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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1화
4장. 불사(不死) (3)
“세외의 강력한 세력 중 하나인 북해빙궁 주위에는 설인(雪人)이 산다. 이 설인의 신체는 햇볕을 받지 않아 피부가 하얗게 변했으며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슴에도 털이 발달한 것이 아닐까.”
환경 변수에 의해 세포의 변이가 일어나는 방법으로 만유정은 두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는 환골탈태와 같은 외부에서의 강력한 자극이었다.
일순간에 강력한 자극을 받으면 신체는 그에 맞추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속적인 자극이었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똑같은 자극이 그 신체에 가해진다면 신체는 그에 맞추어 변화를 한다는 것이다.
만유정은 둘 중 일시적인 자극에 대해 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고 했던가.
세포에 관한 새로운 연구는 만유정의 기존 관념을 깨트리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새로운 발견은 만유정에게 과거였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가설을 세우게 만들고야 말았다.
“영체로부터 내 세포를 만들 수만 있다면…….”
살면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지상으로 가져오려고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존재할까.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기존 관념이 그러한 일이 불가능하다고 이미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다.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 것을 걱정했다면서 유례 된 쓸데없는 걱정을 흔히 기우(杞憂)라고 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그 기나라 사람에게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걱정인 것이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좋다 나쁘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만유정에게 환골탈태로 인한 세포의 변이는 그러한 관념을 깨트렸고 영체로부터 세포의 창조라는 어마어마한 가정을 세우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영체로부터 세포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세포로부터 자신의 신체를 재생시킬 수만 있다면 용암에 빠져 자신의 모든 세포가 소멸된다고 해도 다시 재생시킬 수 있는 완벽한 불사를 이룰 것이니 말이다.
영생불사를 위한 향로 중 가설은 일종의 목적지를 안내하는 지도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지도가 정확한지 안 한지는 아직 항해를 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것을 생각하면 가설이라도 나왔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고무적일뿐 당장 그러한 경지에 오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세포이지만 어쨌든 생명이라는 것도 그러한 작은 근본과 함께 탄생하는데, 아무런 세포도 없이 자신의 몸을 재생한다는 것이 가설만 세운다고 쉽게 될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만유정이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막연한 길을 떠날 때는 우선 작은 것부터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만유정은 우선 영체로부터 세포를 만들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영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영체에 관해 좀 더 친숙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만유정의 영체화는 죽음을 통한 탈혼의 과정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즉 그 말은 죽음을 겪어야만 영체가 된다는 말이니 아무래도 영체화 되는 과정이 유기적이지 못했다.
만유정은 아무래도 그러한 부분이 신경 쓰였는지 가설을 세운 그날부터 굳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더라도 영체화할 수 있도록 하루의 대부분을 쏟아 냈다.
사부도 죽음을 맞이하고 쓸쓸하게 동굴에서 혼자 수련하는 나날이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만유정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 하고 그것은 만유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유정은 몰랐지만 그가 그동안 영체화하고 다시 육체로 들어오고 하는 과정은 심법을 통해 내공을 축적하는 것처럼 매우 중요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일 년에 일 년 쌓이는 만유정의 내공이 무슨 삼 년 치 쌓이고 이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유정의 내공은 점점 영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만유정이 점점 영체화와 신체화를 반복할수록 내공은 육체보다는 점점 영체와 친숙해지기 시작했고 작금에 와서는 영체와 완벽한 합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칠대 문주 이현빈이 상단전이 삼단 중 으뜸이라고 한 이유는 상단전의 발전을 통해 두뇌가 발달하고 그러한 발달된 두뇌는 향후 무공을 익히는데 하단 무공을 꾸준히 익힌 사람들의 노력을 단숨에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유정이 자미성, 사황성, 마황성의 기운을 통해 삼성지체를 이루면서 얻은 가장 큰 혜택은 온몸이 무공을 익히기 가장 좋다는 천골지체가 된 것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삼성지기가 만유정의 신체를 강타하면서 가한 영적 자극이 가장 큰 혜택이었던 것이다. 그 영적 자극을 통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오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단기공이나 삼성지기는 외부 자극을 통한 오성의 발전이지 직접적인 자극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상단기공을 통해 십 년 치 내공을 쌓았다면 대략 그중 일 년 치 정도의 효과만 뛰어난 오성의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유정이 영체화와 신체화를 하면서 내공의 영적 친화성을 극도로 올렸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의미였다.
즉 그 동안 익혀 왔던 상단기공의 내공 중 일부분만 오성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익혀 왔던 모든 내공이 오성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애초에 삼성지기를 통한 뛰어난 오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그동안 익혔던 상단기공이 더해졌으니 만유정의 두뇌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발전된 상태였다.
심지어 만유정은 최근 자신이 여러 명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하나를 생각하면 만유정의 두뇌로 마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교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가 만유정은 요즘 하루의 반을 멍한 상태로 보내고 있었다. 그저 동굴의 천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달마대사가 면벽수련을 통해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면 만유정은 면천수련(面天修練)을 통해 그러한 경지에 오를 기세였다.
그리고 정말 그럴 모양인지 어느 순간 만유정의 일과는 잠도 없이 그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생각에 잠드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었다.
과거 공방에서 황홀의 상태를 겪으면서 만유정은 불사심공을 대성하고 무극양천영체심법에 입문할 수 있었다.
지금 만유정은 그러한 황홀의 상태를 다시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긴 황홀경을 말이다.
불사심공을 기반으로 대기의 기운이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하니 언제부터인가 만유정은 먹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먹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노폐물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저 긴 황홀경에 빠진 만유정은 미동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모든 감각이 차단되고 우주의 한복판에서 부유하는 만유정의 뇌리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황홀경에서의 찰나는 현실세계에서 수년이라고 할 정도로 황홀경에서 이루어지는 생각의 속도와 몰입도는 추종을 불허했다.
