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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7화
6장. 개세신의(蓋世神醫) (3)
사실상 젊은 청년들에게 십사대 고수와 같은 말들은 너무나 먼 얘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호사가들은 청년 고수들을 따로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개 남자의 경우는 용(龍), 여자의 경우는 봉(鳳)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매년 가을이 되면 용봉대전이라고 해서 청년 고수들의 실력을 겨루는 비무대회가 열리기도 하는데 정파 무림의 큰 행사 중 하나로 그 규모와 영향력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만유정 눈앞에 있는 자홍이 바로 그 용봉대전의 우승자 출신이었다.
지금은 멸문하여 사라졌지만 한때 저 남쪽 해남도에서는 해남검문이라는 명문의 검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구대문파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문파였다.
더군다나 차후 해남검문을 이끌 것이라는 자홍이 용봉대전에 우승했으니 더더욱 해남검문의 미래는 밝기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음과 양은 항상 함께하여 그 둘을 무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시기 강호에 희대의 검귀가 하나 나타나니 그것이 바로 해남검문의 몰락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파천신군(破天神君) 혁우섬.
현 사군 중 하나이자 십사대 고수 중 하나로 불리는 파천신군 혁우섬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무도 혁우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혁우섬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비무첩이 해남검문에 날아감에 따라 해남검문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강호에서 명예는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지는 법이었다. 명문이라는 이름은 한마디로 그러한 도전을 거절해서는 안 되었다.
또한 그 도전의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해남검문은 그 당시 무명이었던 혁우섬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육일승천하는 기세로 올라가는 해남검문이 무명의 검객에게 패했다는 것이 알려지기에는 시기가 너무 묘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결정은 피를 불렀고, 혁우섬에 의해 해남검문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물론 제아무리 십사대 고수여도 그 당시 구대 문파 중 하나에 버금간다는 해남검문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혁우섬을 눈여겨보고 있던 사왕이 나타났고 그 뒤로 해남검문은 멸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물론 교활한 사왕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정파를 자극할 리는 만무했으니 결국 강호에는 무명의 혁우섬에 의해 해남검문이 몰락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말았다.
그 소식은 자홍에게도 전해졌고 분노한 자홍은 혁우섬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청년 때 천하제일인을 꿈꾸지만 그러한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제아무리 자홍이 용봉대전의 우승자라고 해도 혁우섬 앞에서는 어린애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혁우섬에게 자홍은 오른팔을 잃고 만다. 그리고 몇 년 뒤 강호에 잔인한 살수가 한 명 출연하는데 그 살수가 남기는 시체의 상흔이 해남삼십육검과 너무나 흡사했기에 사람들은 단숨에 그 상처가 자홍이 남긴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애초에 해남검파는 쾌검과 변칙검으로 유명했기에 그러한 무공을 이어받은 자홍이 도덕적인 관념만 배제한다면 살수라는 직업으로 전업한 것이 어쩌면 현명한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러한 전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살수지왕이라는 살마 다음으로 강한 삼대 살객 중 일인이 될 수 있었다.
강호를 위진시키던 청년 고수의 처절한 몰락이었지만 그런 자홍에게도 유일한 꿈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문파를 멸문시킨 혁우섬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용봉대전에서 우승했던 그 기세로 몇 십 년을 매진해도 혁우섬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까 말까일 텐데 오른팔을 잃고 좌수검을 익히는 상태로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최근 낙담하던 그였는데 부하들을 통해 이상한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장우현에 개세신의가 나타났는데 그 신의로부터 잘린 팔을 다시 봉합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자홍은 설마 하는 표정과 함께 그동안 포기하던 복수심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부하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오른팔을 다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간단히 말하겠소. 신의께서는 내 잘려진 팔을 다시 붙일 수 있소?”
자홍은 만유정을 보고는 그러한 격한 마음이 담긴 말을 그대로 건넸다.
온통 흑색으로 도배된 흑의인에게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만유정은 문득 저 흑의인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고 생각했다.
“뭐. 알고 오신 것 아닌가요.”
물론 그렇다고 놀라거나 이러지도 않았다. 그저 만유정은 간단하면서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불사심공만 운용하면 자홍의 오른팔 하나 재생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 말이다.
“근데. 아무런 팔이 하나 있어야 될 텐데.”
물론 불사심공을 운용할 마음은 없었기에 만유정은 매우 정상적인 방법을 통한 물음을 건넸다.
“가지고 왔소.”
그러자 어디에 숨겨놨는지 갑자기 자홍의 왼팔과 크기가 비슷한 팔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이리 줘 보세요.”
만유정은 그 팔을 자홍으로부터 건네받고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팔의 상태를 진단했다.
“음 대략 한 시진이 안 된 팔이군요.”
팔의 세포들이 아직도 생기를 잃지 않은 것이 지금 막 구해 온 모양이었다.
새로운 팔을 하나 붙이려면 그 재물이 되는 팔이 생기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만유정 앞에 있는 팔은 매우 좋은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지금 어디 누군가는 오른팔을 잃고 끙끙되던가 아니면 목숨을 잃었겠지만 말이다.
“피 좀 주실래요.”
하지만 단지 생기를 잃지 않았다고 봉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혈액이었다.
이 팔의 원주인과 지금 자홍의 혈액형이 일치해야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흑의인은 피를 달라는 말에 순간 무슨 말인지 의문을 표했으나 만유정이 소도를 들고 오는 것을 보고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자홍은 만유정이 소도를 그음에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불사검으로 수술을 할 수도 없기에 소도는 만유정이 의원을 차리고 가장 먼저 만든 물건이었다. 만유정산 소도였으니 당연 그 날카로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소도는 자홍의 살을 날카롭게 베어 갔다.
