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봉마록 1권 6화


1장 담천(6)


일의 심각성을 인식한 서문광천은 진대치에게 곧바로 조사에 착수할 것을 명했다.
문제는 당시 우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집법대의 대원 중 납치된 아이의 가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대치가 우삼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미 초씨세가에 대한 이야기가 외부로 새어 나간 뒤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희생자의 가족들이 서문광천에게 몰려와 자신들의 손으로 초씨세가를 단죄할 수 있도록 청했다.
서문광천이 막기에는 그들의 분노가 너무도 컸다.
거기다 흡혈마공과 혈천이 관계된 일인지라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사고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군중들은 집법대와 함께 초씨세가로 쳐들어갔고, 정기를 빼앗기고 목내이가 되어 버린 여섯 아이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노한 군중들은 초씨세가의 식솔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고, 사건의 원흉인 초유벽은 팔다리를 자르고 피부를 벗긴 후 들판에 내다 버렸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죽고, 그 사람은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됐어요! 이것이 무벌의 법인가요? 정당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았는데, 모두들 기뻐하는군요!”
서문유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초씨가문이 잔혹하게 멸문당한 것은 나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네가 정인의 죽음에 아파하듯, 그들도 자식들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어찌 내가 그들의 분노를 단죄한단 말이냐.”
서문광천이 엄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초유벽을 죽임으로써 수백의 목숨을 구했음을 너는 모르느냐. 어차피 너와는 맞지 않는 아이였다. 지금은 안타깝겠으나 슬픔이 가시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면 너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렵게 말을 맺은 서문광천이 한숨을 쉰 후 일어서서 방을 나섰다.
그러는 동안 서문유향은 침대에 쓰러져 하염없이 울었다.
초유벽을 너무도 잘 아는 서문유향은 결코 아버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어떤 자가 꾸민 일인지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초유벽의 한을 풀어 주고 말 것이라 다짐했다.



2장 진대치(1)


“담천, 자네 있는가?”
‘놈!’
담천이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곳에는 원수 진대치가 특유의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좁은 턱 선.
마치 한 마리 뱀을 보는 듯한 외모.
담천의 머릿속으로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당시가 떠올랐다.

콰앙!
대문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진대치가 잔뜩 흥분한 사람들을 이끌고 초씨세가로 난입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초씨세가의 가주 초무진과 가신들이 달려 나와 그들을 막아섰다.
“후후, 초씨가문이 흡혈마공을 익혔다는 제보가 있소이다. 해서 장원을 수색해야겠으니 물러서시오.”
진대치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초씨세가의 가솔들을 살폈다.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그의 눈은 마치 뱀의 그것처럼 한 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메말라 있었다.
그러던 그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초유설을 발견한 진대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대치의 음산한 시선에 초유설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흡혈마공이라니! 모함이다!”
초무진이 분노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흥, 증인이 있소! 당장 놈을 데려와라!”
진대치의 명이 떨어지자 무사들이 비루한 노인을 끌고 왔다.
그는 바로 초씨세가의 노복이었던 우삼이었다.
초무진의 표정이 굳었다.
우삼은 삼십 년이 넘도록 초씨세가와 함께한 가족과도 같은 노복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저 무례한 자들과 함께하고 있단 말인가.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엄습해 왔다.
“네놈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그대로 다시 한 번 해 보거라!”
눈썹을 치켜올린 진대치가 우삼을 끌어내 앞쪽에 세웠다.
“소, 소인은 초씨세가의 하인 우삼이온데, 그, 그것이…… 첫째 공자님께서 밤중에 아…… 아이들을 몰래 잡아오는 것을 보고는 근자에 실종된 아이들에 대한 일이 생각나서…….”
“그만! 들었다시피 증인까지 있는데, 이래도 발뺌할 것이오?”
초유벽은 눈앞이 노래짐을 느꼈다.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된 것이다.
저들은 최근 벌어진 아이들의 실종이 초유벽의 짓이라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초유벽이 흡혈마공을 익히기 위해 아이들을 납치해 정기를 취했다는 이야기였다.
겁이 많아 피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초유벽이었다.
그런 자신이 흡혈마공을 익혔다니.
초유벽은 자신이 무시무시한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온몸이 두려움에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거짓말이다! 우삼, 어찌 네놈이 배은망덕하게 우리 가문을 모함한단 말이냐! 그간 내가 너를 얼마나 아꼈거늘!”
초무진이 분노해서 소리쳤다.
가족처럼 대해 주었던 우삼의 배신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저…… 저는……”
우삼이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흥! 증인을 함부로 핍박하다니! 네놈들이 정녕 무벌의 지엄한 법을 업신여기는 것이냐! 얘들아, 세가를 샅샅이 뒤져서 증거를 찾아내도록 해라!”
진대치가 수하들에게 명을 내리자 무사들이 세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놈들, 감히 무슨 짓이냐!”
초무진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으나, 무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실종자의 가문들을 비롯해 무려 이백에 가까운 인원이 살벌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때, 진대치의 수하 중 하나가 우측 건물 지하에서 올라오며 소리쳤다.
초무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곳은 초씨세가의 직계들이 무공을 수련하는 석실이었다.
최근 초유벽은 그곳에서 전혀 수련을 하지 않았다.
한데 무엇을 발견했단 말인가.
초무진의 우려 속에 진대치와 다른 가문의 대표들이 함께 그리로 향했다.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아이들의 시체가 있다!”
석실에서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무사들이 끌어낸 아이들의 시신은 목내이마냥 수분이 하나도 없이 바싹 메말라 있었다.
흡혈마공으로 정기를 빼앗긴 희생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 천하에 악적들!”
“놈들을 죽여라!”
“아이들의 원수를 갚아라!”
분노한 희생자의 가족들과 무사들이 그대로 초씨세가 식솔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초무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죄가 있든 없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도, 당장 유벽이와 유설이를 데리고 도망치게! 안방 침상의 왼쪽 기둥을 돌리면 비밀 통로가 열릴 것이네.”
초무진이 낮은 소리로 가장 믿을 만한 가신인 육천도에게 다급히 명을 내렸다.
“가주님!”
“어서! 시간이 없네!”
“크흑! 보중하십시오!”
이를 악문 육천도가 멍하니 서 있는 초유벽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공자, 정신 차리시오! 동생과 함께 당장 여기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초유벽은 너무도 두려워 다리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어서!”
육천도의 외침에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초유벽이 초유설을 데리고 육천도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초유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진대치가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잡아라!”
곧 진대치와 수하들이 초유벽을 쫓았다.
“어딜!”
그에 초무진과 가신들이 서둘러 방문을 막아섰다.
“다 죽여라!”
진대치의 명이 떨어지자 집법대와 여러 가문의 무사들이 검을 빼 들고 안채를 향해 돌진했다.
진대치는 그 틈을 타 초유벽의 뒤를 쫓았다.
초무진을 비롯한 초씨세가의 고수들은 사력을 다해 버텼지만 이백이 넘는 이들의 공격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초씨세가의 식솔 오십여 명이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다.

