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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상은 없군. 유성아, 그래 아픈 데는 없니?”
복잡한 심정인 유성을 향해 상철이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크크, 꿈인데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
유성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니? 들리면 대답 좀 해 줄래? 어디가 아픈지 말이야.”
상철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그래, 어차피 꿈이라면 그냥 즐기자. 이런 꿈도 나쁘지 않으니까 말이야.’
유성은 꿈이지만 장단을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몸이 잘 안 움직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려던 유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팔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어디가 아프니?”
대답을 하려다가 움직임을 멈춘 유성을 향해 상철이 물었다.
“아, 아니요. 그저 뻐근해서요.”
“휴우! 난 또. 그나저나 다행이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깨어나지 않아서 정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말이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상철의 말에 유성은 무척이나 놀랐다. 꿈이지만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저, 선생님, 정말 제가 이상은 없는 건가요? 실명하는 것은 아니지요?”
“후후후, 실명이라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망막은 다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직 몇 가지 검사를 더 해 봐야 알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다. 그동안 깨어나지 않을까 봐서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는데 네가 많이 위로해 드리도록 해라.”
상철은 미소를 지으며 유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
유성의 대답을 들은 상철은 몸을 돌려 상혁과 미화를 바라보았다.
“어머님, 엑스레이를 찍어 보고 두어 가지 검사를 더 해 봐야 알겠지만, 제 소견으로는 이상이 없습니다. 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으면 내일 퇴원 수속을 밟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아직도 아들이 깨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지 미화가 반문하듯 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성이는 이제 괜찮습니다. 정신을 차렸고, 검사 결과를 보고 정확한 진단을 해 봐야겠지만 말씀드렸듯이 제 소견으로는 이상이 없습니다.”
“흐흐흐흑!”
괜찮다고 확언하는 상철의 말에 미화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울지 마십시오.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어 보지요. 유성아, 혹시 일어날 수 있겠니?”
“예, 선생님.”
잠이 올 때와는 달리 자신의 의지대로 힘이 들어가고 있었기에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일어나 봐라.”
상철의 말에 유성은 자연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가 약간 어지럽고 조금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유성아!”
옆에 있던 명현이 자연스럽게 유성을 부축했다.
“고맙다.”
“고맙기는……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맙다.”
“후후후, 녀석!”
눈시울이 붉어진 명현에게 미소를 보여준 유성은 침대에서 발을 내려 신발을 찾았다.
무척이나 작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키의 짝퉁인 나이스. 어머니가 장에 가서 사 오신 사고 당시 신었던 운동화였다.
‘이 느낌은!’
운동화를 잘못 만든 건지 발등 부분에 올이 있어 신을 때 마다 발등이 쓸리던 느낌이 새삼스러웠다.
운동화를 신을 때마다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어머니에게는 말씀드리지 못하고 그냥 신었던 기억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꿈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어렸을 때로 돌아온 건가?’
사소한 부분이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감에 유성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냥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고 온 다음에 생각해 보자.’
현실이라는 가정하에 일단 몸 상태가 어떤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
“어!”
겨우 일어서기는 했지만 힘이 별로 없어서인지 몸이 비틀거렸다.
“조심해라. 유성아, 일단 나한테 기대.”
“그래.”
유성은 명현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를 벗어났다.
“여보, 당신은 여기 있어. 내가 다녀올 테니까 말이야.”
“알았어요.”
너무 울어서 그런지 기운이 빠진 미화는 남편의 뜻대로 병실에 있기로 했다.
“자 따라와라. 명현인 잘 부축하고.”
“예, 선생님.”
유성은 아버지와 함께 명현의 부축을 받으며 상철을 따라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유성아, 네가 깨어나지 않는 줄 알고 정말 걱정 많이 했다.”
복도를 걸으며 명현이 말을 건넸다.
“그랬구나. 멀쩡히 깨어났으니 이제 걱정하지 마라. 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아는 터라 유성은 명현을 위로했다.
“흐흐흑.”
“녀석, 사내자식이 울기는!”
“흑, 고마워.”
눈물을 훔치며 명현이 미소를 보였다. 이제야 마음의 짐을 벗은 듯했다.
“괜찮아, 인마.”
유성은 울먹이는 명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자신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었던 친구에게 꼭 해 주고 싶었던 행동이었다.
