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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7화
3장. 불사지도(不死之道) (3)


오대 문주의 서고에서 괜한 시간만 낭비했다고 느낀 만유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육대 문주의 서고가 다가왔다. 이것은 만유정에게 새로운 의욕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만유정은 육대 문주의 서고를 미친 듯이 탐독했다.

불사문의 역사에 있어 마동익의 등장은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였다. 그동안 불사문은 이대 문주인 곽수관에 이어 사실상 발전을 못한 상황이었고, 오대 문주로 인해 거의 망해 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것이 마동익의 획기적인 가설과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마동익은 더 이상 불사심공에 집착하지 않았다. 애초에 불사심공은 형상적인 심법이었다. 결국 그 심법을 움직이는 주체는 그 몸의 주인인 사람의 의지였다. 즉 혼(魂)과 영(靈)이라는 것이다.
사황은 그에 착안하여 문득 자신이 익히고 있는 역혼전이대법이라는 영혼을 옮겨 신체를 바꾸는 사악한 사술에 관심을 돌렸다.
역혼전이대법은 탈혼(脫魂)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전이하려는 신체와 자신의 신체를 나란히 놓아두고, 전이하려는 신체의 소유자를 그 자리에서 죽임으로 탈혼시키고 자신 역시 탈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신체로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마동익의 서고는 역혼전이대법 중 특히 탈혼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만유정은 마침 탈혼에 관한 서적을 읽으며 생각에 가득 잠기고 있었다.
만유정은 그간 오대 문주의 서고에서와 달리 이 육대 문주의 서고에서는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육대 문주의 가설은 획기적이고 또한 방대한 이해를 필요하는 내용이었다.

만약 탈혼 상태에서 나 자신이 스스로 영체를 다스릴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영체로 자신의 신체에 전이할 수 있다면 이는 곧 불사를 이룩할 것이다.

마동익의 가정은 너무나 간단했다. 역혼전이대법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영혼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 보기도 힘들거니와 그 실험이라는 자체가 이미 죽음을 담보로 행해지는 도박성 실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크크, 어차피 육대 문주의 서고부터는 단번에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 이해하는 것보다 내용을 기억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독구환도 그것에 대해 결코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만유정에게 굳이 아무 말도 안 했던 것은 그만큼 만유정의 뛰어난 오성을 믿기에 무언가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여러 가지 생각나는 건 있는데 그걸 실천할 수가 없으니 답답해 미치겠어요.”
“크크, 그렇다면 이리 따라오너라. 어차피 육, 칠, 팔대 문주의 서고는 함께 보는 것이 네 녀석에게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유정도 사람이었고 그에게도 분명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다.
독구환도 그것을 인식한 이상 무언가 결정을 내렸는지 만유정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만유정도 독구환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또 다른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칠대 문주의 서고인가 봐요?”
“엄밀히 말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독구환은 만유정의 말에 조용히 한곳을 가리키며 직접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그 손짓에 만유정의 눈도 같이 돌아갔고, 어느새 시야에 한 쌍의 남녀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칠대, 팔대 문주, 아니 팔대 문주께서는 칠대 문주의 서고 바로 옆에 자신의 서고를 만들었다.”
“그렇군요.”
만유정은 그제야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불사문 십대 문주 만유정이 인사를 올립니다.”
그러자 곧바로 구배를 취했고 석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아무래도 이 석상은 불사문 문주들의 유행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석상 밑에 글귀를 남기는 유행 역시 따라갔을 거라 예상한 것이다.

아! 원통하다.

아니나 다를까. 만유정은 석상 아래 남겨져 있는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염원. 내 꿈이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갈 줄이야. 아!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영생불사를 이룰 수만 있다면. 그래서 사랑하는 나의 아내랑 평생 내 인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내 생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나의 욕심으로 이렇게 날아가다니. 너무나 안타깝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지금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 이제 나는 내 몸에 빠져나가는 내공으로 인해 이렇게 생을 마감하고 말 것이다. 내 글을 읽을 후대의 문주여. 그대는 명심해라. 반드시 상단기공이 자연과 합일하는 천인합일에 경지에 들지 않는 이상 결코 목 재생을 시도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다면 본 문주와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글귀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다. 만유정은 그 밑에 다른 필체로 써 놓은 글귀를 다시 읽어 갔다.

