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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검존 1권 14화
제6장 무공을 배우다(4)
어찌나 세게 쳤던지 주먹에서 단번에 피가 터졌다.
“지키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켜 드린다고 했단 말입니다!”
콰앙! 콰앙! 콰앙!
흑색의 문에 시뻘건 주먹이 무수히 찍혔다. 주먹의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고 뼈가 드러났다. 그러나 사우비는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마구 쳤다.
“그만 해라! 네 실력으로는 흠집도 내지 못해!”
“싫습니다! 저는 도련님의 호위입니다! 저는 호위입니다!”
사우비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계속 주먹을 내질렀다. 이미 주먹인지 다진 고기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이대로라면 다시는 손을 쓸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풍 총관이 눈짓을 하여 남궁세가의 제자들에게 사우비를 붙잡으라고 명령했다.
“으아아아아아!”
뼈가 으스러졌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사우비는 양손을 문에 짚고 머리를 짓찧었다.
콰앙! 콰앙! 콰앙!
순식간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마가 깨지고 피가 줄줄 흘렀다.
“그만 해!”
제자들이 뒤에서 사우비를 덮치려는 순간.
“으아아아아!”
콰아앙!
굉음이 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사우비의 박치기가 백련오철로 된 문을 쪼개 버린 것이다. 세로로 갈라진 문이 지축을 흔들며 쓰러졌다. 동시에 사우비의 거구도 쿵 하고 쓰러졌다.
“여, 열어 버렸다…….”
풍 총관이 중얼거리며 정신을 잃은 남궁성화를 다른 제자에게 맡기고 연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사지가 뒤틀린 남궁진혁이 입에서 피 거품을 흘리고 있었다.
“당장 소가주를 정철 의원에게 옮겨랏! 어서!”
제7장 죽어도 좋을까(1)
남궁진혁은 꼬박 칠 일을 앓았다. 침상에 누워서 거동도 못하고 정철이 끓여 주는 약만 먹었다. 탕약을 먹고 나면 어지럽고 졸려서 잠을 잤다.
‘지독하게 앓는구나!’
사지육신 어디 한 군데 저리지 않은 곳이 없었고 오장육부 또한 성한 곳이 없었다. 주화입마의 후유증이란 그렇듯 무서운 것이었다. 만약 남궁성화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신불수의 폐인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기력이 하나도 없다.’
탕약을 넘기며 연명하기를 열흘. 남궁진혁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이젠 기절하지도 않았고 잠들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몸을 진정시키는 약이었지만 앞으로는 몸을 보하는 약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잠이 쏟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확실히 잠이 줄었다. 정신도 또렷해졌다. 그러나 통증도 뚜렷해져서 별반 나을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악화됐다. 격통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먹던 약은 진통 작용도 있었던 것이다.
“진통제! 당장 진통제 내놔!”
“안 됩니다.”
정철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진통제를 먹으면 몸이 둔해져서 회복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조금 늦어져도 좋으니 지어 달라고 졸랐지만 정철은 칡뿌리 한 조각을 던져 주는 것으로 깔끔히 무시했다.
남궁진혁은 이를 갈며 칡뿌리를 씹었다.
보름이 지나자 정철은 침을 놓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남궁진혁은 소리를 지르며 항변했다. 전신에 빽빽이 꽂힌 침이 너무도 따가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철은 역시 코웃음을 쳤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 아악!”
“엄살이 심하십니다. 썩은 피를 뽑아내야 하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픈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다. 은침은 혈을 자극하지 않고 혈관을 건드려서 탁한 피가 흘러나오게 했다. 남궁진혁이 누워 있던 침상의 천이 새까만 피에 절었다.
“아파 죽겠다! 엄살이 아냐! 나 죽는다! 의원이 사람 잡는다!”
이십 일이 지나자 통증이 줄었다. 더 이상 은침으로 찔러 대지도 않았고, 죽도록 쓴 약을 주지도 않았다. 그제야 팔과 다리가 조금씩 움직였다. 아직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많이 나아졌다.
“이제 일어나도 괜찮을까?”
붕대를 갈아주는 정철에게 묻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붕대를 갖고 사라졌다. 남궁진혁은 약이 올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 아야야! 아프잖아!”
아무도 일어나도 된다고 한 사람이 없건만 남궁진혁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침상에 나동그라져서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쪽팔리고 억울하다! 천하의 진천검존이 주화입마에 빠지다니, 어디 말이나 꺼내겠는가! 완전히 죽을 뻔했잖아! 이런, 제기랄! 아이고, 염라대왕. 이것이 모두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두고 보자꾸나. 내가 백 배 천 배로 갚을 것이야!’
새까만 눈동자가 분노로 활활 타오르다 말고 의혹이 스쳤다. 남궁진혁은 사지를 비틀며 발광하다 말고 우뚝 멈췄다. 뭔가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었다. 남궁진혁은 다시 생각을 되짚다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워낙 처절한 비명 소리라 밖에서 탕약을 끓이던 정철이 기겁을 하며 뛰어 들어왔다.
