 두게 된 인물이 3공수여단장인 최창하 준장이었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게 되자 원래 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쓰리스타가 지휘하는 것으로 짰던 작전 계획이 원 스타가 지휘할 때는 상황이 완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사단장인 투 스타가 간섭을 하게 되면 원래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천군 재림]이 탈법적인 것까지 포괄하는 것이라는데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군에서 조폭들을 잡아다 훈련을 시킨다는 게 외부에 알려지는 날에는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혹독한 훈련이 자칫 인권유린으로 비춰진다면, 그렇잖아도 가시화되고 있는 레임덕 현상은 국정을 마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호명 장군의 후임인 최창하 준장에게 거여동 3공수여단에서 훈련을 시키라고 요원들을 직접 데려오게 했던 것이다.

‘하하하, 당신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여.’
강권은 최창하 준장이 직접 그들을 다시 데리러 올 것을 알고 미리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 정도를 상대하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였지만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조호명 장군을 대동했다. 저들의 수장인 최창하가 조호명을 상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얼마간 기다리고 있자 최창하 준장이 이끄는 차량이 나타났다.
‘흐음, 이제부터 재미있게 놀아 보자고.’
강권은 내심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황금색 모데라토로 지프의 진로를 가로 막았다.
끼이익.
모데라토를 발견한 지프 운전병이 급정거를 했다.
최창하 준장은 가로막은 차가 강권의 차임을 알고는 지프에서 내려와 호통을 쳤다.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최창하 준장은 ‘너 죽고 싶어?’ 이렇게 호통을 치려다 얼핏 보니 조호명 사령관이 함께 온 것 같아 완곡하게 말한 것이다.
“그건 제가 장군께 여쭤보고 싶은 말입니다. 장군께서는 지금 행동은 작전 명령서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대통령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독단적으로 수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거야 윤기영 실장님과 이미 상의를 거쳐 내가 최종 작전권자임을 인정받았네. 그리고 윤기영 실장님께서 대통령님의 재가를 얻어 주시겠다는 확약까지 하셨네. 그러니 내가 최종 작전권자이니 작전의 수정은 내 소관이네. 자네는 간섭하지 말게.”
강권은 최창하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치미를 딱 떼고 최창하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거야 장군님 생각이고 아직 대통령님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았고 또 조호명 장군님께서 전역을 하지 않으셨으니 엄연히 최종 작전권자는 조호명 장군님이 아닙니까? 그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나셔서 상관이 입원한 사이에 그 자리를 가로채려 하시는 것입니까?”
최 장군은 강권의 말이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상황이 그렇게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져 보면 그 모든 것이 윤기영 실장의 생각이었고, 그도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따른 것뿐이었다.
친구가 궁지에 몰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석천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차에서 내려 강권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본 최 장군은 친구가 행여 강권을 죽일까 봐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봐! 석천이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게.”
최 장군이 소리를 지르자 강석천은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강석천은 이 천둥벌거숭이 꼬맹이를 가만두고 보겠다는 생각은 결코 없었다.
‘하! 친구여, 때로는 몽둥이를 들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라네.’
내심 이런 생각을 갖고 살기를 끌어 올리며 한 발, 한 발 강권에게 다가갔다.
강권은 강석천이 내뿜는 살기 속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문인 천살문의 갑인신공의 기운이었다.
‘아직까지 천살문의 맥이 끊어지지 않았던가?’
자못 흥미롭다는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현현(玄玄)해야 할 갑인신공의 기운 속에 고목신공의 탁한 기운이 느껴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강권의 반응 또한 조금 과격해졌다.
[호, 살인멸구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보지?]
강권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일종의 음공으로 오직 강석천의 귀에만 들리게 한 것이었다. 강석천은 그 소리를 듣고 골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자리에 눕고만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허걱! 이것은 설마 봉황음(鳳凰音)은 아니겠지?’
강석천은 강권이 말로만 들었던 사문의 비기를 펼친 것만 같아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이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 년 이상 단맥(單脈)으로 이어온 사문의 다른 후계자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봉황음은 1갑자 이상의 내공을 갖고 있어야만 펼칠 수 있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강권의 나이로 보아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강권이 나이가 어리다지만 자기가 전혀 경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했다.

강석천은 할아버지에게서 무공을 배웠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스스로 승려라고 말하면서도 머리를 길렀고 술과 고기, 심지어 계집질까지 스스럼없이 자행했다.
강석천은 그게 부끄러워 누구에게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늘 술에 취해 계셨던 할아버지 말씀은 이랬다.
“이눔아! 내가 사이비 땡중이라고?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그 짝을 맞아 후손을 남기도록 창조된 피조물인 겨.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것이 도리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이비인 겨. 또한 고기와 술이 어떻다고 그러는 겨? 고기는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음식이고 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상의 음식인 겨. 그 좋은 걸 왜 못 먹게 하는 건데?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더하지. 원래 불교라는 것이 우리 땅에서 시작이 된 겨! 알았어? 이눔아!”
한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불교는 석가모니로부터 비롯된 종교가 아닌가 말이다.

