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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9화
3장. 불사지도(不死之道) (5)
“우와.”
만유정은 독구환의 앞에서 놀란 듯 소리쳤다. 독구환의 말대로 초석에 유황과 목탄을 배합하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떠냐. 신기하지 않느냐.”
독구환은 놀라는 만유정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서 벽천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했다.
불사문의 서고에는 불사에 대한 얘기만 기록하였기에 당연히 벽천뢰에 대한 전수는 이렇게 직접 구두로 전해졌다.
무공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무공에 필적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벽천뢰의 전수였기에 듣고 있는 만유정의 눈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번쩍이고 있었다.
천인합일의 경지에 오른 후로 더더욱 향상된 만유정의 뇌는 독구환이 말하는 족족 순식간에 분석 정리됐고, 명검을 만들던 만유정의 손재주는 단순히 머리만이 아닌 직접 벽천뢰에 대한 실현성에 다가가고 있었다.
“크크. 어쩌면 네놈이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이 벽천뢰의 이치도 검과 다를 바 없이 간단하다. 매번 말하지만 화기를 만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파괴력이 아닌 안정성이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벽천뢰를 만드는데 안정성을 고려하자니 아무래도 화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또 그렇다고 화력을 높이자니 안정성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이 사부도 사실 벽천뢰를 만듬에 있어서 흔히 보검의 경지에는 올랐다고 자부할 수 있으나 명검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네놈은 그러한 벽천뢰를 넘어 파천뢰(破天雷)의 경지에도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명검이라는 것이 강도와 탄력성 두 개를 모두 극한으로 끌어올린 것이라면, 파천뢰라는 것도 화력과 안정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화기라 할 수 있었다. 이미 독구환은 만유정을 괴물로 인정했기에 어쩌면 평생 숙원이었던 파천뢰에 대해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파천뢰라는 것을 만들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일까요.”
벽천뢰만 하더라도 벽천뢰 주위의 반경 이 장은 초토화가 될 정도로 그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파천뢰라면 어느 정도일지 생각만 해도 궁금하고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크크, 반경 사 장 정도는 초토화될 것이라고 본다.”
독구환은 그러한 만유정의 질문에 평소 생각했던 파천뢰의 위력에 대해 설명했다.
“대단하군요.”
당연히 만유정은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장과 사 장의 초토화는 단순히 두 배의 차이가 아니었다.
폭발의 근원지에서 멀어질수록 기가 약해진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 그렇기에 이 장과 사 장의 초토화는 단순히 두 배가 아닌 거의 제곱인 네 배 이상의 파괴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 모든 고수들이 달라붙어도 걱정할 일은 없겠군요.”
만유정도 그러한 것을 잘 알기에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독구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만유정의 흥분을 순식간에 잠재웠다.
“천하십사대 고수만 만나지 않는다면 무서워할 일은 없겠지. 그러나 그중 하나라도 만난다면 아마 파천뢰가 완성된다고 해도 힘들 것이다. 설사 운이 좋아서 십사대 고수 중 한 명을 파천뢰 수십 개가 박힌 지역으로 유인한다고 해도 중상은 입힐지언정 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독구환도 만유정과 같은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유정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혈마군이라는 십사대 고수가 자신이 상상하던 그 이상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 바 있었기에 만유정의 말에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에고. 결국 무공에는 안 되네요 그럼.”
만유정은 금세 침울해졌다. 무극양천영체심법은 일 년에 일 년의 내공이 쌓이는 상단기공이었다.
아무리 만유정이 뛰어난 오성을 지녔다고 해도 내공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상승의 무공을 익히고 펼치기란 묘연한 법, 물론 인생 몇백 년 살다가 갈 만유정도 아니고, 평생 죽을 일 없기에 시간이 약이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벽천뢰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욕심이 너무 과한 것도 문제다. 어차피 금방 살다가 죽을 놈도 아닌 것이 뭘 그리 걱정하느냐. 설사 당장 죽는다고 해도 그럼 벽천뢰에 대해 익히는 것을 그만둘 것이냐.”
