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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검존 1권 7화


제3장 남궁진혁(4)


‘오냐, 염라대왕! 내게 좋은 생각이 났으니, 네놈은 곧 내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벼락을 맞아 살았다고 하였느냐! 그렇다면 내 손으로 목숨을 끊어 주마! 이런 삶 따위 스스로 마감하고 네놈을 징치하러 갈 것이야!’
왜 자살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남궁진혁은 스스로의 아둔함을 탓하며 벼락을 맞은 덕분에 떠올려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자살이 죄가 된다고 하였던가? 그런 것 모른다. 염라대왕이 먼저 비겁한 수를 썼으니, 나도 쓸 것이다.’
금룡검을 쥔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주인의 생각을 알아차렸음일까, 금룡검이 진동하며 소리를 냈다.
웅웅웅!
‘시끄러워!’
이때, 남궁진혁은 아직 몰랐다.
세상에 죽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내 필히 죽고 말리라! 기다려라, 염라, 저승사자! 저승의 모든 것들을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게 만들어 주마!’



제4장 만독단(萬毒團)(1)


가주 남궁성화는 여섯 살 생일을 계기로 더 이상 영약을 구해다 먹이지 않았다. 남궁진혁의 수준이 이미 영약으로 내공의 상승을 바라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경지까지 가 버렸기 때문이다. 낙뢰불사(落雷不死), 금룡공자(金龍公子)라는 별명을 얻은 지도 일 년이 지나서 남궁진혁은 일곱 살이 되었다.
“에휴. 에휴.”
후원의 정원에서 풀밭을 깔고 앉은 남궁진혁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인생에 지친 기진맥진한 표정이 소년의 얼굴에 깃들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 될 텐데.”
남궁진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품속을 뒤져서 하나의 단환을 꺼냈다. 몇 겹이고 종이에 싸인 단환에서는 독한 냄새가 났다. 남궁진혁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단환의 포장을 완전히 풀었다.
“만독단, 너만 믿겠다!”
만독단! 천하제일의 독약으로 유명한 만독단은 절세의 고수도 한 줌의 핏물로 만들 정도로 치명적인 독성을 가졌다. 천 가지의 독이 재료로 들어가는데, 화경의 내력을 가진 고수라도 독기를 막을 수 없다.
천하에 만독단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정사를 통틀어 두 곳이다. 바로 사도무림의 독곡과 정도무림의 사천 당가다. 오래전 정사대전으로 독곡과 맞붙었던 남궁세가는 전리품으로 만독단을 한 알 빼앗아서 세가의 보물 창고에 봉인해 놓았다.
“이거 몰래 훔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제는 제발 좀 떠나자.”
남궁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만독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독은 달콤하게 녹아 불같은 기세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우윽!”
‘이번에는 성공인가!’
순식간에 배 속으로 스며든 만독단은 무서운 통증을 가져왔다. 칼로 찌르는 것처럼 배가 아팠고, 숨을 쉴 때마다 독하고 타는 듯한 열기가 새어 나와 목을 긁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입 안 가득히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우웩!”
시뻘건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 냈다. 다시 한 번 피를 토하자 이번에는 시커먼 피가 흘러나왔다.
‘그래, 확실하게 중독됐구나!’
임독양맥이 타통됐다고 해서 독에 중독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저항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라면 더욱더 독 기운은 빨리 퍼진다. 남궁진혁은 내공이 움직여 독기와 싸우려는 것을 방해했다.
‘아파 죽겠네! 이번엔 진짜구나!’
성공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간 죽으려고 죽으려고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 갔다.

첫째, 검으로 자결.