우당탕!
의자가 쓰러졌다.
“무슨 일이오, 소가주!”
“놓치고 말았어! 으아악! 절호의 기회였는데!”
남궁진혁은 이제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었다.
‘죽을 수 있었는데! 주화입마라면 한 번에 저승으로 편안히 갈 수 있었는데 또 살아났잖아! 어째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단 말이냐!’
이십 일이나 지나서야 기억을 해 낸 남궁진혁이다. 정철은 광증이 도졌다고 생각하고 겁을 먹었다.
‘주화입마의 후유증인가! 뇌까지 다쳤다면 큰일이다!’
만약 뇌를 다쳤다면 고칠 방법이 없다. 제발 다른 일이길 바라며 정철은 응급 처치에 들어갔다. 소매를 부욱 찢어 둥글게 말았다. 재빨리 남궁진혁의 양 볼을 움켜쥐고 뭉친 천을 쑤셔 넣었다.
“으아악! 읍읍읍! 읍!”
무슨 짓이냐! 남궁진혁은 외치지는 못하고 정철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지금 안 그래도 미칠 지경인데 누굴 건드리는 거냐! 당장 이 냄새나는 천 쪼가리를 빼지 못할까!
정철은 남궁진혁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자 큰일이라고 여겼다. 재빨리 탁자 위에 널브러져 있는 붕대 뭉치를 가져와서 남궁진혁의 팔다리를 묶었다. 광증이 도진 사람은 힘이 장사라고 했으니 몸이 약해진 소가주라고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됐다.
“진정하시오, 소가주. 흥분해서는 아니 되오. 기가 약해진 소가주는 조금만 흥분해도 열기가 뇌에 미칠지도 모른단 말이오. 진정하고 나를 보시오. 진정하래도!”
“읍! 읍읍읍!”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사지가 묶이고 입이 막힌 소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루를 묶여서 지냈다. 죽어라 발광하던 남궁진혁은 힘이 빠지자 혼절했다. 중상을 입었던 환자인 만큼 아직도 회복이 되려면 멀었다.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몸으로 발악을 하였으니 더 앓지 않은 것만 해도 용하다.
“……아시겠지요, 소가주님. 절대로 흥분은 금물입니다.”
처음에는 입만 풀어 주고 정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광증이 남아 있는 게 아닌지 눈을 까뒤집어 보고 입을 벌려서 혀를 검사했다. 남궁진혁은 완전히 힘이 빠져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제대로 대답을 해 보세요. 아직 아프신 데가 있는지 알아보는 중입니다. 성의껏 대답해 주셔야 제가 치료를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알았다. 조심할게.”
인생무상.
네 글자가 머릿속에 박혔다. 아파서 힘이 빠지고, 지나간 절호의 기회에 넋이 빠졌다. 이제는 심신이 모두 지쳐 버린 남궁진혁이다. 그는 영혼이 빠져 버린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허공만 응시했다.
“모두…… 부질없다.”
눈앞에 금적풍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차라리 그때가 좋았지. 서류에 파묻혀 살았어도 마음은 편했다. 지금은 이 꼴이 뭐냐. 천벌을 받을 염라대왕 때문에 모든 게 어긋나지 않았던가.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흘렀다. 해가 기울고 별이 뜨고 다시 날이 밝았다. 구름이 지나가고 비가 오는 날도 있었다. 사흘이 지났는지 닷새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남궁진혁은 마냥 넋을 놓고 침상에 누워서 치료를 받았다.
‘다 귀찮구나. 삶이 다 무엇이냐. 이토록 좌절만을 반복할 수 있단 말인가. 어지간해야 포기를 안 하지.’
남궁진혁은 인생의 패배자와 같은 눈으로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간혹 정철이 지나가다가 근심스레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왜……?”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넋이 나간 줄 알았다.
주화입마를 겪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몸이 아주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아물 줄을 몰랐다.
“자아, 도련님, 식사하세요. 맛있는 죽입니다.”
입에 쓴 약초로 만든 약초죽. 예전 같으면 고기 내놓으라고 집어 던졌다. 그러나 남궁진혁은 말없이 입을 벌렸다. 시녀가 후후 불어 주는 죽을 기계적으로 받아먹었다. 부드럽게 끓인 죽이건만 모래처럼 목에 걸렸다.
“그만…….”
남궁진혁은 두어 숟가락 받아먹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더 드세요. 너무 마르셨어요.”
시녀가 걱정하며 다시 한 숟가락을 떠서 내밀었지만 남궁진혁은 고개를 아예 돌려 버렸다.
“됐어.”
“그래도 한 숟가락만 더……. 어맛!”
“앗, 뜨거!”
