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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오! 이―오!
사고자를 실은 구급차는 사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남한산성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후우~ 일단 경찰서부터 가서…….”
애애앵!
구급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사이렌이 울리며 사고 현장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은 인근 파출소에서 이미 사고 현장으로 나와 있었지만 사고 담당 교통경찰은 이제야 도착을 한 것이다.
‘생각보다 조금 늦었군.’
구급차보다 늦은 것을 보며 삼덕은 차에서 내린 교통경찰에게로 다가갔다.
“누구십니까?”
“제가 사고를 낸 운전자입니다.”
“그러십니까? 다른 사고 현장이 있어서 조금 늦었습니다. 사고를 낸 당사자라고 하시니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설명해 주시죠.”
표시가 되어 있는 유성이 쓰러진 자리와 횡단보도 위에 멈춰 선 차량을 눈으로 살핀 교통경찰이 말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경찰서로 가서 진술을 다시 해야 하지만 삼덕은 교통경찰의 요구에 사고가 난 경위를 설명했다.
경찰들은 삼덕의 설명에 따라 트럭 밑에 분필로 차가 진행한 방향을 표시하고 사진을 찍은 후, 주변에 있던 목격자들로부터 진술을 확보했다.
“대충 현장 조사는 끝난 것 같습니다. 트럭을 몰고 경찰서로 가십시오.”
현장 조사가 끝난 교통경찰은 삼덕에게 차량을 몰고 경찰서로 가라고 말하고는 경찰차를 타고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
‘경찰서에 갔다가 병원에 가려면 조금 늦겠구나. 그나저나 그 학생은 괜찮겠지? 꼭 괜찮아야 될 텐데…….’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병원에 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유성의 상태가 궁금했던 삼덕으로서는 빨리 병원에 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마음이 불편했다.
부우웅
운전자를 실은 덤프트럭이 사고 현장을 벗어나 전방으로 진행하더니 이내 유턴을 하고는 곧장 경찰서를 향해 달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고가 난 후, 운전을 기피하겠지만 삼덕이 모는 덤프트럭은 별다른 동요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5장 그리운 가족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데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면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다.
특히 나같이 지지리 복도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물론 기회가 생겼다고 엄청 기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기분은 좋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인해 가끔 겁이 난다.
내게 닥친 지금의 이 상황이 거짓말 같은 환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을 자다가 문득문득 깨어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을 못할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어둠과 마주하면 전신이 떨린다.
어둠이 사라지고 나면 혹시나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서다.
그러다 지쳐 잠이 든 날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두려울 때도 있다.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매일매일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내가 지금의 현실에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니 말이다.
어째서 내가 과거로 회귀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확인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밝혀내 보고 싶다.

*
*
*

소리없이 울음을 삼키며 명현은 침상에 누워 있는 유성을 보고 있었다.
“흐흐흐흑, 유성아!”
자신을 구하고 덤프트럭에 치인 유성은 벌써 사흘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감 때문인지 명현은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흐흑! 미안해!”
자신이 그렇게 급히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유성의 손을 잡고 있는 명현의 미안함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울고 있는 명현의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고를 낸 당사자인 삼덕이었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난 후부터 매일 병원에 들러 유성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삼덕이었다.
오늘도 병실에 들렀다가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는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명현을 위로했다.
“명현아, 유성이는 괜찮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으니 너무 자책하지 마라. 이러면 이 아저씨가 더 미안하잖니.”
“흑흑! 그렇지만 아저씨, 유성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 때문인걸요,”
삼덕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명현은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는지 이번 사고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아니다. 담배를 피느라 앞을 보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크지.”
삼덕의 말이 위로가 됐는지 명현이 울음을 그쳤다.
“그나저나 유성이 어머님은 어디 가신 거냐?”
유성의 어머니가 사고가 난 날부터 병원에 함께 있으면서 아들을 돌봐 온 것을 알기에 삼덕이 물었다.
“제가 오니까 옷을 좀 갈아입고 오겠다고 하시며 집으로 가셨어요.”
“그렇구나.”
“그럼, 유성이 아버님은?”
“저랑 같이 계시다가 방금 전에 나가셨어요. 아마 담배를 피러 가셨을 거예요.”
“그랬구나.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냐? 유성이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말씀은 없으셨냐?”
자신이 없는 동안 의사의 소견을 나왔을 수도 있기에 삼덕이 물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 깨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곧바로 깨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머리 쪽에 충격을 받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다시 정밀검사를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흐흐흑, 아저씨! 이대로 유성이가 깨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요?”
식물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든 명현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이 여린 녀석이다.’
삼덕은 명현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명현아, 염려하지 마라. 유성이는 곧 깨어날 거다. 네가 이렇게 맥이 빠져 있으면 어떻게 하냐? 너무 걱정하지 마라. 친구인 네가 힘을 내야 유성이도 힘을 내지.”