쨍!
남궁진혁은 이가 빠진 철검을 붙잡고 인상을 썼다. 스스로 목덜미를 슥삭 그었는데, 어째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익! 청풍자인지 때문이구나!”
기인 청풍자가 시전해 준 술법 때문에 거죽과 근육의 강도가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거기에 이 갑자의 내공이 깃드니 마치 강철과 같아서 웬만한 도검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괜히 목만 얼얼했다.
“고물 같으니!”
쨍그랑!
철검을 던져 버린 남궁진혁은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금색의 검이 나뒹굴고 있었다.
“금룡검!”
웅웅웅!
오랜만에 이름이 불리자 금룡검이 반갑게 울었다.
휘익!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금룡검을 손에 쥔 남궁진혁은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금빛 검신이 찬란한 광채를 뿜어 댔다.
‘세상에 둘도 없는 명검이라고 했으니, 금강불괴의 몸도 벨 수 있을 거야.’
과연 검을 쥔 것만으로도 전신을 찌르는 날카로운 예기가 풍겼다. 남궁진혁은 기대에 찬 얼굴로 웃으며 금룡검을 목에 가져갔다.
찌이이잉!
“윽! 시끄러!”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울음소리. 금룡검의 울음을 무시하고 목을 베려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목젖에 닿는 느낌이 둔탁했다. 남궁진혁은 깜짝 놀라 검날로 목을 비볐다.
“부드러워?”
마치 비단처럼 부드럽다. 어이가 없어서 금룡검을 눈가까지 들어 올려 자세히 살폈다. 아까의 예기는 온데간데없고, 날이 두껍고 둥글다. 남궁진혁은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칼날 위에 올려 보았다.
“이상하네.”
머리카락 양쪽 끝을 잡고 칼날로 밀어도 베이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군. 검이 무슨 봉도 아니고, 이렇게 무뎌지다니…….”
웅웅!
남궁진혁이 혼자 중얼거리는데 검이 불만스럽게 울었다. 순간, 진천검존의 영혼은 검의 혼과 통해 그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절대로 주인을 죽일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런 개떡 같은 경우를 봤나! 주인 명령을 따르라고! 베지 못하는 게 무슨 명검이야! 어서 날카로워지지 못해?”
자아를 가진 검, 천하에 둘도 없는 절세의 신검이란 주인의 목숨마저도 지켜 주는 검이다. 금룡검은 주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명령을 거부했다. 남궁진혁은 잠시 불같은 눈으로 금룡검을 노려보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명검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과연 남궁세가에 전해지는 절세의 보검이다. 네 성깔은 정말 대쪽 같구나.”
웅웅!
이제야 알아주는 겁니까, 주인님. 금룡검은 대강 이런 뜻으로 울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꺼져! 식칼로도 못 쓸 놈!”
천하제일의 검이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자살용으로도 못 쓰는 검이 무슨 검이냐! 남궁진혁은 이기어검을 펼쳐 금룡검을 창밖으로 날려 버렸다.
금룡검은 후원에 있는 나무에 자루까지 박혀 버렸는데, 너무 깊이 박혀서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우연히 정원사가 발견하고 뽑아내기 전까지 금룡검은 밤마다 구슬피 울었다.
우우웅.

둘째, 우물에 투신.

사나이가 한번 마음을 먹었는데 이루지 못하면 어찌 하늘을 보고 살겠는가.
남궁진혁은 금룡검의 실패에 비추어서 어지간한 경우에는 죽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보다 확실한 자살 방법은 무엇인가. 성공 확률이 높은 자살 방법에 대해 골똘히 구상하기를 보름, 달이 둥실둥실 떠오른 보름날 밤에 묘안이 떠올랐다.
“이거다! 이거면 죽을 수 있어!”
남궁진혁은 후원을 거닐다 눈에 띈 우물을 보고 손뼉을 쳤다. 내공이 깊어 자해로는 죽기가 힘들다. 하지만 익사라면 어떨까! 그것도 남들이 발견하기 힘든 우물에 빠진다면 필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남궁진혁은 주위를 두리번거려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이다. 밤이 깊어서인지 한 명도 없었다. 아침까지 우물에 접근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설령 온다고 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좋다. 염라대왕, 기다려라! 내가 간다!’
누가 들을까 봐 속으로만 다짐한 남궁진혁은 깔끔한 동작으로 우물에 투신했다. 벽을 살짝살짝 발로 디디며 낙하 속도를 줄였다. 덕분에 물에 빠지는 순간에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퐁!
“읍! 꼬르륵!”
시커먼 물속에 들어간 남궁진혁은 폐에 가득 찼던 공기를 모두 토해 냈다. 공기가 빠진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한서불침의 경지에 올라서 괴롭지 않았다.
“읍. 읍. 읍.”
분명 익사는 괴롭다고 들었다. 하지만 죽기 위해서인데 어찌 고통을 감수하지 않겠는가. 저승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한 고통도 참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남궁진혁은 죽지 않았다.
“읍. 읍. 읍…….”
차가운 우물 바닥으로 가라앉은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도무지 정신이 말짱하다.
남궁진혁이 한 가지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내공이 깊으면 한 줌의 진기만으로도 오랜 시간 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오, 맙소사! 그럼 언제 죽는 거야! 아냐, 이럴 게 아니지! 가만히 죽기를 기다리기보다 노력하자! 조금이라도 시기를 앞당기는 거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남궁진혁은 계속 입으로 바람을 불어 폐의 공기를 쥐어짜 냈다. 그러자 우물물이 배 속을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많은 물을 들이켜자,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춥다. 졸리다.
의식이 멀어진다.
‘그래, 바로 이거야…….’
서서히 눈이 감겼다. 몸의 감각이 멀어지고 있다.
남궁진혁은 슬그머니 미소 지으며 현재를 즐겼다. 그래, 이거면 됐어. 이제 죽을 수 있어.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들! 정신 차려!”
누군가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남궁진혁은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차렸다. 가물거리던 시야가 또렷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웅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남궁성화가 손으로 사정없이 뺨을 내려치고 있었다.
찰싹!
이게 꿈인지 생신지 싶어서 멍하니 있다가 따귀를 맞았다.
‘아, 아프다!’
꿈이 아니다!
남궁진혁은 비로소 사태를 파악하고 눈을 부릅떴다. 하늘에 해가 오르고 있는 걸 봐서 아침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분명히 우물에 뛰어들어서 죽었을 텐데!
“오오, 눈을 떴습니다!”
누군가 외치자 남궁성화가 다시 따귀를 날리려던 손을 내리고는 남궁진혁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몸이 흔들리자 배 속에 가득했던 물이 울컥울컥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나 정신 차렸……. 우웩!”
투명한 물을 한 바가지나 토해 냈는데 더 죽을 것 같다. 계속 속이 뒤집혔다. 남궁성화가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남궁진혁을 끌어안았다.
“아들아,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느냐! 삼칠이가 물을 긷다가 너를 건졌다는 말을 듣고 꼭 네가 죽은 줄만 알았다!”
“헤헤, 소인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인 하나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겸손을 떨었다.
남궁진혁은 입으로는 물을 토하고, 남궁성화에게 안겨 흔들리면서 증오에 찬 눈으로 하인을 노려보았다. 내공이 깊어 아침이 될 때까지도 죽지 못한 것을 네놈이 건져 냈단 말이냐!
그래서 익사도 실패했다.

