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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검존 1권 13화
제6장 무공을 배우다(3)
파직! 파지직!
실처럼 가는 검기의 다발이 연무실의 벽에 미세한 흠집을 남겼다. 무아지경에 빠진 남궁진혁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끊임없이 검무를 췄다.
우우우웅!
기쁨에 겨운 금룡검이 미친 듯이 울었다. 이것이다! 남궁진혁을 주인으로 인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었다. 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극한까지 힘을 발휘해 낼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자!
“다른 무공은 되잖아!”
남궁진혁이 외쳤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검무에 연무실의 모든 집기가 박살났다. 벽곡단과 물을 담아 둔 항아리가 무수한 조각으로 갈라졌다.
“내가 천하제일검 맞다!”
번쩍!
그가 소리치니 금룡검의 빛이 극한까지 응축되어 터져 나왔다. 눈을 태워 버릴 듯한 빛이 연무실을 가득 메웠다. 빛이 지나가고 난 연무실은 이미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벽에는 거미줄처럼 베인 자국이 가득하고 집기란 집기는 모두 조각이 났다.
연무실 바닥에 주저앉은 남궁진혁이 거친 숨을 토했다.
“헉헉, 거봐. 나는 멀쩡하잖아. 전생의 무공도 대부분 펼칠 수 있어.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니야.”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진천검존 시절의 무공을 모두 펼쳐 냈다. 혹시라도 남궁진혁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어 근본부터 되짚었다.
단련되지 않은 근육과 관절이 미칠 듯한 고통을 호소했다. 극한의 내력을 쏟아야 하는 몇몇 절기는 힘들지만, 그걸 제외한 대부분 펼칠 수 있었다.
“제길! 그런데 천의검은 안 된다고? 내가 펼칠 수 없는 무공 따위는 세상에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서 거친 숨을 쉬던 남궁진혁이 씹어 뱉듯이 말했다. 백이십 년 동안 세상의 모든 검을 겪었다고 자부하고, 그중 익힐 수 없는 검은 없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이건 안 된다고?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천의검.”
연무실 밖에서는 여전히 소란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으나 들리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검에 집중됐다.
바득!
이를 꽉 깨물고 남궁진혁은 퉁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드시 펼쳐 주마!”
우우웅!
이윽고 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별이 흐르는 것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순식간에 펼쳐진 검격은 빗발 같은 검기를 하나로 뭉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으윽, 또! 또 헝클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놔줄 것 같냐!’
검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내가 익히지 못하는 검법은 없다! 강제로라도 취하겠어!’
남궁진혁은 천의검의 구결에 따라 억지로 금룡검을 휘둘렀다. 기혈이 들끓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검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 남궁성화가 펼쳤던 모양새와 제법 비슷해졌다.
‘좋아, 이대로 계속!’
검이 힘을 잃는 순간, 천의검의 도입부로 돌아가 다시 박차를 가했다. 검의 흐름이 더욱 정교해졌다. 황금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금룡검이 천의검을 점차 완벽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그래!’
검을 쥔 손아귀부터 시작해서 전신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었다. 근육이 찢어질 것 같고, 숨이 턱 막혔다. 그러나 남궁진혁은 숨조차 돌리지 않았다. 극도의 몰입! 지금 검을 놨다가는 언제 다시 이런 순간이 올지 모른다!
흐름이 이어지니 검의 움직임이 점차 세밀하고 빨라졌다. 처음에는 손에 잡힐 듯이 천천히 움직이던 금룡검이 조금씩 가속했다.
부웅, 부웅, 부우웅!
공기를 찢고 금빛 잔광을 남기는 모습이 거의 남궁성화의 것과 비슷해졌다.
우우우우웅!
금룡검이 바람을 휘감고 거칠게 울었다. 진천검존의 눈이 차갑게 타올랐다. 오로지 검에 집중한 그의 모습은 얼음이 타오르는 것처럼 차갑고도 격했다.
‘일성! 이성! ……오성!’
진천검존은 자신의 성취를 자로 잰 듯 정확히 깨달았다. 순식간에 오성을 돌파한 성취가 육성을 넘어서 칠성을 향해 달렸다. 아직 천의검의 오의를 꿰뚫지는 못했지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가면!’
신검합일!
검이 남궁진혁이고, 남궁진혁이 검이다. 이미 검과의 구분이 없어지니 금룡검과 남궁진혁은 하나의 생각으로 움직였다. 천의검, 그 끝을 보기 위해서!
‘이제 곧 남궁성화의 성취마저 뛰어넘는다!’
남궁진혁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머릿속에선 수천수만 가지의 검로가 회오리쳤다. 그 가운데 진정한 검로를 찾아내야 한다.
바득!
천의검을 펼칠수록 몸이 아팠다. 근육이 찢어질 것만 같다.
진천검존의 입가에 혈흔이 번졌다. 내상이 아니다. 이를 너무 악물어서 잇몸이 상했다.
