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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3화
1장. 삼성지체(三星之體) (3)
비록 무림이 정도, 마도, 사도의 세 개의 큰 세력으로 나뉘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무림의 주인은 엄연히 무림맹으로 대표되는 정파였고, 당연 세 개의 세력 중 가장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에는 일성, 일왕, 일제로 대표되는 최고수에서 사실상 천하제일인이라 할 수 있는 검성의 존재와 삼봉, 사군, 사마로 대표되는 실질적인 고수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저 검봉 위천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검봉의 존재는 사왕으로서도 굉장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사왕은 머리가 교활하고 꾀가 많아 조심성이 많은 자였다.
그렇기에 마침 사왕은 지금 본체가 아닌 분신체로 이곳에 나타난 상황이었다. 당연히 본체와 다르게 전신 내력에 칠 할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렇다면 검봉과의 승부를 확신하기 힘들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오랜만이오.”
그렇게 사왕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검봉의 시선이 마침 사왕을 향하더니, 이내 시선을 혈마군에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반갑소이다.”
혈마군은 그런 검봉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검봉을 바라보는 혈마군의 시선에는 마침 원수를 바라보는 듯한 싸늘함이 가득했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혈마군은 검봉과의 사소한 시비로 다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검봉에게 패해 도망간 전력이 있는 혈마군으로서는 아무래도 검봉의 저런 시선이 마음에 들 리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검봉의 주위로는 소림이 자랑하는 백팔나한부터 화산이십객 무림맹이 자랑하는 백무대 등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장로를 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검봉의 주위로 정도의 인물들이 모여들었을 때, 마침 이곳에 막 도착한 고루삼마가 고개를 숙이며 한 인물을 향해 인사했다.
자신의 키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커다란 도를 어깨에 메고 있는 사내, 천마교의 수석장로이자 천하 십사대 고수 중 일인인 도마(刀魔) 갈영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로 어느새 도착한 탈명백팔검수를 비롯한 수많은 정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검봉과 합의를 본 것도 아니지만 도마의 시선도 어느새 사왕과 혈마군을 향해 있었다. 도마와는 부딪힌 적이 없기에 혈마군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시선을 받았지만 내심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주변의 기루가 사도련을 일차적 목표로 정도와 마도가 연합하는 분위기로 흐른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왕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잘 느끼고 있었다.
내심 사왕은 분신체로 이곳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체로 왔다면 제아무리 검봉이 삼봉, 사군, 사마 중 으뜸이라고 해도 적어도 패퇴는 시킬 수 있었을 테지만, 분신체이기에 승부를 점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혈마군이 도마를 상대해야 될 것이고 쉽게 승부날 것이 아니기에, 결국 이곳에 모인 수하들에 따라 승부가 난다는 얘기가 된다.
“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사왕은 신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이곳에 투입한 전력이 가볍지 않음에도 정파와 마도의 합공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만약 싸움이 일어난다면 패배할 확률이 칠 할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일파의 종주로서 삼 할에 생존을 건다는 것은 당연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예. 지존.”
결국 사왕은 혈마군에게 전음을 보냈다.
“혼전이 일어나면 자네는 이 아이를 안고 본좌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로 데리고 가게. 그 비밀 장소는…….”
“긴말하지 않겠소. 그 아이를 우리에게 넘기시오.”
위천악은 검을 내밀며 사왕을 향해 말했다. 검봉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의 그 역시 만유정이 삼성지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법, 내심 사왕을 향해 말하는 위천악의 말은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
만약 저 아이만 있다면 자신의 평생 호적수였던 검성은 물론 향후 화산파가 천하제일문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흥분감이 그를 휩싸였던 것이다.
“이쪽도 마찬가지오. 그 아이를 받아야겠소.”
도마 갈영공 역시 위천악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내심 더욱 많은 전력을 가져오지 못한 본교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
“하하하. 옛부터 주인 없는 물건은 먼저 줍는 자가 임자가 아니겠소. 고인이 남긴 무공비급을 내가 얻었는데 어찌 그것의 주인을 그대들이 주장한단 말이오.”