상철을 따라 방사선실로 간 유성은 아버지와 명현의 도움을 받아 엑스레이를 찍은 후 검사실로 이동을 했다.
검사실로 이동해 뇌파검사와 심전도 검사까지 받은 다음 병실로 돌아왔다.
‘피곤하군.’
병실로 들어서자 짧은 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이 몰려왔다.
“검사는 잘 받았니?”
“예, 어머니. 전 피곤해서 좀 자야겠어요.”
“그래, 어서 쉬어라.”
유성이 신발을 벗으며 침대 위에 올라앉자 미화가 자리를 봐줬다.
“어머니, 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그래.”
“그럼 전 조금만 잘게요.”
애써 잠을 쫓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자, 자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혹시나 지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지만 잠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유성은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곤한 잠이 빠져들었다.

*
*
*

유성이 잠이 들자 미화는 삼덕과 명현을 돌려보냈다.
매일 병문안을 와 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이제는 진짜 가족끼리만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인사를 한 후 병실을 나서자 미화는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들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들,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잘 자.’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 버린 탓에 혹시나 다시 깨어나지 못할까 봐 미화가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상철의 말대로 아들이 무사하리라는 것을 믿으며 아무 일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기원을 했다.
상혁 또한 아내 옆에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자 상철이 병실로 찾아왔다.
“어머님!”
조바심이 난 탓인지 상철이 오자 미화가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결과는 나왔나요?”
“우선은 유성이 상태를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상철은 미화의 양해를 구하고 유성의 몸을 다시 한 번 살폈다.
“호, 혹시 아픈 데가 있는 건가요?”
“하하하,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지금은 진짜 잠이 든 것이니까요. 정신을 차리지 못해 뇌출혈을 의심했는데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안심하셔도 됩니다.”
“휴우!”
상철의 설명에 안심이 되는지 미화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후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 퇴원을 하셨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한 번 검사를 받으러 오십시오.”
“후유증이라니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저 예방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의 소견으로는 아드님은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후유증이란 말에 놀란 미화는 이어지는 설명에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 또, 그나저나 고맙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이 깨어난 것도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수시로 찾아와 유성을 살피던 상철이었기에 미화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닙니다. 제가 뭘 한 것이 있나요. 어머님께서 매일 기도하셔서 그런 것이겠지요. 자, 저는 회진 시간이 돼서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상철이 병실을 나서려 하자 상혁과 미화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응급실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성심껏 유성을 상세를 보살펴 온 상철의 노고를 알기에 상혁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감사해했다.
‘으음, 시끄럽구나.’
약간의 소란스러움으로 인해 잠이 깬 유성의 눈에 고맙다며 상철을 향해 연신 인사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도 상황도 그렇고, 지금도 저러시는 것을 보면 분명히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이 모두 등장을 했다.
지금은 부모님과 의사인 상철만 있지만 엑스레이를 찍기 전까지만 해도 친구인 명현과 장님이 된 후 자신을 이끌어 준 삼덕 아저씨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괜찮아졌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에게 연신 감사를 드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였다.
진짜로 자신이 다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구나.’
점점 더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라는 확신이 들기는 했지만 유성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했다.
그토록 고생을 했던 생애와 지금의 상황이 겹치며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에 답답함은 더욱 가시지 않았다.
‘지금이 현실이라면 설마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 꿈이었던 건가? 그건 아닐 텐데…… 그렇게 생생한 인생을 꿈으로 꾼다는 것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두 달여간 의식을 잃고 난 후 깨어났다.
그 이후 환갑 가까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꿈일 리가 없었다.
정말이지 고통스럽게 살았던 인생이었다. 실명이 된 후에 닥쳐온 불행들이 너무도 생생했다. 아직도 그 시절의 아픔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환상이 아닐 것이니 진지하게 알아봐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이다.’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적응하기 힘들지만 최대한 냉정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선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안마 일을 끝내고 난 뒤 사고가 나서 허공을 날고 있던 것까지 기억을 해 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의식을 잃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뭔가 있을 것이다.’
생각을 거듭하며 사고 당시의 일어났던 상황들을 하나하나 따져 봤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을 아무리 되돌려 봐도 특이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미치겠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 현재로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으니 더 이상 알아볼 방법이 없구나.’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 없다면 현재 상태에서 찾아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인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라 유성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