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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0화
4장. 불사(不死) (2)


곽수관의 의술과 불사심공이 어우러진 만유정의 의술은 사실상 만병통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아쉽게도 독구환의 몸은 병이 든 것이 아니었다.
만유정이 불사심공을 운용하여 독구환의 내장기관부터 피부, 뼈 모든 것들을 다시 재생시키면 곧 다시 독구환의 신체는 급속도로 노화됐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사부가 살기 위해서는 불사심공을 십이성 대성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 독구환의 삶은 그다지 생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불사심공에 대한 미련도 없는 듯 보였다.
“사부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만유정도 그것을 느꼈는지 요즘 일상은 과거와는 다르게 만유정이 오히려 독구환한테 소리치고 있었다.
“크크. 뭔 힘이 없다고 그리 큰 소리로 호들갑이냐. 어서 파천뢰나 꺼내라.”
독구환의 목소리는 여전히 괴기스러웠지만 그 크기와 음산함은 전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애써 건강한 척하지만 만유정이 보기에 이미 기력이 떨어진 것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사실상 이 년 전부터는 독구환으로부터 구타를 당하지 않은 지도 꽤 되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순리라는 것이 있고 그 순리를 거역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르어야 되니 그 대가인 불사심공의 십 이성 대성을 이루지 못한 독구환의 운명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여기 있어요.”
만유정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결국 바닥에 떨어진 파천뢰 하나를 주워서 독구환을 향해 내밀었다.
삼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 가지 물음에 대해 각각 어느 정도 진천을 이루었고, 드디어 파천뢰에 관한 연구는 얼마 전에 끝을 맺을 수 있었다.
“크크. 과연. 대단하구나.”
독구환은 파천뢰를 이리저리 살피며 감탄 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당장 폭발할 듯하면서도 폭발하지 않는 파천뢰의 모습은 불안하면서도 안정감 있었고, 또한 그러한 불안감은 당장 거대한 화력으로 상대를 유린할 듯했기 때문이다.
“위력을 보고 싶구나.”
안정성이 확인되면 당연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그 위력이었다. 둘은 신형을 옮겨 동굴에서 가장 큰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 도착하자 독구환의 손에서 한 줄기 열기가 흘러나왔다. 파천뢰의 심지를 향해 열기를 내뿜은 것이다.
화기의 안정성이란 단순히 안전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심지의 열기를 얼마나 잘 조절해서 언제 화기가 터질지 정확하게 계산이 되느냐가 바로 안정성의 가장 큰 중점이라 할 수 있었다.
적당한 시기에 터지도록 심지에 열기를 가하고 독구환은 그대로 파천뢰를 힘껏 내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동굴을 뒤엎었다.
우르르르르.
그 폭발의 여력에서 동굴도 벗어나지 못했는지 이리저리 돌들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동굴 전체가 폭발의 소리에 부르르 울음을 토해 냈다.
“성공이다.”
만유정은 폭발을 바라보며 환호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었다. 벽천뢰를 만들고 가장 먼저 실험한 곳이 바로 이 동굴이었다.
그렇기에 벽천뢰가 그 당시에 미치던 화력을 정확히 알고 있던 만유정이었고, 지금 파천뢰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강력한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독구환은 파천뢰가 완성된다면 반경 사 장은 초토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만유정이 만든 파천뢰는 그 이상이었다. 파천뢰 주위로 오 장에 달하는 영역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때요 사부. 사부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데요.”
만유정도 그 폭발의 범위를 느꼈는지 독구환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놀랐는지 독구환으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사부. 어때요.”
독구환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만유정은 다시 그를 불렀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과거에도 많이 이런 경험이 있었지만 그래도 만유정이 큰 소리로 부르면 대답은 꼬박하던 독구환이었다. 그래서인가 순간 만유정의 심안으로 불길한 감각이 잡히고 말았다.
역시나 그 불길한 감각은 현실이 되고 만유정의 앞에 독구환은 평온한 표정으로 생을 마감해 있었다.
“…….”
만유정이 자신의 사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불사문의 구대 문주라는 것과 벽천뢰와 파천뢰를 전수해 주었다는 것뿐, 그 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당연 파천뢰가 성공적으로 완성된 것을 보는 독구환의 심정을 만유정은 알 수 없었다. 화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멸문을 당하고 가족을 잃어야 했던 벽천문의 운명, 그리고 그러한 운명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독구환의 화기에 대한 열망을 만유정은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만유정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사부는 평온한 표정으로 생을 마감했고 결코 자신의 인생과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 만유정은 어떻게 하면 용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해답을 찾던 중 의문이 든 적이 있었다.
과연 팔대 문주는 용암에 의해 죽은 것일까 아니면 그 스스로 죽은 것인가. 비록 용암에 빠져서 육체가 소멸된다고 해도 탈혼의 과정을 통해 영체는 세상을 부유할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런 죽어 가는 육체에 다시 기생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녀의 성품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완벽한 정도의 협객이었기 때문에 그런 반인륜적 행위를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이야 본인의 선택이었으니 만유정이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영생 불사를 추구하는 불사문의 전 문주들은 오대 문주를 제외하고 모두 죽음에 대해 초월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만유정이 보기에도 독구환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이곳 동굴을 나가 오대 문주처럼 순결한 처녀의 순음지기만 흡수해도 향후 백 년은 더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만유정은 독구환의 시신을 사부가 머물던 동굴에 안치하고는 서고로 향했다. 구대 문주의 서고는 오늘로 끝이 났다.
이제 불사문은 구대 문주와 십대 문주 둘이 존재하는 곳이 아닌 과거처럼 십대 문주인 만유정 혼자 남게 된 것이다.
붓을 들고 만유정은 서고에 기록을 남겼다.

