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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8화
3장. 불사지도(不死之道) (4)


오늘의 결과에 따라 명검의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만유정의 질주는 계속해서 고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 고지가 어디에 있고 언제 다가오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갔다. 어느 누가 그랬던가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는 법이라고, 그러한 만유정의 질주는 점점 끝을 향해 다가갔고 드디어 고지를 넘어서고 말았다.
쏴아아아∼
그 순간 엄청난 희열이 온몸을 강타했다. 동시에 온몸이 가뿐해졌다. 머리는 마치 몇 개의 혈관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으며, 갑자기 세상에 검도 사라지며 오로지 자신만 존재했다. 이 순간만큼은 불사심공도 검도 모든 것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황홀경이었다. 일생에 단 한 번도 겪기 힘들다는 그 황홀경을 지금 만유정은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마치 혼자서 우주를 누비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끝없는 망망대해를 홀로 표류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아!”
또한 그것은 매우 긴 듯하면서도 찰나의 시간이기도 했다. 만유정은 황홀경에서 빠져나왔는지 탄성을 내질렀다.
그의 신형은 거대한 빛에 휩싸였고 그동안 난해하던 불사심공의 구절들과 무극양천영체심법에 대한 오의가 속속들이 들어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좌절하던 그가 지금 그 어려운 오의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 만유정을 따라온 독구환도 이때만큼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독구환이 만유정에게 공방 일을 시킨 것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벽천뢰를 전수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손길이 필요했다. 화기를 터질 듯 안 터질 듯 힘의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렇기에 내심 만유정에게 벽천뢰를 전수하기 위해 검을 만들게 한 것인데, 단순히 검을 만드는 것을 너머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고 있었으니 아무리 괴팍한 독구환이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유정의 신형이 일 장 위로 떠올랐다.
뿌드득 뿌드득.
순간 뼈가 이리저리 뒤틀리며 온몸을 뒤덮고 있던 피부가 열기에 녹아났다. 하지만 언제 열기에 녹았냐는 듯 곧 새살이 살살 돋아나기 시작했고, 이윽고 만유정의 피부는 온통 옥같이 하얀 태초의 모습으로 귀환했다.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타동해서 이룩하는 환골탈태도 아니었다. 물론 애초에 삼성지체로 태어났기에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이 막혀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대개 환골탈태를 거칠 때는 주위에 막강 기류가 형성되며 대기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만유정의 환골탈태는 그러한 막강한 기류도 없거니와 설사 그럴 능력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내공이 티끌만큼밖에 없는데 어떻게 환골탈태가 가능하겠는가.
지금 만유정의 신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 이상의 환골탈태였다.
칠대문주 이현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인체의 단전은 주로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흔히 단전이라고 말하는 배꼽 아래의 하단전, 심장 부근에 존재하는 중단전, 그리고 머리에 자리하는 상단전 바로 이 세 개다.
흔히 하단전은 말 그대로 실질적인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 가공하는 단전으로 당연히 무림인이라면 이 하단전을 바탕으로 무공을 시전한다.
만약 누가 입신지경에 이른 내공을 지녔구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하단전에 막대한 내공을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 정도로 하단전은 실질적인 무력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전이라 할 수 있다.
중단전은 그냥 자연의 기운 그 자체의 단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중단전은 아무런 효과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선인들에 의해 중단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중단전을 비튼다면 생긴다는, 이른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의 도에 대해 활발한 성과를 이루었다.
주로 사술 같은 것들이 이러한 유형으로 정파와 마도만 존재하던 시기에 갑자기 사파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 중단기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역천의 도가 그 당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단전은 뇌에 위치하는 단전답게 주로 뇌의 활발한 작용과 영적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상단전을 꾸준히 연마하면 매사에 행복을 느끼며 의지력과 기억력이 좋아지며 악몽으로부터 해방된다고 한다.