‘안 돼! 막힌다! 이곳만 뚫으면 길이 보일 것도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칠성의 언저리에 이르자 성취의 진전이 없었다. 남궁성화는 분명 스스로의 성취를 구성이라고 했다. 적어도 그곳까지는 무리 없이 도달해야 했다. 남궁진혁은 눈을 부릅떴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남이 보기엔 검무다. 그러나 남궁진혁에겐 전투였다. 수십만 개의 길을 택해서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 그어지는 무수한 검기의 잔상이 그 증거다.
손이 무거워졌다. 손끝이 무뎌지고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단련되지 않은 일곱 살 아이의 몸으로 내력만을 이용해 무공을 펼쳤다. 사흘 밤낮의 검무도 모자라서 새로운 무공을 익히려고 하니 몸이 죽겠다고 소리쳤다. 오로지 정신력으로만 버티며 저 끝에 보이는 벽을 뚫기를 갈망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절망, 절망, 절망! 단시간에 끝낼 일이 아닌데도 끝없이 도전하는 집념! 그리고 남궁진혁은 마침내 보았다.
‘찾았다!’
하늘을 보았는가.
구름을 보았는가.
한없이 맑지 않은가.
그러나 비가 올 것만 같다.
그래도 좋다. 그 뒤에는 더 맑을 것이다.
남궁성화가 읊어 준 천의검의 검결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남궁진혁은 본능적으로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고 느꼈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세상이 깜깜해지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남궁진혁은 푸른 언덕을 보고 있었다. 풀이 가득한 언덕, 그 너머의 하늘은 너무나 맑았다. 너무나 평화롭고 푸른 하늘이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트였다.
저 멀리 구름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그마저도 정겹다. 비가 오면 시원할 것이고, 그 뒤로는 하늘이 다시 고개를 내밀 것이니까. 마침 언덕을 넘어간 해가 정면으로 비치고 있어서 눈이 부셨다.
‘자연……. 설마 자연을 담아 낸 검법이었을 줄이야.’
언덕으로 비치는 역광 속에 그림자가 보였다. 윤곽이 사람 같았다. 누군가 언덕의 끝에서 하늘을 보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 남궁진혁은 그자가 천의검의 창시자라는 걸 깨달았다. 손을 뻗었다.
‘너냐! 네가 이 검법을 만들었냐! 얼굴을 보여라!’
닿기 직전까지 갔다. 그림자의 사내에게 닿을 수 있었다. 천의검의 오의가 손에 잡히려고 했다. 대자연을 담아 낸 검의 오의를 통달하기 직전이었다.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백열했다.
“크, 크아아아아아악!”
벼락에 맞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다. 극한까지 긴장했던 근육들이 조각조각 나고, 내기의 흐름을 감당하던 오장육부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짓이겨졌다. 무리하게 운용된 혈도가 뭉개졌다.
‘주, 주화입……마.’
푸악!
남궁진혁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어느 순간, 검을 펼치는 소리가 멈췄다.
‘……무슨 소리지?’
토악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불길하다.
“진혁아?”
남궁성화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었다.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려는데 귀를 찢는 이명이 들렸다.
우우우웅!
“……금룡?”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금룡검의 울음이 심상치 않았다. 두꺼운 철문 건너편에 있는데도 생생하다.
우우우웅!
도움을 청하고 있다! 남궁성화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진혁아! 진혁아, 대답해라! 대답햇!”
콰앙! 콰앙! 콰앙!
남궁성화가 마구 소리치며 문을 두드렸다. 공력이 실린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백련오철로 만든 문은 꿈쩍도 않았다.
“가주님, 진정하십시오! 다치십니다!”
풍 총관이 막으려고 들자 남궁성화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해! 뭔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검이 우는 소리가 불길하다!”
금룡검의 울음이 평소와 달랐다. 신검합일을 이룬 남궁성화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사람을 불러 문을 부수겠습니다!”
이성을 잃은 남궁성화를 풍 총관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남궁성화도 백련오철의 문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초조히 인부들을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독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건 피 냄새?!”
우왕좌왕하던 남궁성화가 코를 벌름거렸다. 진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근원지가 금세 드러났다. 연무실의 문 밑으로 검붉은 피가 밀려 나오고 있었다.
“지, 진혁아아!”
눈이 뒤집혔다. 남궁성화가 다시 문을 미친 듯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발로 차고, 어깨로 밀치고 주먹으로 치다가 안 되니까 검을 뽑았다.
“크아아악!”
“안 됩니다, 가주님!”
남궁성화의 검에서 검기가 삐죽 솟아오르는데, 풍 총관이 잽싸게 달려와 가주의 허리를 잡고 늘어졌다.
“이것 놓지 못해! 진혁아아!”
“참으십시오! 지금 문을 부수기 위해 기술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백련오철을 함부로 베려고 드시면 내상을 입게 됩니다!”
