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불사문 1권 16화
6장. 개세신의(蓋世神醫) (2)


청해성 장우현에서 시작된 만유정의 행보는 순식간에 장우현을 넘어 청해성 그리고 강호로까지 퍼져 나갔다.

강호에 신의가 탄생했다. 모든 병이든 그자의 손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치료된다. 전설의 화타나 곽수관도 그 신의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그 퍼져 나가는 기세가 얼마나 강렬한지 사람들은 만유정을 가리켜 개세신의(蓋世神醫)이라는 별호를 붙여 줬다. 그리고 그 소문과 함께 다시 한가해지던 만유정은 수많은 중병자들로 몸살이를 앓아야 했다.
“어감이 영 별로인데.”
만유정 역시 자신에게 별호가 붙었다는 소식에 매우 기뻐했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래도 나쁜 의미로 별호를 붙인 것도 아니고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는 아예 이참에 자신이 머물고 있는 의원을 개세의원으로 명칭을 정해 버렸다.

개세의원의 앞은 신의(神醫)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최근 만유정의 소문이 강호를 진동하면서 타 지역에서도 환자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만유정은 불사심공을 이용한 치료법보다는 곽수관으로부터 배운 침술에 더욱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과거에 비하면 치료가 더딜 수밖에 없었고, 진료를 받기 위해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대부분 진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당연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음성적인 부분이 싹틀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개세의원은 졸지에 돈 있고 권력 많은 자들의 의원으로 변하고 말았다.
역량이 되는 한 모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만유정의 주머니는 오히려 두둑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됐다.
부자가 아니면 진료를 받을 기회조차 없었고 자연스럽게 부자들만 치료하게 된 만유정이었기에 오히려 요즘 벌어들이는 돈은 과거에 비해 수십 배에 달할 정도였다.
당연 돈이 더 많이 들어오니 만유정도 은근히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것을 노렸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 만유정의 일과는 타지에서 오는 부자들의 진료를 해 주는 것으로 바뀐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만유정 앞에는 마침 그러한 미부인이 진료 받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보세요. 남편이 아니라 다른 남자하고 잠자리를 보냈죠.”
만유정은 자신의 앞에 있는 미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 말에 미부인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 맞아요.”
그러나 자신의 앞에 있는 만유정이 유명한 신의임을 잘 알기에 미부인은 결국 얼굴을 붉히며 만유정의 말에 대답했다.
괴팍한 독구환 밑에서 자라 만유정 역시 약간 괴기스러운 성격을 가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강호로 나와 소위 말하는 명문의 협객을 만났다면 어쩌면 만유정 역시 협객처럼 광명정대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인지 만유정이 최근 만나는 고액의 환자들마다 이상하게 안 좋은 사유로 오는 환자들이 많았고, 또 그러한 안 좋은 의도의 환자들끼리 입소문이 타더니 알게 모르게 만유정도 그러한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막 세상 사는 사람들 속에 익숙해지고 있는 만유정이었는데 하필 그 시기와 장소가 좋지 않았다.
“부인께서도 돌쇠인가요. 아니, 세 가지 양기가 충돌하군. 설마 돌쇠도 모자라서 꺽쇠까지?”
며칠 전에도 한 미부인이 만유정에게 진료를 받은 적 있었다.
듣기로 저 멀리 사천에 사는 현령의 정실이라던데 최근 돌쇠와 눈이 맞아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부터 하복부에 통증이 생겨 만유정을 찾아온 것이었다.
성병이라는 것이 꼭 다른 남자나 여자와 눈이 맞아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만유정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 부인의 몸에 두 가지의 양기가 상충하면서 묘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니 딱 봐도 그림이었다.
그런데 지금 온 미부인은 오히려 며칠 전 미부인보다 더했다. 무려 세 가지 양기가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쇠, 꺽쇠, 서생이요. 남편은 힘이 없어서.”
