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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5화
5장. 강호 (4)
“대충 부러진 각도를 보니. 아무래도 길 가던 중 한눈팔다가 뾰족한 돌에 접질려서 이렇게 넘어진 것 같은데.”
만유정은 사내의 앞에 마치 삼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 모양이 삼 년 전 사내의 뼈가 부러질 때 그대로였다.
“맞소. 어떻게 만져만 보는 것으로 그리 다 아시오. 그때 잠시 예쁜 처자에 눈이 팔려 돌아보던 중 뾰족한 돌에 방금 의원님께서 말하신 대로 접질리고 말았소. 고칠 수 있겠소. 과거 한 의원에게 가봤더니 뼈가 굳어 더 이상 안 된다고 하던데.”
사내의 놀람은 결국 만유정에 대한 의심과 착각에서 신뢰로 발전했다. 속는 셈치고 만유정에게 한번 말을 걸었던 사내는 희망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예. 뭐, 이 정도야.”
만유정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두 손을 사내의 발에 가져갔다.
“어떻게 하려는 것이오.”
그러한 만유정의 두 손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음인가. 사내는 문득 겁이 난 표정으로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만유정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는 그대로 발을 꺾어 버렸다.
뿌드득.
역시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사내의 두 눈은 순식간에 붉게 충혈 됐다.
“으아아아아아악!!!!!!!!!!!!!”
순간 다가오는 전신에 다가오는 고통, 사내는 엄청난 비명을 질러 댔다.
“어머. 사람 잡는다.”
“역시 돌팔이야.”
그 엄청난 비명 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놀란 소리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만유정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더욱 사내의 발을 뒤틀었다.
“으아아아악. 뭐하는 짓이오. 이게.”
사내는 엄청난 고통에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만유정을 바라보았다.
붉게 충혈 된 눈에서는 이윽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눈물과 함께 만유정을 향한 분노의 시선을 내뱉었다.
그러나 만유정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사내의 발을 더욱 비틀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불사검을 감싸고 있던 헝겊을 풀어헤쳤다.
번쩍!
헝겊이 풀어지자 명검의 예기와 함께 날카로운 빛이 불사검으로부터 퍼져 나왔다.
“사, 살려 주시오.”
그리고 그러한 불사검을 바라보며 호기심에 말을 걸어 봤던 사내는 결국 만유정을 향해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유정의 검은 그대로 사내의 발을 향해 하강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내는 불사검이 꿰뚫는 싸늘한 예기에 더욱 엄청난 신음을 흘러 댔다. 그리고 그런 신음에 만유정의 마음도 약해졌음인가.
발을 꿰뚫었던 불사검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좀 참으세요.”
만유정은 사내의 발을 향해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더니 불사검의 끝을 잡으면서 사내의 발을 이리저리 검으로 그어 댔다.
뼈가 잘못된 방향으로 굳었다면 고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다시 그 뼈를 부러트려서 제대로 맞추면 그만이었다. 만유정은 잘못 굳어진 뼈를 불사검으로 긁어 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는 그러한 행위에 사내는 커다란 비명을 이리저리 내질렀다. 결국 그 고통을 견디지 못했는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고통 뒤에 오는 달콤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만유정의 불사검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만유정의 두 손이 사내의 발을 향하며 막대한 진원지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불사심공의 이치에 따라 다시 뼈와 살들이 재생했고, 이내 사내의 발은 순식간에 건강한 상태로 복구됐다.
뼈가 잘못 붙었다고 다시 부러트리면서 뼈를 긁는 행위는 정상적으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그런 행위는 매우 위험한 치료 행위로 치료는커녕 오히려 절름발이에서 졸지에 실족(失足)하는 경우가 생길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사심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만유정의 치료는 그러한 상리를 벗어난 상태였다.
“다 됐어요.”
그리고 그만큼 고통이 수반되기도 하지만 효과도 확실했다. 만유정은 어느새 기절해 있는 사내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고통이 심했는지 아무리 흔들어도 사내의 의식은 깨어날 줄 몰랐다.
