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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검존 1권 21화
제9장 의욕 상실 사우비(3)
어리고 약하다. 가진 힘을 나쁜 데 쓰는 것보다야 좋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제 본신의 힘을 가지고도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는 기분은 어찌해도 좋을 수가 없다.
“자자, 그만 울거라. 네 탓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않느냐. 게다가 너를 가르친 사람은 바로 나 강재일이다. 너는 호위무사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설마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끄윽, 끄윽. 하지만 도련님이…….”
“허허, 그만 하래두!”
강재일은 사우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참을 울던 사우비는 눈이 퉁퉁 부어서는 인사를 하고 남궁진혁에게 돌아갔다.
강재일은 안타깝게 그런 사우비의 등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마음을 강하게 가진다면 세가의 누구보다 빠르게 무공이 발전할 아이였다. 하늘이 힘과 실력을 주면서 어찌 저리 순하고 여린 성격도 함께 주었는지. 강재일은 언제나 사우비가 안타깝고 걱정스러웠다.
사우비가 돌아왔을 때는 남궁진혁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제갈성진을 잡으려고 쫓다 쫓다 지쳐서 식식거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제갈성진, 내 칼을 허억, 받아라……. 허억.”
“푸하핫! 얼마나 뛰었다고 벌써 지치는 거야! 토룡은 역시 약골이군?”
제갈성진이 날렵하게 발을 놀리며 보법을 펼쳤다. 내력을 잃은 남궁진혁이 따라잡을 속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멀어졌던 제갈성진이 갑자기 몸을 돌려 남궁진혁에게 접근했다. 남궁진혁이 기회다 싶어 금룡검을 검집째 휘둘렀다.
“죽어랏!”
“느려!”
따악!
“크악! 머리 때리지 마!”
금룡검을 간단히 피한 제갈성진이 주먹으로 남궁진혁의 머리를 두들겼다. 광분한 남궁진혁이 할딱거리면서도 또 콧김을 뿜으며 쫓았고, 제갈성진은 실실 웃으며 도망 다녔다.
‘도련님……. 다 속하가 못난 탓입니다.’
멀찍이 앉아서 남궁진혁을 바라보는 사우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따악! 따악! 따악!
“악! 악! 악! 머리 때리지 마!”
도망 다니던 제갈성진이 거꾸로 남궁진혁을 쫓으며 알밤을 먹였다. 남궁진혁은 반격하려다가 오히려 더 맞았다. 수세에 몰린 남궁진혁은 분루를 뿌리며 도주를 택했다. 그러나 제갈성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따악! 따악!
“크아악! 한 대만 더 때리면!”
따악!
“어쩔 건데?”
“크아아악!”
따악! 따악!
“어쩔 건데? 어쩌려구? 어쩔 거야? 응?”
남궁진혁은 숨을 씩씩 뿜으며 전력으로 달렸다. 숨을 곳도, 피할 곳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반격을 택하자니 전력이 너무나도 모자랐다. 알밤을 먹은 부위에 혹이 솟았다. 남궁진혁은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사우비!’
호위무사와 주인의 눈이 마주쳤다. 남궁진혁은 웅크려 앉은 사우비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제갈성진이 바로 그 뒤를 쫓았다.
“헉! 헉! 사우비, 명령이다! 나를 지켜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 남궁진혁이 사우비의 등짝 뒤에 숨었다. 원체 몸이 거대해서 그런지 앉아 있어도 남궁진혁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사우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련님을 돌아보았다가 정면으로 달려오는 제갈성진을 보았다.
“뭐야! 곰 아저씨, 비켜!”
“어, 어?”
사우비가 우왕좌왕했다. 상대는 제갈성진, 남궁세가의 귀한 손님이었다. 무례를 저지를 상대가 아니다. 사우비가 멍청하게 비키려고 하자 남궁진혁이 빽 소리쳤다.
“너는 누구 호위냐! 비키면 죽을 줄 알아! 어서 이 몸을 지켜랏!”
“웃기지 말고 비켜요, 곰 아저씨!”
일단 양팔을 벌리고 제갈성진의 궤도를 막은 사우비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치, 친구들끼리는 싸우는 거 아닙니다.”
제갈성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핫핫핫! 우린 지금 싸우는 게 아니라 노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비켜요, 곰 아저씨. 애들 노는 데 끼어들면 못써요.”
“친구 아니야! 누가 친구란 말이냐! 사우비, 절대로 비키면 안 돼!”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제갈성진이 ‘에이, 장난이 과해. 진혁아, 곰 아저씨가 진짜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 하면서 혼란시켰다. 사우비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제갈성진이 보법을 밟으며 사우비의 오른쪽으로 돌았다.
“크앗! 막으라니까!”
남궁진혁이 재빨리 사우비를 중심으로 반대편으로 돌았다. 제갈성진이 바로 뒤를 바짝 쫓았다. 둘은 사우비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둘이 놀고 있는 거라고 판단하려던 사우비는 남궁진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는 걸 보고 의심을 품었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단 말려야겠다.’
