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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어! 돼지엄마 오신다.”
유성을 위로하려다가 창문 밖으로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본 명현이 재빨리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명현과 대화를 나누던 유성도 자세를 바로 했다.
졸업식은 조금 전에 끝났고 이제 중학교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할 종례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진짜 중학교도 끝이구나.’
별명이 돼지엄마인 담임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때에 이어 3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분이다.
‘선생님이 또 걱정하시게 할 수는 없지.’
집안이 어려워지자 그 누구보다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주신 분이었다.
조금 통통한 몸집과 학생들을 자식처럼 여기시는 터라 아이들로부터 돼지엄마란 별명을 얻은 분이다.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분이라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유성이다.
명현과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털어 낸 유성은 얼굴을 펴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선생님도 마음이 좋지 않으신 모양이구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교탁에 서 있는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많이 굳어 있는 것을 보며 유성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내 새끼들이 이렇게 커서 이 엄마 품을 떠나다니…… 그동안 너희들을 만나서 즐거웠지만 너무 아쉽구나.”
어디서 울고 왔는지 눈가가 붉어져 있는 재순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졸업반을 맡을 때면 늘 겪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목소리도 많이 젖어 있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가끔 찾아뵐게요.”
넉살 좋은 명현이 눈시울이 붉어진 선생님을 향해 크게 말했다.
“그럼요. 우린 돼지엄마 새끼들이잖아요.”
“맞아요, 돼지엄마.”
이구동성으로 두서없이 위로하는 아이들의 말에 돼지엄마라 불리는 재순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럼, 그럼. 내 새끼들이고말고.”
이제 훌쩍 커서 자신의 곁을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과 가슴에 담았다.
“자! 이제 작별 인사를 하자.”
“예, 선생님.”
“반장!”
인사를 재촉하는 재순의 목소리에 반장을 맡고 있는 상태가 일어났다.
“전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그래, 너희도 모두들 건강해라.”
“선생님도 건강하세요.”
아이들의 경례를 받고 울먹이듯 대답하는 재순의 말에 아이들도 가슴이 먹먹한 듯 큰소리로 일제히 대답을 했다.
“그래, 학교에 종종 놀러 오고.”
“선생님, 시간 날 때마다 보러 올게요.”
“그래그래.”
아이들의 대답에 재순은 반 전체를 둘러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흐흑…….”
더 이상 있다가는 눈물을 흘릴 것 같았는지 재순은 황급히 교탁을 비우고 교실을 떠났다.
“선생님…….”
자신들의 부름을 뒤로하고 교무실로 떠난 담임선생님의 모습에 일어났던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교실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담임선생님으로, 수학을 담당하는 선생님으로 지금까지 겪어왔던 분이다.
걸걸한 여장부지만 속마음은 그 누구보다 여린 선생님의 심정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떠나고 아이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슴이 먹먹한 것이, 지난 시절이 떠오른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졸업식이라서 가족들이 대부분 학교에 같이 온 터라 아이들은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유성과 명현도 교실을 나섰다.
“명현아, 가자.”
“그래.”
교실을 나선 학생들이 교정 여기저기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이 오시지 않은 것은 우리 둘뿐인 것 같다.”
“크크, 부럽냐?”
“부럽긴!”
“어떻게 하냐. 다들 바쁘신걸.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것 같으니까 어서 가자.”
“그래.”
졸업식에 부모님이 오시지 않은 두 사람은 언짢은 기분을 털어 버리고 언제나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집으로 향했다.
“유성아, 우리 만복당에나 갈까?”
교문을 나선 명현이 물었다.
“만복당?”
만복당은 종합시장이라 불리는 시장 건너편에 있는 분식집이다.
시중보다 값싸게 자장면이나 분식을 팔고 있어 용돈이 궁한 학생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고도 한참 먼 거리에 위치한 곳이지만 평소 용돈이 궁했던 두 사람도 곧잘 애용하고 있었다.
“그래, 인마.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가자.”
주저하는 유성의 손을 명현이 잡아끌었다.
‘그래, 이제는 자주 보지도 못한 텐데…….’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장통에 있는 보일러 가게에서 조수로 일을 하기로 한 유성이었다.
학교도 갈라져 이제 만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낸 유성은 명현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그래, 가자. 하지만 오늘은 내가 쏘는 거다.”
