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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6화
3장. 불사지도(不死之道) (2)


말은 어려웠지만 간단히 말해 결국 태극을 완성시키는 세포적 근원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온몸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인체는 수많은 세포들이 생과 사를 반복한다. 불사심공의 원리는 생(生)의 기운을 불어넣어 그러한 세포의 증식을 빨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완벽한 불사를 이룰 수 없다.
좀 더 근원적인 즉 세포의 근원을 통해 생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초대 문주의 불사심공이 가능했던 것도 마황성이라는 불사지체를 타고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만약 불사지체가 아니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초대 문주인 적일산이 심장 재생에 실패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의 기운을 넣어 줘도 심장이 파괴된 이상 온몸의 기운이 이리저리 뒤틀렸고, 결국 엉뚱한 곳을 재생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의 몸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곽수관의 경우는 달랐다. 곽수관은 세포의 근원적인 부분으로 불사심공을 접근했고, 결국 심장이 부서져도 불사심공은 곽수관이라는 몸의 근원을 기억하여 심장이 빠진 것을 파악하고는 심장을 재생시켰다.
책에는 자세한 그림과 함께 도해가 나와 있었다. 만유정은 저런 미시세계를 관찰할 능력이 안 되었기에 이런 도해는 천금과도 같은 보배가 아닐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여자의 난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정란이 그려져 있었다. 곽수관은 그 당시 젊은 두 남녀를 잡아다가 교합을 시킨 뒤 여자의 배를 가르고 수정란을 꺼냈다고 하는데, 지금의 만유정이라면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실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곽수관의 뛰어난 안법과 의술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곽수관은 수정란을 자세히 관찰하고 다시 여자의 자궁에 넣어 배를 봉합시킨 후 하루하루마다 배를 가르면서 그 수정란의 변화를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하나의 세포가 무수히 많은 분열과 증식을 하면서 나중에는 하나의 개체로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부, 저 뭐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그것이 너무 신기했음인가. 만유정은 의아함이 드는 것이 하나 있는지 독구환을 찾아갔다.
“무엇이냐?”
“이대 문주께서는 세포의 근원만 기억할 수 있다면 단지 불사심공을 운용하는 것으로 신체의 모든 것을 재생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세포의 근원을 어떻게 기억하라는 거죠?”
딱!
“아, 또 왜 때려요.”
“크크, 네놈이 하는 말은 어떻게 하면 뛰어난 학자가 되고, 어떻게 하면 무공의 고수가 되는지 묻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건 네가 스스로 깨우쳐야 할 부분이지 이 사부가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도덕경에 보면 도가 어떤 것인지 도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그러나 그 도를 진정 얻는 자는 극히 드문 것처럼 불사도 마찬가지였다. 세포의 근원을 찾아내면 온몸을 재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근원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벌써 그런 질문을 건네는 것을 보니 이대 문주의 서고에서 제법 많은 책을 읽은 모양이구나.”
“거의 다 읽어가요.”
“크크, 그렇다면 따라오거라.”
그러던 중이었다. 독구환이 무슨 생각이 들었음인가. 만유정을 이끌고 어느 한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런 독구환을 따라 만유정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불사문은 하나의 문파였지만 무슨 고루한 전각이 이리저리 위엄을 뽐내는 그러한 전형적인 문파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간간이 들어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사방은 온통 꽉 막힌 느낌을 주었고, 또한 그러면서도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공간은 마치 거대한 산 아래 갖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삼대 문주의 서고로 가는 거예요?”
만유정은 독구환을 따라 제법 많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걸음이 지겨웠는지 만유정이 독구환을 향해 물음을 건넸다.
“크크.”
그러나 독구환은 계속해서 음산한 음성을 토할 뿐 그저 말없이 자신의 길을 갈 뿐이었다.
“들어가거라.”
그러더니 어느 한 공터에 도착하자 만유정을 바라보고는 말을 건넸다.
“여기가 어디인데요?”
그러자 만유정도 공터 주변을 향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더니 물음을 건넸다.
