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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번쩍!
귀기가 넘실거리는 섬뜩한 도깨비불 두 개가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섬뜩하다 못해 푸른 두 줄기 도깨비불이 어둠으로 잠긴 독방 안을 벗어났다.
눈에서 뿜어진 것으로 보이는 안광이 지나칠 때마다 일정 구간으로 복도를 막고 있는 쇠창살들이 녹아내렸다.
이제 거칠 것이 없어진 자는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도 끝에 당도하자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더니, 거대한 철문을 향해 흘러갔다.
치지지지직!
검은 기운이 철문에 접근하자 노란 불똥이 튀었다.
철문에 새겨진 결계를 위한 주법이 검은 기운에 반발해 생기는 현상이었다.
철문에 새겨진 결계의 힘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결계는 검은 기운에 얼마 맞서지 못하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검은 기운은 결계를 무력화시킨 후 철문에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철문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푸스스스!
분해가 되어 떨어지는 녹슨 철가루들이 바닥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운을 차단시켜 회복은커녕 생사조차 장담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자신을 가둔 결계였다.
혹시나 다른 결계가 있나 확인을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막고 있던 결계도 기운이 다해 이제는 완전히 흩어졌나 보군.”
결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불타는 눈동자에서는 득의의 빛이 흘렀다.
“크크크!”
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막아 냈던 결계였다.
워낙 강력해 죽음을 각오했었던 터라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소리에는 짙은 한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쉽게 해제될 결계가 아니었는데, 이상하군.”
지금의 상황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갇혀 있는 동안 결계를 해제하기 위해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모두 동원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을 정도로 견고한 결계였는데 너무 쉽게 풀려 버린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불타는 두 눈동자의 주인공은 곧바로 삭아 버린 철문을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자 다시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부서져라!”
차가운 음성과 함께 검은 기운이 뿌려졌다.
푸스스스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검은 기운으로 인해 철문에 새겨진 결계는 금방 힘을 잃었고, 이내 부서져 내렸다.
“으음!”
어둠뿐인 공간에 달빛이 밀려 들어오자 기이한 검은 기운을 부리는 존재가 신음을 흘렸다.
밖으로 나서자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도깨비불처럼 안광을 내뿜는 주인공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다 낡아 빠진 수의를 입은 중년의 사나이였다.
“흐―으읍!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뿜는 사나이의 눈가에 희열의 빛이 스쳤다.
“크크크크, 상쾌하군.”
각종 금제가 가해진 후 독방에 갇힌 시간이 벌써 50여 년이 넘었다.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몸에 가해진 금제를 풀어냈다.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힘을 잃는 것을 대가로 간신히 금제를 풀어내기는 했지만 탈출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갇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강력한 결계로 인해 탈출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계가 풀려 버린 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으로 나오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응?”
축축했던 독방과는 달리 서늘하면서 상쾌한 산 정상의 공기를 길게 호흡하던 사나이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크크크크, 눈치가 빠른 놈들이군. 벌써 알아차리다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자들은 모두 두 명이었다.
둘 다 상당한 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을 잡아 가두었던 놈들과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나오자마자 복수를 할 수 있게 되다니…… 크크크, 운이 좋은 건가?”
50여 년간 복수만 꿈꾸며 살아온 사나이였다.
밖으로 나오며 자신을 가둔 자들을 어떻게 찾을까 고심하고 있었는데 제 발로 찾아와 주다니, 고마워 죽을 지경이었다.
번쩍!
스스스…….
사나이의 안광이 다시 불을 토했고, 그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었다.


7장 집으로 돌아오다



나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억지로 뽑아내 사용하게 되면 상대의 신체를 빠르게 활성화시켜 거의 10여 년은 젊어질 수 있게 만드는 기운이다.
크크크, 악마 같은 년에게는 이용당한 것도 내가 가진 기운의 효능 때문이었다.
돈은 많지만 늙어서 힘을 쓰지 못하는 자들에게 특효약이나 다름없는 기운이니 그년에게 내가 노다지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년 덕분에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억지로 뽑아내 쓰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은 현저히 감소가 되었다. 한정된 기운을 남용한 탓이었다.
천운으로 간신히 악마의 소굴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내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능력은 이미 어둠의 세계에서는 소문이 날 대로 난 후였고, 그것 때문에 조폭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완전히 메말라 버린 듯 그년과 헤어진 후 간당간당하던 능력이 이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핑계를 대는 줄 알고 두들겨 패고, 약까지 사용했는데도 전처럼 능력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빈 쭉정이라는 것을 알려지게 된 후에는 조폭들도 나에게서 손을 뗐다.
그래도 운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조폭 놈들의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능력이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안마를 하면서 약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다른 안마사보다 조금 더 전신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차 조폭들의 관심도 멀어져 갔고, 내가 가진 특이 능력에 때문에 안마를 받고자 하는 이도 사라져 갔다.
나는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 갔고, 덕분에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그저 안마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맹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
*