“내상이 문제냐! 놔랏! 내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줄줄줄.
흐르는 피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출혈량으로 보아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궁성화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놔라! 아들은 지금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의 기로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남궁성화의 옷이 크게 펄럭였다. 허리에 매달려서 그것만은 안 된다고 말리던 풍 총관이 내공에 밀려나 삼 장이나 굴러갔다.
“아이쿠! 으윽, 안 됩니다…… 가주님!”
풍 총관이 고통을 참으며 만류했지만 남궁성화는 이미 문을 향해 돌진했다. 백색의 반투명한 검기를 두른 칠성검이 백련오철의 문을 후려 팼다.
카아앙!
“으악!”
발만 동동 구르던 남궁세가의 식구들이 비명을 지르고 귀를 막았다. 문에서 터져 나오는 이명 때문에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문을 가격하고 있는 남궁성화는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카아앙! 카앙! 카앙!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남궁성화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문을 계속 두들겼다. 남궁성화의 검은 바위도 두부처럼 자르는 명검인데도 백련오철 문에는 미세한 흠집만 남았다.
“아들아, 내가 간다! 죽지만 말아다오! 이놈의 문은 왜 이렇게 단단한 거냐! 이이익!”
체면이 웬 말이냐. 발을 디딜 때마다 아들의 피가 철벅거리는 소리를 냈다. 남궁성화는 칠성검에 필생의 공력을 밀어 넣었다.
카아아앙!
하얀 불꽃이 수십 번이나 튀어 오르고 나니 문에 변화가 생겼다. 남궁성화가 집중적으로 두들긴 문의 중앙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남궁성화도 그 변화를 알아채고 더욱 집요하게 균열 부위를 두들겼다.
‘아이구, 아이구, 큰일이다! 도련님이 다 죽게 생겼어!’
사우비가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호위인데, 도련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발 무사하세요. 도련님, 제발요!’
간절한 소원이 통했나! 믿을 수 없게도 남궁성화가 두들기던 곳의 균열이 깊어지며 실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문이 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손가락만 한 틈새였지만 희망이 생겼다.
“여, 열리고 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이제까지 만류하던 풍 총관도 손에 땀을 쥐고 응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단숨에 문을 부숴 버리고 소가주를 구하면 좋겠다. 그런데 쉴 새 없이 문을 두들기던 가주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허억! 허억! 열려라! 열리란 말이다!”
숨이 턱까지 찼다. 눈앞이 가물거린다. 단전이 텅 비어서 한 방울의 내공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내상까지 입어서 배 속이 뒤틀렸다.
파직, 파직, 파지직.
“으윽, 안 돼!”
다 타 버린 촛불처럼 검기가 깜빡이더니 이내 흩어져 버렸다. 남궁성화는 기진맥진하여 남은 내공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탈진했다.
카앙!
있는 힘껏 문을 내리쳤는데 균열은 더 벌어지지 않았다.
한계다.
“가주님…….”
풍 총관이 사태를 파악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성화가 눈물을 흘렸다.
“으헝! 아들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열어, 열어! 당장 열리란 말이다! 제발 열어! 으아악!”
이성이 송두리째 날아간 남궁성화가 광분하며 검을 휘두르다가 떨어뜨렸다. 검을 다시 쥘 기운도 없어서 어깨로 치고 주먹으로 문을 쳤다. 내력이 동나자, 보호받지 못한 주먹에서 피가 터졌다.
“안 된다! 진혁이가 어떤 아들인데! 절대로 안 된다! 열란 말이닷!”
남궁성화가 오열하며 문에 매달렸다.
“가주님…….”
풍 총관이 남궁성화에게 다가가 몸을 잡아 끌었다. 아무리 천하십대고수라도 무리였다. 자그마한 기대를 품었던 풍 총관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더 이상 무리했다가는 남궁성화도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을지 몰랐다.
“놔라, 으흐흑. 진혁아! 진혁아!”
“고정하십시오…….”
완전히 탈진한 남궁성화를 떼어 내기란 쉬웠다. 풍 총관은 남궁진혁의 피를 밟으며 소가주에 대해서는 체념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소가주를…….’
“우어어어어!”
그때까지 손가락을 물어뜯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우비가 괴성을 질렀다. 남궁성화가 문을 부수는 듯하자 화색이 돌았던 그다. 그러나 남궁성화마저 힘이 빠지자 도련님이 살 가능성이 얼마 없다는 걸 둔한 그도 깨달았다.
“안 됩니다, 도련님! 죽으면 안 돼요!”
쿵쾅쿵쾅!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우비가 쿵쾅거리며 문으로 뛰어갔다.
“시끄럽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풍 총관이 반쯤 넋이 나가서 흐느끼는 남궁성화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러나 사우비는 듣지 못하고 솥뚜껑 같은 주먹으로 백련오철 문을 쳤다.
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