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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뿐이지만 아들의 몸 상태를 살폈지만 그다지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 상혁은 따라 한빙세의 투로를 천천히 전개해 나갔다.
‘그래, 그냥 믿으며 꾸준히 수련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일어났으니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신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실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몸이 가뿐한 것을 보면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해 보자.’
아버지가 자신을 살피며 다시 투로를 시작하고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따뜻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했기에 그다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었기에 유성은 자세를 유지하며 한빙세의 투로를 따라 해 나갔다.
‘역시, 이상해.’
이번에는 상당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우보를 앞으로 내밀고 좌장의 손날을 하늘로 내미는 한빙세가 시작되자 이마로부터 차가운 기운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여운은 남아 몸이 상쾌했다.
‘이왕 내친김에 그냥 이대로 계속 간다.’
열화세를 할 때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투로를 따라 나갔다.
이번에는 한빙세의 투로에 집중하면서도 기운의 향배를 조심스럽게 쫓았다.
처음에는 여운만 느껴질 뿐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투로를 막 끝냈을 때였다.
샤아아아―!
한빙세가 끝나자 한 줄기 서늘하고 청량한 기운이 몸 안에서 빠르게 맴돌았다.
열화세의 따뜻한 기운에 이어 한빙세가 만들어 낸 청량함이 가득한 기운이 휘돌자 몸이 개운해졌다.
‘역시, 그렇구나. 시작되는 곳과 성질만 다를 뿐, 전신을 휘돌며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해 왔던 수련이지만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현상이 몸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기억 속의 인생에서는 이런 기운을 느낄 기회가 없어 미처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매일같이 시키는 수련에는 비밀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음양십세다. 아마도 또 다른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열하세와 한빙세의 투로가 합으로 가는 것이 음양십세였다. 두 가지 투로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아마도 음양십세를 시전하게 되면 뭔가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후우~!”
유성은 호흡을 가다듬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음양십세를 시작하는 아버지를 따라 투로를 전개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동시에 흐르는구나.’
시작과 동시에 열화세의 따뜻한 기운과 한빙세의 청량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교차하며 몸 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는 것처럼 전신으로 퍼진 후에 혈맥을 따라 돌고 있구나.’
기경과 팔맥에도 흐르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몸 전체를 순환하듯 혈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동맥과 정맥, 그리고 미세한 모세혈관까지 이원화된 기운이 교차하며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어!! 하,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음양십세가 끝날 무렵 전신을 휘돌던 두 가지 기운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명치 부근에서 자연스럽게 합쳐지더니 결국 하나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가 말한 중단전이 있는 곳이었다.
콰―쾅!!
기운이 합쳐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가 된 기운은 뒤이어 폭발하듯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실제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유성은 천둥이 치는 거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온몸으로 퍼진 기운은 이번에도 역시 기경팔맥뿐만 아니라 혈류를 따라 휘돌더니 이내 전신 곳곳에 흐르며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아!!”
전신을 관통하는 상쾌함에 아득함이 몰려들었다.
육체적인 쾌락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황홀감의 극치가 온몸으로 몰려들었다.
“유, 유성아! 괜찮은 거냐?”
전신으로 퍼져 가는 청량감에 몸을 맡기고 잠시 눈을 감고 서 있던 유성은 아버지의 말에 눈을 떴다.
아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상혁이 옆에 있었다.
“아버지.”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냐?”
“아니요. 괜찮아요. 아버지.”
“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걱정을 많이 했다.”
“땀이요?”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만 느꼈을 뿐이었는데 땀을 많이 흘려 걱정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유성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어떻게 된 거지?’
검은 도복이 흠뻑 젖어 있었고, 스미듯 나온 땀이 옷깃을 따라 흘러 운동장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음양십세로 인해 전신으로 퍼진 기운 때문에 땀을 흘린 것일 테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냥 땀은 아닌 것 같구나.’
음양십세가 불러온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이마를 훔치니 구슬 같은 땀이 손바닥을 가득 적셨다.
‘냄새도 나는구나.’
누리끼리한 색에 이상한 냄새마저 섞여 있었다.
‘땀 냄새인 것 같은데 별로 좋지는 않구나. 결코 평범한 현상은 아닌 것 같구나. 아무래도 이상하니 아버지께 한번 말씀을 드려 봐야겠다.’
쩡!
아버지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를 강타하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러고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소름이 끼치는 것 같은 불안감이 전신을 맴돌았다.