파파팟!
검은색으로 온몸을 두른 두 사람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평지를 달리듯 오른 두 사람은 이내 정적만이 감도는 교도소 근처에 당도할 수 있었다.
파파팟!
두 사람은 날듯이 철조망을 넘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조금 전에 사나이가 꺼지듯 사라진 바로 그 자리였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이처럼 빠른 시간에 완전히 존재를 감추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이상을 느끼고 곧바로 달려오는 길이었던 두 사람의 눈에는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존재감을 감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금수환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형, 결계를 빠져나온 마인이 술법을 쓰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다.]
사촌 동생인 도환의 전음에 수환 또한 전음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쉬운 상대는 아닌 것 같으니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다.]
동생의 말대로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세상을 어지럽힌 마인을 가두어 두는 금마뢰 중 한 곳인 남한산성의 결계가 뚫렸다.
금제를 가하고 가두어 둔 자가 스스로 뚫고 나올 정도라면 쉽게 볼 상대가 아니기에 수환은 강수를 두기로 했다.
[도환아, 쌍영을 펼쳐야겠다. 준비해라.]
[예, 형.]
스스스스…….
두 사람의 신형이 이내 꺼지듯 장내에서 사라졌다.
사마 계열의 술법을 펼쳐 마인이 몸을 숨겼다고 확신하고 두 사람 또한 술법을 펼친 것이다.
은신의 법술로 허공중에 숨어든 수환과 도환은 금제를 뚫고 나온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주변을 온통 마기로 물들인 존재를 찾고 있는 수환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놈을 제압하고 원인을 알아봐야 한다. 금마뢰가 모두 뚫린다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촌 동생인 도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난 100여 년간 한 번도 없던 일이 최근 수시로 발생하고 있었다.
마인들을 가둔 이래 금마뢰가 뚫린 일이 한 번도 없었건만, 최근 한두 곳도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금마뢰가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마인들이 강제로 뚫고 나온 것이 아니라 금제가 저절로 해제되거나 결계가 풀리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과 숙부들이 모두 나서야 할 정도로 비상이 걸렸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결코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판단에 수환은 이번 일을 끝낸 후 반드시 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약해지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스스로 금제와 결계를 뚫고 나온 존재는 처음인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해제된 결계를 뚫고 나온 존재들은 하나같이 힘을 잃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소멸시킨 마인들 전부가 금마뢰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폐인이 되다시피 한 상태라 처리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이번에 금마뢰를 나온 자는 온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수환은 가슴이 무거웠다.
한반도를 수호하는 오천장의 가문에 속해 있는 자신이지만 지금까지 처리했던 마인과는 달리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서툰 도환이가 잘해 주어야 할 텐데…… 이놈! 드디어 찾았다.’
아직 쌍영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는 사촌 동생을 염려하던 수환은 암흑의 기운으로 가려진 존재를 찾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금마뢰를 뚫고 나온 존재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있었다.
쐐애액!
강렬한 경기가 수환을 향해 덮쳐 왔다.
퍼퍼퍼퍽!
암반으로 된 땅이 파여 나갔다.
‘잘못했으면 골로 갈 뻔했다.’
마인의 존재를 느낀 순간 곧바로 신형을 옮기지 않았다면 잘 다져진 어육이 될 수도 있었기에 수환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도환아, 지금이다.]
음이 양이 되고, 실이 허가 되는 것이 쌍영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실을 보여 마인을 유인했다면 이제는 사촌 동생인 도환이 실이 될 차례였다.
파파파파팡!
허공에서 강렬한 파열음이 터지며 거무스레한 그림자가 철조망 쪽으로 떨어졌다.
파팟!
허와 실이 바뀌었다.
수환의 신형이 어둠으로 숨고, 도환의 신형이 양지로 나왔다. 둘 다 모습을 감춘 상태였지만 아직 쌍영을 완성하지 못해 기운을 흘리는 도환에 비해 수환은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우드드득!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인 사나이가 자신의 몸을 친친 둘러싼 철조망을 뜯어내며 도환을 향해 날듯이 달려왔다.
퍼퍼퍽!
감추어진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주먹과 발을 내질렀고, 신형을 감춘 도환의 방어하자 파열음이 들렸다.
파파팡!
보이지 않는 도환을 향해 사나이는 공세를 이어갔다.
신형을 감췄지만 사나이에게 존재감을 들킨 터라 도환은 간신히 방어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공방이 이어지며 점점 수세에 몰려가던 도환이 어느 순간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며 신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