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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만약 자신이 신성력을 두르지 않았다면 그 마기는 루이스에게 해를 입혔을 것이다. 물론 루이스가 신성력으로 빠르게 대처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했을 확률이 더 높았다.
“씨발, 왜 화내고 지랄이야?”
“화 안 내게 생겼어? 병신 같은 오크 새끼가 달려든 거는 그냥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네가 왜 나서? 이 빌어먹을 새끼야.”
“아나, 씨발. 이 개자식이 말 놓네?”
“하아, 하아.”
스틸 호크가 살기를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야.”
“왜?”
스틸 호크가 상당히 삐진 듯,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너 아까 그 오크 보면서 생각하는 거 없냐?”
“생각하는 거라니?”
“천재지 않냐?”
“뭐가?”
“천재잖아, 그 오크 말이야.”
“그 정도 가지고? 까마귀보다 약하던데.”
루이스가 천천히 대화를 유도하자 스틸 호크도 상당히 누그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녀석은 원래 그런 자식이고…… 그 오크 광기에 사로잡혔을 때 생각 안 나냐?”
스틸 호크는 녀석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루이스가 신성력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때만 생각났다. 하지만 곧 있어 오크에 대해서 떠올랐다.
그때는 힘도 거의 바닥나고 그래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광기에 사로잡혔다지만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근력이나 민첩성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전투 센스가 뛰어나 실력을 몇 배로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다.
“그리고 방금 전 생각해 봐. 아무리 네가 마기를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네 무게 중심이 흐트러졌었지? 마기 안 사용했으면 아까 자빠졌을걸?”
확실히 그랬다.
근데 이 빌어먹을 새끼가 왜 이렇게 그 녀석 칭찬을 하는지, 아직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스틸 호크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흠흠. 그래서 말이야…….”
루이스가 온갖 말을 다 갖다 붙이며 말을 했다.
그것을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나보고 그 새끼를 가르치라고?”
“아니, 그냥 몇 대 쥐어박아. 그 녀석 너한테 분노가 엄청나서 네가 패면 팰수록 이글이글 타오르면서 너한테 달려들걸? 그럴 때마다 네가 더 때려. 그렇게 해서 그 녀석 좀 강하게 만들어 봐. 아마 금방 강해질 테니까.”
“죽일 수도 있다.”
스틸 호크가 약간의 살기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진짜 죽일 수도 있었다.
루이스에게 화가 난 것을 그 오크에게 푼다면 말이다.
“아, 그건 걱정 마. 반지에서는 절대 안 죽어.”
“후우……. 알겠다.”
스틸 호크가 허락하자 루이스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소환, 스틸 호크.”
스틸 호크가 반지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보통 영주들은 모두 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최소한 성을 가지려면 성을 제외하고도 농사를 짓고 벌목을 하고 기타 등등의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밸런타인 영지 같은 작은 곳은 그런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병사들이 주둔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개 백작령의 영주들부터 성을 가진다.
가르시아 자작령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성을 세워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가르시아 자작은 그런 것은 하지 않았다.
그는 성벽을 쌓아 성과 초원지를 나누고 공성에서 뛰어난 효과를 얻는 것보다는 그냥 정예 병사를 육성했다.
훈련과 훈련 끝에 태어난 정예 병사.
가르시아 영지의 병사들은 왕국에서도 이름이 높을 정도의 실력 있는 정예 병사들이었다. 가르시아 영지의 병사 둘이 뭉치면 성인 오크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말 다하지 않은가?
가르시아 영지와 밸런타인 영지에는 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리고 영주가 사는 곳도 성이 아니라 저택이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파슈타인 백작령은 달랐다.
성벽이 있었고 성벽의 밖으로는 많은 농경지가 있었으며, 벌목장도 있었다. 어차피 같은 왕국이기에 주위에 병사를 배치하지도 않았다. 같은 왕국에서는 선전포고 없이 기습으로 영지전을 벌이는 것은 국법으로 금지 되어 있으니 일부로 병사를 대치시킬 필요는 없었다. 물론 밸런타인 영지는 그 영지가 왕궁에 영지전을 벌이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다고 해도 알 방도가 없으니 그냥 대치시켜 놓은 것이다.
루이스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슈타인 백작성의 초입에는 수많은 민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조금 더 안으로 가자 여러 건물들이 있는 시장이 나왔으며,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자 병사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사들의 수련은 보는 것은 상당히 예의에 벗어나는 것이기에 아예 볼 수가 없었다.
루이스는 잠시 파슈타인 백작성에 들르고 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지금 날도 저물었다.
하지만 왠지 찜찜했다. 파슈타인 백작은 귀족파의 귀족이었으니까.
‘나는 국왕파를 지향할 건데…….’
루이스는 국왕파의 귀족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국왕파를 지향할 생각이었다.
귀족파들이야 힘이 생기면 하는 짓이 국왕에게 껄떡대는 것밖에 더 하겠는가? 그 사태가 지속되다 보면 결국 반역을 일으킬 것이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게 만드는 귀족파에 섞일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귀족파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파와 국왕파.