아니 그 이상이었다. 미부인은 만유정의 말에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최근 누구랑 하였습니까. 최근 한 사람이 아무래도 병의 근원인 것 같은데.”
만유정은 그냥 할 말을 잃고는 미부인에게 물었다. 이제 이런 것도 익숙한 그였기에 파천뢰를 위한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심정이었다.
“서생하고 했는데…….”
미부인은 만유정의 말에 약간 놀란 듯 대답했다. 만약 만유정의 말대로라면 서생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품행이 단정하고 깔끔하기로 소문난 서생이었기에 내심 돌쇠나 꺽쇠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의외인 모양이었다.
“그 서생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분명 여자관계가 매우 난잡한 사람일 겁니다. 만약 그 서생과 한 번 더 그런 관계에 빠진다면 또다시 이 병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만유정도 설마 서생일 줄은 몰랐는지 한숨을 내쉬고는 불사침을 미부인의 온몸 곳곳에 꽂았다.
침을 꽂기 위해 이미 미부인의 옷은 모두 벗겨진 상태지만 아무런 사심 없이 만유정은 침을 정확한 장소에 하나하나씩 꽂았다.
“신의께서는 혼인은 하셨는지요.”
침을 꽂는 것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기에 만유정은 매우 집중한 상태이지만 아무래도 그 과정이 미부인에게는 지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인가 미부인은 만유정을 향해 입을 열며 물었다.
“아니요.”
침술 중에 갑자기 말을 거는 그녀의 말이 달가울 리 만무, 만유정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침을 꽂았다.
순간 따끔한 느낌이 미부인의 온몸을 강타했지만 이미 여러 번 꽂힌 상태에서 익숙했는지 미부인의 입은 닫히지 않았다.
“뭐하면 내 딸을 소개해 줄까 하는데.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딸아이는 정말 조신하게 컸거든요.”
닫히지 않은 입은 기어코 만유정을 향해 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내게 만들었다.
“말씀만으로 감사하군요.”
물론 만유정의 반응은 당연했지만 말이다.
“나를 보고 그러는 것 같은데. 상공과 나 사이에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딸아이는 조신합니다. 뭣하면 그 수궁사인가 그거라도 확인해도 되고요.”
미부인은 정말 진심인 모양이었다.
“부인께서도 처녀로 결혼하셨겠죠.”
확실히 그녀도 어렸을 때는 아리따운 규수로 이름을 날렸었다.
뭐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첩에 빠져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남편 때문이라고 둘러 되겠지만 어쨌든 만유정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그녀의 입은 기어코 닫히고 말았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 다 됐습니다. 한동안 돌쇠와 꺽쇠와의 관계는 자제하시고. 특히 그 서생과는 인연을 끊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시 병이 옮을 겁니다.”
어느새 만유정의 침술도 끝이 났고 그녀는 이리저리 옷을 추스렀다.
“약 같은 건 없나 보네요.”
“예. 그냥 면역력만 일순간에 끌어올려도 금방 사라질 병이었거든요.”
만유정은 불사침을 깨끗하게 씻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감사했습니다. 신의님.”
그녀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는 만유정에게 금덩어리 세 개를 내밀었다.
“신의께서 입이 무겁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믿어도 될는지.”
“예 걱정마세요. 그건 확실하게 지키는 것이니깐.”
만유정은 금덩어리 세 개를 바라보고는 그녀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 만유정이 개세의원을 차리고 환자들을 돌볼 때 모두 저 미부인과 같은 환자들만 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환자는 몰리는데 만유정이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한계가 있었고, 그렇기에 부자들 특히 그중 저 미부인처럼 숨겨야 되는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거액을 지불하면서 진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밀유지가 또 어떻게 입소문을 탔는지 지금은 거의 대부분 비밀이 많은 환자들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팅∼∼ 팅∼∼
종소리가 울리고 그녀는 진료실로부터 조용히 나갈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만유정의 진료실도 은밀한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밖에서 흔히 보이는 의원의 전각들은 주로 다른 의원들이 진료를 했고, 만유정의 진료실은 멀리서 거액을 지불하는 사람들만 은밀하게 진료하고 있었다.