검으로 자결도 실패하고, 익사도 실패하고 나서 시도하는 모든 자살이 족족 실패했다. 아름드리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으려고 했더니, 나무가 허리부터 부러져 나갔다. 아니, 썩은 나무도 아닌데 그렇듯 쉽게 부러진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러나 이번엔 성공이다! 기필코!’
한창 회상의 나래를 펼칠 무렵, 여자의 날카로운 외침이 귀를 파고들었다.
“꺄악! 도련님!”
마침 후원을 거닐던 시녀가 남궁진혁이 피거품을 물고 쓰러진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남궁진혁은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늦었다. 만독단의 독기가 온몸에 퍼졌으니 절대 구할 수 없어! 하하하! 장장 일 년 만에 성공이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아니, 도련님! 어서 도련님을 옮겨라, 어서!”
“도련님, 정신 차리세요!”
소리가 멀어져 간다.
남궁진혁은 비몽사몽간에 의원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남궁세가는 남궁진혁이 중독되었다는 소식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남궁세가의 의원 정철은 남궁진혁의 눈을 까뒤집어 보고, 입가의 피거품을 하얀 헝겊에 적셔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이어서 남궁진혁의 손톱과 입술을 보고는 게거품을 물려고 했다. 손톱이 모두 새카맣게 물들고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마, 만독단! 만독단에 중독되었구나!”
독중지왕(毒中之王) 만독단!
정철은 절망감에 빠졌다. 때마침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궁성화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진혁이는? 진혁이는 무사한가!”
남궁성화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정철을 다그쳤다. 어떤 일에도 대범한 남궁세가의 가주이지만 자식의 일에서만큼은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만독단에 중독되셨습니다.”
정철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이런 소식을 전해야 한단 말인가.
남궁세가주는 정철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독의 왕, 만독단.
아무리 초절한 고수라도 살아남기 힘든 독약이 아닌가!
“방법은 없겠는가!”
남궁진혁은 혼백이 반쯤 달아나는 상황에서 비릿하게 웃었다.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만독단은 독중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기가 강한 것이라 해약(解藥)도 없단 말이다. 하하하! 대라신선이 와도 못 살려! 절대로!’
독기가 퍼진 몸이 덜덜 떨렸다. 이제는 감각마저 둔해졌다.
“만약신의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모르나 제 실력으로는…….”
정철이 말끝을 흐렸다. 만약신의가 오는 날을 계산했던 남궁진혁으로서는 의기양양한 기분만이 들었다. 만약 만약신의가 오늘 온다고 했으면 어찌 독약을 먹었겠는가. 남궁성화는 버럭 소리를 쳤다.
“의원이 벌써 포기를 하는가! 당장 진혁이가 살아날 방법을 강구하라! 남궁세가의 모든 것을 줘도 좋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내! 만약 진혁이가 죽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정철은 이를 악물었다. 살릴 방법이라니. 당문에서도 최고로 치는 만독단을 도대체 무슨 수로 해독한단 말인가. 정철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남궁진혁의 눈을 보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눈빛이었다.
‘허허! 모든 것을 체념한 눈빛인데 그 사이에 한 가닥 희망이 실려 있구나. 살려 달라, 내게 살려 달라고 말하고 있어. 아이가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먼저 포기한단 말인가! 살려 내자!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 내자!’
정철의 표정은 체념에서 굳건한 의지로 바뀌었다. 아이의 해맑은 눈이 잠들었던 뜨거운 혼을 일깨운 것이다. 잠시 동안 남궁진혁의 눈을 바라보던 의원이 갑자기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