“공방(工房)이다.”
“뜬금없이 공방은 또 왜요.”
“크크, 잘 기억해라. 이제부터 네 녀석이 매일 드나들어야 하는 공간이니깐. 우선 이 돌을 세워 보거라.”
그러나 만유정의 물음은 마치 메아리 없는 음성처럼 조용히 씹힐 뿐이었다. 독구환은 애초부터 만유정의 의사 따위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뾰족한 돌을 하나 집더니 만유정을 향해 내밀었다.
“아, 이걸 어떻게 세우라고요. 사부가 한번 해 보라고요.”
그러자 그 돌을 보는 순간 만유정은 어이가 없었는지 독구환을 향해 한마디 건넸고.
퍼벅. 퍼버벅.
“이 사부가 못하면 제자인 네놈이 해야 될 거 아니냐.”
독구환의 주먹이 만유정의 안면을 세차게 강타했다.
“아씨, 세우면 될 거 아니에요 정말.”
그러자 만유정은 뭔가 울컥한 심정이 차올랐는지 그대로 뾰족한 돌을 집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또 다른 뾰족한 돌 하나를 가져온 뒤 두 돌을 서로 맞대게 하여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 놨다.
“됐죠?”
“…….”
그리고 그 순간 만유정은 왜 이딴걸 시키냐는 듯 독구환을 향해 말했고, 그 말에 독구환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설마 만유정이 이렇게 간단히 자신의 물음에 대답할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크크, 잘 보거라.”
그러나 독구환은 애써 태연한 척 연기를 하고는 다시 괴소를 흘리며 뾰족한 돌들을 집어 갔다. 그러자 독구환의 손길에 따라 뾰족한 돌은 서로 기대기 시작했고, 그렇게 기댄 돌들은 하나의 원을 그리며 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무슨 뜻인 줄 알겠느냐?”
“하나는 완전하지 못하나 그것이 조화를 이루면 완전하게 된다. 뭐 이런 뜻인가요?”
“크크, 제아무리 네놈이 천고의 기재라 한들 이 이치를 깨닫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앞으로 이 시간부터 여기 공방에 들어와 검을 만들어라.”
“검이요?”
만유정은 독구환의 말에 무슨 뜻이냐는 듯 물음을 건넸다.
“크크.”
그러나 이번에도 만유정의 말은 독구환의 괴소에 무참히 무시됐고, 그날부터 만유정은 공방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방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만유정, 대개 노예가 그렇듯 항시 강제적인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만유정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독구환으로부터 단검질을 당하고, 그 후 서고에 가서 책을 읽은 뒤 공방에 가는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독구환은 나름 자비로운 주인이었으니, 만유정에게 공방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고에 있는 책들도 어느새 서서히 만유정에 의해 정복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그렇게 서고에 들어선 지 일 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만유정은 그러한 세월의 흐름에 맞게 어느새 오대 문주의 서고에까지 도달하여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완전 쓰레기네.”
그러더니 오대 문주의 서고까지 모두 읽고 나서는 한마디 말을 건네는 만유정이었다.
“크크, 그쪽 서고는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을 거라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는 오대 문주의 서고에서 걸음을 옮기는 만유정에게 한마디 음산한 말이 날아왔다.
“사부 말씀대로 오대 문주는 그냥 빌어먹을 놈인데요?”
삼대 문주인 사궁후의 서고에서는 불사심공이 진원지기와 등가교환 된다는 장대한 이론을 얻을 수 있었다.
사대 문주인 신우기의 서고에서는 지금 자신도 익히고 있는 단천무극심법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대 문주 패우국의 서고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불사문의 염원은 불가능하다는 헛소리와 여자와 음양화합을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가에 대한 것뿐이었으니, 물론 이것이 훗날 얼마나 유용할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만유정이 추구하는 불사에는 말 그대로 별 필요 없는 내용이요, 불사문의 역사를 늦춘 빌어먹을 인간으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크크, 네놈도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구나. 어쨌든 오대 문주의 서고까지 모두 읽었으면 이쪽으로 오너라. 이제부터 네 녀석이 진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구환은 그러한 만유정의 말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은 자신의 뜻을 따르는 자에 자연스럽게 끌린다고, 독구환 역시 오대 문주인 패우국에 대해 별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만유정을 바라보며 뭔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댔다.
