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봉마록 1권 22화


6장 해륜(2)


육체의 한계를 무시한 막무가내 식의 수련에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곧바로 재생되고 원상태로 돌아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근육이 재생되고 뼈가 몇 차례 부러졌다 붙기를 반복할수록 담천의 몸은 무공에 가장 적합한 체형으로 점점 진화하고 있었다.
한 번 재생이 되고 나면 그전에는 어려웠던 동작들이 너무도 쉽게 재현되었다.
‘이전에도 이렇게 열심히 무공을 익혔다면 그리 쉽게 가문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을…….’
뒤늦게 후회해 봐야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담천이 한창 무공 수련에 빠져 있을 때 천혜린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군요. 이번 일로 상당히 좌절했을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정말 심각하군요. 광동진가가 삼괴까지 불러들일 줄이야…….”
담천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천혜린은 진가의 장원에서 벌어진 일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그야말로 부처님 손바닥이 아닌가.
하기야 진가에서 그토록 요란을 떨며 의창을 들쑤셨으니 천혜린이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한데 해륜 도사와 양 소저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죠?”
천혜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담천을 추궁했다.
그토록 조심하라 일렀는데 오히려 곁에 두다니, 그녀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던 것이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담천은 진가에서의 위기와 두 사람에게 받은 도움, 그리고 할 수 없이 해륜의 부탁을 들어준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천혜린의 미간에 내 천 자가 새겨졌다.
결국, 담천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일이 더 복잡해진 것이다.
“그대가 쓸데없는 짓을 할수록 결국 복수는 더 멀어지게 된다는 걸 기억하세요. 첫 번째 침입으로 인해 삼괴가 왔으니, 이번엔 더욱 경계를 강화할 거예요. 게다가 소속 가문이 습격받았느니 무벌까지 나설 여지도 있어요. 이토록 일이 커진 것이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어리석은 짓도 정도껏 하세요. 완전히 놈들을 제압할 자신이 없다면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설마 다음에도 이번과 같이 운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대는 자신이 받은 기회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돼요.”
조목조목 쏘아붙이는 천혜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담천의 가슴에 꽂혔다.
사실 담천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나 한 번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저지른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인 동시에 스스로를 나락에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담천이 다시 얻은 삶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다시 주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데 두 번씩이나 스스로 그 기회를 날려 버릴 뻔한 것이다.
천혜린의 말처럼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담천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너무도 안이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지막이에요. 어차피 기회를 날려 버리면 당신만 손해니까. 그럼 이제 제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죠.”
차를 한 모금 삼킨 천혜린이 말을 이었다.
“일단 곽진의 동향을 알려 드리죠. 현재 곽진은 지강현의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있어요.”
그것은 이미 해륜에게 들어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여러 특이한 물품들을 사들이고 있더군요.”
마치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천혜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것이 특정 대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담천이 천혜린을 바라보았다.
“마귀들은 인간의 정기, 혹은 피와 살을 먹고 힘을 얻어요. 그밖에 공포나 원한, 증오, 복수 등의 감정을 먹고 힘을 얻는 존재들도 있지요.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경우에 인간이 필요하죠. 그들에겐 인간이 식량이나 마찬가지인 거예요. 일단, 저는 곽진이 수많은 인간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얻었어요. 곽진이 무리해서 인간들을 모으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누가 봐도 빤한 일이었다.
그들의 정기를 흡수하기 위해서!
“물으나 마나겠지요. 그런데 마귀들이 그렇게 많은 인간들의 정기를 한꺼번에 흡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대법이 필요해요. 그 대법이 성공하면 곽진은 엄청난 힘을 얻게 되겠죠. 물론, 인간의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은 분명해요.”
지금도 담천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곽진이었다.
한데 그보다 훨씬 강해진다니, 담천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었다.
“대법을 실시하기 전에 놈을 잡아야겠군.”
“맞아요. 성공할 확률은 낮지만 어쩔 수 없어요. 만일 놈이 대법에 성공한다면, 그 작은 확률마저 사라질 테니까요.”
“지금 당장 놈을 쳐야겠군.”
담천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서두를 것은 없어요. 대법을 실시할 수 있는 날은 오로지 만월이 떴을 때뿐이에요. 일단 보름까지 닷새의 시간 여유가 있는 상황이죠. 그동안 당신은 권속들을 잡아 최대한 힘을 늘려야 해요.”
담천은 갑자기 천혜린이 어떻게 그리 곽진의 행동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치 곽진을 지켜보고 있는 듯 훤히 꿰뚫고 있지 않은가.
현청에 첩자라도 심은 것일까?
‘어차피 그것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어찌 되었든 내게 손해되는 일은 아니니까.’
담천은 고개를 한 번 털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냈다.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삼괴 정도의 고수들을 상대하려면 암혼기가 어느 정도 강해져야 하지?”
갑자기 생각난 듯 담천이 물었다.
이번 대결은 담천이 불리한 입장에서 싸웠기에 아무래도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봐야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형편없이 밀렸던 것이다.
도경을 처치하고 그의 힘을 흡수해 어느 정도 암혼기가 강해졌다 생각했는데, 지금 상태라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져야 진대치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담천은 이제 진대치 하나만 죽이고 복수를 끝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놈에게도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똑같이 되갚아 줄 작정이었다.
진가가 만신창이가 되어 무너지는 모습을 놈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삼괴를 처리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삼괴라는 자들의 경지가 알려진 것처럼 초절정을 넘어섰다면, 암혼기가 두 번째 단계에 이른 후에 상대하는 것이 좋아요. 그 정도면 놈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권속과 무인들, 그리고 당신은 서로 상성이 있어요. 삼괴라 해도 권속들을 쉽게 상대할 수는 없지요. 본신을 드러낸 권속들의 몸은 강기가 아니면 벨 수 없기 때문이에요. 무인들이라면 최소 초절정 말은 되어야 권속들을 죽일 수 있지요. 하지만 당신은 암혼기와 천령검 때문에 실력에 비해 쉽게 권속들을 제압할 수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담천을 이긴 삼괴는 권속들을 상대할 수 없지만, 권속들에게는 담천이 상극의 존재인 것이다.
“궁금증이 풀렸다면, 이제 권속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죠.”
담천과 천혜린은 대략의 계획을 세웠다.
우선 마귀와 그 권속들에겐 밤과 낮이 큰 의미가 없었다.
물론, 암혼기를 사용하는 담천에게는 밤이 훨씬 유리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마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서 일단은 낮에 움직이기로 했다.
낮에는 권속들이 제물로 쓸 인간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현청 밖에서 움직인다.
게다가 각자 구역을 맡아서 따로 흩어져 움직이기 때문에 한 놈씩 잡기에 밤보다는 낮이 확실히 유리했다.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도록 하세요.”
마지막 말을 남긴 후, 천혜린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턴 담천 혼자 사냥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다음 날, 담천이 세가를 나서는데 해륜이 불쑥 앞을 막아섰다.
“잠깐, 어딜 가는 것이오?”
담천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천 소저를 만나러 가는 길이오. 설마 도사가 남의 연애 생활까지 참견할 생각이오?”
담천의 말에 해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게…….”
당황하는 해륜을 남겨 두고 담천은 얼른 세가를 빠져나왔다.
대법이 이루어지는 날까지는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 안에 힘을 키우려면 최대한 서둘러 권속들을 처리해야 했다.
또한, 최근 습득한 무공들도 실전에서 사용해 볼 필요가 있었다.

