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1)/
*
*
*
서울의 철거민들의 위해 급조된 도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3년 후로 다가온 아시안 게임에서 하키 경기를 개최하게 된 탓에 많은 이들이 도시 정비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다.
국가적인 행사라 그런 것인지 거리 곳곳에 환경미화를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가 개최되는 운동장도 그렇고, 도로도 개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공사에 동원된 차량이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삼덕은 오늘도 경기장을 개보수하는 공사장에 싣고 온 자재를 내려놓고는 곧장 빠져나와 시내 중심가 쪽으로 빠르게 차를 몰았다.
큰 도로로 접어든 후 그리 멀리 가지 못했는데 붉은 신호가 들어와 있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어디, 한 대 빨아 볼까?”
정지선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입에 물자 신호가 바뀌었다.
“신호에 풀렸네. 서두르자.”
삼덕은 신호가 노란색으로 바뀌자 가속페달을 밟았다.
다음 사거리 신호부터는 신호 주기가 매우 짧아 한 번 걸리면 계속 걸리기에 이를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부우웅!
늘 그렇게 운전을 했던 터라 무심결에 가속페달을 밝았다.
속도를 내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삼덕은 신호 체계가 얼마 전에 바뀌었다는 것도, 자신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횡단보도로 내려선 학생들이 있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런!”
라이터를 켜다 학생들을 발견한 삼덕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익!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탄력을 받기 시작한 덤프트럭은 귀를 찢을 듯한 마찰음과 함께 횡단보도 위에 서 있는 학생들을 덮쳤다.
“제길!”
차가 덮치고 있음에도 미처 피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본 삼덕의 입에서 거친 말이 흘러나왔다. 보자마자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
*
*
끼이이익!!!
급브레이크로 인해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로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성은 자신들을 향해 덮쳐 오는 덤프트럭을 본 순간, 인도 쪽으로 명현을 밀쳤다.
“위험해!”
“아악!”
명현이 인도 쪽으로 밀려 넘어가며 덤프트럭과의 충돌을 피하는 순간, 트럭의 검은 그림자가 자신을 덮쳤지만 유성은 미처 피할 수가 없었다.
인혁과의 대결로 허리를 다친 상태에서 명현을 밀쳐 내느라 상처가 악화되어 급하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퍽!
“컥!”
브레이크가 잡혀 차량이 덜컥거리는가 싶더니 진행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유성을 치었다.
강렬한 충격이 전신으로 이어졌고, 유성은 답답한 비명과 함께 멀리 튕겨져 나갔다.
“유성아!!!”
자신을 밀치고 트럭에 치여 허공을 날고 있는 유성을 보며 명현이 비명 같은 고함을 쳤다.
“아악!”
“사, 사고다.”
“어쩜!! 어떻게 해!”
횡단보도에 있던 사람들도 날아가는 유성을 바라보며 모두 놀라 한마디씩 했다.
‘크크윽, 결국은 부딪쳤구나.’
전신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몸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유성은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다치지만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는데…….’
전신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사고 상황이 느껴졌다.
덮쳐 오는 트럭의 그림자를 바라본 순간 간신히 명현을 밀쳐 냈다. 곧바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갑자기 찾아든 통증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유성의 몸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유성은 도로 바닥 위로 머리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유성은 머리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비틀었다.
퍽!
곧바로 머리가 떨어진 것은 피했지만 허리의 고통으로 인해 몸이 다 틀리지 않아 얼굴 일부와 어깨가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 먼저 떨어졌다.
“크윽!”
사고가 당한 지점으로부터 15미터나 튕겨져 나간 터라 충격이 만만치 않았는지 땅 위에 떨어지는 순간 유성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유성아! 흐흐흑! 유성아.”
친구가 도로 위로 떨어지는 모습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명현은 눈물을 흘리며 유성을 향해 뛰었다.
“이를 어째!”
“트럭에 치인데다가 머리부터 떨어졌으니 살아도 중상일 텐데 어쩌나…….”
유성이 크게 다쳤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덤프트럭이 사고를 내는 순간, 차량들이 모두 급정거를 했기에 사람들이 유성을 보기 위해 우르르 도로로 들어서자 주변이 금방 복잡해졌다.
“유성아! 정신 좀 차려! 유성아!”
쓰러진 자리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명현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유성을 잡고 흔들었다.
“학생! 그렇게 흔들지 마. 그러다가 더 다쳐!!”
자신이 몰던 덤프트럭이 사람을 들이받자 잠시 경황이 없었지만 이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급히 달려온 삼덕이 명현을 붙잡았다.
사고로 인해 뼈가 부러졌다면 잘못 흔들었다가는 부러진 뼈가 장기를 찌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엉! 엉! 유성아! 유성아, 정신 차려.”
삼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죽는다는 생각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명현이 목 놓아 울며 유성을 잡고 흔들었다.
짝!
“정신 차려! 흔들지 말라니까!! 그러다 죽어.”
삼덕은 명현의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했다.
“저리 비켜 봐. 어서!”
사고는 사고고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빠르게 명현을 밀쳐 낸 삼덕은 정신을 잃은 유성의 상태부터 살폈다.
