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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아, 깨어난 거니? 흐흑!”
사고로 인해 의식을 잃고 있던 아들이 눈을 뜨자 미화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 어머니.”
어머니의 말에 유성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그래그래. 흐흐흑! 내 새끼! 무사히 깨어날 줄 알았다.”
눈물을 지으며 포근히 안아 주는 어머니의 품이 참으로 따뜻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치 실체처럼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어머니의 눈물과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유성은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와 명현이도 볼 수 있고, 더군다나 이런 감촉이라니…… 내가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이긴 한 건가?’
예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였다.
명현이도 중학교 시절의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인가 했는데 아무리 봐도 꿈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은 전부 실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꿈이 아니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크크, 환갑이 내일모레인데 죽을 때가 됐나? 내가 완전히 미쳤나 보구나.’
환상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니 사고로 인해 정신을 놓아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사람은 절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비록 허상이지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 거기에 빠져 산다고 들었었다.
유성은 혹여 자신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이번에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어머니의 흐느끼는 어깨 너머로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아버지…….’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속내가 깊었던 그리운 아버지가 눈앞에 있었다.
‘제기랄, 이런 거라면 미쳐도 좋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친구도 있는데 미쳤다는 것이 대수냐?’
이렇게 미치는 것이라면 한번 미쳐 볼 만했다.
환상이지만 이렇게 그리운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유성은 마냥 좋았다.
“선배님!”
일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삼덕이 상혁을 불렀다.
병실 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급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삼덕이 상혁부터 찾은 것이다.
“이제 왔나?”
“예.”
“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혹시 유성이가…….”
유성을 껴안고 울고 있는 미화의 모습을 본 삼덕은 표정이 굳어지면 상혁에게 물었다.
“걱정 말게. 유성이가 지금 깨어나서 저러는 것뿐이니.”
“아! 나는 또…….”
혹시나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였다가 삼덕은 상혁에 말에 한시름 놓은 삼덕은 연이어 질문을 해 댔다.
“놀란 모양이군. 자네가 이렇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니…… 쯔쯔! 내가 반드시 깨어난다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병실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려서요. 그런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어디 이상은 없고요?”
“아직은 모르겠네. 이제야 겨우 눈을 뜬 것뿐이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선배님, 의사 선생님께는 연락을 하셨습니까?”
“아차! 내가 정신이 없었네. 의사 선생님께서 깨어나면 곧바로 부르라고 하셨는데.”
아들이 깨어난 것에 의사의 당부를 잊고 있었던 상혁이다.
자신도 정신이 없었다는 것을 후배에게 들킨 것이 무안한지 상혁은 곧바로 병실을 나서 의사를 부르러 갔다.
‘후후후, 그나저나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배님의 위명도 다시 생각해야겠군. 역시,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건가?’
허겁지겁 병실을 나서는 상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삼덕의 미소가 저절로 생겨났다.
자신이 들은 대로라면 상혁의 허둥대는 모습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배인 상혁은 대북 침투를 주로 담당하는 특수부대 치우 출신이다.
치우에 근무할 당시 19번에 걸쳐 대북 침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특급 전사다.
북한에 다녀오면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환을 한 상혁이었다.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은 존재가 바로 상혁이기에 지금의 모습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상혁의 허둥대는 모습의 바라보다 삼덕은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자식을 품에서 놓은 미화의 모습 아래로 유성의 눈이 보였다.
‘후후후, 그 녀석! 정말 총기가 넘치는 눈이구나. 저런 아이를 내 실수로 죽일 뻔했으니…… 깨어나서 천만다행이다.’
금방 깨어난 것답지 않게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이 여간 총기가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로 큰일이 날 뻔했던 아이가 다행스럽게도 무사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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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낯선 사나이.
얼굴은 처음 보지만 아버지와 대화하는 목소리가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에 긴가민가했지만 이내 기억이 났다. 아버지와의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바로 삼덕 아저씨였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이제야 기억해 내다니, 나도 한심한 놈이다.