“저거 봐. 사람이 죽었어.”
“죽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사내의 의식이 회복되지 않자 이리저리 떠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하나의 작은 중심이 되어 점점 주위로 영역을 넓혀 갔다.
결국 분위기는 순식간에 흉악해졌고 졸지에 만유정은 사람을 죽인 돌팔이 의원으로 전락했다.
“아니. 저 발 좀 봐. 어떻게 칼에 베였는데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지?”
그러던 중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사내의 발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봉합되어 있자 놀랍다는 듯 소리쳤다.
“저, 정말이네.”
사내의 오른쪽 발밑에는 상당히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음에도 정작 사내의 발은 마치 진료받기 전 그대로 멀쩡했던 것이다.
“일어나요.”
그렇게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고 있을 때 만유정의 손이 그대로 사내의 뺨을 거세게 강타했다.
“으으으.”
그 충격에 드디어 사내도 정신이 들었는지 신음성을 흘리며 눈을 이리저리 비볐다.
마치 술을 왕창 마시다가 정신을 차리니 아침인 것처럼 사내는 주변이 빙빙 도는 듯 어지러움에 빠졌다.
“일어나 보세요.”
고통에 의해 생전 기절해 본 적이 없는 만유정이기에 그런 사내의 마음을 알 리 없었다.
의서에도 뼈와 근육 신경체제에 가해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고통에 익숙해진 만유정이었기에 마취제도 없이 그대로 치료한 것이었다.
다행히 기절했기에 망정이지 잘못되었다면 최악의 경우 고통에 의해 그대로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머리에 든 지식이 많아도 경험이 없다는 건 만유정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불사심공과 곽수관의 조화는 만유정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지식이기에 어떤 누구도 만유정에게 해답을 내줄 수 있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곽수관의 의서에 적힌 대로 침을 꺼내고 몇 달에 걸쳐서 저 사내를 치료했다면 그 의서에 적힌 대로 마취제부터 제조한 다음 치료를 했었을 것이니 말이다.
만유정도 그것을 느꼈는지 마취제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고는 어쨌든 자신이 처음으로 치료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
사내는 뭔가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의아한 듯한 말을 내뱉었다. 뭔가 달랐다.
그동안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놀던 오른쪽 발이 마치 이제야 자신의 몸인 양 척척 움직였던 것이다.
사내는 어찌 된 일인지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물음에 빠졌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그제야 기억났는지 만유정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물론 삼 년 동안 쩔뚝거리면서 걷는 것에 익숙해져 신체는 정상이어도 걸음걸이는 다소 서툴렀지만, 사내는 이것이 오래된 습관 때문이지 결코 만유정의 치료가 잘못 되서 생긴 것이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한동안 그 오른쪽 발이 적응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단지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지. 곧 적응될 것입니다.”
만유정은 사내가 완치된 듯하자 역시 기쁨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의원으로서의 소명 의식이나 그런 정신적 만족감에서 오는 성취감이 아닌 성취감에 의한 기쁨이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만유정의 웃음이었다.
“대단하다.”
“와. 신의다.”
만유정의 미소 앞에서는 특유의 허무한 눈동자도 가려 버렸고 그 순간만큼은 미남자의 고귀한 기운이 맘껏 뿜어져 나왔다.
그냥 만유정이 허약한 청년의 모습이었다면 미소를 짓고 있는 만유정은 고귀한 귀공자의 표준 그 자체였다.
“신의님 저도 돌봐 주세요.”
“신의님 제 딸아이 좀 돌봐 주세요.”
6장. 개세신의(蓋世神醫) (1)
한 마을의 어여쁜 처녀를 쫓아다녔던 추남이 처녀에게 비싼 장신구를 선물하자마자 추남이 미남으로 변했다는 얘기가 있다.
돌팔이에서 신의로 순식간에 변신한 만유정의 앞은 처음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쉴 틈이 없었다.
만유정의 치료법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어마어마한 치료법이었다. 경제적 입장에서 말하면 무자본 고수익이라고 할까.
