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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우우―웅!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남기원은 에쿠우쓰리를 가속시켜 나갔다.
연구소 근처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순환도로로 접어들기 위해 차선을 바꾸던 남기원은 이상을 느꼈다.
‘뭐지?’
희미한 불빛과 함께 차선을 바꿔 한쪽으로 사라지는 차량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이런!’
백미러를 통해 뒤에 붙어 따라오다가 다른 쪽으로 빠진 차량이 30여 분 전에도 보았던 차량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교차 미행인가? 어느새 미행이 붙어 있었다니…….’
생각해 보니 그동안 몇 대의 차량이 번갈아 가며 자신의 차를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순환도로를 타기 시작하자 빠져나간 차량 대신 다른 차량이 붙었다.
어두워서 차량 넘버를 식별할 수는 없지만 30여 분 전에 자신의 뒤를 따르던 차량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으음, 확실하군. 역시 만만치 않다는 건가?’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을 시간이었다.
멀리서 비치는 헤드라이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한두 대가 아니로군.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가?’
뒤에서 미행을 하는 차량 이외에도 멀리서 두 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서울을 빠져나가고 한참 뒤에나 따라붙을 줄 알았었다. 이 정도 미행이라면 박창기가 물건을 꺼내 오는 순간부터 상황을 파악하고 즉시 따르기 시작했던 것이 분명했다.
생체활성물질을 빼내 온 것을 한국의 정보부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감지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나저나 대단한 자들이다. 이 정도면 랭글리에 뒤지지 않는 실력이다. 따라붙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신속하다니. 한국 정보부를 다시 봐야겠군.’
치밀하게 미행을 하고 있는 한국 정보부의 기동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이 계통에서 일을 해 오며 발달한 직감이 아니었다면 영문도 모르고 잡힐 뻔했다.
결과물을 빼내는 임무가 무사히 성공했다고 약간이나마 방심을 한 것이 실수였다.
‘후후후, 은퇴할 때가 머지않았다고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도 이제 다된 것 같구나. 하지만 내 뒤를 따라붙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남기원은 새롭게 장만한 후 몇 가지 장치를 장착한 에쿠우쓰리를 믿고 있었다.
새롭게 세팅이 된 터라 어떤 미행이 붙더라도 쉽게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일단 판교 톨게이트 쪽으로 빠져나가자. 여기서는 쉽지 않을 테니…….’
생각을 정리하자 남기원은 차선을 바꿨다. 역시나 다른 차가 뒤를 쫓고 있었다.
우측 차선으로 접어들어 톨게이트의 요금소를 통과하며 과감하게 신호를 무시하고 한쪽 차선을 침범해 좌회전을 했다.
예상치 못한 주행으로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벗어난 남기원은 시내 쪽으로 빠르게 차를 몰았다.
슈우웅!
대로에 들어선 후 얼마 안 있어 곧장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남기원은 얼기설기 미로처럼 뻗어 있는 이면 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복잡한 주택가 골목길이 나오자 남기원은 더욱 빠르게 가속 페달을 밟으며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였다.
‘따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긴장된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남기원이었기에 박창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휴우, 간신히 따돌린 것 같군.”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쫓고 있는 차량을 떨쳐 낸 남기원이 한숨과 함께 천천히 속도를 죽였다.
“소, 소장님. 이제는 괜찮은 겁니까?”
“안심하게. 이제는 따라오는 자들에게서 벗어난 것 같으니 말이야.”
“다, 다행이네요.”
뒤따르는 차량이 없음을 확인한 남기원은 다시 대로로 나와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는 탄천 변 도로로 향했다.
20여 분 정도 그렇게 차를 몰던 남기원은 또 다시 차량이 따라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군? 이렇게 빨리 따라붙다니…….’
지금은 일선에서 은퇴했지만 한때 날리던 공작원이었던 남기원은 따라붙는 차량의 패턴을 생각하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택가로 접어든 후 차량의 빛을 모두 차단하고 카멜레온처럼 외부의 색을 바꿨다.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따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함정이다.’
출발한 후부터 미행이 계속됐다. 뒤따르던 차량이 사라지고 새로운 차량이 따라붙었다.
