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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2화
1장. 삼성지체(三星之體) (2)


그 후 정파에서는 더욱 강력한 추적대를 보내 세 노인을 추적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추어 한동안 잊혀졌던 전대의 거마들이었다. 그런 거마가 지금 만주홍 앞에 나타난 것이다.
“고루삼마.”
고루삼마라 불리는 세 명의 노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정파 무림의 공적으로 찍히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역으로 고루삼마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만주홍도 그것을 느꼈는지 고루삼마를 말하는 그의 표정은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만주홍의 외형과는 다르게 내부에서는 방금 고루삼마의 기습으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상태이기도 했다.
“크크. 좋은 말로 할 때 그 아이를 내놨으면 좋겠군. 그렇다면 내 자네 아이를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주겠네.”
고루삼마 중 맏이인 고일이 만주홍을 향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루마공이 비록 마공이지만 그 무학의 이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고루삼마 중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무공이 가장 고강한 고일도 이제 겨우 고루마공을 팔성 성취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고일은 무림에서 아직 패한 적이 없는 절세의 고수로 악명을 날리고 있으니 삼성지체인 만유정만 얻을 수 있다면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이 결코 허황된 말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말에 만주홍이 ‘알았소. 감사하오.’ 하면서 아이를 줄 리는 만무. 그저 아무런 말없이 검을 들어 고루삼마를 겨눌 뿐이었다.
고루삼마가 말을 하는 사이 어느새 주변에 있던 검을 꺼낸 만주홍이었다. 그러나 내심 만주홍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한 것이 아무래도 상황은 썩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왼손에 자신의 아이를 업고 보호해야 되는 상황에서 고루삼마의 합공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주홍 스스로도 강호를 행보할 때 협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굳이 선택하라면 협객을 선택할 그였다. 마지막 생을 거두면서 아이를 부탁한 애연화를 위해서라도 만주홍은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었다.
만주홍은 결국 거대한 진기를 오른팔로 돌리며 검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의 주 검공은 환검(幻劍), 그렇기에 만주홍의 검은 현란함 그 자체였다. 한때 유명했던 무인답게 만주홍의 검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고루삼마도 그것을 느꼈는지 이내 흑빛 기류를 더욱 강화시키며 그러한 검을 향해 이리저리 장력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이. 이런.”
고루삼마가 장력을 내뿜는 그 찰나의 빈틈을 이용하여 만주홍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쫓아라.”
고루삼마는 순식간에 사라진 만주홍을 향해 경공을 펼치며 쫓아갔다.
“후.”
만주홍은 자신을 향해 쫓아오는 고루삼마를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고루삼마 개개인의 무공이 만주홍보다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환검을 익힌 만주홍의 특성상 신법에 있어서는 만주홍의 신형이 더 빠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기에 그 찰나의 빈틈을 이용하여 만주홍이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곧 만주홍은 고루삼마를 이리저리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장현에 모인 자들은 고루삼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커다란 함성과 함께 어느새 한 노인이 만주홍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양쪽 귀 위로 기이한 모양의 대머리와 혈안이 반짝이는 험악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혈마군(血魔君)!”
만주홍은 노인을 바라보며 경악에 가득 찬 음성을 토해 냈다.
저 기형적인 머리에 혈안, 그리고 커다란 함성과 함께 나타나는 자는 강호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혈마군 괴무운.
정파에 검성이 있다면 사파에는 사왕(邪王), 마도에는 마제(魔帝)가 있으며, 정파에 삼봉(三峰)이 있다면 사파에는 사군(四君), 마도에는 사마(四魔)가 있음이다.
당금 일성, 일왕, 일제, 삼봉, 사군, 사마로 대표되는 십사대고수, 그중 사군에 속하는 일인이 나타난 것이다.
당연 만주홍의 얼굴은 고루삼마를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악한 표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의 감각에 감지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난 것만 해도 만주홍은 눈앞의 혈마군이 자신이 상대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 좋은 말 할 때 내놓아라. 향후 우리 사도제패의 시대를 열어 줄 주인이시다.”
