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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검존 1권 12화
제6장 무공을 배우다(2)
패악을 부리며 고개를 팩 돌렸다. 사우비는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네가 물을 가져오다가 아버지라도 마주쳐 봐. ‘도련님이 목마르대요.’ 하고 이를 거잖아. 무서워서 어떻게 시키겠냐.”
“그,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고, 정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 전부 너 때문이잖아! 뭐? 곰 맞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 곰 얘기는 애초에 남궁진혁 본인이 꺼냈다는 사실은 싹 잊어버린 듯하다. 사우비의 소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고, 아이고. 정말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도련님, 믿어 주십시오.”
조금만 더 하면 울겠다. 남궁진혁은 픽 비웃었다.
“나 여기 있고, 넌 거기 있다. 네가 정말로 뉘우치는 마음이 있으면 어째서 거기서 구경만 하냐.”
사우비가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잠시 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연무장으로 달려와 마보를 취했다. 남궁진혁은 둔한 녀석이라고 투덜거렸지만 더 이상 닦달하지는 않았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아 사우비는 부들부들 떨었다. 금세 땀이 배어 나와서 옷이 흠뻑 젖었다.
“사우비야, 힘드냐?”
“아, 아닙니다!”
“쉿. 목소리 낮추고. 그런데 너 마보는 왜 하고 있는 거냐? 누가 시켰냐?”
“도련님께서…….”
“내가 시켰어?!”
사우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궁진혁이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경을 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어이구, 이 답답한 자식. 너는 지금 수련이 모자라서 자청한 것이 아니냐!”
악랄하다.
“아! 예,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사우비가 반색하며 외쳤다. 남궁진혁은 코웃음을 쳤지만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역시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편이 낫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으니 얼마나 괴롭히기 쉬운가.
“그 말 잊지 마라.”
“……너는 왜 그러고 있냐?”
뒤늦게 나타난 남궁성화는 반쯤 죽어 가는 사우비의 몰골을 보고 어이를 상실했다. 시퍼렇게 쥐어 터진 몸뚱이로 마보를 하고 있으니, 몸에 경련이 나서 달달 떨리고 땀이 폭포처럼 흘러서 땅을 적셨다.
“수, 수, 수, 수련이 모자라…… 하, 하, 하고 있습니다!”
남궁성화가 미심쩍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다만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그러게, 내가 하지 말랬잖아. 아픈 몸으로 수련은 무슨 수련이냐.”
정말로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인가. 남궁성화는 사우비가 역시 곰 같은 녀석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이제 됐으니 둘 다 편히 서거라. 아니, 서래도 어딜 가는 거냐.”
쿵! 쿵! 쿵!
똑바로 서려고 했던 사우비가 중심을 잃고 갈지자를 그리며 뒤로 걸었다. 남궁진혁은 먼 산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고 사우비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사우비는 앉아서 듣거라. 진혁이와 사우비는 오늘 충분히 반성했을 거라고 믿는다.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무공을 가르쳐주겠다.”
사우비는 환히 웃으며 반겼고, 남궁진혁은 뭐 씹은 표정으로 괴로워했다.
‘영약을 처먹이더니 이제는 무공이냐!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써라!’
다음 날부터 남궁진혁은 정식으로 무공을 사사받게 되었다. 이제 일곱 살에 불과하지만 명문가의 자제들은 다섯 살 때부터 무공을 익히는 일도 흔하니 오히려 늦은 편이었다. 그러나 남궁성화는 그간 쌓아 온 내공과 기본공이 그 차이를 메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뛰어넘을 것이라 판단했다.
“우리 남궁가는 검의 일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네가 배우는 무공도 검공이 주가 될 것이다. 오늘 이후로는 한시도 검을 손에서 떼지 말 것이며 잘 때도 안고 자야 한다. 알겠느냐.”
하필이면 검공이다. 남궁진혁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옛날 ‘검존님, 검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하면서 쫓아다니던 남궁성화가 이제는 자신을 가르치려고 드니 운명이란 이리도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대연신공은 내가 이미 가르쳤으니 아침저녁으로 한 시진 이상 수련하도록 해라. 그리고 본래대로라면 남궁가에 전해져 오는 검법을 가르쳐야겠지만 그 이전에 네가 배울 것이 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진중하게 말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가르친 적이 없는 무공을 아들에게 넘겨주려는 것이다.
“아비는 젊었을 적에 커다란 기연을 만났다. 절정까지 익히면 천하제일의 자리도 노려 봄직한 절세의 검법이 바로 그것이지. 비록 내 자질이 모자라 구성의 경지에 머물렀지만 이미 천하십대고수에 도달했다. 너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큰 성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사람이 자식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남궁가의 무공’이 아니란다. 남궁진혁은 의구심을 느꼈다.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며 세상에 퍼지면 얼굴을 들기 힘든 얘기였다.