두 파벌이 생김으로서 국가는 조금 더 빠르고 획기적인 성장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경쟁자가 없으면 나태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동물이다.
검을 든 자가 처음부터 최고의 검사라면 노력을 하겠는가? 물론 그것을 즐기는 자라면 모르겠지만 아니면 그럴 리가 없었다.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인간의 욕심을 무한히 원하는 돈에 관한 것이라면 그치지 않겠지만.
“그냥 여관에서 자야겠네.”
하지만 다시 망설여졌다.
루이스는 어렸다.
정신 연령은 대폭 성장했지만 일단 그는 표면적으로 어딜 보나 13살 꼬맹이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루이스는 반지를 흘깃 쳐다보았다.
약간씩 진동을 보이지만 크로우 때보다는 덜한 반지의 진동에 루이스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진동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펫이 강해진다는 생각에 약간 흐뭇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환해?”
소환하면 여관에 당당하게 갈 수 있다.
찝쩍대는 놈도 없을 것이다.
일단 스틸 호크 녀석이 풍기는 분위기가 남달랐으니까.
하지만 소환하자니 한창 발전하고 있을 크리스의 훈련 속도가 늦춰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에 들어가면 다치지도 않는다. 지치지도 않는다. 상태는 매번 최상의 컨디션이다.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수련을 하니 나날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활동할 때는 대동해야겠네.”
루이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틸 호크를 불렀다.
“소환, 스틸 호크.”
이미 루이스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지 오래였다.
빛과 함께 스틸 호크가 소환이 되었고 루이스는 인벤토리에서 돈을 꺼내서 스틸 호크에게 건넸다.
아무리 그래도 호위 기사가 돈을 내야지, 귀족이 돈을 내기는 뭐하지 않은가?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호위 기사가 돈을 내는 것도 좀 뭐했다. 왠지 상상을 해 보니 구질구질하게 보였다.
보통 귀족이 행차(?)할 때는 귀족을 호위하는 기사가 있었고 병사가 있다. 그럴 경우 돈은 병사가 지불을 하는데 병사가 아니라면 기사의 종자가 돈을 대신해서 냈다. 물론 그 돈은 영주의 돈이다.
“그렇지!”
루이스는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루이스는 곧장 주위에 보석 세공소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보석 세공사는 흔치 않은 직업이다. 있어도 대부분의 돈이 흘러드는 수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지에 지어 봤자 영주에게 착취밖에 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영주들은 영지에 보석 세공소가 있으면 보석들을 세금이라는 명목하게 강탈해 갔다. 밸런타인 영지의 영주들은 그러지 않지만 말이다.
결국 보석 세공소를 찾지 못한 루이스는 인벤토리에서 중급 마나석 한 개와 강철단검을 꺼냈다.
손에 쥔 단검에 하단전의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마나를 흘려보내면서 미약한 신성력도 섞어서 보냈다.
많은 양은 안 되고 아주 소량의 신성력이 마나석에 배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깎을지 생각을 하던 루이스는 크리스에게 ‘크리스’라는 이름을 지어 준 이유를 생각했다.
사실 크리스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은 오크들을 한 대 모아 주었으면 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종교 앞에서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힘을 단합했다. 그렇다면 크리스는 진짜 신은 아니겠지만 사이비 종교처럼이라도 오크들을 광신도로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원시적인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오크들을 종교로 모으기는 더 쉬울 것이다.
루이스의 경우 종교하면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였다.
십자가와 신상.
일종의 아티팩트로 만들 것이니 십자가가 좋았다. 솔직히 신상에다가 룬어를 세기다가는 신의 벌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루이스는 십자가가 딱이라 생각했다. 관대한 신들은 십자가에 룬어를 좀 새긴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루이스는 목걸이의 모양을 정한 후 기분 좋게 웃었다. 빌어먹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물론 답은 아직 매기지 않았지만. 답을 매기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루이스는 곁눈질로 자신의 단검을 바라보았다.
단검의 검신에서 김이 조금씩 올라오더니 회오리를 치며 단검을 감고 있었다. 루이스는 이것으로 과연 마나석이 깔끔하게 잘릴지 생각해 보았다.
루이스의 예상으로는 그다지 깔끔하게 잘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스는 모양이 예쁘든 말든 상관없었다.
루이스는 신성력을 끌어 올려 검의 주위를 반듯하게 만들었다.
김이 한곳에 뿌옇게 모여 단검의 검신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루이스는 나름 만족하며 마나석을 베었다.
보통 조각사라면 아주 세심하게 마나석을 깎겠지만 루이스는 그냥 반듯한 모양의 십자가를 만들 생각이었기에 세심한 세공 자체가 필요 없었다. 그냥 깔끔하게 모양만 내며 잘라 버리면 끝이었다.
