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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록 1권 20화


5장 삼괴(三怪) (3)


담천은 은근히 자신의 몸 상태가 독특한 무공 때문임을 강조하자 해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만일 담천의 말대로 놀라운 회복력과 거의 뛰지 않는 맥이 그가 익힌 무공과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행동은 결례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해륜 도사님, 두 분이 무슨 오해가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담 공자는 어제 괴물을 물리치고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그런 분이 나쁜 분일 리가 없을 거예요.”
양소현도 해륜의 의심이 지나치다 여기는 듯했다.
“흠…….”
침음성을 흘린 해륜은 잠시 어제의 상황을 생각했다.

그가 담천을 구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일이었다.
관도를 따라 의창에 들어서던 양소현과 해륜은 갈대숲에서 꿈틀대는 인영을 발견하곤 놀라 천천히 다가갔다.
복면을 쓴 인영은 그들이 다가서자 곧 혼절했고, 갈등하던 해륜은 어쨌든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먼저였기에 그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다.
의원으로 데려갈까도 생각했으나, 의원의 위치도 모를뿐더러, 복면을 쓴 것과 진가의 무사들이 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당히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기 위해 복면을 벗긴 해륜과 양소현은 자신들이 데려온 부상자의 정체가 담천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해륜은 급히 응급처치를 시도했으나 맥이 거의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잠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눈을 떠 보니 담천이 말끔하게 나아 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맥은 거의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시체와 가까운 상태였다.
그동안 자신의 경험으로 이와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강시나 요마들.
때문에 해륜으로서는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대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무공 때문이라면 제 행동을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믿을 수가 없군요. 게다가 광동진가의 무사들에게 쫓기는 것도…….”
해륜이 말꼬리를 흐렸다.
광동진가는 무벌에 소속된 가문이다.
담천이 무슨 일을 벌였기에 그들이 저토록 눈에 불을 켜고 쫓는단 말인가.
‘이런!’
담천은 그제야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어제 갈대밭으로 기어오면서 혈흔이 남았다면 놈들이 객잔에 들이닥칠 수도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흔적은 제가 모두 지웠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담천의 표정을 읽은 해륜이 말했다.
“어쨌든 고맙소.”
자꾸 캐묻는 것이 귀찮기는 했으나, 해륜 덕분에 정체를 숨길 수 있었으니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분명했다.
“휴…….”
잠시 갈등 어린 표정으로 담천을 살피던 해륜이 답답한 듯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해륜이 잇고 있는 일맥은 대대로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었다.
바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귀와 요마들을 잡는 것이었다.
마귀와 요마들은 일반 악당이나 마인들보다도 몇 배는 더 위험한 존재다.
처음 양소현의 집에서 다짜고짜 담천을 공격했던 이유도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륜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담천에게 제마부(制魔符)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요마라 할지라도 제마부에는 어떻게든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약한 놈이라면 행동의 제약을 받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강한 놈들은 자신의 요력으로 제마부를 파괴해 버린다.
한데 담천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마치 평범한 종이 쪼가리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곧 담천이 요마와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륜의 감각은 자꾸 담천이 인간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그럼 신인가? 훗.’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해륜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그대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 없으니, 난 이만 가 봐야겠소. 이번에 베풀어 주신 도움은 언젠가 꼭 갚도록 하겠소.”
담천은 더 이상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당장 담천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집에서도 난리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한편, 해륜의 미간에도 내 천 자가 그려졌다.
아직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대로 그냥 보내자니 무언가 꺼림칙했다.
만일 담천이 요마라면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당분간 그를 감시해야 되는데…….’
해륜이 고민에 빠지든 말든 담천은 이미 방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자 다급해진 해륜이 얼른 불러 세웠다.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담천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 은혜, 지금 갚으십시오.”
담천이 약간 짜증이 담긴 눈빛으로 해륜을 바라봤다.
“지금은 바빠서 안 되고…….”
담천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해륜이 급히 말했다.
“아아, 시간이 걸리거나 담 공자에게 그리 부담이 되는 일도 아니니 꼭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막무가내로 나오는 해륜을 보며 담천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휴, 좋소. 어디, 들어나 봅시다.”
“사실, 지금 양 소저와 저는 지강현에서 도망쳐 오는 길입니다.”
해륜이 지강현에서 있던 일을 담천에게 설명했다.
곽진의 행패와 그들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자 담천 또한 관심을 느꼈다.
아무래도 지강현의 상황은 담천에게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해서 말인데, 지금 양 소저와 저는 갈 데가 없는 몸이오. 객잔에서 머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은자가 넉넉하지 않은 도사의 몸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기란 힘든 입장이지요. 그러니 그대의 집에서 당분간 지낼 수 없겠소?”
담천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지 않아도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해륜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무척 귀찮고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혜를 들먹이며 하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저 집에서 며칠 지내게 해 달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담천이 극구 거부한다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담천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좋소. 대신 절대 날 귀찮게 하거나 내 일에 대해 참견하지 않는다 약속하시오.”
“하하하, 걱정 마시오. 도사가 하는 일이야 대부분 정적인 것이니 결코 그대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오.”
해륜이 만족스러운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일은 집에도 비밀로 해 주시오.”
해륜은 혹시라도 담천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담천은 두 사람을 데리고 담씨세가로 향했다.

