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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4화
5장. 강호 (3)
장이는 만유정이 대형이었던 장일처럼 쓰러진 척하면서 유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당장 몸을 피하려던 참이었는데 만유정이 가도 된다고 생각하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 고맙습니다.”
장이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만유정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허억, 허어억.”
장이의 귀로 만유정의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악마의 구렁텅이로 변해 장이에게 묘한 생각을 만들어 냈다.
만유정의 모습이 허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만들고 의심이 의심의 꼬리를 물면 그것은 확신으로 자리 잡는다.
“하하. 이제 죽어 가는 놈이 입은 멀쩡한 모양이구나. 감히 이 장이를 속이려고 하다니.”
장이는 결국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만유정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입으로는 다른 말을 꺼냈다.
“기어코 죽겠다는 말이군.”
물론 지금 만유정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장이에게는 가증스러운 거짓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라.”
그리고 결국 그러한 의심과 함께 세 개의 비침을 만유정을 향해 날렸다. 만유정은 그러한 비침을 감지했지만 막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았다.
“이런 것들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 물러가면 살려 주지.”
만유정은 그 비침을 맞고는 장이를 향해 말했다. 장이는 그 말에 웃고 말았다.
“하하. 네놈의 허세는 대단하구나. 설사 허세가 아니라 해도 그 비침에는 절독이 품어져 있으니 네놈이 검성이라고 해도 나를 어쩌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만유정의 불사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네놈이 가진 검이 참으로 명검이구나.”
불사검이 없었으면 장삼은 물론 장일을 베어 내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을 장이도 느꼈는지 순간 불사검을 바라보는 장이의 눈에는 탐욕이 감돌았다.
탐욕이 감돌았다는 말은 이성이 서서히 마비되고 있다는 말. 장이는 자신도 모르게 만유정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고 말았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세를 파악하는 것이 능한지 더 이상 만유정의 앞으로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었다.
“허어억. 허어억.”
만유정도 그것을 느꼈는지 갑자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불사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뺐다. 마치 당장이라도 손에서 놓을 듯한 연출을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다가오면 그대로 베어 버리겠다.”
물론 경고의 말을 꺼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말은 역으로 상대를 안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비침에 독이 발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만유정에게 또한 중요한 정보였다.
“윽.”
만유정은 마치 독에 중독당한 것처럼 난처한 표정으로 장이를 바라보았다.
“하하하하하. 네놈의 검으로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주겠다.”
장이는 그 모습에 통쾌한지 결국 만유정과의 간격을 더욱 좁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에 최대의 실수였다.
“커어억.”
“더 다가오면 그대로 베어 버린다고 했잖아.”
장이의 가슴에 불사검을 관통시킨 만유정의 목소리는 아까와 같은 신음에 가득 찬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만유정의 잘려진 왼팔은 순식간에 복구되어 있었다.
“개자식. 비열하구나.”
장이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는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만유정은 상대의 유언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불사검을 위로 베어 갔다.
쑤욱.
불사검의 상승과 함께 장이의 몸도 그대로 불사검에 의해 두동 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진 세 산적의 시체를 만유정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만유정의 표정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첫 살인에 대한 방황인 것인가.
그러나 생사경에 들어간 만유정이기에 첫 살인의 아픔과 방황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었다.
“파천뢰가 필요하구나.”
만유정의 저 표정은 아무래도 자신이 가진 무력의 한계를 철저하게 느꼈기 때문에 오는 표정인 모양이었다.
하긴 일개 산적 세 명조차 이렇게 힘들게 머리를 쓰며 잡아야 하니 자신이 가진 무력이 얼마나 하류인지 뼈저리게 느낀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일성, 일왕, 일제, 삼봉, 사군, 사마로 대표되는 십사대고수를 초절정 고수라 부르고, 그 밑에 각 문파의 장문인 급이나 장로들을 절정 고수, 또 그 밑에 하나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수장을 일류 고수, 그 밑에 일류 고수들의 지휘를 받는 자들을 이류 고수라고 한다면 오늘 만유정이 만난 장우삼살을 잘 쳐줘도 이류 고수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 이류 고수도 불사심공을 바탕으로 이겼으니 그것이 현 만유정의 강호에서의 위치인 것이다.
“뭐. 안 죽으면 그만이지. 검도 지켰고.”
물론 만유정은 곧 그에 대한 신경을 꺼 버렸다. 돈이 있으면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어차피 돈이 많으면 먹고살 걱정은 일단 안 해도 되지 않겠는가. 간단한 이치였다.
장우삼살과의 전투로 인해 만유정은 우선 파천뢰를 다시 만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파천뢰 역시 육체 재생처럼 대놓고 쓰기에는 난감한 물건이었지만 적당한 곳에서 몰래 상대를 없애기에는 그만한 것도 없었다.
장우삼살과 같은 경우도 파천뢰 한 개만 있었어도 이런 걱정은 안 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물건이라고 안 그러겠냐만은 파천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재료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에서는 독구환이 모아 두었던 화약의 재료들이나 만년한철과 같은 희귀한 금속들이 많이 있었기에 그런 걱정 없이 아무렇게 마구마구 썼었지만 그런 불사문의 동굴도 무너졌으니 이제 자신이 그 재료들을 직접 구할 수밖에 없었다.
만유정은 장이의 옷을 대충 벗겨 입고는 마을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공은 좀 딸리더라도 무공 이상으로 그 외에 만유정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지식들이 있지 않은가.
당장 자신의 불사검만 팔아도 강호의 유명한 고수라면 천금을 주고도 살 것이고, 불사검을 굳이 안 판다면 철이라도 사서 대장간이라도 하나 운영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대장간보다 더 좋은 일이 있었다. 만유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능력은 영생불사의 능력, 그 영생불사의 능력을 얻기 위한 시작이 바로 고금제일신의인 곽수관의 의술이었다.
