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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4화
2장. 미친 사부 밑에 미친 제자 나온다…… (1)
솔직히 천하제일까지 바라지는 않아.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제자라면서 거두었으면 무공이라도 가르쳐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이놈의 사부는 뭐 이런 이상한 것만 시키는 거야. 뭐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지 않냐고? 내가 그 말에 혹한 게 잘못이지. 무슨 죄가 있어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거야. 아아. 그 미친 늙은이 오겠다. 얼른 숨겨야지. 내가 여기 투덜 되고 있는 거라도 들킨다면 분명 그 벽천뢰로 날 찢어 죽이고도 남을 늙은이야.
만유정은 후딱 일기장을 덮었다. 불사문이라는 이상한 문파에 입문하고부터 유일한 낙이라면 저 일기장에 사부를 실컷 욕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기장을 쓰는 것을 봐서 알겠지만 결코 면전에서는 저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만유정도 자신이 익히고 있는 불사문의 무공에 대해 은근히 놀라면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 수련법이 너무나 괴이 악랄해서 저렇게라도 투덜 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크크크크크크.”
바로 그때 독구환이 음산한 괴소를 흘리면서 만유정을 향해 다가왔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만유정은 독구환을 보고는 팔을 꺼냈다.
“역시 말 잘 듣는 제자로구나.”
독구환은 음산한 미소와 함께 작은 단검을 하나 꺼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칼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요?”
“크크, 당연하지 않겠냐? 네 녀석의 피를 매일 머금었으니 이제 냄새가 배길 만도 하지.”
또한 이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도 피를 많이 본 단검이기도 했다. 그 피는 다름 아닌 만유정의 피.
“이제 그 칼만 보면 짜증나네요. 사랑하는 여인도 삼 년 이상 보기 힘들다던데 그 칼은 너무 오래 봤다 생각 안 하세요?”
“너무 투덜 되지 말아라. 그래도 이 단검은 태어난 순간부터 네 녀석의 피만 먹었으니 나름 순백지신(純白之身)이 아니겠느냐?”
쓱삭.
독구환은 더 이상 만유정의 투정 따위 듣기 싫다는 듯 순식간에 살을 베어 냈다.
“매번 말하지만 항상 명심해라. 불사심공은 고통을 참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떠한 고통이 와도 항상 침착하게 불사심공을 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불사가 될 수 있으니 신체가 끊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무감정하게 대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야 할 것이다.”
“이미 그 경지에는 오른 것 같은데요?”
퍽!
그러던 순간이었다. 만유정의 말이 순간 거슬렀음인가. 독구환의 주먹이 사정없이 만유정의 안면을 격타했다.
“아, 이게 더 아프다고요!”
“크크크.”
그리고 그런 만유정의 반응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독구환은 다시 괴소를 흘려 댔다.
“그래도 네놈은 복에 겨운 놈이다. 선조들께서는 모두 이것을 독학으로 하셨으니 얼마나 어렵게 익히셨겠는가.”
‘헛소리 하고 있네. 선대 문주들이야 모두 일대종사의 위치에 오른 인물들인데 당연히 독학으로 연구하지 그럼 누구한테 배우냐?’
만유정은 순간 독구환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무극양천심법이 제법 경지에 오른 모양이구나. 과거와 다르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견디는 것을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렇죠.”
“크크, 그럼 오늘도 어김없이 강도 높게 진행하도록 하지. 이 근육이 바로 이 팔의 이완을 담당하는 근육이다. 직접 눈으로 잘 보거라.”
독구환은 만유정이 고통을 많이 느끼던 적게 느끼던 애초에 신경 쓰던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제자의 생살을 찢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듯 광소를 흘리며 만유정의 근육에 단검을 찔러 댔다.
“뼈가 부러졌을 때 오는 통증은 뼈가 근육을 누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뼈를 맞추는 과정은 뼈로 인해 부어오른 근육을 가라앉히고 치료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칫 근육의 손상이 올 수 있기도 하지만 고통을 견디기 힘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네 녀석은 근육이 끊기는 고통에도 항시 불사심공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 예.”