그러나 상단기공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머리와 관련되다 보니 애초에 익히기도 너무나 난해하고 또한 중하단기공과 다르게 내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초자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연공 속도가 너무나 느리기에 사실상 강호인들은 거의 익히지 않는 기공이다.”

칠대 문주 이현빈은 곤륜에서 이 상단기공으로 무공에 입문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현빈은 곤륜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도 되지 못했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말은 한마디로 무공의 발전 속도가 미미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현빈의 나이 칠십이 되었을 때부터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어느 순간 상단기공이 경지에 오르면서 곤륜의 오의들을 깨우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만유정의 신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상단전을 통한 환골탈태였다. 마치 이현빈이 과거 곤륜의 오의들을 깨우쳤을 때처럼 만유정의 뇌는 수많은 각성을 시작했고, 그것은 만유정에게 천인합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만유정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수많은 혜택을 주었던 자미성, 사황성, 마황성의 기운도 천인합일의 길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환골탈태를 거치는 동안 삼성지기(三星之氣)도 천인합일의 앞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미 입신을 넘은 그녀가 창안한 무극양천영체심법이었다. 만유정은 서고를 보며 어쩌면 진정한 고금제일고수는 그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삼성지체의 기운이 아무리 천고의 뛰어난 기운인 듯 지연화의 깨달음은 그것보다 더욱 상위에 존재했다.
불사심공은 이미 십이성 대성했고, 천인합일로 가는 길이 열림에 따라 무극양천영체심법이 자연스럽게 운기됐다.
번쩍∼
만유정이 눈을 뜨자 동굴을 순간 환하게 비칠 정도의 광채가 흐르더니 이내 다시 어두워지며 환골탈태도 끝을 맞이했다.
“어.”
만유정은 순간 자신이 겪은 변화가 적응이 되지 않는지 약간 의아하면서도 탄성에 겨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세상은 그대로 변한 것이 없는데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만유정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 그동안 만유정이 느끼지 못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느껴졌다.
무공의 경지가 입신의 경지에 올라 개안(開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만유정에게 일어난 일은 어찌 보면 그 이상의 일이었다.
흔히 영안(靈眼)으로 불리우는 심안(心眼)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 심안과 함께 어느새 만유정의 주위로는 십 년 정도에 해당하는 주위의 대기가 그의 의지에 따라 여기저기 움직였다.
무극양천심법을 운용하면서 그동안 모은 상단지공이 대략 십 년 정도의 내기였기 때문이다. 그 십 년 정도의 내기가 이제는 무극양천심법이 아닌 무극양천영체심법에 따라 대기의 내기도 조절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크크. 축하한다.”
여전히 듣기 싫은 목소리였지만 독구환도 많이 놀랐는지 생전 처음으로 만유정은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만유정도 느꼈는지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털썩.
그리고 그대로 만유정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찰나의 황홀경에서 소모한 심력이 너무나 막대했기에 깊은 휴식에 빠진 것이다.

불사심공도 대성하고 무극양천영체심법도 입문한 만유정이었지만, 그 다음 날의 일상이 바뀐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느새 자신의 처소에 옮겨진 만유정이 잠에서 일어났을 때 이미 앞에는 독구환이 날카로운 단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래 불사심공을 어디까지 깨달았느냐.”
독구환은 만유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제 환골탈태 후 그대로 잠이 든 만유정이기에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헤헤. 모두 대성했어요. 더군다나 무극양천영체심법도 이제 운기가 가능한 걸요.”
독구환의 물음에 만유정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크크, 그럼 한번 확인해 봐야겠구만.”
그런 거만함을 느꼈는지 어느새 독구환의 손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과거 혈마군으로부터 꽁지 나게 도망가던 독구환이었지만, 그것은 상대가 상대였기 때문이었지 결코 독구환의 무공이 낮은 것이 아니었다.
만유정의 심안은 독구환이 자신을 향해 단검을 베어 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둘 사이에는 무공 격차가 너무 컸다.