‘어디!’
위생병 출신인 삼덕은 출혈과 울혈이 있는지부터 먼저 살핀 후 목덜미에 손을 댔다.
‘다행이다.’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한 삼덕은 코에 귀를 가져다 대고는 유성의 호흡이 정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것치고는 호흡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누가 경찰이나 병원에 연락 좀 해 줘요. 어서!”
아직 시간이 있을 것 같기에 삼덕은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횡단보도에서 구경하던 사람 중 하나가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신고가 되면 구급차량이 올 것이기에 삼덕은 계속해서 유성의 상세를 살폈다.
옆에서 계속해서 울고 있는 명현의 울음소리가 신경이 쓰였지만 환자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상한데?’
계속 유성의 상세를 살피던 삼덕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유성의 상태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대형 사고라 쓰러져 있는 유성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라야 맞았다. 맥박이 여려지고 호흡도 불규칙해야 하는데 차에 치여 사고를 당한 사람답지 않게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차량에 부딪친 것뿐만 아니라 튕겨져 올라가 머리부터 강하게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정상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삼덕은 다시 유성의 경동맥을 잡고 심박 수를 살폈다. 카운트를 해 보니 정상인과 다르지 않았다.
‘심박 수는 정상이다. 어디!’
곧장 눈꺼풀을 열어 동공을 살폈다. 반응하는 정도를 살필 수는 없지만 상태는 정상으로 보였다.
‘정상인 것 같은데…… 아,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일지도 모르만, 혹시나 내출혈이 있을지도 모른다.’
교통사고의 무서운 점은 외상이 없더라도 충격으로 인해 내부 장기가 다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사고를 당한 후 멀쩡히 일어섰다가도 내부에 생긴 상처로 인해 쓰러진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기에 조심스럽게 유성의 상세를 다시 살폈다.
‘으음, 도저히 모르겠구나.’
내출혈이 있다면 표시가 나야 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상처가 없어 보였다.
의심이 들어 호흡과 심박 수와 동공을 다시 한 번 살펴봤지만 정상인과 같은 상태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덤프트럭에 부딪쳤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상태였기에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오! 이―오!
사이렌 소리가 급하게 가까워졌다.
‘왔구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던 삼덕은 곧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엉엉! 아저씨, 우리 유성이는 어때요?”
삼덕이 유성의 상처를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던 명현이 정신을 차리고 울면서 물었다.
“모르겠구나. 외상도 없고, 심박 수와 호흡도 정상이라 그다지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자신이 직접 확인했지만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삼덕은 말끝을 흐렸다.
“나, 나 때문에…… 흐흐흐흑!”
자신이 서두른 탓에 사고가 났다고 생각한 명현은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아니다. 나 때문이다. 내가 신호만 지켰어도…… 이 아이와 친구인 모양인데 정말 미안하다.”
시간 좀 아끼겠다고 신호를 위반한 것이 이렇게 사고를 나게 할 줄을 몰랐던 삼덕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지 울고 있는 명현을 위로하며 다독여 주었다.
“비켜요, 비켜!”
구급차가 도착하고 응급요원이 사고 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이동시킨 후 쓰러져 있는 유성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상세를 살폈다.
기도가 제대로 확보가 되어 있는 상태라 삼덕과 마찬가지로 호흡과 심박 수를 살폈다.
“어떤 상태입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삼덕이 응급요원을 향해 물었다.
“누구십니까?”
“제가 사고를 낸 운전자인데 의무병 출신이란 먼저 살펴봤습니다.”
“어쩐지 기도가 제대로 확보가 되어 있다 했습니다. 다행히 뼈도 부러진 곳이 없고, 동공 상태도 아주 좋습니다. 외견상으로는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교통사고니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봐야 할 겁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유성의 상태에 대한 응급요원의 소견은 자신이 알아본 것과 일치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전문적으로 응급 교육을 받은 요원이 하는 말이라 삼덕으로서는 안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저 학생을 싣고 병원에 가야 하니 경찰서에 사고 신고를 하시고 곧바로 병원으로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어이!”
삼덕에게 병원으로 올 것을 말한 응급요원은 같이 온 동료를 불렀다.
소리를 들은 다른 응급요원은 들것을 꺼내 가지고 와서는 유성을 옮겨 구급차에 실었다.
“그런데 어느 병원으로 가시는 겁니까?”
경찰 조사가 끝나면 병원에 찾아가 봐야 했기에 구급차 문을 닫는 응급요원에게 삼덕이 물었다.
“저기 남한산성 쪽으로 계속 직진을 하다 보면 오른쪽에 양친회 병원이라고 나올 겁니다.”
응급요원이 도로 끝에 보이는 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말한 병원은 그래도 시가지 내에서는 가장 큰 병원이었다.
“알겠습니다. 경찰서에 갔다가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사고가 난 학생의 친구 같으니 같이 태워서 가십시오. 차에 치인 아이와 친구니 보호자와 연락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도 어서 타라.”
삼덕의 말처럼 병원에 가게 되면 환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기에 응급요원은 군말 없이 명현을 구급차에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