아! 바보 같은 내 사랑. 내 당신을 찾아 그렇게 세상을 떠돌았건만 고작 최후를 맞이한 곳이 이곳이었나요. 이 바보. 당신이 나한테 일생에 다시없는 선물을 준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나요?
나는 결코 이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어요. 그저 당신의 얼굴을 당신의 그 따뜻한 한마디를 한번이라도 더 들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했어요. 왜 이런 제 마음을 몰라주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셨나요? 왜 저를 강호에 수십 년이나 당신을 배회하게 만들어셨나요?
조금만 더 빨리 이곳에 왔다면 그래서 당신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생기를 잃은 당신이 아닌 활짝 웃고 따뜻한 미소를 짓는 그런 당신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 바보 같은 사람.

그 밑에는 팔대 문주 지연화가 남긴 칠대 문주 이현빈과의 추억이 남겨져 있었다. 과거 이현빈이 태을검선으로 이름을 날릴 때 산적의 위험으로부터 지연화를 구한 일과, 그 인연을 통해 사제지간을 맺고 이현빈으로부터 무공을 사사했던 일.
그리고 사제지간에 있어서는 안 될 금단의 결실을 맺게 된 일과 그로부터 태어난 아이가 지금 무림의 검성으로 이름을 날린다는 얘기 등. 한편의 아려한 추억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크크, 칠대 문주와 팔대 문주께서는 서로 부부지연을 맺으신 분이다. 네 녀석이야 당연 모르겠지만 과거 이 사부가 네놈만 한 나이였을 때, 이미 두 문주께서는 강호에 위명이 자자하여 천하제일인으로 명성이 드높으신 분이셨다.
특히 이 중 팔대 문주이셨던 지연화 선대 문주께서는 고금사대 고수 중 일인이라 칭송받을 정도로 이미 그 무공이 입신의 경지에 올라 고금을 통틀어 그 상대를 찾기 힘드실 정도였고, 또한 불사문의 실질적인 영생을 거의 완성한 분이라 할 수 있다.”
독구환은 만유정을 향해 간단하게 설명을 건넸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 말에 만유정은 왜 칠대 문주와 팔대 문주의 서고가 같이 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불사문에 먼저 인연이 닿은 칠대 문주인 이현빈과 그런 이현빈을 찾아 강호를 배회했던 팔대 문주인 지연화 역시 불사문에 도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크크,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이미 너는 이 사부로부터 칠대 문주께서 창안하신 무극양천심법(無極兩天心法)이라는 상단기공을 익힌 상태다. 그것을 토대로 팔대 문주께서 완성하신 무극양천영체심법을 익히는 것과 그로부터 목 재생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다음 용암에 던져 목숨을 던지신 팔대 문주를 대신하여 완벽한 영생불사를 이룩해야 한다.”
“팔대 문주께서 목 재생에 성공하셨어요?”
“목 재생뿐이겠느냐? 네 녀석이 지금 골머리를 썩고 있는 탈혼부터 영체에 관한 내용까지 이미 팔대 문주께서는 자세히 기록하셨다. 다만 그것을 읽는다 해도 네놈이 그 뜻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뭐예요. 그럼 진작에 가르쳐 주면 정 좋아요. 육대 문주의 서고에서 개고생한 거잖아요.”
따악.
“앗.”
“크크, 무릇 스스로 익히게 도와주는 것이 떠먹여 주는 것보다 백배 좋은 가르침이라 했다. 네놈의 오성이 비천하여 이리된 결과를 탓하거라.”
“칫, 두고 봐요. 내가 팔대 문주께서 완성하신 거 금방 다 읽힐 테니.”
만유정은 자신의 뒤통수에 아려오는 통증에 독구환을 노려보더니 한마디 말을 건넸다.
“크크.”
그 말에 독구환은 여전히 괴소를 흘려 댔다.
그리고 그 날부터 만유정은 그 말이 얼마나 건방지면서도 오만한 말이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만유정이 칠, 팔대 문주의 서고에 들어선 지 어느새 이 년의 세월이 지났다. 비록 이해하기 힘든 내용에 골머리를 썩기를 수천 번도 넘는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이 년의 세월 동안 서고에 있는 책을 모두 탐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탐독만 했을 뿐 정복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책을 읽고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만유정은 그 찜찜함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어렵네.”