슥삭.
역시나 매번 아침과 다를 바 없이 만유정의 팔은 순식간에 절단되며 몸을 떠나고 말았다.
“한번 불사심공을 운용해 보아라.”
독구환은 그런 만유정을 보더니 말했다. 다행히 어제와 다르게 뼈를 긁는다거나 근육 하나하나를 자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독구환이 만유정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 모든 것이 다 불사문의 무공을 익히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만유정이 불사심공을 대성하고 무극양천영체심법에 입문한 이상 그러한 고통의 수련법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그 말에 불사심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만유정의 주위로 십 년 치에 달하는 내기가 순식간에 이동했다. 이제 만유정은 더 이상 단천무극심법을 운용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내기의 양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상단기공을 통해 내기를 지배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만유정은 마르지 않는 십 년 치의 진원지기를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사심공의 재생은 진원지기를 통한 등가교환의 원칙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상단기공의 완성으로 마르지 않는 진원지기를 계속해서 주입하자 만유정의 팔은 순식간에 재생됐다. 이제 만유정은 잘려진 팔을 다시 이어 붙이지도 않았다. 그냥 잘리면 그대로 놔두고 잘린 부분에서 다시 새로운 팔을 재생하면 그만이었다.
수많은 세포분열을 통해 잘려진 팔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찌 보면 징그러웠지만, 분명 경악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몇 년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닌 불사심공을 운용하자 순식간에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헤헤. 이제 심장을 도려내도 죽지 않을 걸요.”
만유정도 그런 자신의 변화를 느꼈는지 기쁨 반 거만함 반 표정으로 말했다.
“크크, 이번에는 심장을 해야겠군.”
독구환도 만유정의 재생속도에 놀라고는 이내 만유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검의 표적을 바꾸었다.
독구환의 불사심공은 아직 십이성 대성을 이룩하지 못했기에 심장 재생까지는 무리였다. 그래서인가 만유정의 심장으로 향하는 독구환의 단검은 이내 전진을 멈추었다.
“괜찮겠느냐.”
그리고는 결국 만유정을 향해 물었다.
“엥. 걱정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사부의 마음을 아는지 만유정의 표정은 태연자약했다. 결국 독구환의 이마에 잠시 힘줄이 돋았다.
푹.
단검은 사정없이 만유정의 심장 주변을 향해 꽂혔고 곧 이리저리 움직였다.
두근두근.
긴장했음인가 만유정의 심장은 자율신경계에 의해 박동하고 있었다. 독구환은 단검을 심장 주위로 순식간에 움직였다. 그리고는 두 손을 만유정의 왼 가슴에 넣고는 그대로 심장을 끌어냈다.
두근. 두근.
독구환의 양손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고 어느새 만유정의 심장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독구환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다.
독구환은 행여나 일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하여 심장을 잘 간직하고는 만유정의 신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그리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어느새 잘려진 혈관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더니, 이내 만유정의 심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독구환이 심장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꼈을 때에는 이미 만유정의 심장이 모두 만들어졌고, 어느새 살도 봉합되어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게 제 심장인가 보네요.”
만유정은 그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독구환의 손에 놓인 자신의 심장을 바라보며 말할 뿐이었다.
그 말에 독구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놀랄 뿐.

공방에서 황홀경에 빠진 이후로 만유정의 일상은 드디어 변화했다. 이제 더 이상 만유정은 독구환의 단검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일상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만유정은 이제 겨우 무극양천영체심법에 입문했을 뿐, 그렇기에 당장 목 재생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탈혼의 과정에서부터 목 재생까지 그리고 팔대 문주 지연화의 죽음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 등 아직 만유정이 갈 길은 멀었기 때문이다.
다시 똑같은 일상이 된 만유정, 그러나 그 전과는 확 달라진 부분도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벽천뢰에 대한 공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