초대 문주부터 구대 문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불사에 실패하고 죽은 이유에 대한 원인을 발견했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팔대 문주에게 칠대 문주였던 이현빈은 사부이자 평생을 같이했던 부부였다. 그녀가 고금제일여고수라는 칭호와 고금사대고수 중 일인으로 칭송받는다지만 그 이전에 그녀에게 이현빈은 삶의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지연화는 그토록 애타게 찾던 자신의 남편이 남긴 영생불사를 완성하고 그대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닐까.
만유정은 불사문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첫째는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최대한의 집착을 갖는 것. 그리고 둘째는,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불사의 경지까지 오르는 것이다.

* * *

강호행.
만유정의 나이 열여덞, 어느덧 무극양천영체심법에 의해 만유정이 다스릴 수 있는 내기의 양도 십오 년 치로 삼 년 치가 늘어난 상태였다.
정말 끊임없는 운기를 통해 쌓은 소중한 내공이지만 한편으론 강호의 초절정 고수들이 몇 갑자는 우습게 휘두른다는 과거 사부의 말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내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십오 년 치의 내공은 무한한 진원지기였고 그렇기에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착안하여 만유정은 문득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
곽수관의 의서에는 영약을 만드는 연단술에 대해 서술한 것이 있었다. 강호에 떠도는 영약이라는 것들은 대개 도인들이 입적하기 전 자신의 진원지기를 이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소림의 유명한 대환단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의서에는 그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만유정은 그 연단술을 보고 문득 자신의 마르지 않는 진원지기를 이용하여 수많은 영약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결국 한 알 먹으면 십오 년 치의 내공 증가를 가져오는 영약을 만들 수 있었다.
만유정은 그 영약이 만들어지는 순간 무려 열 개나 동시에 삼켰다. 그리고 내공을 운기했다. 하지만 역시 십오 년 치 이상의 내공을 쌓는 것은 만유정의 욕심이었나 보다. 백오십 년에 해당하는 내기는 언제 그랬나는 듯 만유정의 몸에 들어오자마자 썰물과 같이 빠져나갔고, 만유정의 육체는 다시 생생한 십오 년 치의 진원지기가 이리저리 전신을 휘감았다.
“하. 역시 안 되는군. 그냥 이건 포기해야지. 차라리 이것보다 적은 내공으로 많은 내공을 소모하면서도 강력하게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결국 만유정은 그날부터 내공에 대한 부분은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 당장 내공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으니 말이다.
세 가지 물음 중 파천뢰는 완성했고 내공에 관한 부분은 포기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용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우선 만유정이 과거에 생각했던 육체가 소멸했을 경우 탈혼의 과정을 통해 영체를 이용하여 다른 시체에 들어간다는 방법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완전한 불사의 과정이었기에 일단 그 생각은 접기로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이 세상에서 모든 인간의 시체가 사라진다면 그러한 재생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가정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 만유정이 세운 가정은 바로 자신의 신체를 항상 보관하는 것이었다.
만유정이 자신의 팔을 자르고 팔을 재생시킨다면 잘린 팔은 어찌 됐든 하나 만들어지는 셈이니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신체 하나를 미리 보관하고 용암에 빠졌을 때 다시 그 신체로 되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 역시 신체를 보관하는 장소가 너무 예민하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고, 역시 불완전한 방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중 만유정은 문득 자신의 거처에서 의문이 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신체가 환골탈태하기 전의 신체였다.
곽수관의 의서에는 환골탈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는 순수한 상태이나 살아가면서 탁기가 쌓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순한 기운으로 인해 신체의 혈맥이 왕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내공을 쌓음에 따라 점점 그 탁기를 없앨 수 있는데, 그 경지가 일정 경지 이상 오르면 온몸이 태어날 때처럼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위에 존재하는 막대한 기를 온몸으로 빨아들이게 되고 이것은 수정란이 다시 분열을 통해 인간의 기관을 만드는 것처럼 강력한 재생력을 가진다. 불구였던 환자가 다시 다리를 찾는다든가 절세지독에 당해 온몸을 추스릴 수 없는 자가 그 독을 치유한다든가 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놀라운 일은 환골탈태를 통해 체형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무공을 익히기 위해 가장 최적화된 골격을 갖추게 되고 각종 세포들이 만병불침은 물론 만독불침의 상태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환골탈태에 관한 것은 아직도 정확하게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신비한 과정이다.

만유정이 주목한 점은 바로 체질이 바뀐다는 부분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유의 세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만유정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즉 그 세포가 어떻게 형성되냐에 따라서 하나의 개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세포의 특성을 생각하면 환골탈태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만유정의 동굴에는 그동안 불사심공을 익힌다고 남겨졌던 환골탈태 이전의 신체가 있었다. 만유정은 그 신체와 지금의 신체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세포 구조가 어떻게 다르지. 같은 몸인데.”
환골탈태를 거치고 심안이 열리게 되면서 만유정의 안력은 미시세계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안력으로 살펴보는 두 신체의 세포는 놀랍게도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여태까지 불사문의 이론을 깨는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만유정 역시 개개인의 형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으면서 그 형질로부터 개체의 운명이 정해진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내뱉지만 않았을 뿐이지 자신이 지금 이렇게 불사문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삼성지체라는 엄청난 세포를 몸에 간직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고금에서 가장 좋은 형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만유정에게 그러한 형질도 사실상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금서(禁書)에 보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고 주장하는데 만유정은 그 말이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결국 그날부터 만유정은 환골탈태를 통한 세포 변이의 연구를 집중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유정은 개체의 형질을 결정하는 또 다른 변수인 환경 변수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