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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이 수련을 해 왔던 이 세 가지 투로는 수련의 가장 기초였다.
배운 대로라면 몸을 바르게 하고 단련하기 위한 것으로 양생과 요상의 효과까지 있지만 정확한 투로가 선행되어야 했기에 아버지의 뜻을 짐작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다행이다. 우선은 기억나는 것부터 따라 해 보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아버지를 보고 따라 하면 되니까.’
많은 동작을 잊어버린 유성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세의 기초 수련법은 그다지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유성은 천천히 동작을 맞추어 나갔다.
“헉! 헉!”
얼마 따라 하지 않았음에도 숨이 차올랐다.
12년 동안 몸으로 익혔던 것이지만 오랜 세월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라 따라 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어려운 동작들이 아닌데도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흐르고 힘이 들었다. 자세를 잊어버리지 않은 것을 들키지 않아야 했기에 아버지의 눈치까지 봐야 했던 터라 더욱 힘이 들었다.
‘무지하게 힘드네. 그래도 몸이 점점 시원해지는구나.’
따라 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투로를 따라갈수록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감기 몸살로 몸이 안 좋았을 때에 했던 수련도 지금처럼 상쾌한 기분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었기에 유성은 수련에 깊이 빠져들었다.
투로를 전개할수록 몸이 개운해지고 있어서인지 유성은 아버지를 모습을 보면서 끝까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과는 달리 진심으로 몰입을 하고 있구나. 형을 따라 기운을 가다듬으려 하는 것도 제법이고.’
먼저 투로를 끝낸 상혁은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는 곧잘 따라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건성으로 따라 하던 아들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투로를 밟아 가는 모습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완전히 몰입해 자신을 잊고 투로의 의미만을 좇아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이 따라 움직이자 형이 바라는 기세도 자연적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라면 유성이가 저렇게 하기는 힘들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사고로 인해 유성이의 몸 상태가 변한 것이 분명하다.’
사고가 난 것이 무색하게 아들은 몸은 가문의 비기를 수련하기에 최적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조금은 동화가 된 것 같지만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서인가? 인식을 못하니 섞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군.’
아들은 변화된 자신의 신체를 아직까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느끼지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뜻대로 제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조금씩 기세를 흘리는 것을 보면 유성이도 점차 자신의 힘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수련을 하며 적응을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겠군.’
자신이 가진 강력한 힘을 바로 인식하기보다는 천천히 맞춰 나가며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 나았다.
급격히 맞추려 들었다가는 파탄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천천히 두어 달 수련을 하면서 맞춰 나간다면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혁은 고심 어린 눈으로 아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참! 투로를 진행할수록 점점 더 나아지는구나.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아들이 펼치는 형은 점점 더 완벽해지고 있었다.
수련하는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은 알았지만 투로의 진행에 따라 형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 모습은 상혁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수련한 지가 12년이 되어 가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어떤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수련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이룬 경지를 단 며칠 만에 이루다니 말이다. 이대로 꾸준히 수련을 지속한다면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수련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자신의 경지에 도달하리란 생각에 상혁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맺혔다.
자신이 아닌 자식의 손에서지만 평생 숙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혁이었다.
‘이제 끝난 듯하구나.’
아들이 시전하는 음양십세가 마지막 투로를 밟고 있었기에 상혁은 입가에 어린 미소를 급히 지웠다.
“후우~!”
“유성아, 자세가 많이 흐트러졌구나.”
상혁은 삼식을 일순하여 투로를 끝낸 후 서기 자세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유성에게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니다, 사고가 났는데도 그만하면 잘했다. 그래, 음양십세까지 끝내고 나니 몸은 어떠냐?”
“몸이 욱신거리고 힘이 조금 없었는데 많이 개운해진 것 같습니다.”
“그럴 것이다. 네가 밟은 투로들은 그런 효과가 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육체의 제약을 끊어 내기 위한 세의 삼식은 기초 중 기초다. 다시 한 번 하면 좀 더 개운해질 테니 이번에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념하며 시전하도록 해라.”
“예, 아버지.”
맞는 말씀이었기에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리하시다. 잘 따라 했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알아차리시다니…….’
어렵게 많은 부분을 기억해 내서 간신히 투로를 유지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라 확실치 않아 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던 것을 보신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예전같이 화는 내시지를 않는구나. 역시나 아버지는 속정이 깊으신 분이다. 내가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다시 투로를 밟기 시작한 아버지를 보면서 유성은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
전에는 투로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참지 못하시고 불같이 화만 내시던 아버지였다.
교통사고로 내가 죽다 살아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것인지 오늘은 상당히 틀렸는데도 화를 내시지 않고 계셨다.
‘내가 아픈 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신 건 아마도 내가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수련한다는 것 자체가 진짜 싫었으니까.’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신 까닭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진심이 아닌 수련은 하나마나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니 오히려 아버지께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 이제는 전부 기억이 났으니 잘 따라 해 보자. 진심을 다해서 말이다.’
굳건하게 투로를 밟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유성은 다시 세의 일식인 열화세의 투로를 따라 천천히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양십세까지 일순을 해서인지 진행되는 투로가 모두 기억난 터라 따라 하는 것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쓰면 되는 일이었다.


