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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나이는 도환이 공세를 대비해 잠시 뒤로 물러났다.
서걱!
첫발을 디디는 순간, 소리도 없이 다가온 검기가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인 사나이의 신형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랐다.
이제까지 존재감을 감추고 있던 수환의 솜씨였다.
“크크크크,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사나이의 눈빛이 야광충처럼 빛나며 괴소가 흘러나왔다.
휘이잉!
갈라진 검은 기운이 회오리처럼 주변을 감싸더니 도환과 수환을 감쌌다.
그러고는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콰콰콰쾅!!
음과 양으로 나뉘어 검은 기운으로 감싼 사나이를 압박하던 수환과 도환도 폭발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컥!”
“크윽!!”
폭발에 휘말리며 비명과 함께 수환과 도환의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두 사람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급하게 호신기를 사용해 직접적인 피해는 막았지만 무사할 수는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옷 사이로 살들이 갈라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입으로도 검은 피를 게워 내고 있었다.
“우우욱!”
아직까지 성취를 이루지 못한 도환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다 피를 게워 냈다.
“크윽, 도환아, 내상이 심하니 움직이지 마라.”
도환보다 내상이 조금이나마 덜했던 수환이 말했다.
“아닙니다.”
암수를 사용한 마인의 존재 때문인지 도환이 억지로 신형을 일으키려 했다.
“걱정하지 마라. 놈은 이미 도망갔다.”
“꼼수를 쓴 것이란 말입니까?”
“그런 것 같다. 숙부님들께 연락을 해야 할 것 같구나.”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도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운기조식부터 해라.”
“예, 형님.”
도환은 급히 품에서 단환 하나를 꺼내 삼키고는 운기조식을 취했다.
수환도 동생이 운기조식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상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은 후 호법을 섰다.
내상이 약간 깊기는 하지만 급히 서둘러야 하기에 도환은 간단하게 운기조식을 끝냈다.
“움직일 수 있겠냐?”
“괜찮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운기조식을 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내상약을 먹었으니 아직까지는 괜찮다. 어서 내려가자.”
“예, 형님.”
두 사람은 검은 그림자가 뜯어 버린 철조망 쪽을 통해 빠르게 육군교도소를 빠져나와 산 아래로 향했다.
“형님, 아까 그자가 금마뢰에 갇혀 있던 마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누굽니까?”
산 아래로 내려가며 도환이 물었다.
“배교도다.”
“배교도라면?”
“중국의 모산파와 더불어 술법의 쌍벽을 이루는 자들이지.”
“형님, 이상합니다. 어떻게 중국의 비술을 이은 자가 금마뢰에 갇힌 겁니까?”
금마뢰에 갇힌 마인들에 대해 알고 있던 도환이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자가 그날의 혈사를 주도한 자다. 왜인들과 천장들을 죽이는 데 가담한 자 중 하나다.”
“그자가 말입니까?”
“그렇다. 때문에 그자도 금마뢰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렇군요.”
“어서 가자. 놈이 힘을 회복하기 전에 빨리 숙부님들께 연락을 취해야 한다. 힘을 찾게 되면 제일 처리하기 곤란한 자가 바로 그자다.”
“예, 형님.”
도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줄은 몰랐기에 수환은 급히 발걸음을 서둘렀다.
둘 다 내상을 입은 터라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느리기 그지없는 발걸음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다. 그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자 중 하나였는데…….’
힘을 찾는다면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운 자가 도주를 했기에 수환은 마음이 무거웠다.
도주한 배교도를 금마뢰에 가두기 위해서 가문의 일원 중 열세 명이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쉽게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숙부님들이라면 놈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장장 5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금제를 당한 자였다.
보통의 금제가 아니라 진원을 야금야금 소모시켜 뿌리를 텅 비게 하는 것이라 쉽게 회복이 되지는 않을 터였다.
회복이 되기 전까지 찾을 수만 있다면 그다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제거할 수 있을 것이기에 수환은 숙부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
*
*

어김없이 찾아와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이 광휘를 밝히고 난 후 담당 의사였던 상철의 말대로 유성은 퇴원을 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병원비는 사고를 낸 삼덕이 모두 지불을 했기에 어려운 집안 형편에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큰 사고를 당해서 그런가 말이 없구나.’
무사히 깨어나기는 했지만 집으로 가는 동안 유성이 별달리 말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가는 내내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조용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미화가 입을 열었다.
“유성아, 집으로 돌아가니까 좋지?”
“예, 어머니.”
“말이 너무 없어서 어디 아픈 게 아닌가 했다.”