만유정이 침울해하자 독구환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 말에 만유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일과 이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일이 더 좋은 결과를 낳고 이는 일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해도 일과 이의 두 가지 길 모두 가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그날부터 만유정은 공방에서 벽천뢰에 대해 만들기 시작했고, 공방은 벽천뢰가 터지는 소리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소리도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줄어들었고 어느새 만유정의 나이 열일곱이 되어 있었다.
무극양천영체심법을 통한 목 재생은 탈혼에서 일어나는 영체의 조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우선 탈혼을 시전해야 되고 탈혼을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스스로가 죽음을 맞이하면 되기 때문이다.
만유정의 나이도 어느새 열입곱이나 되었고, 영체에 관한 연구에 상당한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사실상 팔대 문주 지연화가 이룩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음. 자신 있느냐.”
독구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불사심공이 십이성에 이루지 못하면 심장 재생만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태초에 인간이 가진 수명의 한계를 넘어 더 이상 천수를 누리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그래서인가. 어느새 만유정의 앞에서 말하는 독구환의 음성은 과거에 비해 많이 온순해졌고, 그런 독구환의 기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탱탱하던 피부도 주름으로 가득해 있었다.
멀쩡하던 노인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괴팍해진다고 하는데 어찌 독구환은 그 반대인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만유정은 삶이 너무나 편해진 상태였다. 도덕적으로 사부의 그런 쇠락을 기뻐해서는 안 되지만 아무래도 좋은 것은 좋은 모양이었다.
“아, 걱정 마세요.”
그래서인지 만유정의 얼굴은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어찌 보면 독구환이 도전하고 만유정이 관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만유정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서이지 독구환이 과잉 반응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 만유정은 사실상 팔대 문주를 제외하고는 전원 실패한 불사문의 염원, 목 재생에 시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명검에 불사검(不死劍)이라는 명칭을 붙였었다. 지금 만유정은 그 불사검을 자신의 목을 향해 들이대고 있었다.
불사심공을 익히기 위한 선결과제는 죽음에 대해 초월하는 것이었다.
정작 영생불사를 위해 불사심공을 익히는데 죽음에 대해 초월한다니 뭔가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역대 문주들이 자신의 목숨을 실험이라는 면목하에 종이처럼 버려댔고, 그것은 만유정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불사검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붙였지만 그 검이 만유정의 목에 접근한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인의 목을 향해 그대로 내리찍혔다.
역시나 만년한철로 도배된 불사검은 명검이었다. 마치 두부를 가르듯 불사검은 순식간에 만유정의 목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대로 목을 베어 갔다.
데구르르르를.
몸으로부터 분리된 만유정의 머리가 그대로 지상으로 떨어졌다.
땡그르르르.
불사검을 쥐고 있던 만유정의 손도 신경체제가 마비되자 불사검을 놓고 말았다.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고 땅을 구르고 있는 만유정의 목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부릅뜨고 있었다.
“음.”
독구환은 그 모습을 보더니 잠시 침음성을 삼켰다. 일단 만유정의 신체가 죽음을 맞이한 이상 흔히 말하는 생기(生氣)가 순식간에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독구환의 기감(氣感)은 그러한 생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 냈다. 그렇다는 것은 일단 만유정이 탈혼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독구환의 예상대로 지금 만유정은 육체를 빠져나온 영체를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무공을 익히고 실전을 못한 사람처럼 지금 만유정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점점 영체는 자신의 육체부터 멀어졌고, 이대로 가다가는 육체에 정착하기는커녕 그대로 저승을 향해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유정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대론 큰일 난다.’
만유정은 일단 무극양천영체심법을 운용하기로 결심했다. 심법이라는 것이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기에 당장 저승으로 향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하기엔 무모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만유정은 망설임 없이 심법을 운용했다.