“크크. 역시 삼성지체의 몸은 오묘하구나. 어찌 근육이 이리 질긴지. 온몸의 골격이 마치 무공을 위해 태어난 몸이구나.”
그렇게 근육을 자르고 다니던 독구환은 이내 가볍게 만유정의 표면을 그어 댔다. 그러나 그것은 만유정의 신경이 지나는 민감한 부분이었다.
부르르르르.
그 순간만큼은 만유정도 온몸을 이리저리 떨고 말았다. 아주 오묘한 느낌이 전신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곧 온몸을 진정시키며 독구환의 손길을 받았다.
“크크, 많이 발전했구나.”
만유정이 잘 견디자 샘이 났는지 독구환은 이내 만유정의 뼈를 긁어 댔다.
슥삭. 슥삭.
뼛가루가 이리저리 퍼지면서 만유정의 굵은 팔뼈가 점점 얇아졌다. 그러더니 더 이상 긁는 것도 귀찮았는지 독구환의 단검이 강하게 내리꽂혔다.
피우욱∼
한 줄기의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어나오며 만유정의 왼팔이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만유정이나 독구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복구해라.”
그리고는 한마디만 남기고 독구환은 사라졌다. 만유정은 독구환이 사라지자 속으로 환호를 지르고는 오른손을 뻗어 자신의 왼팔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잘린 왼팔에 맞추고는 곧 불사심공을 운용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왼팔에서 마치 가는 줄기가 나오는 듯하더니 이내 잘려진 왼팔과 함께 융합됐던 것이다.
잘렸던 근육과 뼈도 순식간에 재생됐고 독구환이 오기 전의 모습 그대로 되돌아왔다. 매일 독구환에게 투덜 되면서 정작 아무 소리 없이 독구환의 행동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 바로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유정이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이름과 삼성지체라는 것 바로 두 가지가 전부였다. 아무리 그가 삼성지체의 기재라고 해도 당장 태어나고부터 그 천부적 자질을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만유정의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내뱉던 자신의 이름과 삼성지체라는 말을 제외한다면 불사문에 입문하고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크크, 본인은 불사문 구대 문주 독구환이다. 이제부터 너는 본 문주를 이어 제 십대 불사문주가 될 것이다.”
애초에 선택권도 없었다.
“사부 정말 이걸 익히면 진정한 불사를 이룰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 만유정 스스로도 별로 나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불사문의 무공을 배우고 있는 만유정의 일과는 매우 일률적이면서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만족하는 삶이었기에 딱히 이곳을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퍽!
“직접 눈을 보지도 못했는데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이냐?”
“물어볼 수도 있지. 그렇다고 때리는 건 뭐예요.”
“뭐?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퍼버벅 퍽!
단 하나 자신의 사부만 아니면 말이다.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금처럼 독구환으로부터 불사심공을 익히기 위해 생살을 도려낸다. 처음 입문했을 당시에는 가볍게 주변의 상처부터 시작했지만 이미 마황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불사지체였기에 만유정의 수련은 생각보다 강도 높게 진행됐다.
그래도 팔을 자를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에는 불사심공의 성취가 제법 높아져서 다리를 자르는 등 신체의 일부를 자를 정도로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부, 매일 이렇게 재생만 하면 도대체 내공은 언제 쌓고 무공은 언제 익히라고요.”
물론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발전해 보이지만 사실 만유정의 일상은 어찌 보면 제자리였지만 말이다.
“크크, 불사심공의 재생은 단천무극심법을 통한 진원지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애초에 너의 진원지기와 신체 재생이 등가교환 되는데 단전에 내공이 남아돌 수 있겠느냐?”
“괜히 제가 무공이라도 익혀서 사부 혼내 줄까 봐 그런 건 아니고요? 어떻게 된 게 사부는 불사에 관해서는 그렇게 강조하면서 무공은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거예요?”
그것은 만유정에게 불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오늘도 자신의 텅 빈 단전을 바라보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애초에 불사문에 들어온 이상 과거는 잊고 오로지 불사에 전념하기만 되어 있다.”
“그렇게 문법을 중시하는 사부께서는 잘도 밖으로 돌아다니시는군요. 참 어지간히 제자도 좋은 걸 배우겠습니다.”
