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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3화
5장. 강호 (2)
세 명의 산적 중 중앙에 있던 산적이 큰 소리로 만유정을 향해 소리쳤다. 가진 것이라고 해 봐야 검 하나인 것을 그들도 모르진 않을 테지만 그동안 해오던 버릇 상 다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만유정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세 산적을 잠시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사부였던 독구환이 어쩌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부가 미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미쳤기에 정상적인 사부가 미치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강호로 처음 나와 만난 사람이 저런 산적이었으니 그런 만유정의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만유정이 정말 저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싫다.”
결국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 년이라는 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인데 그것을 만유정이 줄 리 없었다.
아무리 세상 경험이 없는 그였지만 책을 통해 쌓아 둔 지식도 많았고, 또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검이 얼마나 귀한지는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네놈이 행색이 불쌍해서 그 검만 내놓으면 목숨만을 살려 주려고 했건만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세 산적 중 왼쪽에 있던 사내가 그런 만유정의 대답에 열 받았는지 자신의 몸 크기만 한 거대한 도끼를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말했다.
씌웅∼∼ 씌웅∼∼
단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파공음이 이리저리 퍼지는 걸로 봐서 산적의 신력이 범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양이었다.
청해성의 산길을 혼자 걸어가는 만유정이 대담하다고 했다면 청해성에서 산적질하는 그들 역시 대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가 도끼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산적의 일신 재간이 결코 낮아 보이지는 않았다.
“막내, 불쌍한 놈이니 단숨에 뇌를 쪼개 버리는 것이 어떤가.”
그것을 다른 두 산적도 잘 아는지 여유로운 어투로 말했다. 이미 그들에게 만유정의 죽음은 기정사실화였다.
장우삼살이라는 별호로 이미 청해성 장우현에서는 황제 부럽지 않을 정도로 군림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당연 한눈에 보기에도 허약해 보이는 만유정은 한 끼 식사 거리도 아니었다.
만유정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불사검을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딱히 무공을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천골지체를 타고난 자답게 검을 쥐고 있는 모습이 제법 안정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만 그럴 듯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파천뢰라도 있었으면.’
불사검이라도 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역시나 파천뢰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싸우다가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불사검을 뺏기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싸우자니 상대방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용암에서 살아난 후 깨달음을 얻으면서 만유정은 심안을 넘어 한 단계 상승한 영심안(靈心眼)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그 영심안은 만유정에게 저자와 싸우면 필패, 불사심공을 운용하면 필승이라고 본능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만유정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생존력은 일종의 비기였다. 비기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보는 법이다.
만약 자신이 저들에게 전신이 토막 나서 재생했는데 그들이 놀라 도망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그때 공방에서의 사건 이후 실력도 늘어서 재료만 있다면 불사검과 같은 것은 이제 한 달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불사검과 자신의 재생 능력이 알려지는 것, 비록 불사검이 초기작이라는 정신적 의미가 있다지만 굳이 저울질할 필요가 없었다.
“이아아아아압.”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장우삼살에서 가장 항렬이 낮은 장삼이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며 만유정을 향해 다가왔다.
중앙에 있던 장우삼살의 대형인 장일의 말대로 만유정의 뇌를 쪼개기 위해 거대한 도끼를 세로로 크게 휘둘렀다.
만유정의 영심안은 아무런 보법도 없이 이십 년 치의 내공만 가지고 저 거대한 도끼의 움직임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리고 있었다.
결국 만유정은 살짝 몸을 틀면서 오히려 장삼을 향해 돌격했다. 그것은 빠르지 않았지만 매우 절묘한 움직임이었다.
씌웅∼
거대한 도끼는 만유정의 절묘한 움직임에 뇌를 쪼개는데 실패했지만, 만유정의 어깨를 향해 빠르게 하강하고 있었다. 만유정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
뼈를 주고 뼈를 깎는다.
원래 살을 주고 뼈를 깎아야 하지만 어차피 만유정은 불사(不死)가 아닌가.
영심안이 만유정의 필승이라고 판단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동귀어진이라는 말이 유일하게 성립 안 되는 만유정이었으니 말이다.
“커어억.”
장삼의 도끼가 만유정의 왼쪽 어깨를 시작으로 약간의 심장을 도려냈지만 그 역시 만유정의 불사검에 의해 목이 꿰뚫리고 말았다.
그저 두려움에 앞으로 몸을 옮겼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설마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장삼의 두 눈에는 불신의 눈빛이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철피공(鐵皮功)이라는 외문기공을 익힌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내심 그러한 방심을 부른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검 불사검 앞에 그러한 외문기공은 두부를 가르듯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다.
“이런.”
“삼아.”
장우삼살의 첫째와 둘째인 장일과 장이는 그 광경에 놀란 듯 소리쳤다.
“네놈.”
이들이 악명을 떨치는 악인이라지만 형제간의 우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장일은 장삼의 목을 꿰뚫은 만유정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며 장력을 내뻗었다. 장우삼살의 대형답게 그 장력은 매우 은밀하면서도 강력했다.
“커어억.”