시녀는 남궁진혁의 손등에 들고 있던 죽 그릇을 떨어뜨렸다. 뜨거워서 김이 나던 약초죽이 손 위에 가득 쏟아졌다.
“이를 어째! 도련님, 손을 주세요!”
시녀가 황급히 주전자의 물을 부어 손을 씻어 주었다. 벌써 손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남궁진혁은 씁쓸한 기분으로 시녀의 손을 떨쳐 냈다.
“이제 됐다. 그만 가 보거라.”
“정말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괜찮으니까 가 봐.”
시녀는 울상을 짓다가 재차 사죄를 구하고 식기를 챙겼다. 남궁진혁은 다시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침상에 누워서 지낸 지 어언 두 달, 창밖의 하늘을 보는 것만이 소일거리의 전부였다.
그런데 위화감이 들었다.
‘뭐지?’
손등이 뜨거운 게 거슬렸다. 남궁진혁은 멍하니 손등을 보았다. 죽이 부어졌으니 뜨거운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왜 이리도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순히 통증 때문인가.’
그때 남궁진혁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지나 가는 것이 있었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아…….”
말이 되지 못한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턱이 덜덜 떨려서 이가 부딪쳤다.
“아, 아아. 아아아……. 아아아!”
방을 나가던 시녀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기괴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소가주가 화상을 입은 손등을 보더니 미친 듯이 떨면서 이상한 소리까지 질러 댔다.
“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악! 어떻게 해요! 도련님 광증이 또 도졌나 봐요!”
시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방을 뛰쳐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진혁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왜 몰랐던가.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인가!
만독불침!
도검불침!
한서불침!
금강불괴!
금강불괴가 깨졌다!
절대로 델 수 없는 육신이다. 불에 집어넣어도 화상을 입지 않는 몸. 눈이 오는 한겨울에 옷을 벗고 나가도 동상에 걸리지 않는 몸. 도검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몸!
그런데 주화입마로 금강불괴가 깨진 것이다!
깨달음의 순간!
“아아아아악! 나는! 죽을 수! 있다!”
“소가주! 소가주, 아니 되오! 정신 차리시오!”
정철이 수염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밧줄이 들려 있었다. 경악한 표정이면서도 침착하게 남궁진혁의 손발을 묶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혀를 깨물지 마시오! 이런, 벌써 정신이 나갔군! 재갈!”
같이 뛰어온 시녀가 재갈을 정철에게 주었다. 남궁진혁은 어떻게든 몸부림치면서 피하려고 했지만 끝내 입이 막혔다.
“읍! 읍읍읍!”
결박당한 소년은 두 달 만에 눈물을 흘렸다.
“남궁세가의 금룡검주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정철이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했다.
사지가 결박당한 남궁진혁은 한밤중에 눈을 부릅떴다. 정철이 수면제를 먹여서 낮 동안 계속 잠들어 있던 것이다. 불빛이 없어서 사방이 어두웠다. 감각이 둔했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없는데 큰일이다!’
사람이 없는 것은 절호의 기회이나 빠져나갈 힘이 없었다. 당장 침상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몸인데 결박한 밧줄을 무슨 수로 끊는단 말인가. 남궁진혁은 시간이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벌써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모른다. 이대로 내공이 회복되었다가는 다시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되니, 그전에 끝을 보아야 한다!’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남궁진혁은 억울했다. 만약 조금만 자신의 몸에 관심이 있었다면 오늘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작 물러져 버린 손목을 베었을 것이다. 아니, 독약을 먹어도 죽을 수 있다.
내공이 깨어진 지금, 죽을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혀조차 깨물 수 없게 재갈이 물려 있다. 남궁진혁은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금적풍아. 내일이면 날이 밝고 정철이 밧줄을 풀어 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평정을 유지하고 최대한 잘 보여야 한다. 이제 단 몇 시진이 남았을 뿐이다!’
남궁진혁은 만일을 대비해 몸의 상태를 가늠했다. 많이 쇠약해진 감각이지만 내기의 흐름은 어렴풋이 살필 수 있었다. 이미 두 달 동안 상당량의 기혈이 복구되어 미약하나마 내공이 움직이고 있었다.
‘좋다! 내일까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금강불괴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다. 남궁진혁은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고 정철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찌 하룻밤을 못 기다린단 말이냐. 벌써 칠 년이나 기다리지 않았더냐.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길고 긴 밤이었다. 남궁진혁은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충혈된 눈으로 영원과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자니 어느 순간 닭이 울었다. 창문을 보니 부옇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이제 되었다!’
남궁진혁은 크게 기뻐했다. 기다림의 끝이 오자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쏟아졌다. 그는 정철이 오기 전까지만 조금 자 두기로 했다.
꿈을 꾸었다.
저승의 모든 귀신을 때려눕히고 염라대왕을 밟아서 지옥불에 처넣는 내용이었다. 옥황상제가 직접 자신의 공을 치하하며 신장으로 삼았다. 위풍당당하게 신장의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