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봉마록 1권 19화
5장 삼괴(三怪) (2)
그러니 지금은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단박에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대갈통 굴리는 소리가 예까지 들린다!”
그때, 담천의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회가 주먹을 뻗어 왔다.
상이 겹치는 듯 권이 분열하더니, 순식간에 십여 개의 권격이 담천을 덮쳤다.
‘헛!’
전생에 무공 실력이 형편없던 담천으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무서운 공격이었다.
진대치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위력인데다 온몸이 권격의 범위 안에 들어 있어 마땅히 어디를 막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담천은 어쩔 수 없이 왼쪽으로 몸을 날려 권격의 범위를 벗어났다.
“크크크! 어서 오너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흉소를 터트린 진구가 강력한 장력을 쏘아 낸 것이다.
쩌어엉!
‘젠장!’
이미 몸을 날린 터라 담천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리를 하더라도 암혼기를 더 끌어 올려 버티는 수밖에!’
이를 악문 담천이 암혼기를 끌어 올리며 급히 몸을 틀었다.
퍼억!
“으윽!”
다행히 심장은 피했으나 암혼기를 둘렀음에도 일격에 어깨뼈가 부서져 나갔다.
담천은 고통을 참으며 그대로 진구를 지나쳤다.
“이런! 놈이 빠져나간다!”
놀란 진구가 급히 담천을 향해 재차 장력을 날렸다.
콰앙!
“커헉!”
등에 장력이 적중하며 담천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척추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여기서 멈추면 끝이다!’
담천은 통증을 억누른 채 담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사실 불사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담천으로서는 여기서 죽임을 당한다 해도 걱정할 게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서문유향이었다.
담천이 죽게 되면 서문유향도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야 잠깐 앓아누운 것으로 끝났지만, 자신이 죽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충격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는 천혜린의 말을 생각하면 다음에는 서문유향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절대 서문유향을 다치게 할 순 없었다.
“침입자가 도망친다! 모두 놈을 막아라!”
진가성의 고함 소리에 사방에서 몰려든 무사들이 담천의 앞을 막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
담천은 팔목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다행히도 팔찌의 색깔은 아직 정상이라 조금 더 무리를 해도 지장이 없을 듯했다.
“이이익!”
암혼기를 끌어 올리자 기운이 짙어짐과 동시에 천령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에는 천령검을 뽑을 틈조차 없을 정도로 세 노인의 공격이 매섭고 사나웠던 것이다.
번쩍!
혈광이 번쩍인다고 느껴진 순간, 담천의 앞을 막아선 세 무사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담천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하지만 무리해서 서두른 탓에 담천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어느새 옆구리와 허벅지에 두 줄기 검상을 입은 것이다.
“젠장! 정말 빠른 새끼군!”
담천의 놀라운 신법에 뒤따르던 진회가 욕지기를 쏟아 냈다.
갑작스런 담천의 기세 변화에 서둘러 몸을 날렸건만, 어느새 담천은 담장 근처까지 도달한 것이다.
“놈!”
쉬이익!
담천이 담을 넘으려는 순간, 공기를 가로지르는 파공성과 함께 명치에서 불에 데인 것 같은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컥!”
몸을 휘청이며 담 위에 버티고 선 담천의 복부 앞으로 피 묻은 검날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담천을 따라잡는 게 무리라 여긴 진가성이 검을 집어 던진 것이다.
결국 치명상을 입은 담천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담장에서 떨어졌다.
쿵!
“크윽!”
만만치 않은 부상이었으나 담천은 어차피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의식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통증을 극복하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쫓아라! 부상이 심한 상태니,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
뒤쪽에서 무사들을 재촉하는 진대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소란을 듣고 어느새 달려 나온 모양이었다.
순간, 담천의 눈에 혈광이 일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놈의 목을 치고 싶었으나, 지금은 참아야 했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당장은 이곳에서 피하는 게 우선이다!’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담천은 장강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흘러내린 핏자국 때문에 이대로 담씨세가로 향한다면 추격자들에게 꼬리를 잡힐 것이 분명했기에 우선 강물에 흔적을 지워야 했다.
하지만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출혈이 너무 심한 탓이다.
아무리 불사의 육신이라 해도 피가 모두 빠져나가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담천은 자꾸만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일각쯤 달리자 드디어 장강이 시야에 들어왔다.
‘됐다!’
풍덩!
물속으로 몸을 날린 담천은 무거운 팔다리를 움직여 하류 쪽으로 떠내려갔다.
그나마 한쪽 어깨는 박살이 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
거의 무의식중에 하류로 떠내려가던 담천은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멈춘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방향을 잃고 정신없이 헤엄치다 아마도 강가에 닿은 모양이었다.