만유정의 영심안이 그 장력을 감지했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결국 만유정은 그 장력에 적중당하며 그대로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뜩이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강력한 장력을 맞고 땅에 처박혔으니 만유정의 전신에서는 엄청난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범인이었다면 이미 과다출혈로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사심공이 꼭 눈에 띄는 형태로만 발휘될 필요는 없었다. 전신의 세포가 모두 소멸해도 살아나는 만유정인데 지금의 몸 상태로 살아남게 유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지금 만유정은 적이 방심하기를 엿보고 있었다. 어차피 만유정의 몸을 이루는 근간은 주변에 존재하는 이십 년 치의 진원지기였고, 그 진원지기가 있는 한 몸은 이미 죽어 있다고 해도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위한 가장 기본 전제인 불사검은 장력을 맞고 튕겨 나가는 와중에도 만유정의 손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장삼을 죽이고 자신 역시 죽은 다음 그냥 불사검을 주자고 생각하던 만유정의 생각이 바뀐 것은 방금 전 장삼을 통해 기묘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도끼를 내리찍는 것 같았지만 그 한 동작을 위해 장삼이 행한 힘의 증폭 단계부터 수많은 동작들 그러한 역학 관계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거 심안만 존재했을 때 독구환에게 구타당할 때는 공격해 오는 경로만 추측이 가능했지 그러한 세부적인 것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심안의 단계를 넘은 영심안은 내공의 흐름부터 힘의 역학 관계까지 모두 꿰뚫어 본 것이다.
애초에 장삼이 방심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장삼의 절묘한 빈틈을 파고든 만유정의 움직임도 그러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당연 방금 전 장일이 펼친 장력도 그러한 영심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장력을 보는 순간 만유정은 불사검을 주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삼아. 정신 차려라.”
장일이 뒤늦게 장삼을 향해 다가왔지만 이미 장삼의 목숨은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명검의 싸늘한 얘기 때문인지 목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죽음을 앞당기는 잔인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정신 차려라.”
결국 장삼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놈.”
장우삼살이 악명을 떨친 지 벌써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십오 년 전 맺었던 의형제 중 하나가 목숨을 잃자 장일은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하하. 꼴좋구나.”
만유정은 그러한 장일의 표정을 보며 내심 미소를 짓고는 장일과 장이를 향해 소리쳤다. 상대가 이성을 잃을수록 일격을 먹일 확률은 높아진다.
“질긴 새끼.”
역시나 만유정의 말을 듣자 장일은 쓰러진 만유정을 향해 다가갔다. 한 발 두 발. 점점 만유정과 장일의 간격이 짧아졌다.
‘조금만 더.’
만유정은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장일을 바라보며 거리를 재고 있었다.
“편히 보내 주지 않겠다.”
‘됐다.’
그리고 그 거리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이제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반격을 가할 준비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마침 행운의 여신이 만유정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일은 만유정에게 다가가더니 그대로 만유정의 잘려진 왼쪽 어깨를 밟기 위해 발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장삼에 의해 잘려진 어깨 부분을 다시 밟아 천천히 고통스럽게 해 주려는 의도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만유정이 원하던 것이었다.
순간 만유정의 눈이 번쩍였다.
“어.”
그리고 그 번쩍임과 함께 장일의 발로부터 묘한 느낌이 다가왔다. 만유정의 어깨를 짓밟고 심장을 밟아 끝내려고 했지만 자신의 발이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더 이상 힘이 없을 것 같던 만유정의 오른손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만유정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상대는 장력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상대는 자신에게 직접 타격을 가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직접 타격의 대상은 방금 도끼에 의해 난자된 심장 부분일 것이다.
―상대의 손이 내 몸에 침투했을 때 세포 재생을 한다면.
만유정이 생각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비록 장력이 아닌 짓밟기 위해 손이 아닌 발을 사용했지만, 오히려 손보다 더욱 감사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나 성공적이었다. 만유정의 세포가 재생하면서 이물질인 장일의 발을 그대로 묶어 놨기 때문이다.
상대의 운신을 제약한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만유정의 일격은 장일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장우삼살의 대형은 대형인 모양이었다. 비록 운신하지 못한다 해도 두 손이 가만히 묶인 것은 아니었다.
장일은 예기치 못한 공격에 뒤늦게 두 손을 가슴으로 향하며 만유정의 검을 막기 위해 방어했다.
누운 상태에서 어깨를 밟힌 상태였기에 만유정의 공격은 찌르기였다. 만약 베기였으면 그대로 변초를 활용해 다리라도 베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찌르기였기에 이번 공격은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만유정의 영심안도 이 공격은 실패할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크어어억.”
갑자기 기발한 생각과 함께 만유정은 장일을 감고 있던 오른발의 세포 재생을 멈추었다.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던 장일의 오른발에 대한 구속이 갑자기 풀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일에게 예기치 못한 관성으로 다가왔다. 아주 찰나의 틈.
만유정의 영심안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불사검은 그대로 장일의 배를 관통했다.
“어떻게.”
장일은 자신의 배를 관통한 불사검을 바라보며 놀란 듯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오른발에 작용한 알 수 없는 힘 그것에 대해 물은 것이다.
그러나 만유정이 알려줄 리 만무. 그대로 불사검을 위로 쳐올렸다. 만년한철과 최고의 장인이 만든 불사검은 역시나 명검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불사검은 그대로 위로 쳐올랐다.
퍼어억.
몸이 두 동강 나면서 장우삼살의 맏형인 장일은 그렇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으으으.”
장일마저 그렇게 당하자 장이는 두려운 듯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장우삼살 중 실질적인 무력은 장일과 장삼이 담당했다.
그에 반해 장이가 담당하는 부분은 주로 경공이나 암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장이의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만유정을 바라보는 장이의 눈에는 공포감이 자리 잡았다.
“하. 하.”
그때였다. 만유정이 갑작스럽게 당장 쓰러질 듯한 음성을 토해 냈다. 이대로 상대가 도망갈 수도 있기에 자신이 지쳤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대로 물러가면 살려 주지.”
하지만 그렇게 믿던 장일이 당한 것을 눈앞에서 본 장이가 그런 만유정의 표정에 속을 리 없었다. 이럴 때는 오히려 한 번 더 구멍을 팔 필요가 있었다.
만유정은 마치 힘이 없는데 상대에게 허세를 부리는 듯한 말을 건넸다. 숨에 가득 찬 상태로 상대에게 물러나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