곧바로 따라붙은 것이 아니라 몇 분간 격차를 두고 이렇게 정확하게 미행이 붙었다.
주택가에서 완벽히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다시 미행이 뒤따랐다. 추적장치가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 연구원, 가방에서 가지고 온 샘플을 꺼내서 나에게 한번 줘 보게.”
“샘플을 말인가요?”
두 시간가량 차를 몰면서도 아무런 말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샘플을 보여 달라는 말에 박창기는 가방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서 주게. 확인을 해야 할 것이 있네.”
“확인이요?”
“그렇네, 어서 줘 보게.”
다급해 보이는 기색에 박창기는 머뭇거리며 허리춤에 찬 작은 가방에서 자신이 연구소에서 가지고 나온 샘플을 꺼내 들었다.
양쪽이 스테인리스 재질로 마감된 제법 커다란 앰풀이 가방에서 꺼내졌다.
중간에는 특수 유리로 만들어진 투명한 앰풀 안에는 불투명하지만 은은히 빛나는 연분홍빛 액체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자동전환!”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운행합니다.
‘으음. 어디.’
음성인식기능을 이용해 에쿠우쓰리를 자동항법운행으로 바꾼 남기원은 박창기로부터 앰풀을 받아 들고는 유심히 살폈다.
앰풀 전체를 손으로 훑고는 돌려 가며 추적장치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매끄럽게 생긴 관 모양의 앰풀 외부에는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외부에는 특별한 것이 없으니 내부에 설치된 모양이군. 그렇다면…….’
빛을 차단시키는 바람에 차 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외부에 추적장치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정해진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앰풀을 여는 순간 생체활성물질이 사라져 버리니 이 안에 들어 있다면 제거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놈들을 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 하지? 으음, 일단은 그 방법이 좋겠군.’
앰풀을 살피며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한 남기원은 한국 정보부를 속일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냈다. 혹시나 추적장치가 붙을 것을 염려해 마련했던 방법 중 하나였다.
“박 연구원, 조수석 박스를 열면 케이스가 있을 테니 그것을 꺼내게.”
“케이스요?”
“그래, 빨리.”
재촉하는 남기원의 말에 박창기는 서둘러 박스를 연 후, 그 안에 들어 있는 검은색의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고 샘플을 안에 담게.”
“이 안에 제가 가지고 온 샘플을 담으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앰풀 내부에 추적장치가 달린 것 같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해야 하네.”
“추, 추적장치가 달렸다는 겁니까?”
“그렇네. 아까부터 똑같은 차량들이 번갈아 가며 우리 뒤를 쫓고 있네. 앰풀에 추적장치가 달리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러니 어서 그것을 케이스에 담게. 어서!”
다급한 남기원의 말에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박창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케이스를 열고 자신이 연구소에서 빼내 온 샘플을 담았다.
“그런데 뭘 하시려고 앰풀을 이 케이스에 담게 하신 겁니까?”
앰풀이 담긴 케이스를 일별한 박창기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잠시 기다리게.”
대답보다 급한 듯 남기원은 빠르게 차량을 꺾었다. 그리고 연이어 차량을 꺾은 후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 뒤로 가서 멈춰 세웠다.
슈우우웅!
잠시 뒤 검은색 차량 한 대가 빠르게 지나쳤다.
차를 멈춰 세우며 광학굴절모드를 사용해 주변과 동화시키고, 열까지 차단시킨 후였기에 차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저, 저 차입니까?”
“그렇네. 이제는 확실히 따돌린 것 같네.”
“그런데 이렇게 케이스에 담는다고 괜찮은 겁니까?”
전파가 발신되게 만들었다면 이런 경우를 예상해 특수 파장을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박창기가 물었다.
“그 케이스는 모든 전파를 차단하도록 설계된 것이네. 앰풀에서 발신되고 있는 신호는 모두 차단이 됐을 것이고, 뒤를 쫓고 있는 자들은 갈팡질팡할 걸세.”
“그, 그렇군요.”
“하지만 아직은 안심하기는 이르네. 국정원의 능력은 얕볼 만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다시 쫓아올 것 같습니까?”
“그럴 확률이 매우 높네. 그렇지만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을 번 것 같으니 일단 앰풀을 안전한 곳에 숨겨야겠네. 다시 쫓아온다고 해도 앰풀만 잘 숨긴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니 말이네.”
