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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스틸 호크와 크리스를 소환해서 루이스는 여관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루이스는 어제 목걸이 줄을 사서 십자가 목걸이를 만들어 크리스에게 주었는데, 크리스는 목걸이를 이용하여 16살 정도의 은빛 머리의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지을 것만 같은 루이스보다 조금 더 잘생긴 소년이 되었다.
루이스는 추악함의 대명사 크리스가 아무리 마법의 힘이라지만 자신보다 잘생겨졌다는 사실이 내심 캥기기도 했지만 그냥 담담하게 넘겼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어제 여관 주인의 둘째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녀가 루이스 일행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대강 15살 정도로 보였는데, 그리 예쁜 것도 아니고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평가를 내리자면 평민들 중에서 약간 얼굴이 잘빠진 정도였는데, 루이스가 소녀를 보기에는 착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소녀 같았다.
오랜 시간을 꿈을 통해 경험한 루이스의 사람 보는 눈은 범인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음…… 샐러드 대형 사이즈 한 개랑, 작은 사이즈 한 개, 비프스튜 세 그릇이랑 우리가 먹을 빵이랑 스테이크 큰 거 세 개 부탁할게. 여기 주스도 있나?”
“네, 사과 주스하고 오렌지 주스가 있습니다.”
“그럼 오렌지 주스 한 잔하고…… 아니, 오렌지 주스 세 잔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샐러드 대형 사이즈와 작은 사이즈 한 개, 비프스튜 세 그릇과 빵, 스테이크 큰 거 세 개와 오렌지 주스 세 잔 맞으십니까?”
“맞아.”
“2골드 67실버입니다.”
소녀의 말을 들은 루이스는 스틸 호크에게 눈짓을 주며 중얼거렸다.
“3골드라…….”
“네?”
소녀는 루이스가 가격을 반올림해서 말하자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소녀와는 달리 루이스의 말을 이해한 스틸 호크는 품에 갈무리 해두었던 골드 주머니에서 금화 세 개를 소녀에게 주었다.
“거스름돈은 33실버입니다.”
소녀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자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짐짓 화난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린가? 지금 귀족을 능멸하려는 건가? 분명 3골드라 하여 3골드를 주었는데 거스름돈이 있다니?”
당황한 낯빛을 띠던 소녀는 그제야 루이스의 말을 파악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그 후 곧장 여관 식당의 다른 손님들을 향해 갔다.
그들은 모두 11명으로 그들의 몸에 난 상처와 행색 등으로 그들이 용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거친.
지방의 영지이고 또한 몬스터도 그때 토벌했던 오크를 제외하고는 나오지 않은지 거의 반백 년이나 된 밸런타인 영지에는 용병들이 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루이스는 용병을 현실에서는 처음 보았다.
약간 신기한 눈으로 용병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대화들을 통하여 루이스는 그들이 11명으로 이루어진 소형 용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이스는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생각했다.
‘용병이라…….’
재밌을 것 같았다.
종종 그런 짓거리를 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루이스도 그런 아주 짧은 유희를 즐기면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루이스의 정신연령은 이미 성인보다 높았지만 몸은 어디까지나 13살에 불과했다. 키는 또래에 비해 조금 컸지만 일단 얼굴 자체가 꼬맹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꼬맹이가 용병 일을 한다니, 그것만큼 우스운 소리도 없을 것이다.
만약 한다고 해도 용병인 스틸 호크와 그를 따라다니는 두 명의 꼬맹이라는 스토리가 적당할 것이다.
“꺅! 이러지 마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보던 소리가 들렸다.
용병들과 약간 잘빠진 여관 주인 딸이 만나는 순간 일어나는 너무나도 흔한, 꿈을 통하여 너무나도 많은 삶을 겪어보았기에 이제는 신선함을 잃어 지루하기까지 한 이야기.
개념 상실한 용병들의 여관 주인 딸의 성희롱.
아마 조금만 지나면 용병들을 용감하게 무찌르는 잘생긴 미소년 검객이 나올 것이다.
“그만 두시오!”
한 청년이 자리를 박차며 소리치자 루이스는 씩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너무 흔한 레퍼토리.
청년이 용병들을 무찌르면 여관 주인 둘째 딸은 청년에게 반할 것이다.
“이 잡놈은 뭐야?”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영웅 감을 몰라보고 용병들이 버럭 화를 냈다. 청년은 그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하, 이 꼬맹이가 겁을 상실했나?”
개념을 상실한 듯한 용병이 소리쳤다.
