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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유성이가 괜찮을까요?”
방 안에 누워 있다가 상혁이 약국에서 사온 약을 먹은 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미화가 물었다.
“아까 살펴보니 큰 탈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담당 의사인 상철의 확언이 있기는 했지만 내심 불안했던 미화는 남편의 말에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의사는 아니지만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보. 이제 유성이는 어떻게 할 거예요?”
미화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부자간에 진학 문제로 인해 서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배정을 받은 성운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할지 아직 결정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 공고에 진학하려는 것을 강제로 못하게 한 이후, 집안에는 냉랭한 공기만 흐르던 터라 걱정이 들었기에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 본 것이다.
“잠시 지켜보자고. 성운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수련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하지만…….”
아들인 유성이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을 수련시켜야만 한다는 사실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모르는지 수련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남편이 야속해 보였다.
‘이래서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미화는 다시 말을 꺼내 보기로 했다.
“여보, 당신이 그렇게 한 이유는 잘 알지만 유성이 마음도 생각해 줘야 되지 않나요?”
“유성이 마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내가 유성이 마음을 어떻게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우리 가문 사람들이 지고 가야 할 숙명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내일부터는 수련 방식을 조금 바꾸기로 했어. 유성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면 잘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남편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방법을 바꾼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라면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유성이가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껴야 하는데 방법이 없을까?’
문제는 남편의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기를 현재로서는 아들에게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것만 알려 줄 수 있다면 아들도 아버지가 왜 그리 반대를 했는지 알게 될 것이고 배우고 있는 것에 흥미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수련 방법을 바꾼다고 효과가 있을까요? 유성이가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인 것 같은데 말이에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말이야.”
단언하듯 말하는 남편의 대답이 미화로서는 의외였다.
‘마음이라도 바꾼 건가? 설마…….’
미화는 남편의 말에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여보, 그러면 유성이에게 내기에 대해 알려 주시려는 건가요?”
“수련 방식을 바꿔 보고 그래도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그렇게 할 생각이야. 지금까지는 그저 느끼라고만 했지 실체를 보여 주지 않았으니 알게 되면 유성이도 바뀌게 될 거라고 생각해.”
남편도 확실히 생각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방법으로는 소용이 없을 것 같기에 미화는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당신이 실체를 보여 준다고 해도 내기를 느끼려면 아직 한참 멀었잖아요.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지 말고 차라리 가문의 비사를 알려 주는 것이 낫지 않나요?”
“여보, 가문의 비사를 알기에는 아직 유성이가 어려서 힘들 것 같아. 자신의 앞날에 대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기특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유성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니까 말이야.”
아내가 무슨 말을 꺼낼 것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상혁이 차분히 대답을 했다.
“으음…….”
미화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이미 그것까지 생각을 했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건가? 대책을 세우지 않고 말만 앞세울 양반은 아닌데…….’
맞는 말이었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아들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일찍 알아봐야 그다지 좋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기에 대해 알려 주는 것 말고 남편이 아들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말이야. 유성이에 대해서는 나에게 그냥 맡겨 둬.”
“아, 알았어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미화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남편의 눈빛에 확신이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당신은 이만 쉬는 것이 좋겠어. 약을 먹었는데도 얼굴색이 좋지 않으니 말이야.”
“약 먹었다고 금방 좋아지나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이니 한숨 자면 좋아질 거예요. 당신도 피곤할 텐데 이부자리 펼 테니까 좀 쉬어요.”
말을 마치며 이부자리를 펴기 위해 미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자리는 내가 펼 테니까 당신은 어서 씻고 와.”
“알았어요.”
미화가 방을 나서는 것을 보고 상혁은 장롱을 열고는 이부자리를 꺼내 폈다.
잠시 뒤, 세안을 한 미화가 들어왔다.
“나도 씻고 올 테니 당신은 좀 누워서 쉬어.”
“오는 길에 유성이 좀 보고 와요. 잠이 들었는지 방 안이 조용하네요.”
“알았어.”
상혁은 자리에 눕는 미화를 보며 방을 나섰다.
‘뭐지?’
안방을 나와 건넛방으로 가려는 순간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은 이질감에 상혁을 빠르게 건넛방의 문을 열었다.
‘내가 잘못 느낀 모양이구나.’
아내의 말처럼 잠이 든 것인지 아들의 방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방금 전 방에서 일어났던 현상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혁은 유성을 바라보았다.
