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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교통사고 직후 밀려오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은 후, 간신히 의식을 차린 유성은 캄캄한 세상과 마주하자 죽음을 떠올렸다.
‘크크큭, 드디어 죽은 건가?’
한 많은 인생을 살아 왔기에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힘들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었기에 그다지 미련이 남지 않은 인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과 마주하고 나니 마음이 심란했다. 뭔가 미진한 것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새로운 윤회의 삶을 산다고 하던데…… 설마, 이전의 기억을 다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죽었는 데도 불구하고 지나온 과거가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 유성은 두려웠다.
전생의 기억, 지우고 싶은 그 삶을 이대로 지고 갈까 겁이 났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태어난다고 하니 믿어 보자.’
죽음 이후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유성은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기다렸지만 아무런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사도, 불가에서 말하는 저승사자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캄캄한 어둠뿐!
‘그런데 조금 이상하구나. 으음 이후의 삶이 이것뿐이라는 건가? 정말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의 삶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홀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성은 문득 무서워졌다.
‘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해하던 유성은 희미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잠시 후에 또다시 빛이 느껴졌다.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희미한 명암이 빛의 근원이었다. 빛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곳은 암흑의 공간이 아니었다.
‘으음, 이건! 설마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난 건가?’
빛의 흔적이 눈이 멀고 난 후에 간혹 느껴지던 현상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죽음 이후에 간다는 명계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의식이 돌아왔고,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떠 보자.’
무기력한 것이 힘이 돌지 않았지만 유성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을 감고 있을 때보다 빛의 흔적을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눈앞의 사물은 보이지 않았다.
17살 때 덤프트럭에 치여 시신경을 심하게 다친 탓에 실명한 이후로 볼 수 없게 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크크크, 진짜 살았구나.’
희미하게 느껴지는 명암의 흔적들은 누군가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난 것이다.
‘병원에 와 있는 건가? 그런데 별로 아프지가 않구나. 어떻게 된 일이지?’
상당히 강하게 차가 들이받은 큰 사고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으음, 어쩌면 사고가 나고 전처럼 시간이 꽤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거의 두 달 정도 지나서 깨어났지.’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하고 거의 두 달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이 생각이 났다.
그때도 힘이 없기는 했지만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의식을 잃어 있는 동안 치료가 거의 끝나 있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 거의 아픔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정도의 몸 상태라면 전과 마찬가지로 사고를 당하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유성은 손을 움직여 봤다.
움직이기는커녕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미동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신경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큭! 몸을 움직일 수 없다니…….’
꼼짝도 못하는 몸인 것을 보니, 전에 일어났던 사고로 눈이 실명한 것처럼 이번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또 다른 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크크크, 또 어디가 병신이 된 거로구나. 장님에 이어 이번에는 지체장애라니…… 정말이지, 내 인생도 진짜 지랄같구나.’
세상의 빛을 잃을 때도 교통사고더니, 이제 다 늙어서도 교통사고를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려 가슴이 먹먹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전보다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에 이어 몸까지 장애가 생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크크큭! 운이 없어도 정말 지지리 없구나. 차라리 죽어 버릴 것이지…….’
이중 장애로 더욱 곤란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유성아!”
낙담한 유성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한 줄기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아니지. 돌아가신 지가 언제인데…….’
그토록 듣고 싶었고, 그리워하던 목소리!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음성이었다.
낙담한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조금 힘이 나는 듯했지만 유성은 이내 실망감에 젖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어서 일어나라, 유성아.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응! 어서 일어나야지, 아들!”
주변의 소음이 조금씩 커지며 방금 전 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크크, 귀까지 다쳤나?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이명인지 아니면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환청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이제 죽을 때가 됐나 보다. 어머니는 그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기억이 뇌리에 떠올랐다. 중학교 졸업식 날 일어난 사고로 인해 화병이 생기신 아버지는 유성이 스무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5년을 더 사시다가 암이 발병해 죽을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다니, 환청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후후후, 꿈에서나마 어머니를 봤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는데 환청이지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나마 기분이 좋구나.’
환청이지만 좋았다.
장애를 가지게 됐지만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함~!’
어머니의 모습을 잠시 생각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으음, 왜 이렇게 졸음이 오는 건지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아프지 않으니 일단 한숨 자 둬야겠다. 꿈에서라도 어머니를 봤으면 좋겠구나.’
졸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에 유성은 잠을 청했다.
유성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꿈에서 보기를 기원하며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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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꽤 시끄럽군.’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유성은 잠에서 깼다. 주변이 무척이나 소란스러운 탓이었다.
타의에 의해 잠에서 깬 유성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달게 잔 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피곤이 많이 풀린 것 같은데…….’
피곤에 절어 살아 항상 멍했던 머리가 많이 맑아져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 놓고 편하게 푹 잔 덕분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얼마나 잔 거지?’
꽤나 오래 잤다고 생각한 유성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궁금했다.
‘간호사가 있었으면 좋겠군.’
다른 사람에게 오늘이 며칠인지 물어보면 좋겠지만 6인실 병동 같은 데서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는 그렇기에 유성은 간호사를 부르기로 했다.
“유성아!”
막 간호사를 부르려는 찰나, 또다시 환청이 들려왔다.
‘설마, 잘못 들은 거겠지. 그 녀석이 미국으로 떠난 후에 안 돌아온 지가 언제인데…….’
오랜 친구인 명현이의 앳된 목소리다.
자신 때문에 정신병까지 걸린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단짝 친구가 지금 자신 곁에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에게 사고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식은 들었다.
우울증 때문에 상태가 점점 악화가 되어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했다.
그 이후에 한국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는 친구였다.
‘크크크, 설마했는데 몸에 이어 귀까지 병신이 된 모양이군. 그 녀석 목소리까지 들리다니 말이야. 어서 간호사나 불러야겠다.’
그 목소리가 지금 들려올 리가 없었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다시 듣고 싶었던 친구의 목소리였기에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여긴 유성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유성아! 나야 명현이!”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 계속 이상한 소리만 들리는군. 명현이 목소리가 들리다니, 이제 정말 내가 갈 때가 됐는가 보구나.’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어 친구의 목소리까지 듣게 된 탓에 유성은 자신이 노망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유성아! 어서 일어나, 인마!”
생각을 접으려는 유성은 악을 쓰듯 고함치는 커다란 명현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거참, 귀 아파 죽겠네.’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유성은 귀가 아파왔다.
“인마, 일어나.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명현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하게 들렸다. 악을 쓰는 큰 소리라 이번에도 역시 귀가 아팠다.
‘이거 참! 리얼하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꿈인지 생시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오랜만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이게 꿈인 것은 아닐까? 그러면 그 녀석 얼굴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혹시 꿈이라면 친구인 명현이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그저 자는 것뿐이라는데 왜 일어나지 않는 거야, 인마.”
거듭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성은 살며시 눈을 떴다.
오랜 세월 맹인으로 살아왔지만 명암을 느끼려 노력했기에 자연스럽게 떠진 눈이었다.
‘며, 명현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어머니까지 있다.’
친구인 명현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크크크, 절대로 깨지 마라.’
자신이 보고 있는 것들이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유성은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