사왕은 그런 둘을 향해 크게 웃으며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사왕의 전신으로부터 녹빛 기류가 형성되며 검봉과 도마를 향해 날아갔다. 혈전의 시작을 알리는 공격이었다.
“공격하라.”
“나한진을 펼쳐라.”
“오행진을 펼쳐라.”
“사파의 떨거지들에게 마도의 위대함을 보여 주자.”
“와아아아아아아.”
왼쪽에서는 정파의 인물들이 오른쪽에서는 마도의 인물들이 사도련의 고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나무와라바리 구아나라오나라가라구라.”
사방에서 수많은 고수들이 공격해 오자 기이한 주문이 이리저리 퍼졌다. 사도련의 주력 부대 중 하나인 흑영칠십사령(黑影七十邪靈)의 사술이 시전된 것이다.
사술과 함께 주변으로 기이한 음향이 퍼지면서 땅이 움푹 파였다.
“조심해라. 강시다.”
“혈강시다. 혈강시의 이마에 있는 점을 노려라.”
움푹 파인 땅에서는 점점 하나의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정파와 마도의 고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강시들이었다.
흑영칠십사령들의 사술과 함께 강시들은 기이한 음향을 토해 내며 이리저리 휘저었다. 특히나 그중 온몸을 붉은색으로 칠한 혈강시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마에 있는 작은 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수준급의 검기가 아닌 이상 베이지 않을 정도로 도검불침의 피부를 가진 매우 까다로운 강시였다.
즉 일류고수가 아니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강시가 혈강시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에 모인 자들은 다들 각파와 천마교에서 내로라하는 정예들이었다. 혈강시에 의해 비록 많은 타격을 입었지만 하나둘씩 검기와 도기에 이마를 꿰뚫리면서 강시들의 방어진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우와아아아.”
강시들의 진형이 무너지자 곧이어 사도련의 고수들과 정파 마교의 고수들의 피 터지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그리고 그 싸움의 중심지에서는 검봉과 도마의 공격을 받는 사왕의 분신체가 연신 고전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는 매화와 마치 천잠사를 수천 가닥으로 꼬은 듯한 현란한 도마의 도법에 사왕의 분신체가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 사도련의 고수들도 그러한 사왕의 밀림을 보았는지 정도와 마도에 의해 이리저리 밀렸고, 어느새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비록 그렇게 사도련은 패퇴했지만 사왕의 판단은 실로 절묘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사왕의 온몸에 수많은 강기를 쑤셔 넣어 죽였다고 생각한 검봉과 도마는 한 줄기의 연기로 사라지는 분신체를 바라보며 허탈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그들도 혈마군이 만유정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못 봤을 리는 없었지만, 사왕을 죽인다면 그 이상의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쫓아가지 않았는데 막상 사왕이 분신체인 것을 깨닫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검봉과 도마 그리고 정파와 마도의 고수들은 혈마군을 추적하기 위해 신형을 옮겨야 했다. 그러나 산에 살던 호랑이가 사라지면 늑대들의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법, 가장 강력했던 사도련의 세력이 패퇴하자 정파와 마도의 인물들 사이에는 흉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크어억.”
결국 사소한 시비와 함께 한 정파의 인물이 마도의 인물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직 무장현의 혈전은 끝나지 않았다.
만유정을 안아든 혈마군은 전력을 다해 도망갔다. 그러면서 혈마군의 표정에는 내심 주군에 대한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천마교가 아닌 사도련에 투신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주군은 상황 판단력이 빠르고 심계가 깊었다. 지금도 위기 상황에서 사왕은 가장 최적화된 상황을 만들지 않았는가.
전력적으로 열세라고 판단되면 결국 만유정을 빼돌려야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만유정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 그런데 그 만유정을 빼돌리는 대상자가 천하 십사대 고수 중 일인이었으니 얼마나 절묘한가.
갑자기 혈마군의 앞에 검성이나 마제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제 향후 사도천하가 열릴 것은 당연지사였다.
