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
2장 안마사 진씨
내 직업은 안마사다.
안마사라는 것이 벌써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법으로 인해 나 같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 되었다.
그렇다.
장님, 또는 맹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바로 나다.
비도 온데다 몸도 별로 안 좋지만 오늘도 일을 해야 한다. 집도 절도 없는 내가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만 했다.
요즘 이 일도 쉽지는 않다. 대부분의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세상이라 해도 그렇지 이젠 불쌍한 맹인의 일까지 넘보고 있으니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
의료기기란 명목으로 인간형 전신 자동안마기까지 등장해 힘없는 장애인의 밥줄까지 갉아먹다니. 정부에서는 복지정책을 어떻게 시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오늘도 일용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직업전선에 나섰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아 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용 안마방이 등장한 이후 일감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기계보다 사람의 손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내가 가는 곳은 더욱 그렇다.
안마기계를 들여놓기도 어려운 곳이지만 찾아오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나긋나긋한 사람의 손길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리를 한 탓에 감기 몸살 기운이 약간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해야겠다.
몸이 재산인 나다. 무리하다가 병에 걸리면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으니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
*
*
퍽!!
“컥!”
가슴이 답답해지며 머릿속이 어지럽다.
‘빌어먹을 놈! 손아귀 힘이 없다고 발로 걷어차다니…….’
힘없는 것을 원망해야지, 자칫 기분을 더 상하게 했다가는 더 맞을 것 같아 장님 안마사인 나는 속으로 분을 삼킬 수밖에 없다.
“이 영감탱이가! 잘하라고 했어, 안 했어?”
“죄, 죄송합니다. 쿨럭!”
눈알을 부라리는 자는 사거리파 행동대장 작두다.
두목에게서 깨지고 온 탓인지 들어올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애꿎은 나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럴 땐 그저 비는 것이 상책이다.
말로 해서 될 놈이 아니니 말이다.
“영감! 다시 한 번 주물러! 솜씨가 좋다고 해서 왔는데 말이야. 잘하지 못하면 죽을 줄 알아! 엉!!”
“예, 예!”
후레자식 같은 놈이다.
지난 보름 동안 가상현실에 접속을 유지하느라 기력이 거의 없지만 맞아 죽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잘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떤 식이든 말이다.
“자! 다시 해 봐.”
“예! 예!”
다시 침대에 누운 놈에게 다가갔다.
손을 움직여 놈의 몸을 다시 더듬었다. 싸움질로 단련이 된 탓인지 근육이 발달한 것 같다.
으음, 그것뿐이 아닌 것 같다.
근육 사이로 뭔가 특이한 것이 느껴진다.
기공을 익힌 놈이 틀림없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겠지만 이놈의 근육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것은 분명 기공을 익힌 자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흔적이다.
대충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그저 단순히 안마나 받으려고 온 놈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주의를 했건만 얼마 전 놈들에 대한 단서를 잡고, 변호사를 만난 것이 화근이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놈을 우선 처리해야겠다.
그것도 나에 대해 일체 의심하지 않도록 깨끗하게 처리를 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이나마 편하게 살려면 종적을 지우고 사라지는 것이 상책이니 말이다.
몸을 더듬으며 하복부에 있는 기운을 손가락 끝으로 이끌어 냈다.
은은히 따뜻해진 손가락으로 놈의 전신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 댔다.
“으으음!”
후후후, 좋은가 보다.
손가락 끝을 통해 전해진 기운이 놈의 전신 근육을 이완시키고 있는 중이니 신음이 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내가 하는 안마는 근육을 풀고, 기혈의 움직임을 돕는다.
전신에 어린 젖산이 빠르게 분해되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투투투툭!
땀이 비가 오는 것처럼 몸에서 쏟아진다.
복수를 한다고 기운을 너무 쏟았더니 점점 맥이 빠져 간다.
정말 죽을 맛이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
아직 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니 끝낼 수도 없는 상태니 말이다.
“어어! 시원하다. 영감! 잘하면서 아까는 왜 그랬어?”