혹시나 뇌에 상처를 입었다면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어린 명현을 위로하기 위해 좋은 말을 다시 한 번 하면서 삼덕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흑! 예, 아저씨. 그렇게 할게요.”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한 삼덕이었다.
‘오셨군.’
명현을 안정시키는 가운데 삼덕은 병실로 들어서는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왔는가?”
삼덕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들의 사고로 인해 근심이 많은 듯 굳은 신색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진상혁의 모습이 보였다.
“선배님, 담배 피우고 오셨습니까?”
사고가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상혁은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의 한참 선배였기에 삼덕은 깍듯이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서 말이야.”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하나뿐인 외아들의 사고에 상혁도 근심이 많아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제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니야, 명현이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우리 유성이가 운이 없었던 거지. 아직 깨어나지 못해서 그럴 뿐이지 아무 일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사고를 낸 당사자인데도 상혁은 삼덕에 대한 원망을 크게 하지 않았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다른 사람과는 달리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이가 바로 삼덕이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는 삼덕의 노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명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쌍방이 실수를 해 벌어진 일이었다.
원망해 봐야 아들이 깨어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삼덕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살림살이도 어려운 선배님인데 내 실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어서 깨어나라, 유성아.’
언제나 담담하게 대하는 상혁으로 인해 삼덕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있지만 차도가 없는 유성을 보면서 어서 깨어나기만을 마음속으로 빌 뿐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바라보고 있던 삼덕은 인기척을 느꼈다.
‘여전히 날 못마땅하게 보시는구나.’
집에 갔다가 돌아와 병실로 들어서는 유미화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는 미화의 안색이 많이 굳어 있었다.
“집에 다녀오셨습니까?”
“오셨어요.”
병실로 들어오던 미화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삼덕의 인사를 대충 받았다.
어쨌거나 눈앞에 보이는 이는 사랑하는 아들을 차로 친 당사자였다.
“예, 형수님. 저녁 시간인데 식사는 하셨습니까?”
“집에서 먹고 왔어요.”
밝게 말하는 삼덕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미화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더라도 아들을 다치게 한 사람이니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선배님은 식사하셨습니까?”
“집사람과 교대를 하기로 해서 아직은 못했네.”
“그럼, 형수님. 선배님께서 식사를 아직 못하셨다고 하니 제가 모시고 나가서 저녁을 먹고 오겠습니다. 명현이도요.”
상혁과는 달리 아직도 원망의 빛을 지우지 않는 미화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삼덕은 상혁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말했다.
“아니야. 난 됐네. 자네도 이만 돌아가게. 그리고 일이 바쁠 텐데 다음부터 매일 오지 않아도 되니 가끔씩만 들르게.”
삼덕을 안 좋게 생각하는 미화의 기색을 알아차린 상혁이 나섰다.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다 제 잘못인걸요. 그것보다는 명현이도 저녁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플 테니 어서 가시죠. 일이 바빠서 저도 점심을 굶었더니 배가 고픕니다. 선배님.”
도리를 다하겠다는 삼덕의 태도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성품으로 봐서는 자신이 말린다고 해도 듣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상혁은 삼덕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지, 나가세.”
“명현이 너도 일어나라. 밥 먹고 집에 가야지.”
상혁이 병실로 나가자 삼덕은 명현을 일으켜 세웠다.
“아저씨, 저는 그냥 유성이나 보고 있을게요.”
명현이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명현아, 그러지 말고 저녁 먹고 어서 집에 가 봐라. 어머니께서 걱정하시겠다.”
아들의 단짝 친구인 명현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미화가 나섰다.
“하지만 유성이가…….”
“그래, 네 마음 다 안다. 하지만 유성이도 네가 힘을 내는 쪽을 좋아할 거야. 그러니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오너라.”
“예, 어머니.”
미화의 권유에 명현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가자.”
삼덕이 명현의 손을 잡고 병실 바깥으로 이끌었다.
“당신도 어서 다녀오세요.”
“알았소.”
아내의 말에 상혁도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미화는 아들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휴우~”
군대 후배라는 이유 때문인지 원망조차 하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웠지만 성정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미화를 한숨을 내쉬었다.
“속도 없는 양반이지. 아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인데…….”
병원비도 다 부담하고 꼬박꼬박 찾아와 아들의 상태를 염려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고를 낸 당사자였다.
아무리 쌍방에 책임이 있다고는 하지만 원망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저 덤덤하게 대하는 남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미화로서는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유성아, 어서 일어나라.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응! 어서 일어나야지, 아들!”
남편과 삼덕을 잠시 원망하던 미화는 깨어나지 않고 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