“그만 두시오.”
청년이 담담하게 말하자 잠시간 침묵을 유지하던 용병들은 서로 눈치를 한 번씩 주고받더니 박장대소했다.
“크하하하! 이 새끼가 뭐라고 했냐?”
대가리에 똥만 찬 듯한 용병이 대표로 물었다.
“그만 두라고 했소.”
청년은 점잖게 말했다. 루이스는 청년이 꼭 무림의 명문 정파의 제자들과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용병이 성질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루이스는 청년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용병을 보면서 예전에 술 취해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정신을 놓은 새끼처럼 자신에게 달려들었다가 찰스에 의해서 정지되었던 용병, 크루샤가 떠올랐다.
크루샤보다는 작은 덩치였지만 분위기가 매우 흡사했다.
개념을 상실하고 대가리 나쁘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제 힘만 믿고 날뛰는 멍청한 육체파.
용병이 휘두른 주먹을 청년은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고순가?’
루이스는 그렇게 지레짐작했다.
아니,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루이스와 같은 판단을 할 것이다.
현재 청년은 너무 여유로웠다.
용병의 주먹이 청년의 손에 부딪혔다.
“흐읍!”
청년은 순간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이스는 그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청년의 모습은 완벽한 영웅의 그것과 같았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그다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용병의 주먹이 손에 닿은 청년은 곧장 자신의 손등에 다른 한 손을 올렸다. 하지만 용병의 힘이 꽤나 강하여 청년의 몸이 약간 떠올랐다.
‘이상해……. 뭔가 있어.’
루이스는 직감했다.
저 청년, 너무 이상했다.
“스틸 호크,”
루이스가 나지막이 부르자 스틸 호크가 그를 쳐다보았다.
“처리하라는 겁니까?”
“아니. 저 청년…….”
“청년이요? 이상하긴 합니다만…… 문제라도 있습니까?”
스틸 호크의 말을 듣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저 청년이 약간 특이하긴 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한 후 결론을 내리자면, 저 청년은 그저 영웅 노릇을 하려다가 개쪽이 된 한심한 청년이 되는 것이다.
루이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제일 처음에는 용병들을 아주 가볍게 분질러 버린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그것과 정반대로 용병들이 청년을 가볍게 분질러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힘이 매우 강하시군요.”
몸이 떠올랐었으나 날다람쥐같이 가볍게 착지한 청년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청년이 약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청년은 가볍게 걸으며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저건?’
언뜻 보기에는 그냥 가벼운 걸음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제왕보법(帝王步法)!’
남궁세가의 무공은 천하십성(天下十星)의 한 명이었던 남궁철현에 의하여 제왕신공(帝王神功)이라는 이름하에 재편성 되었다.
그것은 가주의 직계들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는데 루이스는 그 무공에 의해 결국은 죽음에 이르렀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저 청년…… 역시 진짜 뭔가 있어.’
무림의 무공을 펼치는 청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대륙의 무공과 무림의 무공은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오밀조밀 따지고 보면 아예 괴를 달리한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하십성에 들었던 남궁철현이 남궁세가의 무공을 재편성하여 만든 제왕신공을 펼치는 이가 있다?
이것은 쉬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도 혹시?’
자신처럼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했다.그래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저런 뻘짓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육체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던 자의 꿈을 꾸면 그 힘을 얻었었지만, 저 청년은 다를 수도 있잖은가?
“뭐, 뭐야? 이, 이 자식아!”
“이, 이 개자식이!”
용병들은 청년이 걸어오는데 묘한 기분을 받아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몸과 머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흡사 전장에서처럼.
전장에서는 흥분이라도 되기나 했지, 지금은 뭐랄까…… 인정하긴 싫지만 쫄고 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모두 숨을 죽이게 되었다.
제왕신공은 모든 무공을 아우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왕신공을 익힌 자는 다른 무공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섯 배는 더 빨리 깨우칠 수 있었다.
물론 진실은 그렇게 깨우치지 못한다. 무공이란 것은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기에, 하지만 자신이 본 무공을 이용하여 조금 응용하는 것은 쉬이 가능했다.
태웅처럼 부적을 이용한 도술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마교의 패도적인 무공을 보고 제왕신공을 패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했다.
평범하게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언제든지 다르게 반죽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제왕보법은 뛰어난 보법이라 불리면서도 평범한 보법과 다른 점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제왕보법을 이용하여 걷는 걸음에 기운을 남긴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살기? 아니야…… 투기인가?’
