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불사문 1권 5화
2장. 미친 사부 밑에 미친 제자 나온다…… (2)
석상은 한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 막 약관을 넘긴 듯 젊은 모습을 한 석상의 모습은 마치 살아생전 한 사람의 모습을 본뜬 듯한 모습이었다.
만유정은 그 석상을 바라보며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분명 석상은 젊은 청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저 석상을 보노라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위엄이 절로 흘러넘치는 묘한 느낌을 선사했다.
영생불사를 원하는 자, 이곳에 들어 본좌의 뜻을 받들어라.
아마 그 위엄은 또한 그 살아생전 석상의 인물이 가지고 있던 어마어마한 지위가 나타내는 무형적인 기세이기도 할 것이다.
만유정은 그 위엄적인 석상에 서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만유정의 전신은 묘하게 가슴이 쿵덕거리는 것이 알 수 없는 희열에 가득 차고 말았다.
독구환이 말한 조사전이라는 말, 만유정은 이미 독구환으로부터 이 불사문을 세운 자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에 대해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금사대고수 중 일인이자 과거 마도제일세를 만들었던 장본인, 마도의 영원한 지존.
천마(天魔) 적일산.
막강한 무공 덕분에 약관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을 뿐, 그 전신에서 풍기는 패도적인 기운은 만유정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욕망을 자극했던 것이다.
만유정은 살아생전 적일산이 남겨 놓은 글귀를 계속해서 읽어 갔다.
본좌는 과거 마황성(魔皇星)의 저주받은 신체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육망선인들에게 쫓김을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항시 느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당시 태공진이라는 마선(魔仙)을 한 분 뵙게 되었으니 그분을 스승으로 삼고 마학(魔學)을 배우니 그것이 기회가 되어 입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 후 본좌는 과거 본좌를 귀찮게 했던 육망선인들을 모조리 주살할 수 있었고 마교라는 단체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을 이룬 본좌였지만, 문뜩 허무함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마침 본좌는 그때 나 자신을 이렇게 만든 마황성이라는 기운 자체에 문득 의아함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황성이라는 저주는 나에게 많은 불행을 주었지만 나에게 많은 축복을 주었다. 특히 그중 팔다리가 모두 절단되어도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갖다 붙이기만 해도 붙어 버리는 나의 신체는 더더욱 본좌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아함은 더더욱 본좌를 부채질했고, 이윽고 본좌는 영생불사에 대한 강한집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세상, 어떠한 것으로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소멸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완전한 존재에 대한 갈망을 느낀 것이다.
본좌의 이 갈망이 과연 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실패로 이어질지는 본좌도 예측하긴 힘든 일이지만 훗날 이곳을 발견하는 이가 있다면 본좌의 뜻을 이어 영생불사를 향한 염원을 계승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본좌는 영생불사를 위한 그대에게 세 가지 관문을 내리노리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음과 같은 금제를 가하도록 하겠다.
―불사문에 입문한 자는 정, 사, 마의 모든 은원을 잊고 오로지 영생불사에 관해 전념해야 한다.
―불사문은 결코 무공을 위한 곳이 아니다. 오로지 영생불사를 추구하기 위한 염원으로 이곳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불사문의 문주는 항시 자신의 연구를 기록하여 영생불사에 실패할 경우 모든 것을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
만유정의 눈은 재빨리 적일산이 남겨 놓은 글귀를 모두 읽어 갔다.
“크크, 그래 모조리 읽었느냐? 그렇다면 우선 내가 가리키는 저곳을 보거라.”
그러던 중 독구환이 어느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석상에 있는 금패(金牌)를 얘기하는 거예요?”
“크크, 단순한 금패가 아니지. 천마지존령라고 과거 조사께서 쓰시던 지존신물이기도 하지. 만약 네 녀석이 저것을 들고 마교로 향한다면 지금 당장 네놈을 미친 듯이 반기며 추후 교주는 물론 세상을 지배할 고금제일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비록 네놈이 싸가지야 밥 말아먹을 듯 없다지만, 삼성지체의 재능은 이 노부도 인정하는 바이니깐 크크. 그래 어떤가. 저 금패를 잡고 네놈이 그토록 원하는 무공을 배우러 가겠느냐?”
“뭔가 말에 뼈가 있는데요?”
“크크, 네놈이 정 원한다면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대로 불사문에 입문하여 영생의 길을 매진할 것인지, 아니면 네놈이 그토록 원하는 고금제일의 무공을 익히러 갈 것인지 지금 선택하라는 것이다.”
만유정은 독구환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만유정은 자신에게 어찌 보면 일생에 다시없을 선택의 순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독구환의 말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마황성의 기운만 타고난 초대 조사도 고금사대고수 중 일인으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만유정은 무려 삼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천고의 기재였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영생불사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으로 내공을 익히고 그 내공을 통해 무공을 익힌다면 능히 고금제일인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쿵쾅, 쿵쾅.
그러자 만유정의 심장은 다시 알 수 없는 열망에 크게 요동치고 말았다. 개인의 특성인가. 아니면 인간이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욕망인가. 그 어떤 것이든 만유정은 지금 이 순간 인생에 다시없을 강렬한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치 태초부터 만유정이라는 인간 자체가 이런 일을 하도록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우 강렬하면서도 충동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문득 만유정의 입가에 가볍게 미소가 지어지고 말았다.
“에이, 뭐 새삼스럽게 재촉하고 그래요. 생각할 게 뭐 있다고. 여기서 뭐하면 되는데요?”
욕망의 충동에서 만유정은 욕망이 아닌 자신의 주어진 불사문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독구환의 입가도 가볍게 올라가고 말았다.