잠시 이런 생각에 잠겨 있던 강석천은 숨을 깊이 들이마셔 마음을 가다듬고는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못할 건 또 뭔가?”
[하하, 그대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을까?]
“흐흐, 그 말을 후회하게 해 주지.”
강석천은 갑인신공(甲寅神功)을 끌어 올려 손에 유포시켰다.
사문의 오행의 기운을 연마하는 다섯 가지 신공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갑(甲)은 천간(天干)에서 나무를 상징하고 인(寅)은 지지(地支)에서 나무를 상징한다. 따라서 갑인신공은 오행 중에 나무(木)에 해당하는 내공심법이었다.
비록 축기(畜氣)하는 구결이 일부 소실이 되어 불완전했지만 강석천은 이것을 익히고 30년 이상 그 누구에게도 져 보지 않았다.
갑인신공을 손에 유포시키자 강석천의 손은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그것을 본 강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약간 변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천살문의 무공 중 하나인 갑인신공을 강권이 몰라볼 까닭이 없었다.
‘천살문의 무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그런데 저거 저, 완전 사이비 갑인신공이로군. 고목잡공을 섞었나? 고목잡공 따위의 허접한 무공을 사문의 정종무공에 섞어 놓다니. 어떤 빌어먹을 놈이 감히…….’
강권에게 있어 천살문은 시작이요 끝이었다. 명철 이전의 생에도 천살문의 문도였고, 그 이전의 생도 천살문의 문도였다. 그런 천살문이니 강권에게 있어 천살문은 각별했다.
그런데 그런 천살문의 신공을 허접한 고목신공과 짜깁기한 것을 보게 되니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 누구에게 배웠소?]
강권이 무진신공을 끌어 올려 살기 띤 음성으로 말하자 강석천은 견디기 어려웠다.
40여 년이 넘도록 갑인신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고갱이가 빠진 채 껍데기만 훑었으니 불과 10년의 공력도 축적되지 않았다.
그러니 봉황음에 내력이 진탕된 가운데 1갑자가 훨씬 넘는데다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강권이 뿜어내는 살기를 견디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크윽…….”
[다시 한 번 묻겠소. 누가 우리 사문의 갑인신공을 고목잡공과 섞은 것이오?]
“크흑, 예에? 가, 갑인신공이 사문의 무공이라고요?”
강권이 강석천이 놀라는 것에 기파를 살펴보자 놀라움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기파의 반응대로라면 천살문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천살문의 무공을 알고 있고 무관하지 않다면 천살문의 문도밖에 없을 것이다.
‘천오백 년이 지나도록 천살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온다는 말인가?’
강권은 천살문의 명맥이 끊겼으리라고 여기고 있다 그 문도로 추정되는 자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어 다짜고짜 물었다.
[당신은 천살문의 몇 대 손이오?]
강석천은 자기 막내아들보다 어린 강권이 평대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무문(武門)에서는 나이보다 배분이 절대적인데 강권의 무공의 경지와 하는 걸 봐서는 자기보다 배분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 저는 98대 손입니다.”
‘내가 48대 손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강권은 이내 천오백 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따져 보면 지금의 강권은 천살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자신을 명철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내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살문 무공의 정수가 전해지지 않았나 보군.’
제대로 된 천살문의 무공들을 익히면 최하 200년은 산다.
그것은 단군 이전 환국으로부터 시작된 천살문의 역사로 비추어 보면 자명하다. 고대 환국은 3,000년 동안 7명의 황제께서 다스리셨다고 한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환국의 황제들은 최소로 잡아도 400년 이상을 사셨다는 소리였다.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구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가 달라져서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들의 수명이 달라진 결과일 뿐이다.
고대에 엄청난 덩치의 공룡이 지구상에 살고 있었던 것 또한 같은 이치였다.
결론적으로 천살문의 1대는 보통 100년으로 잡는다.
그렇게 따지면 천오백 년은 10대에서 15대 정도로 치면 되는데 무려 50대가 흘렀다는 것은 문도들의 수명이 짧았다는 말밖에는 달리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강석천의 조잡한 갑인신공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런데 네 갑인신공이 어째 그 모양이냐? 갑인신공에 고목잡공을 섞은 것 같지 않느냐?]
자신의 배분을 알고 스스럼없이 하대를 하자 강석천은 강권이 자신보다 훨씬 윗배분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공손하게 물었다.
“고목잡공이라니요?”
[고목잡공도 모르는 게냐? 무릇 검되 탁하지 않은 것은 현(玄)이라 한다. 신공이란 당연히 현기를 띠어야 하느니. 그런데 어찌 갑인신공이 엄청 얻어맞아서 멍이 든 것처럼 푸르죽죽하더란 말이냐?]
“그거야…….”
[잔말할 것 없다. 내 갑인신공의 정수를 알려 줄 테니, 내 차에 타거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강석천은 강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자 친구인 최창하를 모른 척할 수 없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창하 준장 역시 강권의 차에 앉아 있는 조호명 중장을 보고 자신의 계획이 어긋난 것을 알았다. 그런데 믿고 있던 강석천마저 혼자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자기를 쳐다보자 더 이상 밀어붙이기에 무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6공 트럭에 타고 있는 요원들을 동원할까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조호명 사령관이 나서면 반드시 자기 명령에 따른다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최창하 준장은 시세에 따르기로 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뭔가?”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들을 데려가겠다는 것뿐입니다. 같이 가시겠다면 따라오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군 트럭은 안 됩니다. 제 차에 타든가 아니면 저 차에 타도록 하십시오.”
최창하 준장이 강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커브 길에 25인승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최창하 준장은 가만 한숨을 쉬고 6공 트럭에 타고 있는 요원들에게 버스에 갈아타도록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