시작과 끝도 존재하지 않았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얘기치 못하는 시기에 오는 법이다. 만유정은 지금 그러한 긴 황홀경의 상태에 빠졌는지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려 오 년이었다. 오 년의 긴 세월 동안 만유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신체 주위로는 이십 년이 넘는 내기가 순환하고 있었지만 만유정은 아직도 황홀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고민을 하기에 오 년의 황홀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도대체 만유정은 무엇을 깨닫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러한 만유정의 긴 황홀경도 드디어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순간 만유정의 주위로 거대한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점점 만유정의 신체를 뒤엎었고, 만유정의 뇌리로 그동안 생각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과거 공방에서 우주의 모래를 보았다면 지금 만유정은 우주의 돌멩이 정도를 보고 있었다.
공방에서 우주의 모래를 보고 무극양천영체심법에 입문했다면 지금 돌멩이를 보고 무극양천영체심법의 극의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이었다.
팟!!!!
만유정 주위에 어려 있던 거대한 빛이 순식간에 빛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했는지 마치 한여름의 태양 아래 있는 것처럼 사방의 동굴을 훤히 비추었다. 그러나 어느새 빛은 사라지며 다시 동굴은 어둠에 빠지고 말았다.
번쩍.
그때 만유정의 눈이 오 년간의 긴 황홀경에서 빠져나왔다. 오 년이라는 긴 세월 만에 떠지는 눈이었다.
그래서인가 만유정의 눈은 어딘가 힘이 없었다. 뭔가 멍한 듯하면서 정신을 잃은 듯한 눈동자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의 눈은 마음을 대변한다고 하던가. 만유정은 눈을 뜨자마자 커대한 소리를 내질렀다. 큰 깨달음에 환호를 질러야 할 만유정이 왜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는 것일까.
그러나 독구환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계속해서 소리 지르는 만유정을 말릴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만유정은 그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괴로운 듯한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것도 진정되지 않았는지 어느새 만유정은 이리저리 사방을 휘저었다. 주변의 놓인 그릇이며 서책들까지 이리저리 휘저었다. 이십 년 내공을 담으며 이리저리 휘두르는 만유정의 손길에 동굴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화했다.
쾅. 쾅.
만유정의 손은 그저 이리저리 휘두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벽을 향해 수없이 강타되는 만유정의 손길에 동굴의 벽들이 괴음을 토해 냈다.
흔히 무공을 익히는데 가장 무서운 주화입마와 같은 현상이 만유정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아니 상단기공은 느리게 연성하기에 결코 주화입마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만유정에게 일어나는 것은 그 주화입마보다 더욱 심각한 영적인 심마였다.
우주의 이치를 엿보기에 인간이라는 작은 그릇은 너무 작을 수밖에 없었다. 오 년간의 활홍경을 통해 우주의 이치를 약간 엿보았지만 만유정이라는 인간의 그릇은 그 이치를 담을 수 없어 결국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 만유정의 상태는 주화입마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러한 와중에서 불사심공이 운용되어 찢어진 팔들이 다시 재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심마를 입은 상태에서 단순히 그러한 육체적 재생은 무의미했다. 차라리 이대로 사지가 절단되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아아아아아.”
만유정은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르며 계속해서 이리저리 휘저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러한 만유정의 휘저음은 점점 한 방향으로 향했고 결국 만유정은 불사문의 출구를 향해 다가갔다.
불사문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불사문도는 의무적으로 불사심공을 완성하기 전에 이곳을 나갈 수 없었다.
물론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었기에 오대 문주 같은 경우는 밖에 나갔었지만, 만유정은 불사심공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기에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만유정은 그 출구를 향해 이리저리 손을 휘저으며 신형을 옮겼다. 불사문의 출구는 세 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세 개의 관문은 모두 불사심공을 얼마나 익혔냐에 따라 결정되는 관문으로 첫 번째 관문은 간단한 암기 세례가 날아오고, 두 번째는 전신을 낭자하는 수많은 칼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팔대 문주가 죽음을 맞이한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무공이 높으면 독구환이나 오대 문주처럼 잠시 나가도 되었지만 아무튼 관문은 관문이었다. 만유정의 이지를 상실한 몸은 첫 번째 관문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쑤수수수수.
관문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수많은 암기들이 만유정을 향해 날아왔다.
“크아아아.”
만유정은 그 암기들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손을 휘둘렀다. 당연히 고작 이십 년 치의 내공밖에 없는 만유정의 신체를 암기들이 뚫지 못할 리 만무, 순식간에 만유정의 몸은 암기들로 도배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만유정의 신체는 본능적으로 불사심공을 운용했고 암기에 의해 뚫어진 신체가 급속도로 복구되며 순식간에 만유정의 신체로부터 암기가 떨어져 나갔다.
“으아아아아아!!!!!!!!”
암기가 떨어져 나가자 만유정은 다시 괴소를 흘리며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제 이 관문이었다.
씌웅. 씌웅.
이 관문에 도착하자 바람 소리와 함께 만유정의 전신으로 수많은 도끼자루들이 날아왔다.
슥삭. 슥삭.
순식간이었다. 수많은 도끼자루들은 만유정의 전신을 지나가며 그대로 전신을 토막 냈다. 어느새 만유정의 목은 잘라졌고 머리에서는 붉은 뇌수가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역시나 이번에도 만유정의 전신으로 불사심공이 운용되더니 이내 순식간에 재생했다. 이미 영체화와 신체화의 자연스러운 합일을 이룬 상태였기에 목 재생 역시 본능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