루이스는 청년의 걸음에 담긴 기운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경지가 낮기 때문일까, 아니면 청년의 경지가 높기 때문일까.
둘 다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두시지요. 폭력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청년의 말에 용병들은 땀을 삐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이 그 말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용병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압도적으로 강한 자신이 청년에게 쫄았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이 청년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날렸다. 청년은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청년의 웃음이 멈추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느긋느긋한 목소리.
청년 특유의 목소리 같았다.
“나쁜 짓을 한 벌은 받으셔야죠?”
청년이 그렇게 말하면서 빠르게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린 청년은 곧장 한 용병의 팔을 잡은 후 그 팔을 용병의 등으로 밀착시켰다. 그다음에 곧바로 그 팔을 위로 쳐올렸다.
제대로 방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끄아아아악!”
용병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 자식이! 무슨 짓이냐?”
한 동료 용병의 외침에 청년은 용병의 팔을 더욱 위로 올렸다.
“끄아아악! 아아악! 제, 제발! 아아아악! 그마아아아안! 아아아아악!”
팔이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에 용병이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며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청년은 용병의 팔을 발로 찼다.
뚜두둑.
“끄아아아악!”
팔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용병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용병의 입에서 게거품과 흡사한 거품이 나왔다.
“이 새끼가!”
아까는 쫄았었지만 동료의 주먹에 밀려날 정도로 청년이 약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자신들이 더 강하다고 판단한 용병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바뀌었다.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자신들이 약한 상대에게 쫄았다는 쪽팔림과 분노 등등, 여러 가지가 섞이자 용병들은 광기에 사로잡혔다.
‘니미.’
루이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용병들의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히면 일단 거의 정신 줄을 반 정도 놓는다 생각할 수 있었다.
저 청년이 용병들을 해치우면 간단하겠지만 루이스가 보기에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용병들에게는 무기도 있으니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것 참…… 역시 무인이 아니면 정신력이 이렇게 약한 건가? 아니지, 천둥이 그놈도 정신력이 약했으니, 무인이 아니어서 정신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약한 놈이, 약한 것인가?”
청년이 중얼거렸다.
문제는 그것이 대륙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분명…….
루이스가 몇 번인가 꿈을 통해 경험했던 세상인, ‘중원’이라는 곳의 언어였다.
‘역시나 꿈을 꾼 것인가?’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중원의 언어도 알고 있으니 거의 확실한 듯했다.
“이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청년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이자 한 용병이 그것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라 착각하여 자신의 몸통만한 배틀 엑스를 청년을 향해 휘둘렀다.
배틀 엑스는 상당히 빠르게 휘둘러졌는데 만약 용병이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고도 저 정도로 휘두를 수 있다면 아마 저 용병은 왕국 내에서 상당히 이름을 떨치는 용병이었을 것이다.
청년은 배틀 엑스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용병의 손목을 발로 차 버렸다.
그 후 청년과 용병들의 대치는 극에 달했다.
용병의 팔을 차서 배틀 엑스를 아예 떨어뜨리게 만든 청년은 곧장 용병의 목 언저리를 강하게 타격하여 기절시킨 뒤 다른 용병들과 싸움을 벌였다.
처음에는 한 명씩 덤비던 용병들이 계속해서 지자, 두 명, 세 명씩 달라붙었고 청년은 그때마다 가볍게 이겼다.
제일 처음, 청년은 용병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다가 실패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하수로 보였으나, 그 후 격투술을 이용하여 철저히 용병들을 깨부수자 식당 안의 다른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만 루이스는 달랐다.
착 가라앉은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과 용병들의 싸움은 끝이 났고 청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코 승리를 쟁취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와아아!”
“대단한데, 미남 청년?”
환호성이 일어났다.
여관은 상당히 좋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당연히 아침 식사 시간인 지금은 사람들로 식당이 북적거렸다.
그들도 용병들의 그런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괜히 나섰다가 다치기는 싫었기에 그냥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의 한 청년이, 그것도 상당히 잘생긴 청년이 용병들을 쓰러뜨리자 환호성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청년이 정중하게 여관 주인의 둘째 딸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얼굴을 상기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청년은 약간이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여관의 밖으로 나갔다.
여관을 나가기 전 청년은 아차하면서 말했다.
“제가 돈이 풍족한 것이 아니라 식당 수리비는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청년과 용병들이 싸우면서 식당 안은 난잡해졌다. 다행인 것은 싸움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싸움을 벌이며 깨지거나 박살이 난 물건들은 상당했다.
