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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입니까?”
―그렇다. K―9! 본부로 돌아와 새로 생겨난 평행 차원을 찾는 것이 새로운 임무다.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의 임무를 접고 본부로 귀환해라.
“하지만 인간이 차원의 균열로 들어갔습니다. 나중 일이 되겠지만 만약 계기가 있어 차원 역장 간의 간섭이 일어난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로 인해 차원붕괴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차원 관리자가 되면서 받았던 교육 중에 차원균열에 빠져들어간 존재로 인한 대차원의 붕괴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었던 K―9은 상관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대한 빨리 찾지 않는다면 분화기점에서 자칫 차원 간에 간섭이 일어나 붕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예?”
단언하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나이는 모르겠다는 듯 반문이 흘러나왔다.
―자아를 가진 존재가 평행기점상의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어차피 분화는 일어난다. 하지만 엄청난 에너지 파장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차원분화의 촉매작용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대차원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는다. 신이 아니라면 분화되는 에너지 파장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서 접고 귀환하도록!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과의 링크가 끊어진 것을 확인한 사나이는 자신의 귀에서 손을 내렸다.
“얼른, 돌아가야겠다.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자칫 귀환 시간을 놓친다면 영영 차원의 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시간이 없음을 자각한 사나이는 임의로 닫아 놓았던 차원 이동통로가 차원통로를 열었다. 덕분에 그가 서 있는 주변 공간이 일렁였다.
스으으으으…….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사나이가 신비롭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3장 졸업식 날의 정기전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보다.
재수가 없게도 아버지가 어렵게 운영하시던 옷 공장에 불이 나 버렸다.
지인들로부터 급전까지 얻어서 공장을 임대해 차리신 것이라서 우리 집은 속된 말로 망해 버린 것이다.
화재가 난 뒤, 우리 가족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화재보험 같은 것은 잘 알지도 못했고, 희귀한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은 거였기에 들 생각도 못해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있는 돈 탈탈 털어 시작한 공장이 전소되었다. 그야말로 알거지가 된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고 후 공장 부지를 팔아 남아 있는 모든 빚을 청산하고 난 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월세방 얻을 정도의 돈만 달랑이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그나마 방값이 싼 서울 근교로 이사를 할 수 있었으니, 이것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셨다.
기울기 시작한 가세라서 그런지 화재가 난 뒤로는 집안 형편이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열심히 노력을 하셨지만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쥐구멍 신세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먹고사는 정도만 간신히 유지될 뿐이었다.
화재가 나기 전까지는 꿈 많았던 나였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진로에 대해 생각을 바꿨다.
생활은 나아질 낌새 없이 어려움만 계속되니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어차피 돈이 없으니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는 어떻게 졸업을 한다고 해도 대학교에 들어가면 학비가 만만치 않다.
우리 집 형편에는 절대 꿈도 꾸지 못할 일인 것이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 드리는 한편,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수도전기공고에 원서를 접수시켰다.
물론, 부모님께서 허락할 리 없으니 말씀도 드리지 않고 내린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수도전기공고는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꽤나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성적이 좋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학교장 추천을 통해 원서를 제출하는 형식으로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전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지원을 한 학교였지만 나는 다닐 수가 없었다.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이다 보니 입학을 위해서는 부모님의 자필 동의서를 꼭 받아 와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화를 감당하지 못할까 봐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담임선생님께서 직접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셨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세웠던 내 계획은 아버지가 학교로 오신 날 산산이 깨져 버렸다.
그날 저녁 태어나 처음으로 내 종아리가 엄청난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던 것은 그저 덤이었다.
수도전기공고를 가려고 한 것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어서였다.
입학을 하게 되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거기다가 1년에 드는 학비가 모두 해 봐야 겨우 5만원도 되지 않았다.
방학 때만 아르바이트를 해도 내 힘으로 충분히 벌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인 것이다.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게 되면 특채로 한국전력공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별다른 구직활동 없이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직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뿐이라면 나도 입학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전력에 입사하게 되면 원하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졸업하고 입사를 하게 되면 산간지역 같은 오지에 발령을 받아 2년간 근무하게 된다.
놀거리, 볼거리가 거의 없는 산간지역에서 근무하게 되는 터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고압선을 점검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고, 일이 끝나면 전기 관련 공부를 하거나 일찍 잠이 들거나 할 뿐이었다.
그런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공부하는 데는 자신이 있기에 비록 야간이기는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대학교의 전기공학과에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가서도 열심히만 한다면 장학금을 받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잘하면 학교와 회사에서 둘 다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학과가 업무와 관련되어 있기에 이중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직장도 유지가 된다.
그리고 전기공학과를 나오면 과장급으로 특진이 된다.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길 원하시던 아버지는 승낙을 해 주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셔서 담임선생님의 설명을 들으시고는 합격 통지서를 찢어 버리셨던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연합고사를 치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공부를 거의 안 했는데 나름 실력이 있던 터라 시험은 잘 치른 모양이었다. 연합고사에서 전체 7등을 했으니 말이다.