“아버지, 그것은 이상합니다. 아무리 좋은 검법이라고 해도 남궁세가의 무공을 익히는 것이 도리가 아닙니까.”
남궁성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설명했다.
“아니, 그렇지 않단다. 너도 익혀 보면 알 것이다. 어찌 보면 남궁세가의 검법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둘은 밀실로 된 연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주만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어서 훔쳐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창문조차 없지만 환풍구를 잘 해 놓아서 공기는 맑았다.
수십 개의 촛불이 일렁이며 타올랐다. 스르릉, 남궁가주가 검을 뽑아 들자 시린 검광이 붉은 촛불 사이에서 번뜩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눈을 똑똑히 뜨고 보거라.”
칠성검.
남궁가주가 쥔 검의 이름이다. 금룡검에는 미치지 못하나 이름난 명검이다.
“하늘을 보았는가.”
검이 움직인다. 아니, 흘렀다.
“구름을 보았는가.”
부웅!
바람이 불었다.
촛불이 미친 듯이 춤을 춘다.
“한없이 맑지 않은가.”
검이 춤을 춘다. 새하얀 빛을 남기며 정신없이 춤을 춘다. 허공에는 무수한 선이 그어져 아름다운 문양을 이뤘다. 구름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하고 별들의 무리 같기도 하다.
부웅! 부웅!
촛불이 하나 둘 꺼져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칠성검이 어둠을 잡아먹고 있었다. 불꽃도 잡아먹었다. 시린 검광은 격하고, 빠르고, 자유로웠다.
자유롭다.
“그러나 비가 올 것만 같다.”
콰르르릉!
검이 요동친다. 한없이 예리한 검의 궤적이 갑자기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한 줄기의 빛이 갑자기 수십 개로 갈라졌다. 공기를 가르던 검이 이제는 공기를 찢어발기고 물어뜯었다.
콰르릉!
폭죽같이 터져 나오는 검기!
“그래도 좋다. 그 뒤에는 더 맑을 것이다.”
검은 격했으나 목소리는 차분했다. 촛불이 모두 꺼지고 검광만이 홀로 빛났다. 남궁진혁은 눈을 부릅뜨고 남궁가주의 검법을 보았다.
사방으로 터져 나가던 눈부신 검기가 일순간 하나로 모였다. 칠성검이 새하얗게 빛났다. 검기가 하나로 뭉쳐져서 스스로 모습을 유지했다. 남궁성화는 시리게 빛나는 검기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내력을 거두었다.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천의검이다.”
사방이 고요했다. 적막과 어둠이 어우러졌다. 여운에 취한 남궁성화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물론 당장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 그렇지만 뼈를 깎아 수련을 한다면 너도 천의검을 익힐 수 있다. 내 장담컨대 천의검이야말로 천하제일검법이다.”
남궁진혁의 두 눈에 천의검의 움직임이 모두 각인됐다. 잠시 침묵하며 곱씹은 남궁진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에이, 별거 아닌데요.”
절세의 검법이라고 해서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별로 대단한 검법은 아닌 것 같았다. 하늘의 뜻이라는 광오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제법 괜찮은 정도로 보였다. 천하십대고수에게 어울리는 정도.
남궁진혁이 그처럼 나오자 남궁성화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뭣이!”
“제가 보기에 천하제일검법으로 불리기엔 좀 모자란 것 같은데요.”
“하하, 익혀 보면 알 것이다. 지금의 네가 알아볼 수 있는 성질의 무공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남궁진혁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천하제일’이라는 말에 자꾸 귀가 간지러웠던 남궁진혁은 짜증이 났다.
‘왕년의 천하제일검객이 여기 계신데 무슨 헛소리야. 괜찮아 보이긴 해도 대단하진 않구만. 그리고 머리 만지지 마!’
“십 년쯤 정진하면 너도 천의검의 위대함을 어렴풋이 알게 될 터이니, 그때 다시 얘기하자꾸나.”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궁진혁이 날카롭게 쏘아보자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무공을 보고 호승심이 생긴 모양이구나. 지금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좋은 원동력이 될 게다. 그런데 남궁진혁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연무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봐요, 천의검을 펼칠 테니!”
앙칼지게 외치자 남궁성화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웃어라. 언제까지 웃을 수 있는지 보자.
스르릉.
금룡검이 오랜만에 칼집에서 뽑혀 나왔다. 섬뜩한 마찰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낸 금룡검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어두웠던 연무실이 일시에 밝아졌다.
‘처음엔 이렇게였나.’
우우웅!
금룡검이 기쁘게 울었다. 검법을 펼치긴 처음이다! 남궁진혁은 한 번 보고 외워 버린 검의 움직임을 금룡검으로 이끌어 냈다. 검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금빛의 잔영을 남기며 허공에 미끄러졌다.