그다지 멀리 내려온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이대로 강변에 머물면 추격자들에게 발견될 확률이 높았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십 장 정도 떨어진 갈대숲이 보였다.
어떻게든 그곳까지만 가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담천은 마지막 힘을 다해 갈대숲으로 기어갔다.
배를 뚫고 나온 검이 땅에 스치며 상처가 더욱 벌어졌다.
배에서 흘러내린 피가 담천이 지나간 자리 위로 길게 흔적을 남겼지만, 담천은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이미 지나친 출혈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갈대밭까지의 십 장 거리가 마치 천 리 길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초인적인 의지로 갈대밭에 도착한 담천의 시야에 흐릿한 사람의 신형이 보였다.
‘여기까지인가…….’
“쿨럭!”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는 담천은 피를 토해 내며 정신을 잃었다.
* * *
“어떻게 됐습니까?”
진원도가 장원으로 돌아온 삼괴에게 물었다.
“니미럴! 뭐 그리 빠른 새끼가 다 있어!”
신경질을 부리는 진회의 모습에 진원도는 듣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허! 어르신들이 놓치다니, 정말 놀랍군요.”
삼괴가 누구이던가.
세 사람 모두 초절정에 오른 극강의 고수들이었다.
한데 셋이서 자객 하나를 놓치다니, 진원도로서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놈이 장강으로 뛰어든 듯하다. 장강에서 놈의 흔적이 끊겼다.”
밤의 장강은 물살이 제법 빠르다.
자객의 흔적이 금세 쓸려내려 갔을 것이다.
“일단 아이들에게 강변을 샅샅이 훑으라 명했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씁쓸한 얼굴로 진가성이 말했다.
그로서도 담천을 놓친 것은 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흥, 어차피 그 상처로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거야!”
진회는 담천의 죽음을 확신했다.
검이 명치를 관통했고, 장강까지 도주하면서 흘린 피의 양을 봐도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로써 한 놈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얼굴이 잔뜩 상기된 진대치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정말 이상한 놈이었어. 그 검은 기운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구만. 마기도 아니고, 사기도 아니고…… 생전 처음 접해 보는 기운이야. 게다가 무공은 형편없는데, 신법은 오히려 우리를 능가하다니…… 흐음.”
“그 정도 부상을 입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
진가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이라면 그만큼 피를 흘렸으니 이미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한데 놈은 그 상태에서도 놀라운 속도로 신법을 전개했다.
상식적으로 모순되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당분간 더 머물러야겠군.”
광동진가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삼괴는 그들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어르신들이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진원도가 삼괴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 진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전력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가장원의 폭풍 같던 밤이 지나갔다.
* * *
“으음…….”
담천은 현기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두 개로 겹쳐 보이던 상이 차츰 또렷해졌다.
“일어나셨군요.”
“그…… 대는?”
놀랍게도 담천 곁에 있는 이는 해륜과 양소현이었다.
방의 크기나 구조로 보아 아마도 자신이 깨어난 곳은 객잔의 객실인 듯싶었다.
“어찌 된 거요?”
몸을 일으킨 담천이 해륜에게 물었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군요. 대체 당신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해륜이 굳은 표정으로 담천을 쳐다봤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담천을 잔뜩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무슨 뜻이오?”
마치 심문이라도 하는 듯한 해륜의 태도에 담천의 말투도 자연 딱딱해졌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그제야 담천은 해륜이 잔뜩 경계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황상 해륜이 자신을 구했음이 분명했다.
담천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갈대밭에서 무언가 희미한 형체를 보곤 기절했던 상황.
아마도 그 희미한 형체가 다행히도 진가의 추격자가 아닌 해륜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담천의 몸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한쪽 어깨는 산산이 박살 났고, 한 자루 검이 명치를 관통한 상태였다.
한데 하룻밤 만에 상처가 아물고 그 흔적조차 사라졌다.
불사의 육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회복력이 발휘된 것이다.
거의 죽을 정도의 부상이 하룻밤 만에 완치된다는 것은 상식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물론, 특별한 기공을 익히거나 희귀한 영약을 먹은 무인들 중 간혹 상상을 초월하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몇 달을 앓고 일어나도 기적이라 생각할 상처가 단 반나절 만에 깨끗이 나은 것이다.
당연히 해륜으로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게다가 담천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살폈다면, 심장이 거의 뛰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심하게 다쳐서 그러려니 했겠지만, 상처가 나은 후에도 마찬가지라면 누구나 해륜처럼 반응할 것이 분명했다.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러나 담천은 일단 시치미를 뗐다.
“그 무서운 회복력은 어떻게 된 겁니까? 게다가 어째서 맥이 잡히지 않는 것이오?”
해륜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내가 왜 그대에게 그것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해야 되는 거요? 강호에서 상대방의 무공 내력을 함부로 묻는 것이 결례임을 그대도 알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