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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록 1권 21화
5장 삼괴(三怪) (4)
성이 담씨라기에 설마했는데, 무벌의 담씨세가 사람이었을 줄이야.
게다가 담천은 요즘 한참 소문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었다.
―무벌십주 중 하나인 담씨세가의 소공자가 수련 중 주화입마를 당했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담씨세가는 무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가문 중 하나였으니, 당연히 강호인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주화입마를 당한 사람이 어떻게 요마를 잡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찌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으려던 해륜이 입을 다물었다.
비밀로 하기로 다짐한 담천과의 약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담천에게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담 공자는 무벌 사람이었군요. 거 봐요, 제 말이 맞죠? 도사님이 괜한 걱정을 하신 거예요.”
강호인이 아닌 양소현도 무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지강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도 있고, 그만큼 무벌이 중원 전역에 위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벌이 비록 무림세가들이 모인 이익 집단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비교적 정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그 평판은 좋은 편이었다.
하니 무벌에 소속 무사들에 대한 인식도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해륜은 아직 의문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광동진가에게 쫓진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주 집무실에 도착하자 담일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어디 갔다 오는 것이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느냐?”
“수련하러 뒷산에 좀 다녀왔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그냥 조용히 갔다 온다는 게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렸군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담천을 보며 담일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아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무공 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항상 무뚝뚝하고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행동했다.
가문의 후계자라는 중압감이 아들을 이렇게 만든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항상 미안하고 안쓰러운 담일명이었다.
“휴, 그럴 것 같아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만, 그래도 너를 끔찍이 여기는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좀 더 조심하거라. 네 열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주화입마를 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새벽같이 산에 오르느냐? 화 의원이 네가 완치되었다고는 했지만, 그런 일은 후유증이 더 무서운 법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담천이 대답했다.
“그리고 소개드릴 분들이 있습니다.”
담천은 양소현과 해륜을 담일명에게 인사시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진교의 제자인 해륜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양소현이라고 합니다.”
“양소현 소저는 지강현 주부의 따님입니다.”
담천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담일명에게 지강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곽진의 만행과 그로 인해 두 사람이 쫓기고 있는 일, 해서 당분간 돕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마귀라든가 담천이 싸운 일 등은 쏙 빼놓은 채였다.
“두 분은 닷새 전 혜린이와 지강현에 갔을 때 알게 된 사이인데, 쫓기는 신세이다 보니 마땅히 의지할 데가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를 찾아오신 듯합니다. 사정이 딱하니 아버님만 허락하시면 저희 장원에 잠시 머물게 하고 싶습니다.”
담일명이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담천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들이 이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새로웠지만, 그보다 사람을 돕겠다고 나서다니.
‘주화입마 이후 성격이 변한 것인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지.’
담천은 그야말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아이였다.
항상 앞만 보고 전진했고, 주변을 돌아볼 줄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천성이 악하다거나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를 망가뜨렸을 뿐이다.
항상 모든 일에는 순리라는 것이 있었다.
무조건 덤벼든다고 일이 풀리지 않으며 실력이 늘지도 않는다.
좀 더 넓게 보고 주변을 살필 줄 알아야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담천의 변화는 당연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자연 담일명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하, 나야 당연히 허락하다마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것이야말로 무인의 도리가 아니더냐. 우리 담가는 대대로 찾아오는 손님을 홀대하지 않았다. 걱정 말고 편하게들 지내시게.”
담천의 변화에 기분이 좋아진 담일명은 흔쾌히 두 사람이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해륜과 양소현은 소소의 안내에 따라 숙소로 향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담천은 지난밤의 상황을 떠올렸다.
간단히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하마터면 또다시 죽을 뻔했다.
담천이야 부활하면 그만이었지만, 서문유향이 다시 타격을 받을 뻔한 것이다.
무엇보다 세 노인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제대로 대응도 못해 보고 도망쳐야 했으니.
물론, 적진 한복판이라는 점과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해야 했다는 점 등 담천에게 여로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일 일대일로 상대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을 담천은 잘 알고 있었다.
경비 무사들을 상대해 본 결과, 분명 담천의 암혼기는 저번보다 강해지고, 움직임도 더 빨라진 것은 확실했다.
힘과 속도만 따진다면, 세 노인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무공이었다.
처음 접해 보는 세 노인의 기괴한 초식과 투로에 담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역시 무공이 문제야.’
담천은 더욱 무공의 필요성을 느꼈다.
두 개의 무공을 언제든지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혀 놔야 했다.
어차피 심법은 암혼기 때문에 필요가 없으니, 형과 투로, 기의 운용만 정확히 익힌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비설형만은 서둘러 습득해야 했다.
담천은 당분간 천혜린의 연락이 올 때까지 무공 수련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지강현의 옥사는 죄인들로 가득했다.
장난 삼아 당과를 훔친 아이들까지 모조리 잡아 가둘 정도니 당연한 결과였다.
