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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검존 1권 5화


제3장 남궁진혁(2)


“진혁아, 진혁아! 이 아비가 천금을 주고 간신히 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림사의 소환단이다!”
‘으읍!’
결국 소환단이 입으로 들어왔다. 삽시간에 물처럼 녹아 버린 소환단은 상쾌한 느낌을 남기며 배 속으로 들어갔다. 방금 벌모세수를 마친 몸은 소환단의 영기를 사막에 뿌린 비처럼 삽시간에 흡수하기 시작했다.
‘시, 싫어!’
금적풍, 이제는 남궁진혁이 되어 버린 갓난아기는 의념으로 진기를 이끌어 소환단의 흡수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공을 익힌 적도 없는 몸에 의념을 통한 진기의 유통 같은 초절정의 수법이 먹힐 리가 만무하다.
소환단의 영기는 차곡차곡 남궁진혁의 배 속에 쌓였다.
“으아아아아앙!”
결국 남궁진혁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야아아아!’
진천검존 금적풍. 이렇게 지상에 돌아왔다.

검의 명가, 남궁세가에 적자가 태어난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가주가 서른이 되도록 자식이 태어나지 않아 걱정이었던 남궁가에 후계자의 출생은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남궁 씨들은 물론이요, 남궁세가의 제자들과 심지어 하인들마저도 즐거워했을 정도로.
그런데 요즘은 그 남궁진혁 때문에 가문의 분위기가 미묘했다. 좋다고도 할 수 없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식솔들이 짓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이유가 뭔고 하니.
“우끼이이익!”
귀를 찢는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세가를 휩쓸었다. 무슨 짐승의 소리인지 참 요란하고 처절했다. 마당에서 비질을 하던 하인 춘일은 잠깐 몸을 움찔거렸다.
“또 시작이군.”
놀라지도 않고,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젓더니 다시 묵묵히 비질을 한다.
“우끼익! 우끼끼익!”
쇠를 긁는 것처럼 듣기 거북한 소리였지만 매일 듣다 보니 견딜 만했다. 조금만 참으면 끝날 소리였기 때문이다. 마침 나무 밑을 쓸고 있던 다른 하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또 약 먹을 시간이군.”
“에휴, 약 먹다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하인들은 비명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썹을 꿈틀거렸다. 들을 만한 수준이라고 해서 결코 듣기 좋다거나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무척 거슬렸다. 저 소리를 들은 닭들이 한 달 동안 알을 낳지 못할 정도였다.
“우끼이이익!”
쨍그랑!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허, 이 녀석! 거기 서래두!”
손에 호두만 한 단약을 쥔 남궁성화가 주춤거리면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건 몸에 좋은 거라니까!”
“우끼익!”
창문에 매달려 있던 아기가 괴성을 지르며 적의를 드러냈다. 남궁성화는 한쪽 손을 내밀어 살살 흔들면서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이게 다 너 좋으라고 먹이는 거다. 제발 이리 오려무나.”
“우끽!”
아기, 남궁진혁은 코웃음을 치면서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서너 살의 아기가 떨어지면 크게 다칠 높이인데 거침이 없다. 네 발로 착지하는 모습이 꼭 고양이같이 부드럽고 안정적이었다.
‘누가 그딴 것 먹는다고 했냐!’
남궁진혁은 아버지에게서 서서히 물러났다. 두 눈으로는 똑바로 남궁성화를 응시하고 한 발짝씩 천천히 도망칠 방향을 모색한다. 남궁성화는 반대로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양팔을 벌려 아들이 도망갈 방향을 차단했다.
“아들아, 이건 아주 달아! 정말 맛이 좋단 말이다! 조금도 쓰지 않으니까 아비를 믿어라!”
“우끼익!”
태평청령단이 달긴 개뿔이 다냐! 남궁진혁은 남궁성화의 서슴없는 거짓말에 무한한 적의를 불태웠다.