움찔.
아마 소도가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면, 자홍은 본능적으로 몸을 빼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소도는 단순한 철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덕분에 날카로운 예기를 그나마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온몸을 베어 지나가는 예기에 몸을 떨 수밖에는 없는 자홍이었다.
“날카롭군.”
결국 한마디 하는 자홍이었다.
만유정은 자홍의 왼팔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오른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 피를 오른손에 살며시 묻혔다.
만유정은 자신의 오른손에 묻은 자홍의 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온몸에 퍼지는 비릿한 혈향. 만유정은 그 혈향과 함께 자홍의 피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영심안이 또 작동한 것이다. 영심안이라는 것이 만유정과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만유정은 그런 영심안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혈액의 맛을 보면 그 혈액형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혈액이군요.”
만유정이 분류한 여덟 가지 혈액 중 자홍은 두 번째 혈액인 모양이었다.
만유정은 그렇게 자홍의 혈액이 확인되자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팔의 혈액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그 혈액의 맛을 봤다.
“잘 고르셨네요.”
그 혈액 역시 두 번째인 모양이었다. 혈액을 여덟 가지로 나눈다지만 특이한 다른 혈액을 가진 유형이 있어서이지 결국 따지고 보면 네 가지나 마찬가지였다.
자홍은 사분지 일의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누우세요.”
자홍은 만유정의 말에 그대로 진료실 침실에 누웠다. 환자가 올 때마다 침실의 요를 바꾸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유난히 혈향이 감도는 침실이었다.
만유정은 바늘과 실 삼백육십오 개의 불사침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마취제를 갖다 놓고는 자홍을 바라보았다.
당연 가장 먼저 할 일은 마취를 통해 고통을 없애는 일이었다. 만유정은 마취제를 투입하기 위해 자홍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내밀었다.
“됐소.”
그러나 그 순간 자홍의 왼손이 그런 만유정을 제지하며 곧 고개를 저었다.
“마취를 안 하면 빨리 낫기야 하겠지만 괴로우실 텐데.”
그러한 제지의 의미를 모를 만유정이 아니기에 자홍을 보고는 다시 말했다.
“괜찮소.”
그러나 자홍의 의지는 단호한 모양이었다. 관우가 화타에게 치료받았던 것을 흉내라도 내보려는 것일까.
만유정의 생각으로는 딱히 마취를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저 단오한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강요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지 마취제를 다시 자리에 놓았다.
“하긴 별로 아프지도 않으니깐요.”
만유정이 생각하기에도 별로 마취제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진료 받던 사람들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는지 습관적으로 마취제를 사용하던 그였다.
그런데 자홍이 저런 반응을 보이자 자홍을 바라보는 기준이 드디어 만유정 자신의 기준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만유정은 결국 바로 융합하기로 결정했다. 마취제를 한다는 것은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말이고, 그 말은 융합을 함에도 섬세하게 해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가 고통을 참을 수 있으면 말은 달라진다. 고통스럽지만 바로바로 효과적인 융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유정이 마취를 안 하면 빨리 낫는다고 말한 것이다.
만유정은 불사침을 꺼내고 자홍의 몸 구석구석과 융합하려는 팔에 침을 이리저리 박았다.
팔을 붙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저 팔과 자홍 육체간의 기를 소통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가 소통되자 만유정은 소도와 함께 팔을 융합시키면서 신경을 이어갔다.
이 부분이 바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동반되는 과정으로 마취를 하지 않는다면 일반인의 경우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얻는다고 했다.
물론 만유정이야 이런 고통에 이미 익숙했고 만유정 기준으로 자홍을 바라보게 된 상태였기에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비명 소리가 자홍으로부터 퍼져 나왔다. 만유정은 그 비명 소리에 순간 황당한 표정으로 자홍을 바라보았다.
“엄살 피지 마세요. 저도 몇 번 겪어 봤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요.”
그리고는 다시 소도를 움직이며 신경을 이어 갔다.
만유정의 말에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인가 다행히 자홍의 비명은 그치고 진료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팔 융합술은 오기로 참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 자홍의 입에서는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 마취를 하겠, 으아아아아아.”
결국 자홍은 견딜 수 없었는지 만유정에게 마취를 부탁했다. 만유정은 그 말에 잠시 자홍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근엄한 표정과 함께 분위기 땅땅 잡고 들어온 사람이 이런 엄살쟁이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하긴. 돌쇠에 꺽쇠에 서생까지 하신 아줌마도 있는 마당에.’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법, 만유정은 그냥 있는 그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마취를 해도 늦었어요. 그냥 견뎌야 해요.”
마취를 안 하면 치료가 더 빠른 이유는 마취를 해도 고통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취를 한 상태에서는 그 고통받는 부위를 피해서 봉합하지만 자홍이 고통을 견딜 것이라 판단한 만유정은 마취 상태에서도 고통을 받는 부위를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 지금의 상태에서 마취를 한들 소용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몸이 이리저리 발광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허세는 아닌 모양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물론 그렇다고 비명이 그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 됐습니다.”
그렇게 만유정의 봉합술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홍이 느끼기에 그 시간은 억겁의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맙소이다.”
그 억겁의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고 느꼈는지 자홍은 만유정을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이미 만유정의 환상은 깨진 상태, 만유정은 더 이상 자홍의 말이 근엄하게 들리지 않았다.
“엄살이 심하신 모양이네요.”
결국 기어코 한마디 하고 말았다.
“험.”
당연 그 말에 자홍이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헛기침만 내쉴 뿐이었다.
“한번 움직여 보시겠어요.”
그렇게 헛기침을 내쉴 때 만유정의 말이 바로 이어져 날아왔다. 자홍은 그제야 자신이 치료받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는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