9장 오롯이 기운을 느끼다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혁이와 싸울 때 내가 특별한 기운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딪칠 때마다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녀석의 기운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게도 그런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녀석의 공격 속에 숨어 있는 기운이 자극을 줄 때마다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르지만 몸 안에 미지의 기운이 감돌았다.
녀석의 강건한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기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내가 가진 기운에 대해 느낀 후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후에 내게 닥친 시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녀석과 헤어진 후 곧바로 교통사고가 났고, 암담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미처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생계를 위해 안마를 배우다 내게 있는 기운의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고 어느 정도 회춘하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효능을 가진 기운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스포츠센터에서 안마를 시작한 후 이름을 조금 얻었다. 기운을 조금밖에 쓰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안마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내 이런 능력을 노린 자들에 의해 나는 강제로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유혹에 넘어간 내 잘못이지만 너무 쉽게 스스로를 포기한 것이 지금은 무척이나 후회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운을 제대로만 활용했다면 그렇게 쉽게 폭력에 굴복해 인간 이하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됐을 테니 말이다.

*
*
*

유성은 조금 전보다 더욱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의식을 집중해 나갔다.
불끈!
발끝을 세우며 좌보를 내딛고 우장의 손날을 앞으로 밀며 땅을 내리누르는 것으로 열화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기이한 기운이 배꼽 밑에서 느껴졌다.
‘뭐지?’
이상한 생각에 잠시 동작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해 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잘못 느낀 건가?’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판단한 유성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다시 열화세를 시작했다. 투로를 따라 움직였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내가 잘못 느낀 것이었나 보구나. 혹시나 후유증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이 착각을 했다고 생각한 유성은 다시 의식을 집중하며 자세를 바로하고는 열화세를 따라갔다.
그렇게 열화세를 끝낸 유성의 눈빛에 의혹이 가득 서려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따뜻한 기운이 실제로 만들어져 내부에 흐르다니…….’
처음에 착각이라고 느꼈던 것이 실은 아니었다.
조금 전에 일순했던 것과는 달리 선명했다.
바른 자세로 움직이며 열화세를 끝내자 한줄기 따뜻한 기운이 몸 안에 흐르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열화세를 시전하여 따뜻한 기운이 생성된 것을 느낀 유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 전에 할 때도 그렇고, 예전에도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래전으로 기억되는 어린 시절에 바른 자세로 수련했을 때도 일어난 적이 없는 현상이었기에 유성은 조금 불안해졌다.
‘오랜 세월 수련하게 되면 내기가 자신의 몸에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설마, 내가 오늘 내기를 느낄 수 있을 줄이야. 그때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더라?’
한빙세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조금 전에 단편적으로만 떠오르던 것이 정신을 집중하자 놀랍게도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 말씀하신 것들이 전부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수련 중에 해 주셨던 말들을 기억해 낸 유성은 이내 불안감을 지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열화세!
물의 기운을 다스리는 한빙세!
그리고 이 둘의 조화롭게 하는 음양십세!
‘그냥 믿으며 수련을 하라고 하셨는데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니…….’
설명을 들었을 때도 그런 효능이 있다고 믿으며 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인체에서는 기운이 기경이나 팔맥을 따라 움직인다고 배웠었다. 아버지에게 설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안마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30년 이상을 바르게 수련을 해야 희미하게나마 몸에 흐르는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고 했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선명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으음, 이건 아버지도 모르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수련하고 있는 것들은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감춰진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아버지가 해 주신 이야기들이 전부 실제로 있는 것일 수도 있었기에 유성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유성의 이런 고민은 오래지 않아 끊어졌다.
한빙세를 시전하던 상혁이 투로를 멈추고 가만히 있는 유성이 걱정되어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열화세를 시작할 때 잠시 멈칫하더니 한빙세가 시작됐는데도 가만히 서 있는 아들이 이상했다.
혹시라도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지 몰라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왜 그러냐?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에요. 아버지.”
상념에서 깨어난 유성은 아직 확신을 할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구나. 그러면 한빙세부터 다시 시작할 테니 잘 따라 하도록 해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