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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18화
6장. 개세신의(蓋世神醫) (4)
오른쪽 어깨부터 아래로는 뭔가 생소한 것이 걸려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는 가지고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떨어져 나간 오른팔이었다. 어깨에 이리저리 바늘로 꿰맨 자국만이 과거의 상처를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으.”
자홍은 그 오른쪽 팔을 바라보는 순간 그대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상했다. 뭔가 머리는 이렇게 하라고 말을 하는데 팔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마치 오른쪽 팔만 묘한 이질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뭐 한 몇 달 만 노력하시면 왼팔처럼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만유정은 그런 자홍의 결과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침착하게 대답했다.
“고맙소이다.”
그 말에 자홍도 고개를 숙이고는 만유정에게 인사했다.
자신의 부하도 한창 새로 붙은 팔을 움직이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고 결코 시술이 실패한 것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세 달 동안은 그 오른쪽 팔로 절대 내공을 주입해서는 안 될 거예요. 그건 명심하세요.”
만유정은 자홍에게 마지막 주의할 말을 꺼내고 자홍에 대한 봉합술을 끝내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소이다.”
자홍도 그것을 느꼈는지 더욱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무려 열 개나 되는 금덩어리를 만유정에게 내밀었다.
“사후 관리는 안해 드려요. 나중에 제 말을 듣지 않아 내공을 주입해서 오른쪽 팔이 망가진다면 그때도 열 덩어리입니다. 아시겠죠.”
“명심하겠소이다.”
자홍은 그렇게 말하며 진료실에서 사라졌다. 만유정의 영심안이 그것을 감지하고 자홍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캄캄한 어둠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띵띵.
그리고 만유정은 진료가 끝났다는 종소리를 다시 두드렸다.
자홍으로부터 받은 덩어리, 주로 덩어리 한 개를 한 냥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료비로 받은 돈이 무려 금자 열 냥이라는 뜻이었다.
농업을 업으로 하지 않고 상업을 주로 하는 서민이라면 은자 한 냥이면 한 달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은자가 열한 개 정도 모이면 금자 한 개랑 교환되는데, 물론 지역에 따라 어떤 지역은 은자 열 개에 금자 한 개일 수도 있고, 어떤 곳은 열두 개에 한 개일 수도 있겠지만 대충 금자 한 개면 일 년을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금자를 방금 두 번의 진료를 통해 열세 개나 벌었으니 만유정이 개세의원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금액이 얼마인지 대략 상상이 갈 것이다.
당초 의술에 대한 호기심과 파천뢰를 위한 자금 마련으로 시작된 일이었는데 그 목적이 사실상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 슬슬 만들어 볼까.”
만유정은 자신의 앞에 놓인 만년한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겨우겨우 연락한 상인을 통해 이번기회에 만년한철을 소량으로나마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천뢰의 안정성을 위해 안전침만큼은 만년한철로 된 침을 사용해야 됐기에, 파천뢰를 제작함에 만년한철은 필수였다.
물론 그 외에 유황이나 초석 목탄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구입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지금 만유정 앞에 놓인 하나의 어음이었다. 중원전장이라는 도장이 꽉 찍힌 어음에는 금 오백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 개세의원에서 벌어 놓은 금자와 은자를 처분하기 곤란할 정도로 쌓아 놓고 있던 실정이었는데 중원전장과 어떻게 연락된 것이 이렇게 어음으로 교환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어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편히 보관하는 것만이 아니라 만기일인 일 년이 지난 뒤 일 리나 되는 이자도 얻을 수 있기에 만유정으로선 그저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떠날 차례네.”
목적이 완성된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언제까지 파천뢰에 의존할 수만도 없는 법이다.
“마도맹으로 가자.”
만유정은 결국 마도맹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내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공을 익히긴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7장. 마도맹으로 (1)
이십 년 전 무장혈사에서의 혈투는 결국 정파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시 사파를 몰아내고 정마간의 혈투가 벌어졌지만 검봉 위천악에게 도마 갈영공이 패퇴함에 따라 승부는 정파의 축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삼봉, 사군, 사마, 중 으뜸이라는 검봉이었다.
그 혈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마교는 결국 무장현에서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중대한 결정과 함께 탄생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도맹이었다.
정도를 대표하는 단체로는 무림맹이 있었고, 사파 역시 사도련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도를 대표한다는 마교는 일종의 단일 문파의 성격이 강했지 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는 단체는 아니었다.
강호의 마인이 마교에만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러한 단일 문파의 한계는 고질적인 마교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쪽수에서도 정도나 사도에 밀리기도 했다. 즉 마교도 이제 넓은 시각에서 모든 마인들을 끌어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도맹의 창설은 실로 어마어마한 상승효과를 만들었다. 강호에 떠돌던 수많은 마두들이 마도맹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청해와 감숙이 마도맹의 영역으로 잠식됐기 때문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사나운지 심지어 과거 정사마 삼파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던 마도가 최근에는 정파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최근 마도맹은 고질적인 문제였던 머릿수를 보충하면서 강호 전역에서 무사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식은 장우현에서 진료를 하던 만유정의 귀에도 들어간 것이다.
어차피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절세의 비급보다는 당장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기본기가 중요한 상태라는 걸 만유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초를 바탕으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쌓이는 내공으로 상승의 절학을 익히면 되는 법이다.