“크크, 확실히 네 녀석이 뛰어난 기재이긴 한 모양이다. 만약 네 녀석이 이곳을 나가겠다고 선언했으면 분명 이 노부가 네놈을 당장 쳐 죽였을 것이다. 그래 마음을 정했다면 어서 구배지례를 올려라.”
“그거만 하면 되는 거죠?”
만유정은 독구환의 말에 곧바로 적일산의 석상 앞에 서서 구배의 예를 올렸다. 그리고 그 구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너는 불사문 제 십대 문주이다.”
독구환이 만유정을 향해 말을 건넸다.
“예, 사부.”
그렇게 만유정은 불사문 제 십대 문주가 됐다. 또한 그날부터 만유정의 일상에는 서고 출입이 추가되기도 했고 말이다.
3장. 불사지도(不死之道) (1)
서고에 출입한 만유정은 그날부터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무공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영생불사는 이제 만유정에게 목표이자 염원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만유정 역시 어떻게 하면 초대 조사부터 내려져 오는 염원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미친 듯이 연구했고 그것은 곧 열정으로 나타났다.
스르륵 스르륵.
만유정의 삼성지체는 정말 사기적인 능력 그 자체였다. 아마 누군가 곁에서 만유정의 책 읽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단번에 머리를 확 치면서 책에 대한 모욕이라고 외칠 정도로 만유정의 독서 속도는 상상을 불허했다.
탁!
“앗, 또 왜 때리는데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만유정은 독구환으로부터 한 대 맞기도 했고 말이다.
“설마, 제가 너무 빨리 읽어서 혹시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때리신 거 맞죠?”
퍽! 퍼벅!
“크크, 좋은 책은 씹으면 씹을수록 그 향이 짙게 나는 법이다. 항시 명심하도록 해라.”
그러나 독구환이 만유정의 안면을 강타한 것은 좀 더 다른 이유인 모양이었다.
“예, 사부.”
그러자 만유정 역시 무언가 깨달았음인가. 잠시 표독스러운 눈길을 보내던 만유정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독구환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만유정은 한 번 읽은 책은 모두 그 내용을 기억하고 이해했기에 다시 펼쳐 보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만유정은 적일산이 남긴 서고에서 나름 감명 깊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자 독구환의 말처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만유정의 생각은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 갔고, 어느새 초대 조사인 적일산의 서고에 있는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사부, 서고에 있는 거 다 읽었어요.”
그렇게 적일산의 서고를 정복하자 만유정은 독구환을 향해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크, 그렇다면 이쪽으로 따라오거라.”
그러자 독구환도 그것에 관해서는 딱히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만유정은 곧 독구환의 안내에 따라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만유정은 적일산의 공터에서 보았던 것처럼 저 높이 단상 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석상을 볼 수 있었다.
“구배를 올리도록 하거라.”
석상은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풍채가 훤칠한 것이 살아생전 많은 생업을 쌓은 듯한 인자함을 보여 주고 있었고, 곱게 앉아 있는 노인의 형상은 마치 노인의 성격이 정적이면서도 또한 매우 사려 깊은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했다.
“예, 사부.”
만유정은 그 석상 앞에 서서 이번에도 구배지례를 취했다. 이미 적일산의 거처에서 경험이 쌓인 만유정이었다.
아무래도 전대의 문주에 있는 서고를 모두 읽으면 이렇게 하나씩 구배를 취하는 모양인지 만유정의 구배에는 자연스러움까지 묻어나 있었다.
그렇게 구배가 끝나자 만유정은 석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본인은 생사신의(生死神醫) 곽수관이다. 본노는 어려서부터 의술에 큰 뜻을 두었으니 그것이 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보며 누구보다 덧없음을 항상 느껴왔고, 그 덧없음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노부의 필생 목표였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의 힘이 아무리 강대한들 대자연의 이치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제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결국 천수를 다한 인간은 이치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이고, 결국 의원이란, 아니, 의(醫)란 누군가를 더욱 풍족하게 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노부는 그 이치를 깨닫고부터 강호로부터 천하제일신의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부의 마음속은 무언가 공허하고 알 수 없는 열망에 항시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의원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모두 누리게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을 누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러나 노부는 그 이상의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을 찾던 중 이곳 불사문에 인연이 되니 노부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크크, 초대 조사께서 본문의 뜻을 세우셨다면 이대 문주께서는 본문의 기틀을 마련하신 대단한 분이시다. 의(醫)와 불사는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이번 서고에서는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평생 그 깊이를 음미해도 모자를 게다.”
“예, 사부.”
만유정은 독구환의 말에 대답하고는 자연스럽게 책을 꺼냈다. 그리고는 독서 삼맹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삼매경에 빠진 지 몇 시간 뒤,
“하.”
만유정의 입에서는 연신 탄식이 흘러나왔다. 왜 독구환이 그런 말을 했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 문주인 곽수관의 서고는 신비함과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적일산이 불사문을 세우고 불사심공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황성 덕분이지 실질적인 불사심공은 곽수관이 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사지도(不死之道).
곽수관은 무수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강호에서 고금제일신의라는 호칭으로 불릴 정도로 이미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러한 고금제일의학과 불사를 결합하여 무수히 많은 서책으로 남겼으니 그것이 바로 불사지도였다.
만유정은 그 불사지도에 매번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고, 한번 삼매경에 빠질 때면 며칠을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만유정은 불사지도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곽수관이 대단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곽수관은 당대에 불사심공에 치명적인 결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가설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유전 인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태초에 태극이 있고 남자를 양, 여자를 음으로 한다.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는 것은 결국 태극을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각각 남자는 양을 여자는 음을 내보냄으로 태극을 완성시킨다. 결국 그 형질이 우리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