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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나며 허공으로 튀어 올라 탄천 쪽으로 떨어지던 진유성에게 뭔가 날아왔다.
박창기가 차창 밖으로 던진 케이스였다.
버튼을 누른 박창기가 창밖으로 던진 시점과 유성이 차도를 횡단하다 사고를 당하여 관성에 의해 튕겨져 나간 후 케이스가 날아온 시점이 교묘하게 맞물렸던 것이다.
남기원이 물건을 담기 위해 준비한 케이스에는 버튼으로 작동이 되는 특수한 장치가 달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버튼을 누른 후 일정 충격 이상으로 접촉하는 대상에게 곧바로 달라붙도록 만들어진 장치였던 것이다.
탁!
허공에서 서로 부딪치자 케이스에서 나온 기계장치는 곧바로 작동을 시작했다.
푸욱!
“크윽!”
부딪친 케이스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날카롭게 등을 파고들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고통이 밀어닥치자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했다.
근육과 뼈를 움켜쥔 촉수는 따개비가 붙듯 그렇게 유성과 한 몸이 되었다.
남기원으로서는 탄천과 도로를 경계하기 위해 심어 놓은 나무에 달라붙기를 기대한 것이었지만 상황이 묘하게 변해 버렸다.
그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사고로 인해 유성에게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휘이익!
튕겨져 나간 유성의 신형이 나무를 넘어서 탄천 둔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 아프다. 아직 죽지 않은 건가?’
등을 파고드는 아픔과 함께 의식을 잃어 가던 유성은 잠시지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생을 포기하며 정신을 잃어 가다가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의식이 돌아온 유성은 자신이 즉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으윽, 치료만 잘 받는다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유성은 어쩌면 자신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영민한 머리로 추리해 낸 결과였다.
사고 당시, 바퀴가 지면을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예민한 감각으로도 소리를 감지하지 못했다면 요즘 신흥 부자들이 잘 타고 다닌다는 자기 부상 자동차에 치인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의 차량을 몰 정도면 당연히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부자가 타고 다니는 차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보상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독한 고통마저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이런! 안 돼!!”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유성은 누군가의 고함이 들을 수 있었다.
‘저, 정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놀란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고가 난 것을 누군가 본 것이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컥!!”
그러나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였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이 머리 쪽에서 찾아왔다.
도끼로 정수리를 쪼개고 신경이란 신경은 죄다 헤집어 놓는 것 같은 지독한 고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잊었는데 사고가 난 직후 등에서 느껴졌던 고통이 다시 되살아났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고통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점차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크크큭, 저 빛도 그렇고,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제 진짜로 죽은 건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도 잠시였다. 이내 고통이 사라지고 빛에 휩싸이는 자신의 몸이 보였다.
맹인인 자신에게 사물이 보이다니,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엄청나게 황홀한 빛이 몸을 감싸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지랄 같은 인생이로군. 크크, 정말로 지랄 같은 인생이야.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아!! 커억!’
죽어서나 간다는 명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성은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어렵게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아 버렸다.
조그맣게 일어났던 희망마저 꺾여 모든 것을 포기한 유성의 정신이 이후에 벌어질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제기랄!!”
스―윽!
그림자가 어둠으로부터 손을 거두었다.
“본체가 아니라서 그런지 흔적을 쫓기가 어렵구나.”
낭패한 음성과 함께 반투명한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때아닌 검정 코트를 입은 사나이가 그림자가 사라진 그 자리에 나타났다.
가변체를 통해 사라진 존재들을 추적하려 했지만 디멘션 게이트에서 발생하는 압력을 견딜 수 없었기에 본신을 현신시킨 것이다.
“진짜, 되는 일이 없군. 이 차원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데 본신을 현신시키기까지 해야 하다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한 탓에 사나이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자신의 현신으로 인해 지금 차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라진 존재들로 인해 발생할 문제보다는 아주 소소한 일이기에 무시하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일단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적부터 하자.”
사나이는 다시 짙은 어둠 속으로 오른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정신을 집중했다.
에테르의 잔존 에너지가 흩어지기 전에 사라진 존재들의 궤적을 쫓기 위해서다.
“으음!”
손을 펼쳐 무언가를 감지하듯 잠시 그렇게 가만히 살피던 사나이가 신음을 흘렸다. 사라진 존재들의 잔존 에너지의 궤적을 찾은 것이다.
사라진 존재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한 사나이의 인상이 빠르게 굳어졌다.
“최악이다. 차원에 균열이 가다니!”
차원이동체와 오염된 존재는 궤적의 끝에 존재하지 않았다. 디멘션 게이트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 것이 분명했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자의 존재는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방금 전 발생한 상황으로 인해 어떤 역학 관계가 성립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차원이 벌어져 있었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간 것이 아니라 아예 차원 간의 벽을 깨고 균열의 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사나이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쫓을 수 없는 경우였다. 일을 맡아오면서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나이는 자신의 오른손을 거두어들여 귀에 가져다 댔다.
“사고 발생! 사고 발생! 다중 차원이동체와 오염된 잉어 한 마리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인간 하나가 차원의 균열로 빠져들었다. 이로 인해 평행 차원의 기점이 흐트러졌다. 다시 한 번 전송한다. 사고로 인해 평행 차원이 기점이 흐트러졌다. 인간 하나가 차원의 균열로 빠져들었다.”
사나이는 다급하게 자신이 파악한 정보들을 어디론가 전송했다.
잠시 후, 보고에 대한 대답이 도착한 것인지 머릿속을 울리는 것 같은 음성이 사나이의 뇌리로 흘러들었다.
―그것이 무슨 소린가? 자세히 보고하라.
“보고를 드린 대로입니다, 단장님! 다중 차원이동체를 소멸시키는 도중에 인간이 에테르 스피어가 접촉해 차원의 균열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기점이 흐트러져 새로운 평행 차원이 생겨 버린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인가?
믿을 수 없다는 반문이 사나이의 뇌리에 전해졌다. 사나이의 보고는 몇 조 분의 일의 확률로 일어날까 말까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이번 사고로 인해 새로운 평행 차원이 생긴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제기랄! 정말 큰일이로군. 인원도 많지 않은데 새롭게 관리해야 할 구역이 생겨 버리다니…….
차원균열이 평행기점에서 발생하면 차원 간 분화가 일어난다. 무조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분화를 촉발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아를 가진 존재다.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고 촉매변수로 작용할 자아를 가진 존재가 그곳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차원이 생겨나 관리자를 차출하는 것이야 어렵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타임 오프가 멀지 않았다. 일단은 그곳에서 철수부터 하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