옥사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용서를 비는 이들은 물론, 욕지기를 해대는 양아치, 엉엉 울어 대는 아이와 여인들까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제법 많이 모였군.”
그때, 옥사의 입구로 곽진이 들어섰다.
“주공!”
심드렁한 표정으로 옥사를 지키던 권속 중 하나, 독귀가 벌떡 일어나 곽진을 맞이했다.
“이제 조금만 더 잡아 오면 옥사를 다 채울 수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하루 정도만 더 죄인들을 잡아들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좋아. 그럼 닷새 뒤 보름날 대법을 실행하겠다.”
“충!”
여러 명의 정기를 한꺼번에 뽑아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대법이 필요했다.
해서 되도록 많은 제물을 모은 후 한꺼번에 실행하는 것이 좋았다.
대법 자체가 워낙 까다롭기도 하고, 많은 힘과 재료들을 소모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법을 시행할 수 있는 시기 역시 만월이 떴을 때뿐이었다.
“그래, 도경을 죽인 놈을 찾는 일은 어찌 되었느냐?”
“현 내를 돌아다니는 무벌의 무사들이 몇몇 있긴 하였으나, 도경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도사 한 명이 걸립니다.”
“도사?”
순간, 곽진의 표정이 굳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은…… 젊은 여인과 함께 있던 도사가 관병들의 수색에 불응하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곧 관병들과 황구가 뒤를 쫓았으나 술법이라도 쓴 것인지 감쪽같이 사라져서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데 그 젊은 여인의 인상착의가 죽은 주부의 딸년과 비슷합니다.”
잠시 곽진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독귀가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곽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펴지기를 몇 번 반복하다 급히 옥사를 빠져나갔다.
“나머지 놈들을 모두 소집해라! 당장!”
별일 없이 넘어간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독귀는 수하들을 시켜 나머지 다섯 권속을 호출했다.
현청 대전의 중앙에 앉은 곽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여섯 명의 권속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사라는 게 마음에 걸려…….”
곽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대전의 무거운 분위기에 여섯 권속은 한마디도 못하고 조용히 곽진의 눈치만 살폈다.
도사와 양소현을 놓친 일로 언제 곽진의 분노가 그들에게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구!”
황구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덜덜 떨며 곽진 앞에 나섰다.
“주공, 죽을죄를…….”
“시끄럽다! 소란 피우지 말고 도사 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황구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멈칫거렸다.
도사와 양소현을 놓쳤으니 이번에야말로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곽진이 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니 순간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던 것이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더냐!”
우물쭈물하는 태도에 짜증이 난 곽진이 호통을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황구가 다급히 해륜을 만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 그 도사 놈은…… 뭐랄까, 남자가 보기에도 반할 정도로 정말 잘생겼습니다!”
곽진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네놈이 지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이냐! 도사의 행적에대해 설명하란 말이다!”
찔끔한 황구가 얼른 말을 이었다.
“놈은 부적을 사용해서 연무(煙霧)를 만들어 내 저희를 따돌렸습니다! 게다가 외곽을 지키던 관병들의 말로는 놈을 발견하고 쫓아갔는데, 마치 허깨비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합니다.”
곽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얼핏 들어 봐도 보통 도사 놈이 아니었다.
환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도력이 상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혹시 놈들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겠지?’
그들이 세상에 나왔다면 결코 섣불리 부딪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삼천 년 전에도 이미 그들의 무서움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서둘러 죄수들을 잡아들이고, 대법을 마친 후 곧장 이곳을 뜬다!”
여섯 권속이 의아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대체 그 도사가 어떤 존재이기에 그 대단한 곽진이 이토록 꺼려한단 말인가.
“뭣들 하는 게냐! 어서 움직이지 않고!”
“충!”
여섯 권속은 목숨을 부지한 것에 감사하며 앞 다투어 대전을 빠져나갔다.
6장 해륜(1)
근 열흘 동안 담천은 무공 수련에만 전념했다.
혹시라도 해륜과 양소현이 방해할지도 몰라 소소를 시켜 약속을 지키라 단단히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담천의 무공 습득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이미 육신에 익숙해져 있는 무공들이기도 했고, 원래 담천의 기억들 때문에 무공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
거기다 초유벽의 오성이 상당히 뛰어났기에 예전의 담천이라면 이해하지 못해서 막혔을 만한 부분도 지금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즉, 예전의 담천은 본래의 무공이 추구했던 진의를 확실히 알지 못해 기껏해야 오 할의 능력을 발휘했다면, 지금은 거의 팔 할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간단한 초식들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담천에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더 쓴 비설형은 이미 사성의 성취를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겨우 열흘 남짓 동안 네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것은 단지 위의 이유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적이었다.
사실, 그 이유는 암혼기와 불사의 육신에 있었다.
특히 불사의 육신이 가진 끊임없는 재생 능력은 수련을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