‘게다가 쓴 게 무슨 상관이냐! 무당파의 태평청령단은 또 어디서 구해 왔어! 안 먹어!’
이미 방 안은 난장판이었다. 갖은 영약을 먹고 내공이 쌓이고 몸이 튼튼해진 남궁진혁이 미친 듯이 도망치면서 헤집었기 때문이다. 탁자 위의 화병이 깨져서 사방에 흩어졌고, 햇빛을 가리는 차양은 물고 늘어져서 길게 찢어졌다.
“우끼, 우끼.”
사람 자식이 아니라 원숭이 새끼처럼 울면서 남궁진혁은 네 발로 기었다. 다른 아기들처럼 평범하게 기어 다닌다고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경공이라도 쓰는지, 그림자의 잔상이 남을 지경이다.
“아들아, 아들아! 왜 이리도 속을 썩이느냐! 내가 먹고 죽을 약을 주겠냐, 아니면 몸에 좋은 약을 주겠냐. 이걸 먹고 나면 맛난 약과도 줄 테니, 어서 이리 오려무나.”
남궁진혁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다만 그의 허점을 찾으면서 전신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저기다!’
남궁성화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왼쪽 다리 옆! 마침 남궁성화가 문을 등지고 있으니 바로 문 밖으로 탈출하면 될 일이다. 남궁진혁은 몸을 낮춰 바짝 엎드렸다. 짐승이 도약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자세 그대로다.
“이리 오라니까! 아비 말을 뭐로 아는 거냐! 자꾸 이러면 볼기짝을 때려 주겠다!”
참다못한 남궁성화가 호통을 치는 순간, 남궁진혁은 모았던 힘을 한꺼번에 방출했다. 두 발과 두 손으로 땅을 박차면서 바람처럼 날았다. 낮은 고도로 빠르게 나아간다. 이것은 일종의 경공술과 같다.
부우웅!
놀랍게도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남궁성화는 소리를 치며 검을 잡는 시늉을 하느라 대처가 조금 늦었다.
‘좋아, 됐어! 태평청령단, 메롱이다!’
그러나 남궁성화가 누구던가. 천하의 무림십대고수의 일인이며, 검의 명가 남궁세가의 가주가 아니던가. 아무리 특별한 아이라고 해도 결국 남궁진혁은 세 살배기 아이의 몸. 남궁성화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음핫핫! 그래, 아비에게 오너라.”
남궁성화가 스스로 자세를 무너뜨리면서 정강이 옆을 스쳐 지나가려는 남궁진혁의 목덜미를 금나수의 수법으로 낚아챘다.
“우켁!”
“자, 얌전히 먹어라. 태평청령단이다.”
거봐, 태평청령단 맞잖아!
남궁성화는 조금의 용서도 없이 버둥거리고 있는 아들의 입에 태평청령단을 쑤셔 넣었다.
“읍읍! 우……끼이이이익!”

첫돌, 음양단.
2세 생일, 천년영지, 쌍두백사.
3세 생일, 천년산삼, 화룡지단.
4세 생일, 만년설삼, 금화옥초.
5세 생일, 대환단.
‘……진짜 돌겠네.’
돈 주고도 못 살 영약들을 어디서 그렇게 구해 왔는지, 금적풍은 진짜 죽도록 영약만 먹고 자랐다. 생일이라고 특별히 먹은 것이 저 정도지, 하루가 멀다 하고 먹는 영약들은 셀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영약으로 끝이 아니다.
2세 설날, 은거기인 청풍자.
3세 설날, 전대 고수 유운검객.
4세 설날, 개방 장로 방랑개.
5세 설날, 만약신의.
‘……제발.’
태어날 때 받았던 벌모세수는 시작에 불과했다. 은거기인 청풍자가 비전의 수법으로 피부를 강화시켜 주었다. 단단하면서도 매끄럽게 변한 피부는 수련의 정도에 따라 칼에도 베이지 않게 되었다.