고금제일신의 의술이라는 것을 영생불사를 위한 과정의 하나로 쓰던 만유정이었으니, 역으로 말하라면 영생불사를 이룬 만유정이야말로 진정한 고금제일신의인 셈이었다.
딱히 세상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굳이 밖에 나왔을 때 만유정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바로 의술이었다.
아무래도 동굴에 독구환과 자신밖에 없었기에 의술에 대해 실험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만유정의 앞에 드디어 장우현이 나타났다.
“많구나…….”
만유정은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침 장우현에는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장이 열리고 있어서인지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현(縣)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장우현이었지만 세상 사는 사회를 처음 보는 만유정의 두 눈에는 수많은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저 멀리에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성곽이 자리 잡고 있었고, 성 밖에서는 시장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활기차게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송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청해성이었지만 과거 토번의 멸망 이후 청해성의 관리들은 대대로 송에 일정량의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 당나라와는 다르게 송나라는 북쪽에 있는 이민족으로부터 보호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었기에 사실상 서장에는 대대로 명목상으로 관직만 승인해 주는 상태였으니 거의 독립된 지역이라고 봐도 무관했다.
그래서인지 청해성은 주로 무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고, 특히 마도맹과는 좋든 싫든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청해 감숙이 마도의 영역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것이었다.
물론 청해성에 터줏대감 역인 곤륜파라는 정도의 거대한 방파가 있지만, 태을검선 사후부터 급격히 문세가 기울어진 상태였고, 그나마 현 천하제일고수라 할 수 있는 검성의 혈연적 인연과 정도무림의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사천과 접해 있어서 멸문을 면하고 명맥을 내려오는 것이지 사실상 청해성은 마인들의 소굴이 된 지 오래였다.
지금 만유정이 있는 장우현 역시 그렇기에 사실상 마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지역 사람들이 삶을 피폐하게 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이든 사든 마든 사람들이 사는 것은 결국 매한가지인 법이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이곳 장우현으로 오는 동안 눈에 띄는 불사검에 헝겊을 이리저리 말아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검을 들고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눈에 띄는 모습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만유정 특유의 생사를 포기한 듯한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만유정의 준수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것을 떠나 주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드는데 애초에 그렇게 눈에 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것이다.
거의 웬만해선 가만히 있는데 건들고 기억할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리저리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만유정은 마침 괜찮은 장소를 찾았다. 만유정은 그 장소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마침 운이 좋았는지 주위에 알맞은 크기의 나무판자가 있었다. 만유정은 불사검을 꺼내고는 검날로 판자에 글자를 새겼다.
만병통치의(萬病通治醫).
그리고는 글자가 새겨진 판자를 옆에 놔두고는 가만히 기다렸다. 당연 사람들은 그러한 만유정을 그대로 지나쳤다.
아무래도 의술을 배운 사람이 적은 세상이었고, 의원보다 의원를 사칭한 사기꾼이 더 많은 세상이었다.
이름부터 냄새가 나는 만병통치라는 말을 광오하게 써 놓는 것부터, 설령 만병통치의가 맞다고 해도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의원이 이런 허름한 시장 바닥에 자리 잡고 품에 침 하나 없이 있다면 누구나 의원보다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할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조그마한 실력을 가진 의원(醫員)이여도 의원(醫院)에 가서 남부럽지 않은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 보통인데 만병통치의를 할 정도의 신의(神醫)이면 오죽하겠는가.
세월이 지나도 전문직이란 항상 고수익과 함께하는 것이고, 그러한 고수익을 올렸을 만병통치의라면 저런 허름한 형태에 침 하나 없을 리 없다.
그러므로 만유정은 사기꾼이다. 이러한 논리적사고가 만유정의 판자를 보며 하는 생각들이었다. 거기에다가 나이도 젊어 보이는 만유정의 외모는 사기꾼이라는 생각에 확인사살까지 하고 있었다.
만유정도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스스로 고금제일신의가 지은 의서를 가지고 공부한 사람이고, 그 의서보다 뛰어난 불사문의 영생불사를 모두 익힌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저런 판자의 글귀가 결코 광오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만병통치의시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 드디어 한 사람이 만유정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나이는 대략 삼십을 넘은 듯한 건강해 보이는 듯한 사내였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 의원을 찾을 리 만무한 법.
만유정은 한눈에 그 사내의 오른쪽 발이 매우 불편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오른쪽 발 때문에 오셨습니까.”
만유정은 그 발을 보더니 사내를 향해 물었다.
“그, 그렇소.”
“이리 앉으세요.”
그러자 만유정은 사내를 자신의 옆에 앉게 하고는 다리를 쭉 펴게 만들었다.
그 기이한 광경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호기심이 동했는지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는 만유정을 구경했다.
만유정은 사내의 오른쪽 발을 이리저리 주무르면서 어떤 원인인지 살폈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과거 부러진 뼈가 기이한 방향으로 붙어 근육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 같군요. 대충 뼈의 굳기를 보아 대략 삼 년 정도 돼 보이는군요. 맞습니까.”
“어떻게 아셨소. 맞소.”
사내는 만유정의 말에 놀란 듯 대답했다. 그냥 대충 훑어본 듯한 느낌이었는데, 만유정이 정확하게 병명을 짚어 냈기 때문이다.
일 년 전 갔던 의원(醫院)의 한 의원(醫員)은 한참이나 살피고서 저 말을 했는데, 만유정은 바로 알아냈으니 문득 정말 만병통치의가 아닌지 착각하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