그러자 곧 만유정의 주위로 십이 년 치에 해당하는 내기가 모이면서 어느새 자신의 신체처럼 만유정은 영체에 통제권을 받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애초에 상단기공을 통해 영체에 대해 완벽한 대비가 되어 있던 만유정이었기에, 한번 실전 경험을 치르자 그 뒤론 일사천리였다.
영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자 만유정은 신기한 느낌에 이리저리 영체를 움직였다. 그러자 영체가 만유정의 의지대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허공을 향하면 허공을 향해 갔고 땅을 향하면 땅을 향해가는 등 영체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의지가 향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만유정의 뜻대로 움직였다.
그러다가 이윽고 만유정은 자신의 신체를 향해 영체를 움직였다. 그러자 영체와 함께 신체는 거대한 흡입력을 형성했고, 어느새 만유정은 자신의 신체에 다시 정착할 수 있었다.
만유정의 신체는 아무런 생기도 없는 말 그대로 시체였다. 칠대 문주인 이현빈은 바로 이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만유정은 팔대 문주가 개발한 상단기공이 존재했다. 곧 그의 신체에 십이 년 치에 달하는 진원지기가 공급되면서 불사심공에 따라 신체를 다시 재구성했다.
그러자 잃어버렸던 생기가 진원지기에 의해 다시 생명을 되찾았고, 어느새 목에서는 세포분열을 거듭하면서 만유정의 머리를 만들었다.
“후아…….”
재생의 과정은 역시나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만유정은 재생에 성공하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체를 경험한 느낌은 한마디로 까마득한 절벽에서 추락하는 느낌과 다를 바 없는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한숨을 내쉬는 만유정의 표정은 안도의 느낌이 강하게 몰려왔다.
“그래. 탈혼의 과정을 겪으니 어떤가.”
독구환은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지 과거와는 다르게 침착한 표정이었다. 물론 표정만 그럴 뿐 속으로는 매우 놀라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진공 상태에서 부유하는 느낌이에요. 뭔가 아무런 저항도 없고.”
만유정은 방금 전 자신이 경험했던 느낌을 떠올리며 그런 독구환에게 말했다. 그러나 만유정 자신도 딱히 어떠한 느낌이라고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묘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크크. 정말 네놈은 대단한 놈이구나.”
독구환은 결국 표정 관리가 힘들었는지 기어코 만유정을 향해 괴기스러운 말투로 칭찬했다.
그는 문득 흔히 뛰어난 인재를 가리키는 문일지십 문일지백하고 천고의 기재는 궤를 달리한다고 생각했다.
“네놈은 문일지종일(聞一知終一)이구나.”
아무리 하나를 들어 열을 백을 안다고 해도 상식만 많을 뿐 깊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면에서 볼 때 하나를 보면 열을 깨우치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 하나를 끝까지 이해할 수 있는 만유정이야말로 천고의 기재가 아닐 수 없었다.
4장. 불사(不死) (1)
탈혼의 과정에 입문한 것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것과 다를 바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상 목 재생을 이루었기에 이제 만유정은 전신이 토막 나도 재생할 수 있는 거의 불사지체를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팔대 문주가 이룩한 것이고, 이제 만유정은 새로운 도전을 향해 진정한 만유정 그 자신만의 불사지체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만유정은 팔대 문주가 왜 용암에 몸을 던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팔대 문주가 만유정 자신이었어도 스스로 궁금함에 용암에 몸을 던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체라는 존재는 매혹적이면서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지의 영역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가설은 세울 수 있을지언정 검증을 위해서는 직접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최근 만유정의 일과는 용암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과 파천뢰의 제작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내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세 가지 물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 가지 물음과 함께 세월은 어느덧 흘러 만유정의 나이도 열여덟의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만유정의 세 가지 물음 중 하나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불사문의 염원에 종점을 찍을 수 있는 만유정이 나타나서인가. 요즘 들어 독구환의 몸은 아예 힘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