세상에 나온 것이 꽤나 힘에 겨웠는지 만유정은 어느새 만주홍의 왼손에서 소곤소곤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혈마군 같은 고수가 그런 만유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사기(邪氣)를 놓칠 리 만무했다. 아니 사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 삼성지체?”
만주홍이 알아본 삼성지체를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십사인 중 하나가 못 알아볼 리 만무했던 것이다.
내심 도망가면서 걸린다면 정파의 인물을 만나기를 소망했던 만주홍으로서는 실로 난처한 지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러나 반대로 혈마군의 광소는 더더욱 커졌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당연히 사황성의 기운만 받는 것보다 삼성의 기운을 받는 것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삼성지체를 사파의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강호제패 아니, 고금 이래 후대까지 이어갈 수 있는 영원한 사파지존세를 만들 수도 있음이라.
그렇게 생각하자 어느새 혈마군의 주위로 핏빛 강기가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혈마군이라는 별호를 가져다 준 혈마강기(血魔剛氣)가 시전된 것이다.
만주홍은 그 혈마강기를 보며 표정을 굳히더니 곧 검을 휘둘렀다.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 하수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바로 선공이었다. 만주홍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공격에 혈마군은 잠시 미간을 꿈틀거리고 말았다. 만주홍의 공격에 상대가 순순히 아이를 내놓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느낀 혈마군이었지만 그렇다고 만주홍을 향해 무조건적인 살수를 행하기도 난감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향후 사파를 통치할 사파지존이 될 인물이었고, 그런 인물과 친분이 있을지도 모를 만주홍에게 함부로 살수를 행하다 괜한 은원을 만들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주홍의 검이 혈마군을 향해 날아오는 그 순간에도 혈마군의 머리는 수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혈마군은 하나의 결정을 내렸다.
지금 무장현에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절세의 고수들, 제아무리 혈마군이라 한들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임무는 사황성의 기운을 가진 아이를 데려오는 것. 이 외의 일은 주군인 사왕이 할 일이었다.
번쩍.
결국 한 줄기의 섬광과 함께 만주홍을 향해 핏빛 강기가 날아갔다. 한번 펼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는 필살의 초식 혈류일섬(血流一閃)이 펼쳐진 것이다.
만주홍을 제압하는 선에서 그치면 좋겠지만 제아무리 혈마군이라 한들 정상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기에는 오십 초 이상의 초식을 교환해야 했기에 일격필살로 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 명칭에 걸맞게 만주홍의 심장은 순식간에 혈마군의 손에 뚫리고 말았다.
“커어억. 이런 가공할.”
단 일 초식이었다. 만주홍은 자신의 심장을 바라보며 원한에 가득 찬 시선으로 혈마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만주홍의 왼손에 안겨 있던 만유정은 이미 혈마군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비록 아이를 품에 안고 고루삼마에 의해 내상을 입은 상태라 하지만 절정 고수의 심장을 단 일 초식에 끝장을 낸 것이다. 정말 가공할 무공이 아닐 수 없었다.
“부인 미안하오.”
만주홍은 서서히 오는 죽음의 기운에 만유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시선에는 자신이 낳은 아들에 대한 애증과 또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을 처참하게 무너트린 아들에 대한 원한이 담긴 그런 복잡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털썩.
만주홍은 그렇게 싸늘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주홍의 신형이 땅에 떨어질 때 혈마군의 신형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미타불.”
그렇게 한 구의 시신만 남은 현장에 마침 승복을 걸친 세 명의 승려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한발 늦은 모양이구려.”
승려는 만주홍의 시체를 보며 대충 상황이 짐작되는지 안타까운 음성을 토했다.
“추적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곧 승려들은 신형을 띄우며 혈마군이 남긴 흔적을 따라 경공을 시전했다. 하지만 하늘이 진정 사파천하를 원하는 것인가.
어느새 만주홍을 쫓던 고루삼마의 신형 역시 승려들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며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루삼마의 뒤로 마교의 정예인 탈명백팔검수(脫命百八劍手)가 뒤따랐고 또 그 뒤를 소림의 백팔나한이 뒤따랐다.