불끈.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었음인가. 무릇 누군가의 불만은 누군가의 짜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독구환도 갑작스럽게 만유정의 말에 서서히 화가 치밀었는지 험악한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말았다.
퍽! 퍼버버벅!
당연 그것은 독구환의 괴팍한 성격에 행동을 강요하고 말았다. 독구환의 주먹은 사정없이 만유정의 안면을 이리저리 강타했고.
“크크크, 옛말에 좌검우도(左劍右刀)를 쓰고 변변찮은 놈 없다고 했다. 본문의 방대한 염원을 이루기에 한 가지만 파도 모자라거늘 네놈이 벌써부터 그런 방자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인성부터 다시 가르쳐야겠구나.”
독구환이 괴소를 흘리며 그런 만유정을 향해 설교를 내렸다.
“예, 예.”
그리고 그 말에 만유정은 자신의 안면에 가해 오는 싸늘한 통증을 느끼고는 그대로 독구환의 말에 마지못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우선 이 구타는 피하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크크, 잡소리는 이쯤에서 집어치우고 서고로 따라오너라.”
“예, 사부.”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경우이기도 했다. 만유정은 자신의 볼에 아른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불사심공을 살며시 운용했고 독구환을 따라 서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유정의 불사심공 성취는 딱히 높다 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독구환의 단검으로부터 재생을 이루고 나면 해가 중천에 뜨기 일쑤였고, 그 뒤는 독구환을 따라 이리저리 불사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매 일상이었다.
“오늘은 무엇을 배우면 되는 거죠?”
지금도 만유정은 독구환과 일대일로 마주 앉고는 불사문에 관한 내용을 전수받고 있었다.
“크크, 현재 네 녀석은 두 가지 심법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하나는 하단전을 키우는 단천무극심법, 또 하나는 상단전을 키우는 무극양천심법이다.”
“그중 하단기공은 사부 덕분에 매번 재생에 다 써먹고 날려 버리고 있죠.”
퍼벅 퍽!
“크크, 내 말하는데 끊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물론 전수받는 동시에 구타가 자행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이제 보니 네 녀석의 무극양천심법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나 보더군. 그러니 오늘부터는 서고에 출입하도록 하겠다.”
“정말요?”
그러던 중이었다. 만유정은 이어진 독구환의 말에 활짝 얼굴이 펴지더니 진심이냐는 듯 물었다.
“따라오거라.”
그러나 독구환의 성격이 괴팍하기는 해도 어디 거짓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독구환은 곧 서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러한 독구환을 바라보며 만유정은 벅차오르는 감정과 함께 졸래졸래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불사문의 서고, 이것은 말이 필요 없는 장대한 지식의 보고였다. 만유정도 독구환과 수련을 지속하며 이 서고에 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렇기에 내심 언젠가 서고에 출입하고 싶다고 느끼던 만유정이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하네요.”
만유정은 서고에 들어서자 단번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하게 뻗은 서고는 불사문의 유구한 역사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고, 이 방대한 학문을 통해 이루려는 불사의 염원이 다시 한 번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이곳으로 따라오거라.”
그런 만유정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음인가. 이내 독구환이 만유정을 서서히 목적지로 안내했고, 어느새 거대한 공동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다.”
그러자 독구환은 공동 안으로 들어갔고 만유정 역시 독구환을 따라 입성했다.
“우와, 언제 이런 곳이 있었어요?
공동은 태양빛 하나 없는 습습한 한기가 지긋이 몰려오는 장소였다. 그러나 태양빛이 없다는 것일 뿐 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곳곳에 야명주가 이리저리 불빛을 발하며 공동을 환히 비추고 있었고, 만유정은 그 찬란한 광경에 감상하기 바빴는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크크, 본문을 세우신 조사께서는 과거 영생불사의 염원을 담아 불사문을 세우셨다. 이곳은 그분이 살아생전 불사를 위해 기록을 남긴 조사전이다.”
“그렇군요.”
만유정은 독구환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들어선 공터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을 인지하자 만유정의 시선으로 거대한 석상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