“그런데 어디다 숨겨야 합니까? 자칫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염려 말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자, 가지.”
남기원은 다시 차를 몰았다.
다시 탄천 변 도로로 나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정도면 됐다.’
도로와 탄천 사이에 있는 녹지대가 제법 수풀이 우거졌다. 앰풀을 숨기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박 연구원, 조금 더 달린 후에 내가 신호를 하면 창문을 열고 그 케이스를 도로 바깥쪽으로 던지게. 던지기 전에 케이스 입구에 있는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하고.”
“더, 던지라니? 어렵게 빼내 온 겁니다.”
안전한 곳에 숨긴다고 하더니 갑자기 케이스를 밖으로 던져 버리라는 소리에 박창기가 당황하며 말했다.
“지금쯤 위성을 가동했을 테니 우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네. 만약 그것을 숨기기 위해 잠시라도 멈춘다면 국정원은 우리를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걸세.”
“위성까지 작동해 우리를 쫓는다는 말씀입니까?”
위성까지 동원됐다는 소리에 박창기가 기겁을 했다.
“그럴 확률이 매우 높네. 2년 전 나로도에서 쏘아 올린 위성이 바로 상업위성을 가장한 국정원의 비밀첩보위성이니 말이네. 아마도 지금쯤 가동을 시작했을 걸세.”
“그, 그럼!”
이제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박창기의 눈이 급격히 흔들렸다.
“후후후, 걱정하지 말게. 내가 계획한 방법대로 앰풀을 빼내 왔다면 국정원이라 하더라도 자네가 그것을 빼내 왔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물증을 찾을 수 없는 이상 우리를 잡을 수는 없네.”
“하지만…….”
“걱정 말게. 이미 다 예상한 일이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던진다고 해도 찾아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세.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으니 말이야. 일이 복잡해졌지만 자네에게 줄 돈도 정확하게 입금이 될 걸세. 케이스는 사건이 완전히 잠잠해진 후에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도로에 던진 후에 어떻게 찾는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상황이 다급한 상태인 것은 분명했다.
더군다나 돈을 그대로 준다고 하니 박창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의 창문을 열었다.
“지금이네.”
“예?”
박창기는 너무 떨려 남기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어서, 버튼을 누르고 던지란 말이네.”
머뭇거리던 박창기를 향해 남기원이 소리를 질렀다.
탁!
휘익!
얼떨결에 버튼을 누르고 창문 밖으로 케이스를 던졌다. 날아가는 케이스를 따라 박창기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소, 소장님!!”
갑자기 도로 위에 거무튀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람이 차도에 들어오는 것을 본 박창기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고, 남기원도 확인을 했는지 곧바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부아아앙!
풍압을 정면으로 받아 속도를 죽이는 장치가 가동됐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작동시켜서인지 브레이크는 소용이 없었다.
퍽!
호버링하던 에쿠우쓰리가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차도에 있는 사람을 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옆쪽으로 날아가 탄천 쪽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제기랄!!”
남기원의 입에서는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뜻밖의 교통사고였다. 시선이 박창기에게 쏠려 있었기도 하지만 성남으로 들어온 후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은신모드로 차를 몰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가로등이 있었지만 불이 꺼져 있어 도로가 어두웠던 탓에 사람을 미처 보지 못했다.
박창기의 외침에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치고야 말았다.
남기원의 얼굴은 무척이나 굳어 있었다.
작전을 수행하더라도 민간인의 희생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기원이었다.
‘여기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어서 자리를 피해야 한다.’
사고로 인해 당황하던 남기원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케이스를 처리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지체했다가는 잡힐 위험이 높았다.
‘잠시 멈추어 있었지만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테니 일단 벗어나도록 하자.’
케이스가 튕겨져 나간 방향은 둔치 쪽이었다. 가동을 시작했으니 장비를 동원해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대로 떠난다고 해도 쫓아오는 자들에게 케이스를 던진 위치를 들킬 염려는 없는 것이다.
부우우우웅!
남기원은 그대로 에쿠우쓰리를 몰고 사라졌다.
졸지에 사고를 당한 사람으로서는 정말이지 재수없는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