사우비는 다람쥐처럼 날쌔게 달리는 제갈성진에게 부드럽게 손을 뻗었다. 제갈성진이 코웃음을 치며 독문보법으로 피하려 했다. 그러나 사우비의 일수에는 남궁세가 고유의 금나수법이 섞여 있었다.
툭!
사우비의 손바닥이 달리는 제갈성진의 정강이를 막아섰다. 깜짝 놀란 제갈성진은 균형을 잡지도 못하고 발이 엉켜서 오 장이나 굴러갔다.
“이이익! 치사하게 끼어드는 법이 어디 있어요! 토룡, 쪼잔하게 어른을 싸움에 끼어들게 하다니!”
“핫핫핫! 싸움 아니라며! 허억, 허억, 허억.”
남궁진혁은 폭소를 터뜨리다가 사우비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장하다! 아무리 사우비라도 써먹을 데가 있구나. 앞으로도 제갈성진의 처리는 네게 맡기겠어!”
“너어, 치사하게 자꾸 그러기냐?”
제갈성진이 난리를 치거나 말거나 사우비는 흐뭇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아픈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지켜 드리는 거야. 비록 주화입마에서 도련님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제갈가의 손님으로부터는 지킬 수 있지 않은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사우비의 얼굴이 환해졌다. 남궁진혁은 그가 환하거나 말거나 제갈성진에게 혀를 내밀고 자신의 거처로 도망가 버렸다.
다음 날부터 남궁진혁은 어디를 가든 사우비가 일 장 거리 안에 없으면 소리쳐 그를 불렀다. 혼자 있으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귀신처럼 제갈성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우비를 일 장 거리에 두니 제갈성진은 이 장 밖에서 사우비를 돌파할 틈만 노리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럴수록 남궁진혁은 사우비를 곁에서 떠나게 하지 않았다.
사우비만 행복했다.
제갈세가의 손님이 머물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 그들이 떠날 때가 됐다.
“신세 지고 갑니다.”
제갈공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정철의 의술이 드높다고 하여 제갈상진을 데리고 온 것인데 큰 차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진천 세력에 합류하라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변변한 대접도 못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실 때에는 좋은 술을 준비해 놓지요.”
“하하하, 술 좋지요.”
남궁성화도 제갈공용도 웃음으로 인사했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가슴에 자리 잡은 진천문이라는 그림자 때문이었다. 이미 진천문은 무림의 황궁과도 같았으니까.
“신세를 졌습니다. 저는 몸이 많이 나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마차에 오른 제갈상진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남궁성화는 그런 제갈상진의 모습이 안쓰러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남궁진혁을 빤히 바라보던 제갈성진이 밝게 말했다.
“남궁 아저씨, 저 또 놀러 와도 되나요? 저, 진혁이가 너무 좋아요!”
호탕한 제갈성진의 목소리에, 심각하기만 했던 제갈공용과 남궁성화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좋은 건 괜찮다만, 남궁 소가주를 너무 괴롭혀서 그쪽은 널 싫어하는 것 같더라만?”
제갈공용이 놀리듯이 말하자, 남궁성화는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진혁이도 속으로는 그리 싫지 않았을 겝니다. 그리고 성진아, 언제든지 놀러 오너라. 네가 진혁이뿐만 아니라 부인께도 보약인 듯싶더구나. 항상 아프던 사람이 요즘은 널 보는 재미에 화색이 돌더라.”
“에이, 당연하죠! 제가 원래 여자들한테 인기가 좀 있거든요!”
허리에 손까지 척 걸치고 으스대는 제갈성진의 모습이 사뭇 귀여워 남궁성화는 배를 잡고 웃었다.
“뭐라? 푸하하하!”
“이 녀석, 아주 날이 갈수록 구공(口功)만 느는구나!”
제갈공용의 타박 아닌 타박에 제갈성진이 혀를 쏙 내밀고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그럼 이만 길을 떠나겠소이다.”
“살펴 가시길…….”
제갈공용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남궁성화는 멀리 사라지는 제갈세가의 행렬을 대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남궁성화는 한숨을 쉬었다.
한편,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자신의 거처에 처박혀서 배웅을 피한 남궁진혁은 지긋지긋한 제갈성진이 떠났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핏덩이 꼬마 때문에 피곤해 죽는 줄 알았네! 이제 해방이다!”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버텼는지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다.
제갈상진이야 정철에게 치료를 받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데다, 원체 조용하니 귀찮지 않았다. 그러나 제갈성진은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면서 쫓아다니고 못살게 구는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토룡아, 토룡아!”
아직도 귓가에 토룡이라고 놀리는 제갈성진의 짓궂은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남궁진혁은 고개를 저어서 털어 버리고는 여유롭게 침상에 누워 천의검공을 펼쳤다.
“그간 너무 놀았어. 제갈 꼬맹이 때문에 제대로 치료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했군.”
치료도, 명상도 거의 하지 못했다. 남궁진혁은 이제야 마음의 평온을 느끼며 느긋하게 천의검공을 읽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세 쪽이나 읽었을까? 예기치 않은 방문객이 찾아왔다.