“예, 예. 어서 육대 문주의 서고로 가요. 빨리 가서 눈 정화 좀 해야죠.”
“크크크. 바로 옆이니 어서 들어오기나 하거라.”
독구환은 잠시 벽면을 살피더니 어느 한 지점을 살며시 눌러 댔다.
“어?”
두르르.
그러자 갑작스럽게 서고가 가볍게 울림을 시작했고 어느새 하나의 문이 개폐되더니 커다란 공동이 하나 나타났다.
“완전 신기한데요?”
만유정은 설마 이런 기관 장치로 서고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잠시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구배를 취해라.”
“예, 예. 불사문의 십대 문주 만유정이 육대 문주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곧 이어진 독구환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빠르게 구배를 취했고, 이제는 이 형식적인 제식에 회의라도 느꼈는지 건성으로 말까지 건네고 있었다.
독구환도 딱히 그러한 만유정의 행위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불사문에 들어온 이상 중요한 것은 불사를 이룰 수 있냐 없냐의 여부지, 선대 문주를 향한 존경심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은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독구환과 만유정은 마치 약속이라 한 듯 어느 한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음.”
“크크.”
그러자 만유정은 못 볼 것이라도 봤는지 잠시 신음을 토해 냈고 그 모습이 너무나 예상 가능했는지 독구환은 괴소를 흘리고 있었다.
만유정의 시선이 향한 단상 위에는 한 인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나 괴랄했다.
사내의 왼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쥐어져 있었고, 그 단검을 끝으로 사내의 목 위에 마땅히 있어야 할 머리가 떨어져 눈을 뜬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죠?”
만유정은 그 사내, 아니 육대 문주의 시신을 살펴보고는 이내 놀랍다는 음성을 토해 내며 독구환을 향해 말을 건넸다.
그 끔찍한 모습에 놀라 공포를 느끼거나 이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만유정의 놀람은 왜 저 오래된 시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생기가 가득한지 그것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 이미 무공이 입신에 오르신 분이시다. 비록 영혼은 육신을 떠났으나 육신은 자연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군요.”
만유정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신을 향해 좀 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시선을 돌리자 만유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사문? 참 애송이들의 집단이구나. 본좌는 이 애송이들을 바라보며 가소로움에 코웃음 치지 않을 수 없다. 본좌는 지금 이 순간부터 애송이들의 염원 따위는 본좌에게 한낱 광대 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를 통해 본좌의 사황성(邪皇星)이 마황성(魔皇星) 따위는 한낱 아래로 본다는 것을 이 순간부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시신 앞에 적혀진 글귀는 너무나 광오한 글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누군가 이 글귀를 본다면 누구도 그러한 느낌을 감히 품지 못할 것이다.
고금사대고수 중 일인. 세상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는 고금제일사황(古今第一邪皇) 마동익. 그가 가진 무게감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계속해서 남은 글귀를 읽어 갔다.

본좌가 보기에 애송들의 문제점은 너무 표면적인 것에 집중했다는 거다. 본좌에게는 역혼전이대법(逆魂轉移大法)이라는 사술이 있다. 이 세상은 혼(魂)과 영(靈)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애송이들은 너무 모르고 있다. 불사는 거기에 있다. 애송이들의 염원은 본좌에서 끝을 맺으리라.

“실패했군요?”
그리고 그렇게 글을 모두 읽었을 때 만유정이 한마디 건넸다.
“크크, 그렇지.”
그러자 독구환은 웃음이 가득 섞인 괴랄한 음성을 토해 냈다.
“그러나 육대 문주께서 완성하신 이론은 매우 획기적이면서도 중요한 내용이다. 특히 그중 탈혼에 관해서는 백 번도 넘게 읽어야 할 것이다.”
“예, 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