“아니에요. 아픈 데는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대답을 하면서도 창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미화도 말끝을 흐렸다.
‘병원에서도 그렇고 다정다감했던 아이가 정말 말수가 적어졌구나. 큰 사고를 겪어서 그런다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른 아들의 모습에 미화의 속마음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놀라서 그런 것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이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미화가 보기에는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전보다 진중해 보이는 것이 아들의 성격이 조금은 변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어머니의 속내와는 달리 유성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자신의 기억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과거의 모습이지만 거리의 모습이 눈에 많이 익은 풍경이었다.
아니,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예전 기억 그대로다. 내가 정말 과거로 회귀해 온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의 질문에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사고를 당할 무렵의 모습이 창밖으로 계속해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로의 회귀라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서도 유성은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벌어진 지금의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이제 집에 거의 다 왔구나.’
큰 도로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는 도로로 택시가 접어들었다.
주변의 풍경이 자신도 모르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집 근처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성아, 내리자.”
“예, 아버지.”
유성은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여기도 옛날 모습 그대로구나.’
작은 이발소, 구멍가게, 그리고 국수가게가 보였다. 이발소 사이로 보이는 작은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놀던 바로 그곳이었다.
“어서 집에 가자.”
“예.”
작은 골목길을 접어들어 조금 걷자 녹이 슨 탓인지 군데군데 녹색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이 보였다,
‘크으, 집이구나.’
꿈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었던 집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유성은 감개가 무량했다.
끼이익!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마당과 수돗가가 보였다. 황색 페인트로 아무렇게나 칠해진 지 오래된 미닫이문도 보였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방과 내 방이 있겠지.’
유성은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방 안의 전경을 떠올렸다. 책장밖에 없는 방이지만 언제나 포근히 자신을 품어 주던 방이었다.
“자, 어서 들어가자.”
멍하니 집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재촉하는 아버지의 말에 유성은 마루로 올라갔다.
드르륵!
마루를 지나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지만 어렸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방 한쪽에는 이미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좀 누워서 쉬어라.”
“예, 아버지.”
상혁은 아들이 눕자 아내를 바라보았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몸이 좋지 않은지 아내의 얼굴이 펴질 줄 몰랐다.
“여보, 당신도 열이 있는 것 같다고 했지? 어서 방으로 들어가서 좀 쉬어. 유성이는 내가 돌볼 테니까.”
“으음,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아무래도 몸살기가 있는 것 같아요.”
미화는 몸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노심초사했으니 병이 날 만도 했다.
“아들, 미안한데 엄마 좀 쉴게.”
자신이 보살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지 유성을 바라보며 미화가 말했다.
“그러세요. 어머니. 제 걱정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저 때문에 병나시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가 걱정이 됐던 유성은 쉬기를 권유했다.
“그래. 너도 푹 쉬어라.”
미화는 남편이 아들을 눕히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안방으로 갔다.
“널 간호하느라 엄마가 몸살이 난 것 같구나.”
“예, 아버지. 저는 괜찮으니까 어머니를 돌봐 주세요.”
“후후후, 녀석.”
자신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이 기특했다.
사고가 난 뒤 아들이 부쩍 커 버린 것 같아 상혁은 마음이 흐뭇했다.
“유성아, 아버지가 안마를 조금 해 줄 테니 자리에 똑바로 누워 봐라.”
“아니에요. 아버지도 피곤하실 텐데 좀 쉬세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제대로 해 주지 못해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 다른 말 하지 말고 그냥 받아라.”
오랫동안 무예를 연마해 온 아버지였다.
자신에게 해 준 것이 없다는 생각에 그런다는 것을 알기에 유성은 아버지의 안마를 받기로 했다.
“죄송해요. 아버지.”
“후후후, 죄송하다니. 너는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다. 어서 엎드려 봐라.”
유성이 거꾸로 엎드리자 상혁은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하군. 항상 안마를 해 주는 입장이던 내가 이렇게 받게 되다니, 그것도 아버지에게서 말이다.’
생업으로 삼아 남들만 해 주다가 자신이 받게 되니 유성은 기분이 묘했다.
‘으음, 시원하구나.’
아주 약하게 하는 안마였기에 아프지도 않았고 곧 전신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근육과 관절을 이완시켜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되니 아버지의 손길이 사라졌다.
“자, 이제 끝났다. 네 몸이 약해져서 오래는 못하겠구나.”
“고생하셨어요.”
“고생이라니. 다음에 더 많이 해 주도록 하마. 난 약국에 갔다 오마. 마음을 편안히 하고 쉬고 있어라.”
“예, 아버지.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