“그럼 갈까.”
만유정은 네 개의 파천뢰를 품에 넣고는 곧 떠날 준비를 했다.
“…….”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만유정은 행장을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개세의원 앞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 때문이었다.
만유정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점점 부자들만 치료할수록 반대로 만유정에 대한 장우현 사람들의 인식은 서서히 안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처음 만유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던 것이 이제는 돈 많은 부자들만 진료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세간에서는 개세가 아니라 광금(狂金)이라면서 광금신의라고 부르는 사람도 점점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는 계속 커져 갔고 급기야 강호에서는 개세신의는 돈 많은 사람만 치료한다는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
광금신의(狂金神醫).
광금신의의 의술은 전설의 화타나 곽수관을 뛰어넘으나 그 심성이 괴팍하여 최소 황금 반근(半斤:금자 다섯 냥)이 없다면 설령 노인 연약한 아녀자라도 결코 치료해 주지 않는다.
만유정도 그러한 주변의 기류를 눈치채고 있었는지 결국 행장을 내려놓고 잠시 마도맹으로 향하는 목적을 거두었다.
어차피 좋은 소문보다는 안 좋은 소문이 더 잘 퍼지고 깊게 기억되는 법이기에 지금 다시 선행을 베푼다고 좋은 쪽으로 인식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자신이 이곳에서 얻은 금전적 이익의 시작이 장우현이었기에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만유정이었다.
그날부터 무려 두 달간 만유정은 돈을 받지 않고 장우현의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나는 듯 장우현에서의 만유정은 다시 신의로 칭송받았고 그렇게 분위기가 진정되자 만유정은 드디어 길을 떠날 수 있었다.
* * *
마도맹으로 가는 길.
청해와 감숙이 마도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에는 분명 마도맹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는 마도맹의 위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옛부터 나라의 수도가 어디에 위치하느냐는 것은 영토 확장부터 정책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선행지표라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마도맹이 창설된 이상 마도맹의 위치는 마도맹의 목적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선행지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마도맹은 목적에 맞게 청해성에 마도맹을 설립했다. 제아무리 곤륜파라고 해도 마도맹이 청해성에 떡 하니 자리 잡았으니 버틸 리 없었다.
결국 청해 그리고 이어 감숙까지 마도의 영역으로 잠식된 것이다.
그렇기에 청해성의 성도인 서녕에 위치한 마도맹은 대략 장우현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수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만유정은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식사도 하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기 때문에 만유정의 일과는 그저 하루 종일 걷는 것이었다.
장우현에서의 일은 만유정에게 많은 경험을 선사했다. 그래서인가 알몸으로 세상에 나오던 때와 다르게 지금 만유정의 풍채는 제법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어느새 왼쪽 허리에는 검집을 만들었는지 용이 세 마리 승천하는 듯한 화려한 검집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옷도 움직이기 편하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선사하는 고급 백의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제법 준수한 외모에 한눈에 보기에도 단정한 풍채, 만유정의 외형은 이제 귀공자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생사를 초월한 듯한 만유정의 두 눈을 보면 그러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가 만유정이 마도맹으로 향한 지 삼 일이 되는 날 드디어 만유정의 앞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산적이 나타난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네놈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라.”
두 번째 만나는 산적이었지만 만유정은 장우삼살과 지금 만나는 세 명의 산적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만유정의 영심안은 앞에 있는 세 명의 산적이 고수의 탈을 쓴 산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범한 산적이라고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파천뢰를 꺼낼 필요도 없다고 느끼고는 허리에 있던 불사검을 서서히 빼냈다.
번쩍.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서인가 불사검의 예기가 싸늘하게 사방으로 퍼지면서 맑은 빛깔을 토해 냈다.
“무, 무림인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세 명의 산적은 경악과 함께 꽁지 나게 도망갔다.
무공을 배운 적도 없지만 이십 년의 내공을 가진 만유정에게 일반 산적들은 상대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말없이 불사검을 꺼낸 것인데 눈치 빠른 세 명의 산적은 그러한 만유정을 순식간에 파악한 것이다.
아마 저 세 명의 산적이 청해성에서 산적질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저러한 눈치인 모양이었다.
만유정은 도망가는 세 명의 산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두 발에 내기를 주입하면서 산적들을 향해 신형을 움직였다.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기에 딱히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물건을 훔치려고 한 죄는 톡톡히 되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산적을 향해 나가던 만유정의 신형은 그대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영심안에 잡히는 새로운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결국 산적을 향하던 신형을 멈추고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한 만유정의 시선과 함께 한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왼쪽 허리에 있는 푸른색의 검집이었다.
화려한 꽃문양이 이리저리 새겨지고 여기저기 명장(名匠)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이 한눈에도 보검이나 명검을 보관할 듯한 고급의 검집이었다. 그래서인가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의 무기를 파악하자 서서히 만유정의 시선이 상대의 얼굴로 향했다. 그러더니 만유정은 잠시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을 가지런히 묶고 그 흑발과 함께 찰랑이는 은하수 같은 눈동자와 알맞게 솟은 코, 그리고 앙증맞은 입술, 주위에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처럼 온통 새하얀 피부, 분명 만유정의 앞에 있는 존재는 여인이었다.
그것도 흔히 말하는 여인이 아닌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은 아름다운.
아는 얼굴도 아닌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앞을 막았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