* * *

“소공자님, 놈의 흔적을 찾았답니다!”
광동진가의 장원에서 나온 무사가 업무를 보던 진대치를 찾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진대치가 무사에게 물었다.
“놈이 사라졌던 곳에서 삼백 장쯤 떨어진 아래쪽 강변에서 혈흔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시체는!”
“그것이…….”
무사가 진대치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거리자 참지 못한 진대치가 채근을 했다.
“어서 말해 보거라!”
“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대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놈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앞으로도 자신을 향한 놈의 암습이 계속될 것이란 말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놈이 잡힐 때까지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내가 이 의창을 전부 뒤져서라도 반드시 놈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진대치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 * *

담천과 두 사람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아이고, 도련님. 어디 갔다 이제야 오십니까요! 가주님과 마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아십니까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소소가 호들갑을 떨며 담천을 맞이했다.
아침부터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걱정했을 만도 했다.
“이젠 몸도 다 나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산에서 수련 좀 하고 왔다.”
담천은 미리 생각해 둔 대로 자신이 사라졌던 이유를 설명했다.
담씨세가의 장원 뒤쪽으로는 언덕에 가까운 이름도 없는 작은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담천이 그곳에서 수련을 하곤 했다는 사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린 것이다.
“아휴, 그럼 쇤네한테라도 미리 언질을 주시지요!”
물론, 담천이 애도 아니고 잠시 집을 비웠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얼마 전 큰일을 겪은 터라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하하, 미안하구나.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툴툴대는 소소의 모습이 귀여워 담천이 미소를 짓다가 멈칫했다.
자신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억울한 죽음과 가문의 멸망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 다시 살아난 이후에는 오직 복수만을 생각해 온 담천이었다.
한데 부활한 이후 처음으로 웃게 된 것이다.
‘내게도 아직 감정이란 게 남아 있었나?’
아마도 소소가 죽은 동생 초유설을 연상시켰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담천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소소는 소소대로 어리둥절했다.
담천이 이토록 환하게 웃는 모습은 거의 처음이었다.
주화입마 전에도 워낙에 무뚝뚝하고 무공에만 열중하던 그였고, 주화입마 이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도련님이 크게 다치고 나더니 성격이 변하셨나?’
고개를 갸우뚱하던 소소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어, 어랏! 그 잘생긴 도사님이네!”
담천의 뒤에 있는 해륜을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도사님, 저 기억하시지요? 저번에 예쁘다고 부적까지 공짜로 주셨잖아요!”
“아, 기억하다마다요. 이렇게 어여쁜 아가씨를 어찌 잊을까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해륜을 보며 소소가 얼굴을 붉혔다.
밝게 웃는 해륜의 모습은 같은 사내라도 반할 정도로 눈이 부셨으니 소소가 부끄러워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 그런데 어찌 도련님이랑 도사님이 함께 오신 건가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는지 소소가 급히 말을 돌렸다.
“이분들은 내 손님으로 오신 것이다. 당분간 세가에 머무르실 것이니 너도 많이 도와드리거라.”
해륜이 당분간 세가에 머문다는 말에 소소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호호호, 물론이지요. 손님을 모시는 데 저만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요? 도련님은 마음 푹 놓으시라니까요!”
“그래, 소소만 믿으마.”

담천은 일단 담일명에게 두 사람을 인사시키기 위해 안채로 향했다.
약속한 대로 이들을 담가에서 지내도록 하려면 일단 가주인 담일명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허, 담 공자가 바로 소문의 담씨세가의 소공자였군요!”
해륜이 놀란 듯 두리번거리며 장원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