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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록 1권 12화
3장 지강현의 괴사(怪事) (3)
하얀 얼굴에 걸린 시리도록 차가운 미소에 일곱 사내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곽진의 미소가 점점 짙어지며 살을 엘 듯한 한기가 일곱 사내의 온몸을 압박했다.
“주, 주군! 크윽!”
공간을 가득 채운 살기에 더는 버티지 못한 일곱 사내가 결국 신음성을 토해 냈다.
“특별한 명이 있을 때까지는 자중하라고 일렀거늘! 너희가 이제는 나를 우습게 보는 모양이로구나!”
화아아아악!
곽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어마어마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쩌어엉!
동시에 현청의 기둥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기파가 일곱 사내를 강타했다.
“커어억!”
“크윽!”
일곱 사내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주, 주군, 용서를…….”
일곱 사내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처박으며 용서를 빌었다.
“용서라…….”
곽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순간, 일곱 사내 중 도경이란 자의 몸이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곽진에게로 주르륵 딸려갔다.
“주, 주군!”
도경이 두려운 눈빛으로 손발을 허우적댔으나 부질없는 몸짓에 불과했다.
어느새 도경의 머리는 곽진의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리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라지만 똥오줌은 가려야 할 게 아니냐! 주인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개새끼들은 필요가 없지!”
후우우웅!
곽진의 손에서 붉은 기류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도경의 온몸을 감쌌다.
“크으으윽!”
덜덜덜!
도경의 눈이 뒤집어지며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경련을 일으켰다.
“내가 네놈이 한 짓인 줄 모를 줄 알았더냐! 권속이 되기 전부터 인육이라면 환장을 하던 네 녀석이 아니더냐! 결국, 내가 네놈들에게 준 공포가 피에 대한 갈증보다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로구나!”
곽진의 두 눈에서 붉은 광망이 터져 나왔다.
“주군, 잘못했습니다!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쿵! 쿵!
나머지 여섯 사내가 피가 나도록 이마를 바닥에 부딪치며 용서를 빌었다.
우우우우우웅!
“커, 커헉!”
콰당탕!
곽진이 거의 초죽음이 된 도경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무려 삼 장이나 날아간 도경은 의식을 잃은 채 꿈틀댔다.
여인과도 같이 가냘픈 곽진이 거구의 도경을 한 손으로 집어 던지는 모습은 몹시 이질적이고 기괴할 정도였다.
“좋다! 비록 쓸모없는 네놈들이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마! 만일 또다시 제멋대로 날뛴다면, 그땐 너희의 더러운 혼백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쿵! 쿵!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거라!”
한데 바로 그때였다.
“아버지를 살려 내!”
“어허, 이러지 말고 돌아가거라!”
“곽진! 이 천하의 악적!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갑자기 현청 밖이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이건 또 뭐야?”
곽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 주군. 아마도 죽은 주부의 딸년이 겁도 없이 난동을 부리는 듯합니다…….”
새로운 주부 적괴가 곽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제가 당장 저년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한쪽 귀가 위로 삐쭉하게 솟아나 짝귀라 불리는 사내가 얼른 일어나 현청 문 쪽으로 향했다.
“그만!”
곽진의 목소리에 짝귀가 급히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고개를 숙였다.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더냐! 계획이 성사될 때까지는 되도록 이목을 끄는 일을 피해야 한다 말하지 않았더냐!”
추상같은 곽진의 호통에 사내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 그럼 저년을 그냥 놔두실 작정이십니까?”
적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럴 순 없지. 저년이 앞으로도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아무래도 골치가 아파질 것이 분명해.”
곽진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적괴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위사들에게 쫓아 보내도록 하고, 상황을 봐서 나중에 조용히 없애도록 해라. 절대 흔적을 남기거나 다른 놈들의 눈에 띄면 안 된다. 만일 이번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땐 네놈들이 쓸모가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겠지.”
곽진의 스산한 미소에 적괴와 여섯 사내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번 일도 실패한다면 곽진은 분명 그들을 가차 없이 소멸시킬 것이다.
“이제 그만 눈앞에서 꺼지거라!”
“충!”
그들은 혹시라도 곽진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 * *
지강현에 도착한 담천과 천혜린은 수소문해 저장강 사건의 목격자인 아이들을 찾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들과 대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허락한 경우도 아이들이 그때의 충격으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부모에게 대충이나마 들은 이야기들은 소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아이를 삼켰다는 것.
어차피 그들도 직접 그 상황을 겪은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담천과 천혜린은 마지막으로 아이가 실종된 현장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이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강가로 향하기 위해 막 걸음을 옮길 때였다.