또한 효율성의 극치이기도 했다. 아무리 용한 의원이라도 뼈가 부러지면 결국 시간이 지나 뼈가 붙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고명한 무림의 고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만유정은 순식간이었다.
내장에 종양이 생기면 그대로 갈라서 다시 불사심공으로 내장을 봉합했고, 심지어 뇌에 물이 차는 것도 순식간에 제거한 뒤 불사심공으로 봉합하면 그만이었다. 만병통치의라는 말을 괜히 붙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하루에도 수백 명에 달하는 환자가 만유정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치료를 계속할수록 만유정의 주머니로는 알게 모르게 돈이 쌓여 갔고, 어느새 시장의 바닥에서 시작된 진료도 자그마한 의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가장 큰 피해자는 장우현의 다른 의원들이었다. 딱히 그 의원에 있는 의원들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의원이 적은 세상이었고, 또 의원의 몸도 열 개가 아니었기에 매일 진료할 수 있는 환자에도 한계가 있었다.
즉 그저 자신이 가진 일에 대해 소명을 다하며 살아가던 의원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환자란 환자는 모두 만유정에게 찾아가니 의원이 유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장우현의 의원들은 갑자기 나타난 만유정에게 분노를 표하며 분명 돌팔이라고 생각하고는 만유정에게 따지러 왔다.
당연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단숨에 다리를 낫게 한다던가. 고치기 어려운 반위(反胃:위암)를 단숨에 치료했다는 등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들만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유정에게 찾아가서 따지려고 할 때 마침 만유정이 환자의 뇌를 가르면서 뇌의 종양을 빼내고 있었다.
그리고 만유정이 그 환자의 뇌를 순식간에 봉합했을 때 그들은 그대로 게거품을 물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화타가 조조의 뇌를 가른다면 조조의 두통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만, 조조는 이러한 화타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화타라는 신의가 가진 의술을 믿기 이전에 일단 뇌를 절단한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선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민감한 부분이었는데 그런 전설상에서나 나올 법한 시술법이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 같은 의학의 길을 걷는 자로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정녕 시, 신의로다.”
오히려 감탄의 말과 함께 의원들이 모두 만유정 밑에서 의술을 배우기 위해 짐을 옮기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것저것 치료하면서 이제 돈도 두둑이 챙긴 만유정이었기에, 최근 그러한 의원들의 행동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불사심공을 이용한 치료는 되도록 자제해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만유정의 영생불사라는 것도 사실상 일종의 대가를 치루고 얻은 혜택이었다.
만약 만유정이 불사문이 아닌 무공에 그러한 열정을 쏟았으면 이미 고금제일인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즉 고금제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 바로 영생불사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 역천의 도였으니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렇게 마구마구 시전하는 것이 스스로도 꺼림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상 병이라는 것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걸릴 수도 있지만, 결국 그 근본을 따져 보면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에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그러한 인과의 업보에 의해 병이 들고 적당한 인구의 조절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는데, 그걸 인위적으로 막는 것이 바로 만유정의 의술이었으니 본능적으로 꺼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만유정이 이렇게 의술을 하는 것도 돈보다는 그동안 익혀 왔던 것을 실험해 보고 싶은 일종의 호기심이 컸기에 그러한 호기심이 충족된 상태에서 더 이상 이런 불사심공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 세상에 노인만 가득할 거야.”
선중악 악중선(善中惡 惡中善)이라고 했던가. 만약 만유정과 같은 신의들이 세상에 득실거린다면 세상은 온통 노인으로 뒤덮일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만유정의 환자들도 중병자가 주를 이루던 것이 점점 사소한 찰과상을 입은 환자들이 많아지면서 그러한 생각을 더욱 가속시켰다.
마치 만유정이라는 불사심공을 하나 보험으로 갖다 놓고 생활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불사침(不死針)이다.”
물론 최근에는 침을 이용한 곽수관의 의서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만유정은 최근에 구한 만년한철로 만든 삼백육십오 개의 침을 품속에 간직하며 나지막한 소리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