유운검객은 손목과 허리를 중점적으로 살펴 검을 익히는 데 있어 최상의 상태로 몸을 손보았다. 근육과 뼈에 내기를 불어넣어 유연성과 근력을 살려 주었다. 만약 검을 잡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빨리 익힐 것이라 했다.
개방 장로 방랑개는 경신법의 고수다. 그는 발목을 손보아 주었다. 장차 보법과 경신법을 익히는 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몸으로 만들었다. 방랑개 평생의 깨달음이 집결된 것이다.
죽은 사람도 살려 낸다는 만약신의는 남궁진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무공을 익히기만 하면 절세의 고수가 되겠군. 내가 무공을 위해 더 손봐 줄 곳은 없는 것 같소.”
그러더니 남궁진혁의 전신에 금침을 꽂아 놓고 하루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오장육부를 골고루 강화시켰으니 병에 걸리는 일이 없을 것이오.”
만약신의는 무병장수를 약속했다.
만약신의가 남궁세가를 떠난 날 밤, 남궁진혁은 하늘을 보고 울부짖었다.
“내가 강시냐? 강시야? 어헝!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이냐! 하루가 멀다 하고 쓴 약을 먹이질 않나, 싫다는 사람 몸을 뜯어 고치질 않나! 누가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했단 말이냐!”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외침이었다.
“염라! 다 네놈 때문이잖아!”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남궁진혁도 아기의 티를 벗고 똘망똘망한 도련님이 됐다.
남궁진혁은 하루 종일 불안했다. 다음 날이 그의 여섯 번째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일은 뭘 먹일 것인가. 어떤 무공을 가르치려고 할 것인가. 또 어디서 은거기인을 모셔 와서 몸을 손보려고 할 것인가!
“곳간이 남아날 리가 있나.”
남궁진혁은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이제껏 자라면서 먹은 영약은 천하제일인으로 군림하던 전생에도 쉽사리 손대지 못하던 영약들이다. 가주 남궁성화는 필경 가문이 흔들릴 정도로 돈을 썼으리라.
“후, 걱정이다. 정말 내일은 어떤 일을 당할지.”
여섯 살의 앳된 꼬마의 얼굴로 그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남궁진혁은 방문을 잠그더니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력을 휘돌렸다. 단전에 잠들어 있던 내기가 팔대 기혈을 타고 전신을 휘몰아쳤다.
남궁진혁의 몸속에는 엄청난 잠력이 숨겨져 있었다. 각종 영약과 벌모세수로 얻은 내력을 강제로 차단하고 넷으로 나누어 몸 곳곳에 숨겨 놓았으니까. 어지간한 노력이 없고서는 절대 녹일 수가 없었다. 천하십대고수가 아니고서는 알아볼 수도 없다.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죽어도 먹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했지만, 남궁성화 앞에서는 강제로 먹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차선으로 선택한 방법이다. 먹어도 효과가 없다면 상관없으리라.
‘아직 안전하군.’
저절로 녹는 것까지 방지했다. 무림에 출도하기 싫어서 스스로도 풀 수 없는 금제를 펼친 것이다. 평생을 노력해야 녹을 내단이었다. 남궁진혁은 눈을 번쩍 뜨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거면 됐어.”
어떤 영약을 더 먹더라도 평범한 정도로만 성장하리라. 남궁진혁은 애초에 무림에서 손을 씻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살아서 무엇 한단 말이냐.”
꼬마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창문을 열어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용이 승천하지 못하여 이무기가 된다고 했던가. 나 또한 승천하지 못하고 지상에 떨어진 용과 같구나.”
남궁진혁은 우울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미 삶의 끝을 보았는데 다시 살아서 무엇 한단 말이냐. 오로지 염라대왕에게 돌아가서 복수하고, 신장이 되는 것만이 삶의 목표요, 낙이었다. 그러나 이 지겨운 인생은 언제 끝난단 말인가!