대충 살펴보아도 의자와 탁자가 열 개에 가까이 부러져 있었다.
청년이 나가자, 루이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스틸 호크와 크리스는 제자리에 남겨 둔 후 청년을 따라나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걸음을 옮기던 청년이 뒤로 돌아보며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는 자신 나름대로 기척을 숨겼으나 청년의 감각이 평범하지 않았던지 루이스의 존재를 알아챘다.
“안녕하십니까?”
루이스가 중원의 언어로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잠시 후 진정을 한 청년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지?”
마찬가지로 중원의 언어였다.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그리고 보아 하니 평민이신 것 같은데…… 이곳은 신분이 있는 세상입니다. 말을 그렇게 함부로 놓으시면 곤란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다른 세상의 언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남궁철현이라고 합니다.”
“……!”
“보아하니 저를 아시는 모양이군요.”
루이스가 상당히 놀라자 자신을 남궁철현이라고 밝힌 청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이거 정말 우스운 소리군요. 당신이 남궁철현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내가 살았던 시대의 300년 전 인물이 당신이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루이스가 살았던 시대는 아니다.
단지 루이스는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이 자신의 전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0.1퍼센트의 확률도 없으니까.
또 어차피 자신의 전생을 꿈꾸는 것이기에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루이스는 청년도 자신과 같은, 동시대의 꿈을 꾸었을 거라 생각했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라니 이상하게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 괴물처럼 느껴진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과 같다는 생각에 동질감이 들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보다 저자가 더 괴물에 가까웠다. 저자는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이의 꿈을 꿨으니까.
하지만……. 뭔가 미묘했다. 이상하게 동질감이 한 순간에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300년 후의 중원의 사람인가 보군요.”
청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참, 그런데 언제 꿈을 꿨지?”
루이스는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며 물었다.
“꿈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꿈을 꾼 것이 아닌가?”
“꿈이라니…… 거 참, 이해를 하지 못하겠군요.”
루이스는 청년을 응시했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변함없는 숨소리.
진실일 확률이 상당했다. 만약 거짓이라면 청년의 연기력이 뛰어난 것이리라.
“천하십성이었던 당신을 만나게 될 줄이야. 나는 그저 남궁세가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남궁의 무공에 대하여 상당히 자세히 알고계신 것 같군요.”
“그럼, 잘 알지.”
잘 알다마다.
그 무공을 펼치는 녀석 때문에 결국 죽었는데.
“남궁과 연이 있는 인물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반갑군요.”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루이스는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연은 있지만, 그다지 좋은 연은 아니지.”
루이스의 말에 청년은 상당히 헤퍼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이거, 제가 실례를 했군요.”
그러면서 손을 다시 뺐다.
“그런데 남궁철현이면서 왜 그렇게 약하지?”
“음……그렇게 보이십니까? 나름 잘 싸웠는데 말입니다.”
“내공이 없어, 마나 부적응자인가?”
루이스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말했다.
마나 부적응자라면 꿈을 꾸더라도 경지가 높아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만약 자신과는 다르게 힘이 안 생긴다면 그냥 꿈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도 강해질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보다 약간 싸움을 잘하는 수준인 것을 보면 마나 부적응자일 가능성이 상당했다.
“아니요, 내공은 있습니다. 단지…… 모든 혈맥이 막혀서 영약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뚫는데 오래 걸릴 것 같거든요.”
그 말에 루이스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 후 마나 회복 물약 중급을 하나 꺼내들었다.
원래 회복 용도로 사용하는 물약이지만, 만약 저자가 정말 남궁철현이라면 이것을 이용하여 혈맥을 어느 정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청년에게 이런 것을 줄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주고 싶었다.
루이스는 그것을 그냥 동질감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기(氣)가 상당히 밀집되어 있는 물이군요. 하오수라도 되는 겁니까?”
“아니, 그것은 내공을 순식간에 채워 주는 약물이다. 영약처럼 내공을 증진시켜 주지는 않지만, 만약 네가 진짜 남궁철현이라면 그것을 이용하여 혈맥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남궁철현이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졌다면 그것을 이용하면 한 달 안에 막힌 모든 혈맥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혈맥을 뚫을 정도의 실력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루이스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자, 청년은 호기심이 생긴 눈빛으로 물었다.
“저를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쪽에는 남궁세가에 그다지 좋은 인연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말에 루이스는 피식 웃었다.
“동질감이라 해 두지.”
그 말을 끝으로 루이스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다시 여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