사파의 정예들은 혈마군을 중심으로 점점 응집했고, 그런 혈마군을 향해 정파와 마도의 인물들이 속속히 집결하고 있었다. 지금 무장현에서는 엄청난 혈전이 불어닥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란 아마 이걸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혈마군의 신형은 한 줄기의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좀처럼 허공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만 봐도 그가 가진 경신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혈마군의 신형은 일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수많은 사파인들이 집결해 있었다.
지금 무장현에 수많은 정사마 고수들이 포진해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통신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혈마군이 만유정을 잡은 그 순간부터 지금 이곳은 사파의 집결지로 선정됐던 것이다.
“마군을 뵙습니다.”
혈마군이 도착하자 사도련의 인물들이 무릎을 꿇으며 혈마군을 맞이했다. 파천칠십이귀(破天七十二鬼), 흑풍귀대(黑風鬼隊), 흑영칠십사령(黑影七十邪靈) 등등 사도련을 대표하는 수많은 고수들이 집결해 있었다. 그리고 당연 이 정도의 행차에 그가 빠질 리 없었다.
“지존을 뵙습니다.”
혈마군은 고개를 머리에 박으며 단상 위에 있는 한 인물을 위해 인사했다.
이제 대략 나이 삼십이 되었을까. 도저히 혈마군의 인사를 받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사람을 향해 혈마군은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박으며 인사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삼십의 사내가 말했다. 그가 바로 현 강호를 삼등분 하고 있는 사도련의 제 일좌(一座) 사왕(邪王) 필마공이었기 때문이다.
“장차 무림의 주인이 될 소주를 모시고 왔습니다.”
혈마군은 만유정을 두 손에 안고는 사왕을 향해 올렸다. 이미 내공이 입신지경에 오른 두 초인이었다. 어느새 만유정은 허공섭물에 따라 점점 허공으로 빨려가더니 이내 사왕의 손에 안착했다.
“오.”
그리고 그렇게 안착한 만유정을 바라보며 사왕은 감탄에 겨운 목소리를 내었다.
“삼성지체라니.”
사왕 역시 한눈에 만유정의 신체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왕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만약 혈마군이 사황성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를 가져오면 그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나머지 자미성과 마황성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를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그것은 정도와 마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즉 정파, 사파, 마도는 지금 이곳에 오면서 일순위로 선정한 것은 각각 자신의 세력에 맞는 아이를 우선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삼성지체로 태어난 아이라면 그 말 즉, 정파와 마도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였다.
“전원 전투 준비를 하라. 이곳을 빠져나간다.”
혈마군이야 그냥 데려왔을 뿐이지만 한 무리의 수장인 사왕의 두뇌는 순식간에 그러한 상황을 판단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고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였다.
어느새 주변으로 서서히 정도와 마도의 인물들이 속속들이 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장현에 투입된 각 세력 중 가장 많은 전력을 투입한 세력은 단연 사파였다.
명색이 천하를 삼등분한다는 일파의 지존이 바로 사왕이었다. 평범한 무림인도 평생 보기 힘들다는 그 사왕이 이곳에 왔다는 것만 해도 사파가 어떤 각오로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많다는 것이지 압도적으로 많이 투입한 것도 아니었다.
정파와 마도가 바보가 아닌 이상 향후 무림의 대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적은 전력을 투입할 리가 없었다.
“음.”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사왕은 주변에 모인 정파와 마도의 인물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을 보며 잠시 침음성을 삼켰다.
한 줄기의 고색창연한 검과 함께 매화 무늬가 새겨진 도복을 입고 있는 사내. 화산파의 상징인 매화 무늬의 도복을 입으면서 저러한 기세를 뿜 내는 사람은 당금 무림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검봉(劍峰) 위천악.
검성(劍星) 이운학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절세의 검도 고수이자. 천하 십사대 고수 중 일인. 심지어 같은 삼봉의 일인인 도봉(刀峰)과 취봉(醉峰)조차도 한수 접어 둔다고 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정도제이인(正道第二人)이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