만유정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심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몸인지 깨닫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만유정도 최근에는 자신의 한계를 철저히 느끼는 중이었다.
“급하게 마음먹지 말거라. 그럴수록 더욱 침착하게 머리를 식혀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독구환 역시 느끼고 있었음인가. 비록 괴팍한 성격 때문에 제자의 인성은 저 멀리 하늘나라로 향한지 오래였지만 연륜에서 오는 지혜는 결코 무시할 없는지 만유정을 향해 항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독구환이었다.
“그렇겠죠?”
만유정도 그것을 알기에 책을 덮고는 잠시 머리를 식혔다.
“검이나 만들러 가야겠네요.”
그리고는 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만유정이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공방에 와서 검을 만들어야 되나 의문이 들던 만유정이었지만,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두드리는 것에 대해 푹 빠져 버린 것이다.
탕. 탕. 탕.
그렇게 공방으로 향한 만유정은 입성하기가 무섭게 망치를 휘둘렀다. 어느새 만유정의 앞에는 하나의 검이 놓여 있었고, 그 검을 향해 무섭게 제련했다.
하나의 명검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도를 높이자니 탄력성이 없어지고, 탄력성을 높이자니 강도가 낮아졌다. 그렇기에 그 강도와 탄력성을 얼마나 알맞게 배분하느냐가 장인의 실력을 나타내고 그 배율이 완벽에 가까울수록 보검이라고 불리어졌다.
그런데 세상에는 뛰어난 탄력성과 강도를 모두 극한으로 가진 검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명검이라고 불리었다. 이름난 장인들도 평생을 걸쳐서 겨우 한두 자루 만든다는 명검은 그만큼 심혈을 기울이는 노력으로부터 탄생되는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서고에서의 정체가 심화되고 있는 만유정이었지만, 이상하게 공방에서의 발전은 그동안의 세월이 무색할 만치 눈이 부실 정도로 발전한 상황이었다.
삼성지체라는 것이 단지 무공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는지 검을 만드는데 있어 주조술도 매우 빠르게 성장했고, 이제는 만드는 족족 보검을 만들어 대는 만유정이었다.
그러나 어디 인간의 욕심이 끝이라는 것이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보검을 죽죽 만들어 내는 만유정이었지만 어느새 장인의 혼에 점점 사로잡혔는지 더욱더 높은 경지를 향해 갈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위해 만유정은 지금도 무아지경에 빠진 채 검을 제련하고 있었다.
만유정은 최근 독구환이 자신을 공방에 데리고 왔을 때, 왜 밑바닥이 뾰족한 돌들을 나열하고 알겠냐고 물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작 이 년을 이 검을 만들기 위해 매진했다. 처음에는 그저 쓰레기 검부터 시작해서 어느 순간 보검이라는 검을 만들 정도로 만유정은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보검도 성에 차지 않은지 명검을 향해 그의 손이 힘차게 망치질했다.
제아무리 명인이라고 해도 그 재료가 명인의 손에 미치지 않는다면 명품은 절대 나오지 않는 법, 그런 면에서 지금 만유정의 앞에 놓인 만년한철의 검은 수어지교(水魚之交) 그 자체였다.
만유정은 쉴 새 없이 검을 두드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검을 접었다. 또 두드리고 또 접고. 이제 도대체 몇 번을 접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만유정이 하는 짓은 굉장히 무모한 짓이며 이 년 동안 행한 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모를 리 없는 그였다. 하지만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만유정은 오감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태였다.
오로지 저 검과 자신만 세상에 존재할 뿐, 그리고 그 검을 향해 망치를 뻗을 뿐이었다.
단천무극심법이라는 폭풍과도 같이 내공을 쌓는 심법을 매일 불사심공으로 다 날려먹는다지만 그의 온몸은 근육으로 잘 도배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집념을 가지고 내뻗는 만유정의 망치질은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망치질을 계속하던 만유정은 무언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년에 걸쳐 저 검을 만드는 동안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