최대한 서둘렀으나 약 한 시진 반이 지나서야 지강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암혼기를 함부로 낭비할 수 없었기에 순수한 육신의 힘만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담천은 우선 관병들을 피해 은밀히 움직이며 지강현의 상황을 살폈다.
곳곳에서 관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일이 너무 커지기를 원치는 않는지 주로 정체가 불분명한 이들이나 연고가 없는 자들 위주로 끌고 갔다.
섭혼술을 사용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관병들이 워낙 뭉쳐 다니는데다 저번처럼 실패라도 하게 되면 곤란했다.
그때, 담천의 가슴에서부터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권속이군!’
담천은 명륜안을 사용해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우측 음식점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관병의 선두에 형체가 불규칙하게 흐물거리는 자가 보였다.
그는 바로 해륜을 쫓던 황구였다.
관병 열 명이 놈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한 명씩 조를 나눠서 수색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주변에 다른 권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해치우고 몸을 숨긴다!’
결심을 내린 담천은 서둘러 복면을 쓰고 암혼기를 끌어 올리며 몸을 날려 황구를 덮쳐 갔다.
쉬이익!
어느새 뽑아 든 천령검이 위에서 아래로 섬전처럼 내리꽂혔다.
“크아악!”
피가 튀며 황구의 오른팔이 잘려져 나갔다.
머리를 노린 일격이었는데, 기습이었음에도 놈의 반응이 워낙 빨라 피해 낸 것이었다.
“누구냐!”
갑작스런 습격에 놀란 황구의 고함 소리를 무시한 채 담천이 두 번째 검격을 날렸다.
놈이 힘을 끌어 올릴 시간을 주게 되면 속전속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번쩍!
풍운십이검 중 담천이 현재 펼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초식, 제오초 일섬단일(一閃斷日)이 펼쳐졌다.
순간, 한 줄기 백색 섬광이 공간을 세로로 양단했다.
“크악!”
황구의 몸에 어깨로부터 가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혈선이 생겨나더니,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담천은 그에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러 휘청거리는 황구의 목을 쳤다.
서걱!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눈을 한 채 황구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그야말로 겨우 숨 한 번 쉴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황구는 미처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아무리 실력이 일취월장한 담천이라지만 황구가 변신을 하거나 붉은 기운을 사용했다면 이렇게 쉽게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기습에 그제야 상황을 인식한 관병들이 소리쳤다.
“저, 적이다!”
그나마 대부분의 관병들은 담천의 무시무시한 신위에 놀라 도망치기 바빴다.
황구를 단숨에 썰어 버린 담천을 그들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담천은 황구의 시체에 다가갔다.
놈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담천이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담천의 미간이 좁혀졌다.
‘왜 힘이 내게로 오지 않는 거지? 저번 놈에게서는 저절로 내게 빨려 들어왔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힘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담천은 곰곰이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담천은 폭주한 암혼기 때문에 광기에 잠식된 상태였다.
‘광기에 잠식되어야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그렇다면…… 암혼기?’
담천은 다시 암혼기를 끌어 올려 온몸으로 돌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황구의 시신에서 붉은 기운이 빠져나와 담천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암혼기를 움직여야 놈들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군.’
담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붉은 기운은 마치 한 마리 야생마처럼 담천의 온몸을 질주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어 봤던 담천이기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암혼기를 움직여 기운들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화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