“헉헉!”
비밀 통로를 빠져나온 초유벽과 초유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판을 달렸다.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장강까지만 달리면 배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놈들을 따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천도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재촉했다.
초유벽이나 초유설, 두 사람 다 무공이 거의 없는 터라 걸음이 너무도 느렸다.
이러다가는 곧 따라잡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놈들이다! 놈들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배가 있는 곳까지는 백 장도 넘게 남은 상황에서 놈들에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초유벽, 이놈! 어디를 그리 꽁지 빠지게 도망치느냐! 크크크!”
진대치의 목소리였다.
다른 이들이 초무진과 초씨세가의 무사들을 상대하는 동안 진대치는 직속 수하들을 데리고 초유벽을 쫓아왔던 것이다.
이 순간, 초유벽은 너무도 무기력한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조금만 더 열심히 무공을 익혔더라면…….’
그동안 무공을 멀리한 것에 대한 후회가 일었다.
“활을 쏴라!”
진대치가 수하들에게 명했다.
쉬이이익!
“허억!”
초유벽이 다리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공자!”
“오라버니!”
“이익!”
결국 보다 못한 육천도가 이를 악물고 도를 빼 들었다.
“오너라!”
“하하하하! 의기는 가상하다만, 상대를 잘못 만났구나!”
쉬익!
진대치의 검이 대기를 가르자 육천도의 오른팔이 허공에 떠오르며 피를 뿌렸다.
“크악!”
그와 동시에 왼쪽으로 치켜 올라갔던 진대치의 검이 반대로 궤적을 그리며 육천도의 목을 쳤다.
“꺄아악!”
잔혹한 모습에 초유설이 비명을 질렀다.
주변을 살핀 진대치가 다른 이들이 아직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눈을 빛내며 초유설에게 다가갔다.
“호오, 내가 네년을 예전부터 눈여겨보았다. 오늘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네년이 처녀로 죽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마! 크크큭!”
진대치가 음험한 시선으로 초유설을 바라보았다.
“네 이놈! 무슨 짓이냐! 이 더러운 놈!”
놀란 초유벽이 허둥지둥 진대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무공이 보잘것없는 초유벽으로서는 힘없는 몸짓에 불과했다.
퍼억!
“꺼어억!”
이내 진대치가 달려들던 초유벽의 명치를 무릎으로 찍었다.
초유벽은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놈을 제압해라!”
진대치의 수하들이 발버둥 치는 초유벽을 제압해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커어억!”
“놈의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라!”
진대치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명했다.
수하 중 하나가 초유벽의 머리카락을 쥐고 억지로 초유설을 향하도록 했다.
“잘 보거라!”
진대치가 초유설을 덮쳤다.
“꺄아아악!”
동생의 처참한 비명 소리에 초유벽은 눈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