좋은 성적이었지만 사람 운이라는 것이 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첫 번째로 실시된 뺑뺑이(학교 배정 추첨)를 통해 배정된 고등학교는 좋은 학교가 아니었다.
시에 산재한 4개의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 가장 안 좋았다.
내가 배정을 받은 학교는 실업 전수 학교에서 인문계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겨우 두 번째 신입생을 뽑는 신생 학교다.
성운 고등학교는 실업전수학교 시절부터 폭력 학교로 이름이 높았다.
야간반이 있어 우리 시에서 주먹으로 이름 날리는 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다니고 있으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였다.
사람들 대부분이 똥통 학교라고 손가락질을 할 정도로 소문이 나쁘게 나 있었다.
이 덕분에 집안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재수를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따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많이 방황을 했다.
이미 뜻이 꺾여 버렸던 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냥 배정받은 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
*

“유성아, 너 이번에 성운으로 가게 됐다면서?”
운동장에서 열린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명현은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유성을 향해 물었다.
“그렇게 됐다.”
“너, 재수할 거냐?”
“아니, 그냥 성운에 가기로 했다.”
“정말로 그렇게 하기로 한 거냐?”
“어쩔 수 없잖아. 아버지가 그렇게 원하시니 말이야. 너도 알지?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신 우리 아버지 한이 뭔지 말이야. 공장에 불이 나고 난 뒤에 내게 거는 기대가 더욱 커지셨나 봐.”
시무룩한 얼굴에 힘이 없었다.
‘이 녀석, 아버지가 반대했다는 것 때문에 무척이나 실망했던 모양이구나.’
기운이 없는 말투도 그렇고, 낙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유성을 바라보는 명현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름 기대를 걸고 세웠던 계획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어긋나 버렸으니 맥이 없을 만도 했다.
‘화재만 나지 않았어도…….’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공장에 불이 나서 거의 망하다시피 해 집안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유성이었다.
그것 때문에 공고를 가려고 했지만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착실히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명현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고등학교를 인문계로 바꿨지만 그것조차 운이 너무 좋지 않았다. 뺑뺑이에서 똥통 학교라고 손가락질받는 성운고에 덜컥 배정을 받아버린 것이다.
학교 분위기가 아주 안 좋은 터라 공부는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으로 유성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유성이가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되는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 바라보던 명현은 친구인 유성이 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대로 있으면 유성이가 나쁜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명현이 입을 열었다.
“유성아, 너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포기는 하지 마라.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정말로 끝나는 거니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위로밖에 없기에 명현은 진심을 담아 위로했다.
“후후, 녀석! 고맙다. 역시, 너밖에 없구나. 아직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조금 더 생각을 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네가 세웠던 계획을 말씀이나 한 번 드려 봐. 어쩌면 이해해 주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도공고에 간다는 유성의 이야기에 명현도 처음엔 당황스러워했지만 설명을 들어 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머리도 좋고 실력도 있는데다가 노력파인 유성이라면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유성의 계획은 중학생이 세운 것 답지 않게 무척 치밀했기에 명현도 공고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보길 권유했다.
“선생님과 면담하기 전에 이미 말씀을 드렸다.”
“정말이냐?”
“그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이나 가라고 말씀하시더라. 후후후, 너도 우리 아버지 고집 알지? 아버지는 절대 설득이 불가능한 분이다.”
동의서를 쓰기 전에 이미 명현이 말대로 해 본 유성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성운에 배정되었을 때도 말씀을 드려 봤지만 오히려 재수를 하라는 소리만 들은 유성이다.
그 때문에 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느냐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대판 싸우기까지 했다.
아버지와의 감정싸움으로 인해 재수를 하지 않고 그냥 진학을 하겠다고 한 이후, 더 이상 아버지를 설득하고 싶지 않은 유성이었다.
‘지지리 복도 없는 녀석!’
연합고사 전에 학교장 추천으로 뽑는 수도공고에 합격하고도 아버지의 반대로 입학하지 못했다.
실망한 나머지 몇 달간 공부를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연합고사에서 전체 7등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만 정말 운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꿈을 꺾는 최초의 사람이 될 줄 몰랐던 것이다.
담임선생님 앞에서 아버지가 원서를 찢는 모습을 본 후, 학교 뒷산에서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펑펑 울고 있던 유성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명현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철없어 보이는 모습일지 모르지만 공고에 가지 못한 것보다 자신을 믿어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명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으로 힘이 들겠지만 그래도 잘 이겨 내라. 넌 한 번 한다면 하는 놈이니까.’
평소에 말도 별로 없고 남에게 곁을 쉽게 내주지 않는 성격이지만 누구보다 그런 유성을 잘 아는 명현이다.
유성이 전학을 온 후부터 지금의 중학교까지 장장 7년을 함께한 명현은 유성이 안쓰러웠지만 누구보다 친구의 성품을 믿고 있었다.
보기와는 달리 속이 깊고, 뜻을 세우면 웬만해서는 꺾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인 명현은 이번 시련을 이겨 내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