펑∼
그러나 하늘은 삼성지체를 한 세력에 머물도록 원하지 않았는지 갑자기 혈마군의 앞으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달리던 신형 앞에 떨어지는 절묘한 폭발로 결코 우연적인 폭발이 아니었다. 아마 혈마군과 같은 무공의 고수가 아니었다면 그 절묘한 폭발에 그대로 폭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혈마군은 곧 달리던 신형을 순식간에 뒤로 움직이며 폭발의 범위로부터 벗어났다. 절묘한 폭발에 절묘한 신법이었다.
“벽천뢰(霹天雷) 이 미친 독구환 네놈이구나.”
이 세상에 이러한 폭발을 내는 물건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는 인물도 단 하나밖에 없었다.
고금제일기인(古今第一奇人)이라 불리는 만뇌자(萬腦子) 독구환이었다.
“크크크크.”
역시나 혈마군의 말에 독구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두 개의 벽천뢰가 들려져 있었다.
혈마군은 벽천뢰를 보더니 혈마강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벽천뢰를 향해 핏빛 강기를 발사했다. 하지만 이미 벽천뢰는 독구환의 손을 떠난 뒤였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방 삼 장이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당대 최고의 진법가로서도 이름을 날리는 독구환이었지만, 그를 고금제일기인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화기(火器)였다.
이민족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송 황실에서 끊임없이 독구환을 초청하는 것도 다름 아닌 그가 가진 화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벽천뢰는 무서웠다. 혈마군도 그것을 잘 알기에 커다란 폭발과 함께 신형을 잠시 뒤로 물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우우우.
갑자기 주변으로 천지를 울리는 굉음 소리가 퍼졌다. 굉음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혈마군의 안색은 점점 하얗게 변화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혈마군의 전신이 그 어느 때보다 붉게 변화며 땅을 향해 커다란 독수리 모양의 강기를 쏘아 댔다.
지금의 혈마군을 있게 만든 혈조수라강기(血鳥修羅剛氣)였다. 하지만 독구환의 준비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미친.’
혈마군은 순간 두 손에 벽천뢰를 들고 다가오는 독구환을 바라보며 신음성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화기를 들고 동귀어진을 하자고 할 줄은 그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침 혈조수라강기를 시전한 후 생긴 빈틈을 노린 절묘한 한수였다.
그래도 역시 천하 십사대 고수가 괜히 십사대 고수는 아니었다. 비록 절묘한 한수였지만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의 왼손에 안기고 있는 만유정을 잠시 허공으로 던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혈마군은 만유정을 잠시 허공으로 던지고는 곧 왼손을 독구환을 향해 뻗었다.
‘아차.’
그러나 독구환이 노리는 것은 혈마군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노리던 것은 혈마군이 아닌 만유정.
비록 혈마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독구환 역시 제법 무공을 익힌 상태였다. 곧 허공으로 신형을 띄우면서 벽천뢰 두 개 를 떨구고는 순식간에 만유정을 신형에 안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분노의 강기가 독구환의 전신을 강타했지만 독구환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곧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폭발이 아래서부터 시작됐다. 그 폭발에 혈마군은 독구환에게 더 이상 일격을 가할 수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벽천뢰가 일순간에 폭발했지만 역시 신외지물로도 입신지경을 감당할 수는 없는 법, 혈마군은 혈조수라강기와 함께 폭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곧 눈을 돌리며 독구환을 찾았다. 그러나 독구환은커녕 혈마군 앞에는 기이한 사막과 함께 수많은 벌레들이 이리저리 휘돌았다.
상고의 절진인 기천미라환진(欺天迷羅幻陳)이 펼쳐진 것이다. 혈마군은 자신이 진법에 빠졌다는 것을 곧 깨닫고는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대로 당할 수 없는지 곧 진법의 약한 부분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상고의 절진도 입신지경 앞에서는 그냥 힘에 무너지는 법, 결국 상고의 절진도 곧 혈마군의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독구환이 만유정을 안고 멀리 사라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