“지겹다, 지겨워.”
이제 겨우 육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이미 소년의 얼굴에는 지겨움이 가득했다.
“언제 죽어서 염라대왕 이 자식을 족친단 말이냐!”
아니다. 지겨움만이 아니다.
소년의 지겨움의 끝에는 원수를 향한 끝없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무심한 눈빛 속에는 복수의 일념으로 타오르는 시뻘건 불꽃이 혀를 날름거렸다.

다음 날, 남궁세가는 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받았다. 아침부터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선물을 가진 행렬이 줄을 이어서 대문을 통과했다. 넓은 장원 가득히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고 역시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가장 상석에 앉은 남궁성화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그의 아들이자 잔치의 주인공인 남궁진혁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미치겠구나! 이토록 잔치를 크게 벌이다니! 이번에는 얼마나 대단한 영약을 준비했을지 상상도 가질 않는다!’
남궁진혁은 식욕이 없어서 차로 입술만 축였다.
손님으로 온 사람들도 쟁쟁한 자들뿐이었다. 구파일방에서 각기 제자를 사절로 보냈고, 사대세가에서도 손님이 왔다. 남궁진혁은 혹시라도 반가운 얼굴이 있을까 싶어 장내를 열심히 살폈지만 이내 포기하였다.
‘이미 내가 죽은 지 십 년이 흘렀다. 저렇듯 젊은 아이들을 내가 알 리가 없지.’
사절이라고 해야 기껏해야 일, 이대제자들이었다. 파견된 제자들이 이십 대 중후반인 것을 보아, 진천검존 시절에는 코흘리개였으리라. 남궁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풍아, 적풍아. 이미 무림을 떠나기로 했으면서 무슨 잡생각을 하는 것이냐. 어차피 저것들이랑 나랑은 길이 다르다. 나는 신장이 되어야 할 몸이다.’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기에 혼자 인상을 쓰고 고개를 흔드는 것이냐. 오늘은 네 생일인데 좀 더 웃도록 하거라.”
‘싫다. 이놈아!’
남궁진혁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 귀여워서 남궁성화는 그의 볼을 꼬집었다. 뺨이 화끈했다. 남궁진혁은 남궁성화를 흘겨보았다.
‘그래! 잊으려고 해도 이놈 때문에 문제야! 검존님, 검존님 하고 쫓아다니던 자식이 감히 내 뺨을 꼬집어?!’
남궁성화의 나이는 이제 마흔이었다. 금적풍이 백이십 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겨우 서른이었다. 까마득한 후배라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남궁진혁은 노기가 치밀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남들이 보기엔 어쨌든 아버지다.
“예.”
남궁진혁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모든 것이 재미가 없고, 우울했다. 새로운 삶을 즐기기엔 놓친 것이 너무 컸다.
“소가주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술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남궁진혁은 마지못해 웃어 주었다. 그러나 신경은 계속 다른 곳에 집중해 있었다.
‘도대체 이 지겨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한단 말이냐. 어떻게 하면 빨리 염라대왕을 손봐준단 말이냐. 언제쯤 신장이 될 수 있을까. 아아, 인간의 수명은 너무나 길다. 또다시 백이십 년을 살 자신은 도저히 없다. 난 빨리 돌아가야 한단 말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영약을 골고루 섭취한 남궁진혁은 백 년도 더 살지도 몰랐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승에 빨리 간단 말인가!
상념에 잠겨 있는데 남궁진혁이 갑자기 헛기침을 하더니 좌중의 이목을 모았다.
“진혁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오신 손님들께 감사드리는 바요. 아시다시피 남궁세가는 손이 귀한 가문이었는데, 이렇듯 아들이 잘 커 주고 있으니 가주인 나로서는 더 바랄 게 없소. 부디 손님들께서도 진혁이의 무병장수를 빌어 주시오. 자, 이렇게 모였으니 다들 한잔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