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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타타타탁!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 진씨!”
누가 부른다. 귀에 익은 음성이다.
힘겹게 정문을 나서는 나를 부른 사람은 바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텔의 사장인 강한석이란 자다.
탁! 탁!
“예, 예. 사장님!”
내 눈이나 마찬가지인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고개를 돌리고 영업용 미소로 얼굴을 무장했다.
여기에 허리 동작까지 더해 굽실거려 주면 강 사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모텔 이름을 바람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지은 사람답게 이쪽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마당발이다.
이 정도 해 주면 분명히 나와의 일을 끊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오늘 손님이 영 시원치 않다고 투덜거리던데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사거리파 행동대장 녀석이 있는 방에 들어가기 전, 안마를 해 주었던 손님방을 나오면서 한소리를 들었다.
손아귀에 힘이 없어 대충 시늉만 했는데 안마를 한두 번 받아 본 놈이 아닌 듯 내가 방을 나올 때까지 투덜거리더니 카운터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잡놈의 새끼!
장애인인 내가 그렇게까지 애를 썼는데 조금 눈감아 주면 어때서…….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손님의 자유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저 양반에게 비굴모드로 사정을 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제, 제가 몸살에다가 감기까지 들어서…….”
“쯔쯔쯔! 이제 진씨도 쉬어야 하는 나이 아니야? 한여름에 몸살감기라니 말이야.”
이제 이런 일은 무리라는 듯 강 사장이 혀를 차며 말끝을 흐렸지만 맞는 말이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안마는 기본적으로 힘이 좋아야 한다.
이제 내일모레면 환갑에 들어서는 나로서는 근래 무리했던 일로 인해 손님을 만족시킨 일이 거의 없었다.
강 사장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단골들 중에서 나에 대해 말을 한 손님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강 사장님 아니면 저 굶어 죽습니다. 여름철 감기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던데 제가 이불을 걷어차는 바람에 요 며칠 골골했습니다만 다 낫게 되면 손님들께서도 만족하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사거리파 그분은 제 안마를 받고 잘 주무시고 계십니다. 사실 그분 때문에 전 손님에게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한 분뿐이어서 안배를 좀 한 겁니다. 사장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듯 강 사장에게 사정을 했다.
“그랬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사장님.”
“흐음…….”
자신 있다고 말하고 그놈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어둠 속을 뚫고 전해지는 강 사장의 침음은 나를 믿지 못하는 빛이 역력하다.
어쩔 수 없다.
사거리파 그놈은 돈 내고 안마를 받지는 않을 테니 손해를 조금 보는 수밖에.
“사장님, 약 먹고 한 이틀 푹 쉬면 됩니다. 다음에는 오늘 못해 드린 것까지 잘해 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늘 수고료도 반값만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알았어, 진씨! 하지만 다음에도 오늘처럼 그러면 부르지 않을 테니 명심하게.”
“예, 예. 사장님.”
나쁜 새끼, 사람 위해 주는 척하기는.
반값만 받겠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인 탓인지 다짐을 두는 모습이 꼴같잖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두고 보겠다는 강 사장의 말에 연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찌 되었거나 나에게 있어 강 사장은 언제나 슈퍼 갑이니 말이다.
“그럼, 얼른 가 봐. 오늘은 됐으니까 말이야.”
“헤헤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사장님.”
그나마 일이 떨어질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얼굴에 다시 한 번 미소를 깔았다.
탁! 탁! 탁!
다른 말을 할까 봐 서둘러 여관 바깥으로 나와 방향을 잡았다.
주변이 무척이나 조용하다. 저녁내 비가 오기도 했고, 새벽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후후, 새벽은 새벽이구나.”
여름밤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를 싸함이 느껴지기에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기운을 느끼려 애를 썼다.
조폭 놈에게 빼앗긴 기운을 조금이나마 되찾기 위해서다.
매번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같은 느낌이다.
원래는 탁한 기운이 더 많이 느껴진다. 오늘은 그나마 비가 와서 다른 때보다는 나은 형편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잃어버린 기운을 수습하려 애를 쓰는 중에 강 사장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쯔쯔쯔!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부르지 말아야겠어. 손님 떨어지면 이놈의 장사도 못 해 먹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젊었을 때 돈 좀 벌어 놓지 뭐 했는지 몰라. 쯔쯔쯔! 늙어서 저게 무슨 고생이람.”
정문을 나선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속내를 보이다니…….
눈 하나 멀었을 뿐인데 내 모든 것이 다 병신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이 업계에서 소문난 강 사장도 눈먼 사람의 귀가 얼마나 예민한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들으라고 한 소리일 수도 있다.
손님이 대놓고 불만을 토로한 상황이었다. 자칫 소문이 좋지 않게 퍼지기라도 하면 손님이 끊어지는 일은 금방이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인만큼 장사를 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힘 빠진 나를 더 부르는 것은 강 사장 자신만 손해니 말이다.