“그래, 인마. 가자.”
유성과 명현은 만복당으로 향했다.
“어이! 진유성!”
명현과 함께 인도를 따라 걷던 유성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인도 변 축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저 자식! 또 시작했군.’
국민학교 동창이자 평생의 숙적인 차인혁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터라 유성의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넌 졸업식도 가지 않은 거냐?”
“크크, 얼굴만 비추고 오는 길이다. 오늘 정기전이 있는 날인데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지.”
“휴우! 너란 놈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차인혁과는 같은 태권도장을 다녔다.
같은 시기에 시작을 하기도 했지만 고만고만한 실력이라 대련을 할 때마다 상대를 해 주었다.
전에는 그러지 않던 녀석이 도장을 그만두기 전 있었던 대련에서 유성에게 크게 패한 이후로 달라졌다.
매번 패하면서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렇게 찾아와 대련을 종용하는 것이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난 너를 꼭 이겨야겠거든.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는데 널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올라와라.”
인혁이 축대 위에서 손을 내밀었다.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사방공사로 만들어진 축대라 약간 위로 올라가면 나무에 가려진 공터가 나온다.
한 달에 한 번 인혁과 대련을 하던 곳이라 유성에게도 익숙했다.
‘할 수 없지. 가란다고 그냥 갈 녀석은 아니니까.’
쇠고집에 막무가내 성격인 인혁이다. 이대로 그냥 간다면 길거리에서라도 치고 들어오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유성아, 오늘은 그냥 가자.”
옆에 있던 명현이 말렸다.
늘 대련을 지켜봤지만 졸업식 날까지 찾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명현이 인혁을 노려보았다.
“눈 깔아라!”
인혁이 눈을 치켜뜨며 명현을 노려보았다.
“아, 알았어.”
인혁은 소문난 학생이다.
중학생임에도 고등학교 형들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주먹으로 이름이 난 터라 명현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너, 죽을래.”
옆에 있던 유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 미안. 내가 신경이 좀 날카로워서 말이야.”
다른 때와는 달리 무척 흥분한 듯한 인혁이 이내 성질을 죽였다.
‘그냥 간다고 하면 일 치르겠군.’
인혁이 무엇 때문에 흥분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리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호승심이 강해 자신에게 매번 도전해 오지만 유성도 그리 싫지는 않았기에 손을 내밀었다.
“으차!”
인혁이 유성의 손을 잡고 축대 위로 끌어당겼다. 축대 위로 올라선 유성이 명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너도 참!”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든 명현이 유성의 손을 잡았고, 축대 위로 올라서 공터를 향해 올라갔다.
공터에 올라오자 인혁이 웃옷을 벗어 나무에 걸었다. 유성도 마찬가지로 옷을 벗어 명현에게 건넸다.
“가 봐야 할 데가 있으니 빨리 끝내자.”
“좋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라니?”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랬냐?”
흥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련을 할 때마다 매번 지는 터라 한 번은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강한 인혁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이 조바심을 나게 한 것이 분명했다.
“준비는 끝난 거냐?”
“그래, 와라.”
“그럼 간다. 차앗!”
파팟!
휘이익!
기합과 함께 인혁이 빠르게 다가왔다.
앞차기가 이어지더니 연속으로 세 번을 차 왔다. 인혁의 특기인 삼단차기다. 유성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며 타격점을 피했다.
휘이익!
인혁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듯 디딤발을 디딘 후 원을 그리듯 발을 휘둘러 왔다.
휘익!
타타타탁!
공격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덕분에 인혁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휘돌고, 차고, 찌르고 다양한 다리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타격이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단하다. 저러니 고등학생 형들도 감당을 못하지. 그리고 유성이도 대단한 녀석이다. 저런 공격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 거지?’
잠시지만 태권도를 배웠던 명현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좇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눈으로 좇기에도 벅찰 만큼 빨랐다.
‘저런 것은 사범들도 불가능할 거다.’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범이나 관장이라 할지라도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공격이 계속 이어지다 인혁이 빠르게 물러났다.
“후우~! 역시 그냥은 안 되겠구나.”
“그럴 거다. 그동안 그렇게 싸워 봤으면서도 모르겠냐?”
“하긴, 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