‘녀석, 잠이 깊이 들었구나.’
이불을 덮고 곤한 잠에 빠져 있는 아들이 보였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이 든 아들을 바라보던 상혁은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아들의 맥을 짚었다.
‘역시, 혈류의 흐름이 지나치게 활발하다.’
병원에서도 그렇고, 아까 안마를 해 주며 살펴본 것과 마찬가지였다.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몸속을 흐르는 혈류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심장이 빨리 뛴다면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심박 수는 보통 사람과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혈관을 따라 흐르는 피의 속도가 두 배는 빨랐다.
문제가 되어야 정상일 상황이지만 아들의 상태는 달랐다.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피의 흐름이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임에도 아들의 몸은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아직 힘이 없다고는 하지만 근육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마치 십여 년은 정심으로 수련한 사람의 근육과 같은 상태다. 마치 전설에나 전해져 오는 영약을 먹은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으음, 도대체 유성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사고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의 몸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학 문제로 부자간의 관계가 소홀해진 이후 수련도 대충하는 것 같았다.
사고가 난 뒤에는 아예 수련을 쉬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약해져야 정상인데 근육의 탄성이 전보다 좋아지고 있었다.
수련이 일상화된 이후 오랜 세월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 연구를 해 왔던 상혁이다.
그렇지만 아들의 몸 상태가 변화한 원인을 알 수는 없었기에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런 상태라면 그다지 우려할 일만도 아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겠지.’
깊게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현상에 주목하면 된다. 아들의 상태는 지금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것과 매우 유사했다.
아니, 완전히 같았다.
자신도 몇 년 전에 간신히 다다른 상태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가문의 비전을 본격적으로 수련할 수 있는 몸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내일 수련을 시켜 보면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고가 나서 아직 무리이기는 하겠지만 상혁은 내일 당장 가문의 비기를 수련시켜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알아낼 방법이 없지만 수련을 시켜 보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조들 중에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이 정도까지 몸을 만든 분은 없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는 것이라면 유성이 대에서 가문의 비기가 새로운 경지로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아들의 몸이었다.
신체에서 일어나는 이 현상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 작용이 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문의 오랜 비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유성아, 모든 것이 잘될 거다. 그러니 앞으로 이 애비를 믿고 따라와 다오.’
상혁은 맥을 짚었던 아들의 손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어 준 후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아들의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도 준비할 것이 있어서였다.


8장 Again 1983



덤프트럭에 치여 두 달여간 의식을 잃고 병원 신세를 져야 했었다.
머리 쪽부터 바닥에 떨어지며 눈을 다쳤다.
깨어났을 때는 시신경 대부분 망가져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통사고로 인해 졸지에 세상의 광명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모진 고생은 그때부터였다.
재활 학교에 갈 형편도 되지 못해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나 때문에 어이없게 세상을 등지신 것이다.
가장의 죽음으로 장님인 아들을 돌보면서 혼자 집안 살림을 모두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힘든 나날을 보내셨는가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암으로 돌아 가셨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밤 안방에서 들려오던 끙끙거리는 소리 때문에 사사건건 신경질만 냈던 불효자식이 바로 나였다.
당시 어머니가 그렇게 편찮으셨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재활 학교에 보내기 위한 돈을 모으느라 약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냥 버티시며 앓던 소리라는 것을 훗날 알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 같은 놈을 위해서 그리 아파하시다 돌아가시다니 난 정말 어머니에게 짐만 되는 죽일 놈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날 보살펴 준 사람이 바로 삼덕 아저씨다.
어머니를 잃고 난 후에 삼덕 아저씨는 나를 보살피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런 삼덕 아저씨에게 무던히도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을 저주한다고 악담도 퍼부었고, 욕도 무지막지하게 했었다.
그렇지만 삼덕 아저씨는 책임을 다한다며 묵묵히 나를 돌보셨다.
원망스럽지만 나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삼덕 아저씨도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저세상으로 보내야만 했다.
몇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안구를 기증 받아 수술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던 아저씨까지 갑자기 죽어 버렸다.
재수 없게도 강도를 만나 집 앞 골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렇게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제명에 죽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놈이었다.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그런 놈 말이다.
지금 내게 닥친 이 모든 상황이 정말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이 꿈이라면 절대 깨어나지 않기를 빈다.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절대 깨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