“곽진! 우리 아버지를 살려 내! 이 살인마야! 아버지를 증거도 없이 모함하고 죽이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인간이라 할 수 있느냐!”
음식점과 시전들이 몰려 있는 번화가 끝 쪽에서 여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지강현의 현청이 있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다가가 보니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악을 쓰며 현청 위사들과 맞서고 있었다.
주변에는 소란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어느새 제법 많이 운집해 있었다.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소현이, 너만 더 힘들어질 뿐이야…….”
위사들은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소현이라 불린 여인을 돌려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여인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 살인자 곽진과 만나야겠으니 비켜요!”
그녀는 죽은 주부 양윤의 딸, 양소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새로 부임한 지현을 죽이려다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되었다는 말을 양소현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문관이었다.
나이도 오십이 넘어 기력도 변변치 않은 그가 무슨 힘으로 지현을 죽인단 말인가.
아니, 만일 그럴 수 있다 쳐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어이없는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한데 재판도 없이 즉결 처분이라니, 분명 현청에서 진실을 숨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양소현은 그때부터 사방을 돌아다니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조사했다.
하지만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현청의 관리들 외에 누구도 그 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직접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마음먹고 이처럼 현청을 찾아온 것이었다.
“어허, 지현님이 그리 한가하신 줄 아느냐!”
“흥! 곽진의 해명을 듣기 전에는 이대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요!”
양소현이 털썩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소현아, 이러지 말고 일단 돌아가면 내가 지현께 말씀드려 시간을 잡도록 하마.”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위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때, 현청의 문이 열리며 적괴가 나타났다.
“뭣들 하느냐! 네놈들이 기어코 지현 어르신께 치도곤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당장 저년을 끌어내지 않고 뭐하는 게냐!”
날카로운 적괴의 호통에 두 위사가 얼른 소현의 양팔을 잡고 억지로 끌어내 어딘가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담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런 탓인지 여인의 절규가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얼굴을 차갑게 굳힌 담천이 위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 뭐하는 거죠? 당장 멈추세요!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설마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아니겠죠?]
걸음을 멈춘 담천이 분노한 눈으로 천혜린을 노려보았다.
[어리석은 짓은 마세요. 그녀가 불쌍하긴 하지만 당신의 복수를 포기할 만큼 중요한가요?]
담천이 이를 악물고 한참을 천혜린을 노려보다 이윽고 결심을 내린 듯 다시 위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깐! 휴, 정 그렇다면 일단 저들의 뒤를 따르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나서기로 해요. 아직은 저 여인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에요. 이 이상은 저도 양보할 수 없어요.]
“좋다.”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담천도 알고 있었기에 일단 천혜린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인 담천은 천혜린과 함께 멀찍이 떨어진 채 조심스럽게 소현을 따라갔다.
담천의 우려와는 달리 현청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벗어나자 위사들은 양소현을 놓아주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소현아, 잘못하면 너 때문에 우리까지 죽겠다.”
젊은 위사가 무뚝뚝하던 현청 앞에서의 태도와는 달리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현청 사람치고 소현과 안면이 없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현청에서는 지현과 수하들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모질게 대한 것이다.
“형님의 일은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네가 이런다고 무엇이 바뀐다는 말이냐? 이러다가 오히려 너까지 목숨을 잃게 될까 두렵구나.”
나이 먹은 위사 오구가 측은한 눈빛으로 소현을 달랬다.
양윤은 위사들과 관병들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성품이 온화하기도 하고 모든 이에게 격의 없이 대해 현청을 지키는 관리들과 위사들에게 덕망이 높았다.
게다가 오구는 이전부터 양윤과 잘 아는 사이였다.
직책은 차이가 났으나, 자주 술자리를 함께하며 형님 아우하던 사이인 탓에 양소현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오구도 이번 일이 석연치는 않았으나, 그에게는 반박을 할 수 있는 증거나 사건에 대해 파고들 용기가 없었다.
더욱이 새로운 지현인 곽진은 관리들조차 두려움에 떨 정도로 무서운 자였다.
생긴 것은 여인처럼 유약해 보이지만 가끔씩 비치는 번들거리는 눈빛을 볼 때마다 오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자라면 언제든 사람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자일 것임이 틀림없었다.
만일 그가 소현을 없애려 마음먹는다면 그것은 벌레 한 마리를 밟아 죽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리라.
“저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어요. 어찌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한을 자식 된 도리로 모른 체하란 말인가요? 흐흑…….”
소현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양소연에게는 아버지 양윤이 유일한 가족이자 버팀목이었다.
한데 그런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은 것이다.
“휴, 돌아가신 형님도 네가 다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곽진은 너무도 무서운 자다. 네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부디 돌아가신 네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자중하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