“아들아, 공부하는 중이니?”
“어, 어, 어…….”
하옥란이었다.
제갈성진 덕분에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 하옥란이 아들과의 관계가 많이 가까워졌다고 여겼는지 찾아온 것이다. 남궁진혁은 눈을 크게 뜨고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 했다.
‘제갈성진, 이 망할 자식!’
남궁진혁은 확실히 말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을.
그나마 제갈성진이 있을 때는 그녀를 상대하기가 한결 편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단둘만 남은 상황이었다. 남궁진혁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헝클어졌다.
남궁진혁이 얼굴만 붉히고 있자, 하옥란이 머뭇거리다가 아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날이 많이 춥단다. 그래서…….”
그녀는 붉은 수건 하나를 꺼내어 남궁진혁의 목에 매어 주었다.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러져 있는데, 하옥란이 직접 수를 놓은 것이다.
“미안하구나. 엄마가 많이 챙겨 주지 못해서…….”
하옥란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몸이 너무 약했다. 갓 태어나 첫돌도 지나기 전에 아들을 제대로 안아 줄 수도 없었다. 항상 유모에게만 맡겨 두었으니, 내심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아들이 평소에 자신을 피하니 죄책감이 더해 갔다.
남궁진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하옥란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어린 여자한테 어떻게 엄마라고 부른단 말이냐!’
아무리 눈치가 느린 남궁진혁이라도 알 수 있었다. 하옥란을 피하는 만큼 그녀도 자신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엄마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가면 그녀도 마음을 열 법한데, 도저히 백이십 평생의 인생이 민망해서라도 부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인 남궁성화에게 대하는 것처럼 대들듯 말했다가는 분명 상처를 받을 성격이었다. 하옥란은 무림세가의 사람답지 않게 여리디여렸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남궁진혁이 머뭇거리면서 인사하자 하옥란의 눈매가 축 처졌다. 마음이 상한 것이다. 남궁진혁은 이유를 몰라 속만 탔다.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들이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을뿐더러 난처한 표정까지 짓자 하옥란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역시 나는 어머니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내 자식인데……. 안고 키우지 못한 내 잘못이야.’
하옥란이 이렇듯 가당찮은 오해를 하는데 갑자기 남궁진혁이 고개를 쳐들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서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요, 요즘 몸이 많이 좋아지신 듯싶어…… 보기 조, 좋습니다.”
“진혁아…….”
하옥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이제껏 남궁진혁이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혹시 진혁이는 나와 보낸 시간이 적기 때문에 어색해서 그런 걸까? 내가 소홀했다고 미워하는 게 아니고? 그렇다면 다행이야.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돼.’
남궁진혁을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건강해져야겠다고 하옥란은 다짐하고 웃으며 아들을 끌어안았다. 남궁진혁은 깜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몸이 굳어서 그대로 안겨 버렸다. 푸근한 냄새, 따뜻한 품. 부드럽고 나긋한 손이 남궁진혁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놔, 놔라! 놓지 못하겠느냐! 무엄하다! 볼 비비지 마!’
“그럼 열심히 하거라. 엄마는 가 볼게.”
하옥란이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밝아진 모습으로 방을 나갔다.
남궁진혁은 하옥란이 나간 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곧 긴장에서 풀려난 남궁진혁이 침대에 퍽 하고 대자로 엎어졌다.
가슴이 벌컥벌컥 뛰었다. 감기라도 걸렸는지 열이 올랐다. 왠지 모르게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뭐냐! 뭐야, 심장! 너, 미쳤냐!’
따뜻하다. 심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온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남궁진혁은 정체 모를 감각에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남궁진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엎어진 채로 발을 동동 굴렀다. 콧등이 자꾸 시큰거리고, 목구멍까지 울음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옥란의 품 안에서 느꼈던 기이한 따뜻함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한데 그 직후부터 느껴지는 이 아릿함은, 이 서글픈 그리움은 뭐란 말인가.
‘뭐지? 뭐냐! 뭐냐고! 설마 이것도 주화입마의 후유증인가?’
쿵쿵쿵.
남궁진혁은 벌그레한 얼굴을 침상에 거세게 박았다.
제10장 정천맹(1)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로 하늘이 높고 푸르다. 점점이 뿌려진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가을바람이 고요하게 불어와 늦여름의 열기를 착실히 앗아 가고 있었다. 사우비는 기분 좋게 바람을 맞았다.
“이야, 날씨 좋다.”
이런 날에는 왠지 기분까지 좋아진다. 게다가 가을이라 그런지 식욕도 왕성했다. 즐겁고 평화로운 나날, 단풍들이 세상을 예쁘게도 물들였다. 하늘의 푸름과 단풍의 붉음에 흠뻑 심취한 사우비는 느긋한 마음으로 빗자루를 들었다.
남궁세가에 심어진 나무들도 붉게 물들긴 마찬가지였고 약간은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오늘은 빗자루로 그것만 쓸어 내고 점심을 먹을 참이었다. 아까부터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