강 사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뒷맛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으니 아무리 욕심 많은 강 사장이라도 딱한 마음에 한 번은 더 불러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모텔 바람에서의 영업은 오늘로서 끝인 것 같다.
속은 상하지만 마음에 둬 봐야 나만 손해다.
어차피 이곳은 다시 오지 못하게 생겼으니 내일부터는 다른 모텔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사거리파 행동대장 녀석에게 잔재주를 부려 몇 가지 손을 써 놨다.
아직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는 수법이지만 이론만은 완벽하게 수립했으니 어느 정도 통할 것이다.
내가 의도한 것의 10분의 1만 효과가 있다면 아마도 며칠 후에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놈의 촉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내일부터는 다른 도시에 일이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후우…….
이제 집에나 가야겠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 집도 아니고, 돌아가 봐야 그다지 좋을 일도 없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니 말이다.
탁! 타탁!
지팡이로 연신 더듬거리며 길을 나섰다. 조금 걸으니 지팡이 끝이 약간 허방이다.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경계인 모양이다. 바로 앞이 차도인 것 같다.
새벽이지만 근처가 유흥가고 도로를 따라 아무렇게나 과속 질주를 하는 불량 운전자들이 많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로서는 움직이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변을 살폈다. 물론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 차가 오는지 살피는 것이다.
오늘은 기운을 너무 많이 써서 기감을 펼치기 어려우니 예전 하던 대로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차도가 조용하다.
조심스럽게 다시 귀를 기울였지만 소음이 하나도 없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것 같다.
그냥 건너도 될 것 같다.
걸음을 옮기려 하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스친다. 토사가 섞인 흙과 물비린내가 물씬 풍기고 있다.
킁! 킁!
나도 모르게 코가 벌름거린다.
낮 동안 비가 내려서 주변에 습기가 가득했지만 코끝으로 느껴지는 냄새는 분명 하천을 흐르는 물 냄새다.
오늘은 일도 안 되고 기분도 꿀꿀하니 오랜만에 한 번 가 봐야 할 것 같다.
물소리라도 들으면서 기운을 모으면 기분이라도 조금 나아질 것 같으니 말이다.
무리하게 접속하는 바람에 한 달도 넘게 괴롭히고 있는 감기 몸살도 좀체 나을 생각을 안 한다.
병원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하기에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먹기는 했지만 너무 오래 끌었다.
쉬지를 못해 심신이 지쳐 있는 와중에 기운까지 써서 그런지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자연의 기운이 절실하다.
폭우로 인해 모든 것이 다 쓸려 내려간 탄천이다.
기운을 모아야 하는 지금, 동공을 행하면 탁한 기운이 많이 사라져 깨끗해진 기운을 제법 쏠쏠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탄천의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냄새를 맡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탄천에 갔다가 집까지 가려면 한동안 걸어야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어디!
탁! 탁!
지팡이를 더듬거려 도로 경계석을 다시 확인했다. 귀를 쫑긋거려 차가 오는 소리도 다시 확인을 했다.
장님이 된 이후부터 민감해진 청각에 의지해 주변의 위험상황을 살펴봤다.
다행히 조금 전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나가는 차가 없는지 확인을 했으니 이제 건너면 되지만 망설여진다.
이렇게 인생이 꼬이게 만든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할 수는 없다. 이제는 확실히 극복을 해내야 한다.
후우~!
한숨을 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보이지는 않지만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밝은 조명기구의 명암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미약하게나마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소리도 없고, 불빛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차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니 얼른 건너야겠다.
탁!
타타타타탁!
건너는 동안 차가 올지도 모르기에 지팡이를 재빠르게 놀리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부아앙!
헉!
퍼억!!
갑작스러운 소리와 함께 폭풍 같은 바람이 밀려들며 허리 부근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제기랄!!
크윽!
무언가에 강하게 들이받힌 충격 때문인지 정신이 없다.
땅을 밟고 있는 느낌이 없고,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있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차에 치여 몸이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다.
그 옛날 일어났던 교통사고가 나를 장님으로 만들었던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죽음으로 이끌다니 정말이지 더럽게도 재수가 없다.
이대로 죽는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이렇게 죽기는 정말 억울하다.
크크크!
하지만 이렇게 죽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모질게 이어 온 삶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철저하게 망가져 버린 것이 내 삶이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상관은 없다.
여기서 삶은 끝낸다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축복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렸을 적에 당했던 사고로 실명한 이후, 나를 옭아맸던 이 지독한 지옥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어도 좋을 것 같다.
푹!
크윽!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는데 등 쪽을 파고들어 오는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든다.
뭔가에 찔린 모양이다.
지랄!
죽는 마당인데 더럽게 아프게 죽네. 이왕이면 편하게 가면 안 되나?
크크크!
지독하게도 재수가 없지만 고통은 잠시일 거다. 이 정도라면 의식을 차리기도 어려울 테니 말이다.
으으음, 역시나 의식이 갑자기 흐려진다.
이제는 갈 때가 됐나 보다. 고통스러운 이 삶을 내려놓고 드디어 떠나는 거다.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