아버지의 군대 후배이자 사고를 낸 당사자인 탓에 장님이 된 자신을 위해 물심양면 애를 쓰던 삼덕 아저씨를 잊고 있었다니, 할 말이 없다.
허참!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 삼덕 아저씨까지 나타나다니, 꿈이지만 정말 요상한 꿈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이 나타나다니 말이다.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사실 같았다. 꿈에서 보는 환상이라고는 하기에는 현실감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삼덕 아저씨만 빼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장님이 되기 전에 보았던 모습들이어서 그런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 봐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 하나 사실인 것이 있다.
꿈속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내 정신이 명료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꿈을 꾸고 있거나 미쳐서 환상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소한 느낌 하나하나가 디테일하게 다가왔다.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의 느낌과 따뜻한 품, 친구의 손길이 전해 주는 온기가 너무 사실적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게임기 속에 들어와 있었던 건가?
가끔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에 접속하면 너무 현실 같아서 언제나 놀라고는 했는데, 지금 내가 보는 것도 그런가?
후후후, 그럴 리가 없다. 접속비가 얼만데…….
현실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사고가 나기 전에 장장 보름 동안이나 시뮬레이션을 했었다.
배우고 싶었던 가장 마지막 과정에 대한 마무리였기에 조금 무리를 했다.
그것 때문에 게임에는 접속을 하지도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도움도 되지 않는 게임에 시간을 투자할 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에 접속하면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하루 살기도 빠듯한 내가 죽으려고 작정을 하지 않는 한 그럴 리 없었다.
내 형편에 게임은 목줄을 내놓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설사 캡슐 안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설정할 턱도 없었다.
내게 있어 가장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리는 만무했다.
무엇보다 내 개인적인 기억을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말이 되지를 않는다.
의식 속을 샅샅이 뒤져 그대로 베껴 내지 않는 한 이렇게까지 현실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은 같은 것은 아니다.
모텔에서 나오고 얼마 후 분명히 사고가 났다.
사고로 집에 가지도 못했으니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사고가 날 당시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일을 마치고 하천으로 가려는 생각에 도로를 건너다가 사고를 당했다. 지금의 상황이 촉발된 원인이 그 당시에 있었을 것은 확실하다.
말이 되지는 않지만 만약 지금 이 상황이 진짜 현실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인지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면 소설에나 나오는 과거로의 회귀가 나에게 일어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6장 믿어지지 않는 현실



유성은 교통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다음부터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게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내 지웠다.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진짜 현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는 유성의 눈에 누군가가 보였다.
‘아버지가 의사 선생님을 데리고 오신 건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의사를 데리러 간다고 하셨던 아버지와 흰색의 가운을 입은 이가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행입니다. 유성 군이 정말 깨어났군요.”
깨어 있는 자신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 의사가 빠르게 다가왔다.
“예, 선생님. 우리 유성이가 깨어났어요. 흐흐흑!”
“어머니, 진정하십시오. 그리고 죄송하지만 검사를 한 번 해 봐야겠습니다. 잠시 비켜 주시겠습니까?”
자식 곁에 붙어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미화에게 의사가 말했다.
“흑흑, 죄송합니다. 선생님.”
눈물을 훔치며 미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유성에게 다가간 의사는 상의 주머니에 꽂힌 펜라이트를 꺼내 들어 동공을 비추며 상태를 확인했다.
‘김상철! 그럼, 저분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의사의 가운을 보며 유성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가운에 푸른색 자수로 새겨져 있는 저 이름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실명을 한 것에 안타까워하며 자신을 돌봐 주던 의사 선생님의 이름과 같았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정말, 내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건가?’
느껴지는 것들은 현실감이 넘쳤지만 상황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후후, 그렇지. 장님이었던 내가 이렇게 잘 보이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꿈인 건가?’
잠시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있다는 가정을 해 보았지만 유성은 이내 가능성을 접었다.
교통사고로 장님이 됐는데 이제는 보이기까지 하니 현실일 리가 없었다.
장님인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성은 내년이면 환갑인 자신이 사고가 났을 때인 17살 때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장님이 된 후 평생을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순간으로 돌아왔다는 상황이 그저 꿈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