‘으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고가 난 후에 일어난 기억의 혼재와 몸 안에서 일고 있는 현상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강력한 기시감에 가슴이 떨리고 불안해지는 것이 이런 현상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나무라는 것 같았다.
‘후우……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은 차차 생각해 보고 나서 하자.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괜히 말씀을 드려 걱정을 하시게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을 뒤로 미루자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가라앉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하구나. 불안하던 기분도 사라지고…….’
생각을 정리하자 희한하게도 마음속을 헤집던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일단 내가 어렸을 적에 들었던 것이 맞는지부터나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보자.’
기운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수련을 한다면 나중에 내기를 느낄 수 있다고 했었다.
전신을 관통하며 흐르는 내기를 느끼게 되면 수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징표라는 말과 함께였다.
뇌운십이격의 수련을 시작하며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것이 또렷이 떠올라 있었기에 유성은 맞춰가며 확인해 보기로 했다.
“유성아, 정말 괜찮은 것이냐?”
자신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던 유성의 귀에 걱정이 가득한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수련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버지. 아프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땀을 흘리니까 시원하기만 한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걱정하실까 봐 둘러댔는데 믿어 주시는 것 같아 유성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왜?”
“뇌운십이격을 익히면서 믿으라고 하신 그런 기운들 말이에요. 그런 기운이 정말로 있는 건가요? 다음 단계에서도 그렇게 믿으며 수련을 해야 하나요?”
“으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해 주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 아들의 말에 상혁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12년 전에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처음 수련을 시작하면서 딱 한 번 설명해 주었다. 이후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 한 번 흘리듯 해 주었던 말을 기억하는 것을 보며 상혁은 아들이 머리가 상당히 비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 그리고 말을 해 준다고 해도 뜻을 알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은 완벽한 형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이니…….’
뇌운십이격에 대해 전부 설명해 주기에는 껄끄러운 점이 있어 조금은 망설여졌다.
각 단계마다 있는 투로에는 그것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각 단계를 완성한 후 다음 단계로 나가야 제대로 수련을 마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뜻을 동반한 수련은 형을 완성하고 난 뒤에 일이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나…….’
의심치 않도록 설명을 해 줄 수는 있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가 되었다.
법문에 실려 있는 뜻에 대해 의문을 가져 나름대로 해석을 내려 버리고 수련을 하게 되면 자칫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뇌운십이격이 만들어진 이후 뜻을 마음에 담지 않고서 성취를 이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담겨 있는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전 단계의 뜻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를 성취를 이룰 수 없었다.
뜻에 대한 깨달음은 얻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이어져 오는 동안 뇌운십이격을 수련을 했었던 수많은 전승자들이 지향하는 뜻을 올바로 깨닫지 못했다.
담긴 것이 너무 큰 뜻이라 대부분 뇌운십이격의 일각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일부만 깨달음을 얻은 것임에도 수련자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는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성취를 이룰 수는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수련자들의 깨달음이 뇌운십이격의 진정한 비의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까지 뇌운십이격을 대성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증명한다.
수련자들은 다들 자신은 완벽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판단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갔지만 어쩐 일인지 완벽한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었다.
결국 자신이 올라선 전 단계로 되돌아가 다시 깨달음을 위한 수련을 해야 했다.
그렇게 전 단계로 돌아가 수련을 시작하면 다시 그 전 단계가 완벽하지 못했다는 것을 또 느끼게 되고.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어느새 처음부터 수련을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승자들은 수련하는 내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각 단계에 담겨져 있는 뜻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게 되면 후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수련을 해온 자들의 결론이다.
그렇게 뇌운십이격의 수련자들은 담겨져 있는 뜻을 완전히 깨닫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탓에 지금까지 누구도 완벽한 성취를 이룰 수 없었다.
담겨져 있는 뜻을 믿는 이들도 이러한데 의심을 하는 이들이 성취를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무예든 의심은 큰 부작용을 일으키기에 수련 시에는 절대로 금해야 할 사항이었다.
의심을 가지고 수련을 하다가는 마성에 빠져 십중팔구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상혁 또한 뜻을 완전히 깨닫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재수련의 과정을 거쳤다.
어려서부터 수련을 시작한 이후 상혁은 뇌운십이격에서 언급한 기운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자신이 해 온 수련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허송세월만 보냈을 것이 분명했다.
재수련을 통해서도 뇌운십이격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뇌운십이격 안에 내포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기에 말을 해 주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