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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이 조금 가신 듯 인혁의 모습이 진중해졌다.
‘비기를 사용하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저 녀석을 통해서 지금까지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다. 저 녀석의 천재성이라면 뭔가 나오겠지.’
인혁은 유성을 상대하며 실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태권도를 대부분 마스터한 상태에서도 유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다.
유성이 보여 주는 의외성과 천재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흐름을 읽는 눈을 통해 자신을 단련해 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태권도만 가지고는 더 이상 유성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어진 것이다.
도장에서 배우고 있는 태권도가 아닌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비기를 사용하게 되면 간단히 이길 수 있었다.
그동안 대련을 할 때마다 매번 지기는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인혁은 오늘 가문의 금제를 어기고 유성에게 비기를 사용할 생각이다. 마지막 대련이기에 한 번은 꺾어 보고 싶었기도 했지만 그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사실 비기를 사용해 대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가문의 사람들뿐이다.
그동안 형제들과 대련을 하면서 많은 의문점이 생기곤 했지만 풀 수가 없었다.
같은 것을 수련하고 있으니 자신이 수련하는 것에 어떤 허실이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인혁은 유성을 통해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렇게 방어만 하다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자신을 단번에 제압하던 유성이다.
상대의 허실을 탐지한 후, 단 일격에 제압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그에 맞는 움직임을 자신 의지대로 행할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몇 년간 지켜본 바로는 무술에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유성이었다.
유성의 재능이라면 자신이 미진하게 생각하던 것을 부분을 메워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인혁은 가문의 금제마저 어기며 비기를 펼치기로 한 것이다.
‘으음!’
비기를 펼치려 점차 가라앉아 진중해지는 인혁의 모습을 보면서 유성도 안색이 굳어졌다.
‘오늘은 조금 이상한데?’
인혁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한 달 전 대련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인혁으로부터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호오!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제대로 해야겠군.’
아버지와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진학 문제로 인해 많은 고민이 있었고,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계획이 좌절을 당한 이후 울화가 맺혀 있던 유성은 인혁의 모습이 아버지와 겹쳐 보였다.
게다가 수련이 답보 상태라 무술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던 이후 처음으로 흥미가 생겼다.
“너도 달라지겠다면 나도 다르게 상대해야겠군.”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유성의 안색이 변하고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시작할까?”
“그러지.”
탁! 타탁!
“어?”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달라진 분위기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던 명현이 의문스러운 탄성을 내질렀다.
파파파파파팟
두 사람은 상대를 스치듯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두 사람의 손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팟! 파팟!
제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전진하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손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명현의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하지? 그리고 전에 싸울 때와는 많이 다르네.’
다리를 위주로 공격하는 일반적인 태권도와는 많이 달랐다. 두 사람 다 손을 위주로 한 공격에 다리 공격이 가미되어 있었다.
마치 중국 무술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중학교 3년 내내 지켜보았던 명현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았다.
처음과는 달리 거의 움직이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 채 공방이 진행됐다.
그렇게 30여 분 동안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었지만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파팟!
좀처럼 유성을 압도할 수 없자 인혁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헉! 헉! 대단하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인혁이 말했다.
“후우! 후우! 너도 대단하다.”
“헉! 헉! 태권도 말고 다른 것을 수련한 거냐?”
상당히 놀랐는지 거친 숨처럼 인혁의 눈동자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후우! 후우! 너도 그런 것 같은데?”
“헉! 헉! 그렇군.”
교묘하게 말을 돌리고 있었다.
자신처럼 비밀이 있을 것 같았기에 인혁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후우! 후우! 자세 풀어라. 좀 쉬자.”
“헉! 헉! 그래. 좀 쉬었다가 이야기하자.”
상당한 심력과 체력을 소모한 탓에 두 사람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성은 빠르게 호흡을 골랐다.
인혁도 숨을 고르기 위해 애를 썼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며 인혁은 대련 중의 움직임들을 되짚어 봤다.
유성이 보여 주었던 동작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태권도만 배운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움직임이 가능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으니…….’
유성이 쓴 수법은 태권도에서 배웠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전처럼 카운터펀치 같은 의외성이 담긴 공격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기를 사용했는데도 어떻게 저 녀석을 이길 수가 없는 거지?’