씌웅∼
한 줄기의 바람이 불며 다음 환자가 만유정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만유정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움찔.
정확히 짚어 내서인가 만유정의 앞에 있던 흑의인이 잠시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개세신의는 의술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무공의 고수였군.”
설마 자신의 위치가 들킬 준 몰랐는지 흑의인의 말에서는 놀랍다는 의도가 그대로 묻어났다.
강호에서 자신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자가 백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내심 자부하던 흑의인이었기에 자신의 등장과 동시에 기척을 감지한 만유정에 매우 놀란 모양이었다.
“어서 오세요.”
물론 무공에 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심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만유정은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신이 사실 무공은 약하지만 감각만큼은 천하에서 최고라오 하면서 스스로 약한 점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유정은 아무런 꺼리김없이 상대를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짙은 어둠만 존재할 뿐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만유정의 영심안은 저곳에 사람이 있다고 알리고 있었지만 깜깜한 어둠만 존재할 뿐이었다.
“살막인가. 그곳에서 오셨나 보네요.”
그러나 보이진 않더라도 짐작은 갔다. 저번에도 몇 번 저 흑의인과 같은 존재를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유정의 추측이 맞았는지 곧 어둠 속에서 흑의인이 그림자를 형성하며 나타났다. 만유정은 그제야 보이는 흑의인에 모습에 그저 조용히 응시하며 바라보았다.
우선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복면이었다. 이곳에 몇 번 왔던 다른 흑의인도 저렇게 복면을 썼었기에 새삼스러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복면 하나로도 흑의인이 활동하는 영역을 간결하게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역시나 신의답게 흑의인의 오른쪽 어깨에 눈이 갔다. 오른쪽 어깨와 함께 있어야 할 오른팔이 어두운 밤과 함께 그대로 파묻혔기 때문이다.
강호에 자신의 오른팔만 은신시킬 수 있는 은신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만유정 앞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필경 오른팔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마냥 흑색만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흑의인의 몸에서 살짝 빛나고 것도 있었다. 바로 왼쪽 허리에 매여져 있는 검집이었다.
그러나 만유정의 영심안은 필경 저 검이 밝게 빛나는 순간 누군가의 혈향이 그 안을 감돌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불사심공을 사용해도 필패다.’
과거 자신을 찾아왔던 흑의인들도 위협적이었지만 살수의 무공이라는 것이 일격필살의 성향이 짙었기에 만유정이야말로 진정한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대개 불사심공을 운용하면 오히려 역습을 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흑의인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 고수였다. 아마 만유정이 강호에 대한 식견만 있었다면 분명 자신의 앞에 있는 흑의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생사섬(生死閃) 자홍.
은밀함을 최우선으로 하는 직업이 살수였고, 살수가 알려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아마 자홍만큼 강호에 잘 알려진 살수도 드물 것이다.
천하 십사대 고수이자 사마 중 일인인 살마(殺魔)가 이끈다는 살막의 삼대 살객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홍의 과거 때문이었다.
강호를 활보하는 자라면 누구나 이십대의 나이에 나와 천하를 휩쓸고 악을 평정하여 미녀와 함께 해로하는 꿈 정도는 한 번씩 꾸어 볼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상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나이도 대개 청년시절에 발을 디디는 경우가 많았고, 아마 그들의 마음에는 내심 그러한 영웅 심리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꿈도 잠시, 강호에 어느 정도 경험을 쌓다 보면 대개 그러한 꿈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강호의 현실은 냉정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재라고 해도 결국 무공의 성취에 가장 큰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
무림 역사상 청년의 나이에 강호의 초절정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사실상 그 꿈이라는 것이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현 강호의 최강자로 삼십 년 넘게 군림하고 있는 십사대 고수도 따지고 보면 과거에 천고의 기재 소리를 들으며 평생 무공을 연마해 온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