‘어?’
챙그랑.
놓쳤다. 손을 벗어난 금룡검이 연무실 구석에 처박혔다.
웅웅웅!
금룡검이 이럴 줄 알았다면서 구슬피 울었다.
“푸히히힉! 거 봐라!”
아들의 행동이 귀여워서 남궁성화가 주책없이 웃었다. 그러나 아들의 얼굴이 뭐 씹은 표정이라 금세 헛기침을 하며 태도를 고쳤다.
“험험, 이제 알았느냐. 천의검법은 초상승의 무공이라 한 번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십 년 이상은 정진해야 할 것이야. 너무 실망하지 말고 오늘부터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히거라.”
“이럴 리가…….”
“너는 먼저 검을 쥐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무인은 절대로 검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악력도 좀 키워야겠구나.”
“이럴 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남궁진혁은 망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작은 아이의 손. 그렇지만 이미 내력도 충분하여 무공을 익히기에 무리가 없다. 검을 놓친 것은 악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의검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어! 내가 펼칠 수 없는 무공이라니!”
“험험, 진정하래도. 천의검은 말이다…….”
“이익! 이런 허섭스레기 같은 검법! 말도 안 돼! 무공도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못 펼쳤지! 어디서 이런 걸 주워 왔어요?!”
남궁진혁이 광분하여 외쳤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검법은 그야말로 진천검존의 혼과 같다. 검으로 무공의 끝을 본 사람이 펼칠 수 없는 검법이라니! 남궁진혁은 천의검을 마구 욕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허허! 내가 너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구나.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네가 무슨 진천검존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한 번 본 검법을 펼치게!”
“이이익! 내가 진천검존이다! 내가 진천검존이야!”
아들이 미쳐 갔다. 남궁성화는 아들을 한 대 패주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까지 안 되는 게 없는 생활을 했으니, 애가 오죽 실패에 대한 저항력이 없을까.
‘그래, 힘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정하는 법도 배우겠지.’
“이런 거지 같은 검법!”
아버지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아들의 머리통을 갈겼다. 남궁진혁은 풀썩 쓰러져서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소리 지르고 악을 썼다.
“으악, 이럴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어리석은 녀석! 욕을 하려거든 최소한 펼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른 다음에 해라!”
남궁성화는 크게 소리치고 연무실에서 먼저 나와 버렸다. 약간은 계산된 행동이었다. 아들이 만약 끈기가 있다면 며칠이고 도전해 보고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존재인지 깨달으리라. 자신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니, 이렇게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이 흘렀다. 남궁성화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이틀 동안 아들이 연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시녀들과 사우비가 남궁진혁이 없어졌다며 가주에게 찾아와서야 알았다.
“……없어졌다고? 설마 아직도 연무실에 있나.”
사람을 연무실로 보냈지만 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놀란 남궁성화는 직접 연무실로 뛰어가 문을 두드렸다.
“아들! 안에 있는 것이냐!”
대답이 없다. 인기척도 없다. 귀를 대어 보았지만 한없이 고요했다. 청력에 집중하여 자세히 들어 보니 아주 가느다란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아, 안에 있으면 대답해라!”
반응조차 없다. 소리에 놀라 호흡이 변하지도 않는다. 일정하고 가느다란 호흡 소리만이 지속됐다.
‘이 녀석이 반항하는 건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해서 좀 꾸짖은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설마 문을 걸어 잠그고 시위 중인 것인가. 그러나 알 도리가 없었다. 한마디 대꾸라도 돌아오면 안심하련만 묵묵부답이다.
“여봐라! 열쇠는 없느냐!”
소란을 듣고 찾아온 총관 풍상림이 난색을 표했다.
“가주님 전용의 연무실은 밖에서 열 방법이 없습니다.”
폐관수련에 방해받지 않도록 고안된 설계다. 그나마 다행히도 연무실에는 식수와 벽곡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남궁진혁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나오지 않겠는가. 남궁가의 하나뿐인 후계자가 연무실에 갇히자 세가는 완전히 뒤집혀졌다.
문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고 있던 남궁성화는 눈을 부릅떴다.
‘검이다! 검의 소리다!’
금룡검의 울음이 가늘게 들렸다. 검초를 펼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를 가르는 낮은 파열음이 집중된 청력에 잡혀 왔다.
‘검을 익히고 있는 것이냐! 하하, 설마 천의검을?’
남궁성화는 연무실 안에서 검을 펼치는 소리가 들리자 일단 안심했다. 금룡검의 소리가 들린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아들이니까. 아들의 당돌한 수련에 방해가 될까 봐 숨마저 죽였다.
연무실의 광경은 남궁성화의 상상을 초월했다. 남궁진혁이 황금빛 광휘에 감겨 검무를 췄다. 진천검존의 무공을 금룡검으로 토해 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 가닥의 검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