화려한 속도로 마나석을 잘라 십자가를 만든 루이스는 곧바로 십자가의 머리 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루이스는 이것을 목걸이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 후 강철단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루이스는 서클에 있는 마나를 끌어당겼다. 흑마나가 응집되어 손가락으로 모였다.
지금 상태로 부활 마법진을 새기며 평소보다 3할 정도 강력한 언데드 병사가 태어날 것이다.
물론 루이스는 그따위 생각은 없었다.
신성력을 끌어 올려 손가락에 응집된 흑마나에서 마기와 충돌시켰다.
콰콰쾅!
작지만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손가락에 모은 흑마나는 매우 작았고 루이스는 신성력을 더욱 많이 끌어 올렸기에 마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루이스는 손가락에 미약한 신성력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마나석을 자르면서 십자가로 탈바꿈한 마나석에 그가 생각한 신성력보다 훨씬 적은 신성력만이 배여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곧장 고대 룬어를 십자가의 한쪽 면에 새겼다.
고대 룬어는 마법어라고 불리는데 마법진을 그릴 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이 바로 고대 룬어이다.
제일 먼저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마법을 새겼고 다음으로는 크리스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자신에게 회수되는 마법을 새겼으며, 마지막으로 소모된 마나가 약간이지만 회복되는 마법을 새겼다.
물론 마나가 회복되는 마법의 효과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모여도 아주 소량만 모일 것이며, 십자가의 마나가 다 떨어지면 그마저도 발동하지 않기에 SS급 마나석인 블루 스톤보다는 한참 모자라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약간의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드래곤의 폴리모프 같이 엄청나게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못생긴 사람을 인위적으로 잘생기게는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소환, 크리스.”
루이스가 크리스를 소환했다.
빛과 함께 등장한 크리스는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취이이이이이이이익!”
그 소리에 루이스는 깜짝 놀라며, 주변에 사일런스 마법을 펼쳤다.
“후우. 이 새끼가 미쳤나? 갑자기 왜…… 뭐야? 갑자기 마기가 왜?”
루이스는 마기가 크리스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외공적인 성향인 건가? 하긴 반지 안에서는 무적 상태기는 해도 마기는 물론 마나도 없으니까.”
크리스는 반지의 안에서 스틸 호크에게 죽어라고 맞았을 것이다.
마나가 없는 세상에서는 몸을 단련 시켜도 그냥 그것으로 끝이지만, 마나가 있는 세상에서는 몸을 단련시키면 몸에 마나가 스며든다. 그렇게 해서 점점 강력해지는데, 이것을 무림에서는 외공(外空)이라 불렀다.
반면에 크리스는 오크이기 때문에 마나 대신에 마기를 흡수하는 것일 터인데, 반지에 마기랑 마나가 없으니까 아무 것도 흡수하지 못하고 실력은 제자리이고 그저 실전경험만 늘어나고, 몸이 발전하였을 때 마기가 있는 밖으로 나오자 마기가 크리스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일 터이다.
곧 있어 크리스는 괴성을 지르는 것을 그만 두었다.
루이스는 크리스를 한 번 스캔했다.
물론 스캔 같은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감각으로 크리스의 실력을 가늠해 본 것이다.
‘마나 유저 중급!’
외공으로 경지를 높인 것은 상당한 것이었다.
마나 홀에 마나를 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마나 로드도 개척해야 하고 아무튼 할 것이 더럽게 많다.
하지만 외공은 다르다.
그냥 혈맥에 근육에 뼈에 피부에 마나(크리스는 마기)가 맺혀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스탯창으로 보면 크리스는 루이스보다는 약하지만 기사들보다는 월등히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수치에 표시되는 마나는 ‘0’이겠지만.
루이스는 크리스에게 십자가를 건네주려다가 목걸이로 만들었는데 그것을 걸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크리스를 역소환했다.

11장 이상한 청년



“오랜만에 꿨네…….”
루이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평범한 꿈을 꿔서 이제 더럽게 긴 꿈은 꾸지 않는 건지 한 번 추측해 보았다. 하지만 오늘 다시 꿈을 꿨다.
“제비라…….”
아주머니들 등 처먹는 제비.
여자 후려서 그들의 속옷까지 다 팔아먹는 제비.
착하고 성실한 듯해도 뒤에서 호박씨 열심히 까는 제비.
그런 꿈을 꿨다.
“전생 중 하나인가?”
자신의 전생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에서 저런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약간 후회가 들기도 했다.
비록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한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겨우 핑계에 불과했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내가 꾼 꿈이 진짜 내 전생이라면…….”
루이스는 입을 앙다물었다.
13살이라지만 아직 젖살도 제대로 빠지지 않은 루이스가 그런 행동을 하자 상당히 귀여웠다. 이미 희미하지만 식스팩도 있고 키도 150에 달했지만, 귀여운 것은 귀여운 것이었다.
아마 크리스가 했다면 깨물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생은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아야지.”
루이스 반 밸런타인, 13세.
일생일대의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