“쿨럭! 쿨럭! 제가 감기 몸살이 좀 들어서 말입니다.”
“크크크크, 감기 몸살이라고? 어디서 구라를 치고 있어. 영감 죽고 싶어?”
정말 감기 몸살이라 죽겠는데 놈이 믿지를 않는다.
“쿨럭! 아, 아닙니다.”
“최대한 성의를 다해서 잘 주물러. 오늘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말이야.”
“예…… 예.”
조금 전까지 신음을 흘리던 것이 무색하게 아직까지 만족을 모르다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역시나 기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나에 대해 알아보려는 모양이다.
쓰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기운을 써야겠다.
최대한 빨리 근육을 완전히 이완시키고 이놈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제압해야겠다.
이 상태로 하다가는 놈에게 들킬 것이고, 내가 제명에 죽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으으음, 그래그래. 거기야.”
역시나 좋은 모양이다.
하긴 몸을 쓰는 놈이 좋기도 할 것이다.
아직 써서는 안 되는 기운을 쓰고 있어서 난 죽을 맛이지만 안마계에서 전설로 전해지는 기운을 직접 받고 있으니 좋을 만도 하다.
드르르릉!
근육을 이완시키고 기운을 제압해 가며 한참을 주물렀더니 놈이 코를 곤다.
다행히 놈에 대한 조치를 무사히 끝냈으니 이제는 끝내야 할 때다.
더 이상 했다가는 기운이 바닥을 드러낼 테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내 몸은 그걸 견딜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뒤로 조금씩 물러나 문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럴 때는 좋다. 미세한 움직임으로도 어두운 방 안을 식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신고 난 뒤 들어올 때 현관 입구에 세워 두었던 지팡이를 찾았다.
길잡이를 잡으니 긴장됐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조심스럽게 문을 더듬거려 손잡이를 찾았다.
딸칵!
크으, 소리가 너무 크다.
놈이 깨지는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귀가 쫑긋거렸다.
드르르릉!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다. 잠에 깊이 빠진 모양이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후우~!
혹시나 해서 손을 써 놓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으니 가슴이 제멋대로 떨린다.
크크크크!
가슴이 제멋대로 콩닥거리는 것을 보니 겁을 먹긴 한 모양이다.
이 나이에 뭐가 무서울 게 있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 수없이 당했던 폭력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몸이 떨렸었다. 발길을 옮길 수조차 없도록 몸이 굳어 버리는 현상까지 있었다.
이제는 떨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저놈에게 몇 대 맞고 나니 다시 떠오른 것 같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문을 닫았다.
탁! 탁!
지팡이를 더듬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벽을 더듬거려 버튼을 눌렀다.
딩동!
―칠층입니다.
잠시 뒤 기계음인지 사람 목소리를 녹음한 것인지 모를 듣기 좋은 여자 목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얼른 집어타고 버튼을 눌렀다.
스르르르!
중력 때문인지 하중이 위쪽으로 잠깐 쏠린다.
핑!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
작두 놈의 폭력 때문에 겁을 먹기도 했고, 나를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써서는 안 될 기운을 쓴 탓이다.
딩동!
―일층입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발을 뗄 수 없다. 아직까지도 머리가 어지러우니 말이다.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쉬니 그나마 낫다.
오늘은 많이 피곤하다. 두 탕을 뛰었더니 더 그런 것 같다. 정말이지 살기 힘든 세상이다.
첫 번째는 잘 속여 넘겼지만 두 번째는 주워 맞은데다 기운까지 써서 그런지 전신에 맥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돈은 통장으로 들어올 테니 일단 여관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놈에게 베푼 암수는 시간이 오래 지나야 발동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것이 아니니 어쩌면 지금 당장 발동을 할 수도 있다.
설사 발동하지 않더라도 잠에서 깨기라도 한다면 끝내지도 않고 도망갔다 경을 칠 테니 최대한 빨리 여관을 벗어나야 한다.
어쨌든 오늘은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무리를 했으니 쉬어 주지 않으면 몸에 탈이 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