수벽의 비기를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인혁과의 대결은 정말이지 힘이 들었다.
자신이 익힌 비기와 대등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반격이 어려웠다.
오히려 자신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유성의 공격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방식의 공격은 아니었지만 허점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파고드는 공격이라 막기에도 급급한 대련이었다.
‘그동안의 수련은 대충 마무리는 된 것 같지만 이런 기회를 더 이상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아쉽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성과의 대련을 통해서 단련을 해 온 인혁이었다.
오늘도 유성이 시도하는 의외의 공격을 방어하며 자신의 허점을 메워 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련으로 인해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가까스로 막아 내기는 했지만. 저 녀석의 공격은 무척이나 날카로웠으니까 말이다.’
유성과 공방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수련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자신이 미진하다고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4장 운명의 교통사고



아주 골 때리는 녀석이 하나 있다.
틈만 나면 나와 싸우고 싶어서 안달을 하던 녀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녀석도 나와 마찬가지로 가전무예를 익히고 있는 것 같다.
그 녀석과의 인연은 태권도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매일같이 도장에 나가니 하루가 멀다 하고 녀석과 대련을 해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도장에 다니지 않게 되었을 때는 좀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 녀석은 한 달에 한 번, 내가 다니던 학교로 와서 나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매번 달라지는 녀석의 실력에 나도 열심히 실력을 쌓아야 했다.
물론, 아버지에게 받는 수련으로 실력을 쌓는 것은 아니었다. 싸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버지가 아신다면 그날로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테니 말이다.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는 여러 가지 투기 종목의 동작들을 내가 하고 있는 수련에 접목시켰다.
가장 많이 접목된 것은 오랜 세월 운동을 했던 태권도였고, 합기도, 십팔기, 검도 등 무술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것들도 접목했다.
덕분에 녀석에게 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졸업식 날, 녀석과의 대결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아버지에게 철없이 반항을 하며 지내던 그때, 녀석에게 입은 상처로 인해 나는 내 운명을 한순간에 바꿔 버린 사고를 겪어야 했다.
장래에 대한 꿈을 한창 꾸어야 할 17살!
내가 꾸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꿈이 좌절당하게 되어 버린 것보다 더 큰 좌절을 안겨 준 사고였다.
그날의 교통사고 덕분에 나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로 들어서야 했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 어둠밖에 없는 맹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
*
*

‘그나저나 저 녀석은 아무리 봐도 언제나 예상외다. 양파처럼 속을 모르겠으니…….’
유성의 수준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유성이 보인 움직임은 인혁으로서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
예전처럼 자신의 공세를 피하며 반격을 해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맞서 공격을 해 올 줄은 인혁도 미처 몰랐다.
자신의 해 왔던 수련을 되짚어 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막상막하의 대결이었다.
그동안의 패배를 만회하려고 수련하고 있는 수벽의 비기 중 일부를 몰래 선보이기도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공수가 눈이 부실 정도로 유성의 움직임은 여느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사실 오늘은 유성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뭔가 더 있지만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처럼 비밀이 많은 녀석이다. 그동안 나를 제압했던 것이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권도의 동작을 차용했지만 수벽과 대등하게 맞설 정도라면 고대 무예중 하나가 섞인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인혁은 유성의 움직임에 고대 무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느 유파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시시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 녀석이 고대 무가의 맥을 이은 것이라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이 년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집안 사정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된 터라 더 이상 유성과 대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유성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메울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유성과의 대련을 통해 자신이 수련하고 있는 것들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앞으로 배우게 될 것들에도 유성이라면 많은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유성과의 일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어차피 정해진 일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감추고 있는 것이 더 있는 것 같으니 한 번 더 해봐야겠다. 진짜 고대 무가의 후예인지 확실히 알려면…….’
미국으로 가게 돼서 더 이상 대련을 하기는 어렵지만 유성의 쓰고 있는 무예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인연이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유성아,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될까?”
“한 번 더?”
“그래, 한 번 더!”
열망이 가득한 인혁의 표정이 아니더라도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유성도 흥미가 동했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한 번 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